티스토리 뷰
비혼(非婚) 여성의 귀농…라봉이 들려준 제주살이
귀농 4년차, 함께 또 홀로 단단하게 여물어가는 힘
작년 5월, 제주로 여행을 갔다. 당근이 많이 나는 제주 동쪽의 조용한 마을, 구좌읍 하도리에 묵을 때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을 보러 그곳에 온 라봉을 우연히 만났다.
처음 내 시선이 머무른 건 라봉의 시커먼 손이었다. 화산토가 쏟아져 내려 검은 흙이 많은 제주, 그곳에서 농사짓는 라봉의 손에는 손톱까지 까만 흙이 가득 박혀 있었다.
라봉은 손을 깨끗하게 씻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얘기 들어보니 기계는 물론 괭이조차 쓰지 않고, 장갑도 끼지 않고, 맨손으로 흙을 뒤집어가며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그 손을 보고 있노라니 나의 귀농에 대한 낭만이 깨지는 것 같았다.
▲ 제주여성농민회 언니들과 풍물 배울 때. 가운데 장구가 라봉.
올해 다시 라봉을 만났다. 서른여섯 살인 라봉(‘한라봉’이 아닌 ‘라면봉지’의 줄임말이다)은 4년 전 제주로 이주해서 친구들과 함께 살다가, 친구들이 모두 육지로 떠난 뒤 2년째 혼자 농사지으며 살고 있다.
나는 ‘저 여자는 어떤 힘으로 혼자 농사지으며 살고 있을까’ 궁금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농담을 던질 때는 무던함이 그 힘인 것 같다가도, 하얗고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환히 웃을 땐 순박함이 힘인 것 같았다. 안경 너머의 차분한 눈빛을 보면 단단한 내공이 그녀를 끌어주는 것 같기도 했다.
‘반농반어’를 꿈꾼 친구들과 제주살이를 시작하다
서울에서 환경단체 활동가와 ‘자전거 메신저’(오토바이나 차가 아닌 자전거로 택배 일을 하는 사람)를 했던 라봉은 전라남도를 귀농지로 생각하고 있다가 우연히 제주에 오게 됐다. 라봉의 친구가 다른 친구와 제주 이주를 모색하던 중 라봉도 합류하게 된 것이다. 네 명의 비혼(非婚) 여성이 모여 살게 됐다. 30대가 세 명이었고 40대가 한 명이었다.
친구들과 무가지 신문의 광고를 통해 구좌읍 종달리에 연세(1년치 월세를 한꺼번에 내는 방식) 200만 원 짜리 집을 구했다. 옆 동네로 품일도 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400~500평 밭을 빌려 감자, 들깨, 고구마, 콩을 심었다. 싸게 빌린 밭은 주로 길이 없거나 억새나 쑥, 바위가 많아서 다른 사람들이 농사짓지 않는 땅이었다. 농사짓는 게 만만치 않았지만 라봉은 흙을 밟고 만지는 게 좋았다.
▲ 내가 키운 것들로 요리하고 싶어서 농사짓는다. © 라봉
첫 해 농사를 짓고 거두어들인 작물을 육지의 지인들에게 팔았다. 상품성이 없어서 밭에 버려지는 무를 주워 와서 무말랭이를 만들어 팔기도 했다. 벌어들인 돈은 공용생활비 통장에 모았다. 적은 돈이지만 조금씩 용돈을 나눠서 썼다.
라봉과 친구들은 농사만 지을 생각은 아니었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제주는 해녀로 유명하기에 ‘반농반어(半農半漁)’를 꿈꿨다. 아침부터 땀 흘려 밭일하고 더워지면 바다에 들어가서 물일하면서, 농사로 다 충당할 수 없는 생활비를 물질로 메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골 마을은 결혼 안 한 여자들을 쉽사리 품어주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물질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 마을의 사람이 되지 않으면 힘들죠. 마을마다 해녀공동체가 있어서 거기에 가입을 해야 물질을 할 수 있는데 결혼을 안 하면 안 되고, 결혼했다고 해도 외지 남자랑 결혼한 사람은 안 돼요. 붙박이로 살 거라는 확신을 안 주면 문을 열어주지 않아요. 도청 게시판에 글도 올렸고 도청에서 노력해본다고 했지만, 마을의 힘이 더 강한 거죠. 이런 벽에 부딪치면 ‘아, 여기가 시골이구나’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고 여자들 넷이 기죽을 리는 없었다. 농사짓다 틈나면 자전거를 타고 제주를 돌기도 하고, 고사리도 뜯었다. 더운 날엔 샤워하듯이 바다에 가서 수영도 하고 가끔 소라나 성게, 보말(바다 고동)을 땄다. 이동 수단이 없다보니 히치하이킹도 많이 했다. 해군기지에 반대하는 강정마을의 싸움에 연대하기 위해 이동했을 때는 히치하이킹을 6~7번 해서 가기도 했다.
벌이가 적으니 아껴야 했다. 재활용 옷이 들어있는 함에서 옷을 꺼내 입기도 했다. 괜찮은 옷들은 일상복으로, 해진 옷은 작업복으로 입었다. 궁상맞다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맘에 드는 옷을 발견했을 때 환호하며 좋아했을 네 여자를 떠올려보니 웃음이 난다.
하우스메이트는 떠나고, 상실감을 달래려 밭으로…
라봉과 친구들은 종달리에서 1년 산 뒤, 아는 분 소개로 하도리에 연세 없이 살 수 있는 집을 얻었다. 방 네 개짜리 집인데 보일러는 방 하나에만 놓여 있었다. 겨울에는 추워서 다 같이 한 방에 모여 생활하다가 추위가 가시자마자 바로 각 방으로 찢어졌다고 한다.
“같이 살면서 하루 종일 일도 같이 하니까 개인생활이 없는 게 힘들었어요. 즐겁게 일한 적도 많지만 서로 일하는 방식이나 하고 싶은 일의 종류가 달라서 부딪치기도 했죠. 나를 포함해서 다들 자기 생각을 직설적으로 말하는 성격이 아니어서 대놓고 싸우기 보단 미묘하게 불편한 기류가 흐를 때가 많았죠.”
지금 생각해보면 같이 하는 농사와 각자 하는 농사가 따로 있었어야 됐지 싶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이 있어야, 같이 하는 농사도 즐거웠을 텐데. 돌아보면 오래 함께 사는 삶을 도모하기엔 스스로에 대한 확신도 부족했다.
같이 살기 시작한지 2년이 되기 전, 친구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육지로 떠났다. 누구는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간호하러, 누구는 농사짓는 것도 좋지만 농업에 대한 공부를 더 하고 싶다면서, 누구는 이렇게 농부로서 살기보다는 다른 일을 하면서 시골에 살고 싶다고 했다.
인생에 변수가 많은 나이이기에 어찌 보면 들고 나는 일은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친구들이 떠난 뒤, 라봉은 꼭 이혼한 것 마냥 상실감이 컸다. 상실감을 달래기 위해서 일에 매달렸다. 여럿이 있다가 혼자가 되었으니 사람들에게 빈틈을 보이기 싫어서 더 그랬다.
700평 밭을 혼자 일궜다. 아침 5시 반에 밭에 가서 어두워질 때까지, 12시간 넘게 꼬박 일한 적도 많았다. 단순 반복 작업이 많아서 지루할 땐 라디오도 듣고 혼자 노래 부르면서 일하기도 했다. 봄, 여름, 가을, 세 계절을 밭에서 견뎠다.
그렇게 무리하다보니 1년 만에 관절염이 찾아왔다.
“몸이 소모품이라는 걸 그때 알았어요. 귀농 선배가 처음에 내려가서 몸 간수 잘 하라고, 특히 손이나 관절이 많이 상하니까 조심하라고 했는데. 농민 언니들도 저한테 농사지을 몸이 아니라고, 뼈대가 약하다는 얘길 하곤 했는데. 겨울이 되어 혼자 집에서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면서 ‘아, 이렇게 에너지를 100프로 이상 소진하면서 농사를 계속 지을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죠.”
지속가능한 농사를 고민하기 시작하다
▲ 함께 사는 고양이 머루. 일은 안 하지만 감정적으로 교류할 수 있어 좋다.
힘든 겨울을 보낸 뒤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지속가능한 농사를 모색했다. 전에는 고집스럽게 뭐든지 손으로 다 했지만, 이제는 누가 트랙터로 밭을 갈아준다고 하면 고맙게 받는다. 이동수단으로 스쿠터도 샀다. (최근에는 스쿠터 사고를 겪고 중고차를 구입했다.)
그래도 여전히 살림살이는 넉넉하지 않다. 친구들과 지낼 때보다 돈은 좀더 벌었다. 그렇지만, 친구들이 떠날 때 즈음 집 수돗가에서 주운 반려고양이 ‘머루’의 사료 값과 병원비에 제법 돈이 들어간다.
“제 현실은 농사만 지어서는 먹고 살기 어려울 것 같아요. 제주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가거나 관행농(유기농이 아닌, 비료나 농약, 비닐 등을 써서 짓는 농사)으로 농사법을 바꾸지 않는 이상…. 그래서 민박을 같이 하려고 해요. 제주에 게스트하우스가 포화 상태라 쉽진 않겠지만요.”
라봉은 최근에 동네에 집을 샀다. 불이 났던 집이라 수리비가 거의 집값만큼 들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충동구매”했다. 서울에서 일할 때 모아둔 돈을 탈탈 털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 그대로 살면서 수리한 집은 독채민박을 놓을 생각이다.
집이 생기면서 정착의 무게가 더 생겼다. 자신에게도 그렇고 마을 사람들도 그렇게 본다. 얼마 전에는 이웃 삼춘(제주에서 이웃 어르신을 부르는 말)으로부터 “이제 집도 샀으니 1년 더 농사지으면 물질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얘기도 들었다. (야호!)
농사로 먹고 살려면 ‘알맞은 작목 선택’부터
라봉은 다시 귀농지를 선택한다면 지역보다는 ‘내가 어떤 농사를 지을 것인지’부터 먼저 생각할 것 같다고 말한다. 작목에 맞춰서 지역을 선택하고 사람을 알아가는 게 좋다는 것이다.
“어떤 농사를 지어야 내가 살고 싶어 하는 삶의 방식으로 살 수 있을지 고민해야 돼요. 자본주의나 돈에서 좀 더 자유롭고 싶어서 ‘농사’라는 삶의 방식을 택했는데 조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돈에 대해서 더 얽매이게 되고, 체력은 점점 소진되고 난감해지는 순간이 와요. 혼자라면 더 그럴 거예요. 농사로 밥을 벌어먹고 살고 싶다면 내가 어느 지역에서 어떤 농사를 지어야 필요한 만큼 먹고 살 수 있을지 부터 먼저 따져보면 좋겠어요.”
라봉은 “귀농하면 빠른 시일 안에 자기 밭을 확보하는 게 좋다.”고 한다. 귀농하려는 사람 중에 관행농법으로 농사지으려는 분은 거의 없을 텐데, 제초제나 농약을 치지 않고 농사지으려면 눈치가 많이 보인단다. 아무리 돈을 내고 빌렸어도 밭주인 입장에서 자기 밭에 풀이 자라는 게 보이면 싫어한다는 것이다.
제주로 귀농할 생각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제주는 육지의 시골과는 달라서, 육지의 산골은 하루에 버스가 몇 번 다니지 않고 막다른 곳도 많은데, 제주는 버스가 20분 만에 와서 편리하다. 그래서 처음 내려오는 사람들이 정착하는 데 어려움은 없는 것 같단다.
그렇지만 외지인들이 많이 이주하면서 제주 땅값이나 집값이 훌쩍 뛰었다는 얘기도 덧붙인다.
“제주 와서 제일 후회했던 건 땅값이 육지에 비해 비싸다는 거예요. 육지는 외진 곳 가면 아직까지 평당 2~3만원짜리 밭을 구할 수 있는데, 제주는 싼 게 평당 10만원이에요. 빌린다고 해도 임대료가 비싸서 수지가 안 맞아요. 집값도 2.5배 정도 뛰었어요.”
혼자 살아도 외롭지 않은 이유
“차나 사람이나 집이나 다 인연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라봉은 친구들과 함께 살 때 여성농민회(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제주도연합) 언니들을 알게 됐다. 처음에 연고가 없어 밭도 못 구하고 있을 때 친구의 소개로 생활협동조합 생산자를 알게 됐는데, 그 농가의 옆집에 사는 사람이 여성농민회 언니였다.
언니들은 농사짓겠다고 무작정 이주한 라봉과 친구들을 신기하고 기특하게 봐주기도, 안쓰럽게 여기기도 했다. 언니들 덕분에 집도 밭도 저렴하게 임대할 수 있었다.
▲ 제주여성농민회 언니들과의 인연으로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에 함께했다. © 라봉
언니들과 동네 회관에 모여 스윙댄스도 배우고 풍물도 배웠다. 작년에는 여성농민회에서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의 일환으로 채종포(씨앗을 채취할 목적으로 농사짓는 땅) 사업을 전개할 때 라봉도 한 몫을 했다. 이런 인연으로 작년과 올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 주최한 ‘귀농ㆍ귀촌학교’에서 귀농 선배이자 비혼 여성으로서 강의를 했다.
비혼 여성으로서 시골에서 살면서 힘든 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사생활이 없어요. 집에 누가 드나드는지 삼춘들이 다 스캔하고 있어요. 집에 있으면 너무 자주 물어보니까 그 말 듣기 싫어서 밭에 가기도 해요. 좋은 점도 있죠. 서울 갈 때도 문 안 잠그고 다녀요. 삼춘들이 세콤(보안서비스업체)인 셈이죠.
삼춘들이 만날 ‘결혼해라, 애 낳아라’ 얘기하죠. 어떤 날은 ‘예예~’ 건성으로 대답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할 거면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그냥 놔두라,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고 대답해요. 지금은 젊어서 그렇다고 쳐도 내가 마흔 넘고 오십 넘어서까지 결혼을 안 하면 마을에서 나를 받아줄까 싶어요. ‘너 결혼 안 할 거면 떠나라.’ 대놓고 말하는 삼춘도 있어요.”
매일 잔소리를 하는 동네 삼춘들이지만 정이 들어버렸다. 라봉에게 제주행은 의도이기도 했고 우연이기도 했다. 농사로만 보면 제주에서 꼭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제주여서 좋지만 제주가 아니어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관계가 깊어지고 정이 들어서 이 사람들을 두고 떠나는 게 아쉬워졌다.
같이 살던 친구들이 떠나면서 동반자는 사라졌지만, 그 즈음해서 또래들이 제주로 많이 이주했다. 농사를 지으러 온 친구는 없지만 민박을 한다든가 카페를 한다든가, 지역 센터에 출근을 하는 친구들이다. 친구들과 서로 왕래하고 같이 놀고 가끔 일을 도와주기도 하면서 라봉은 고립감을 느끼지 않고 살고 있다.
‘정직하고 바른 노동’을 통해 단단해지고 싶어
▲ 잡곡 갈무리, 고사리 말리기. © 라봉
농사가 좋은 이유를 묻자 라봉은 엉뚱하게도 “예뻐서”란다.
“올망졸망 농사짓는 게 예뻐서. 예쁜 거 많이 좋아하는데 새싹도, 열매도, 계절 따라 변하는 밭의 모습이, 그 색깔들이 참 예뻐서 농사가 좋아요. 해 뜨면 햇볕 받으며 바람 맞으며 일하고, 해 지면 집에 가고, 비오면 쉬고. 계절의 변화에 맞춰서 자연의 흐름에 따라 살 수 있어요. 봄, 여름, 가을 열심히 일하고 한겨울 동안은 곰처럼 푹 쉴 수 있고요.”
정작 현실은 비올 땐 하우스에 가서 품일 하고, 제주 날씨가 따뜻해 겨울 농사도 지어야 하지만.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꼭 필요한 것들을 기르고 그것들이 돈으로 교환되어 자신을 살게 하기에 농사는 가장 정직하고 바른 노동이라고 생각한단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씨앗처럼 단단해지고 싶단다.
제주로 이주한 후 지난 4년간 자신에게 다가오는 희로애락의 풍경을 온전히 겪어냈기에 라봉은 단단하게 잘 여문 것 같다.
씨앗은 단단한 껍질 안에 자신의 꿈을 품고 있다. 겉으로는 꼭 죽은 듯이 보여도 봄에 싱싱하게 뻗어나갈 가지와 여름에 화려하게 필 꽃, 가을에 실팍하게 달릴 열매까지, 손톱보다 작은 씨앗 안에 모두 들어 있다. 단단하게 여문 씨앗같은 여자, 라봉이 펼쳐갈 인생의 계절들이 궁금해진다. ▣ 나랑 기자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영문 번역기사 사이트> ildaro.blogspot.kr
'문화감성 충전 > 그녀 매력에 반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화로 청각장애인과 소리가 있는 세계를 ‘잇다’ (1) | 2017.03.27 |
---|---|
제주에서, 할망에게 길을 묻다 (5) | 2016.06.12 |
“정성스럽게 놓고” 바라본 여자사람, 엄마 (3) | 2015.03.14 |
한 장의 사진이 마을을 되살려준다 (0) | 2014.10.23 |
‘바다 건너에서 온’ 그녀가 남긴 손수건 (0) | 2014.08.18 |
‘학교 밖’ 문화예술교육을 시작하며 (0) | 2014.07.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