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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방이 필요한 때, 한방이 필요한 때

<반다의 질병 관통기> 통합 치료에 대한 기대



※ 질병을 어떻게 만나고 해석할 지 다각도로 상상하고 이야기함으로써 질병을 관통하는 지혜와 힘을 찾아가는 <반다의 질병 관통기> 연재입니다. 2016 <하늘을 나는 교실> 겨울 학기 “질병과 함께 춤을!” 강좌를 통해 작가와 직접 만나보세요! http://bit.ly/1YcipVv

 

담당의사 몰래 뜸뜨기

 

“사진 찍어도 별 이상이 없다는 데, 몸이 계속 아파.”

 

교통사고로 입원해 있는 친구가 전화를 걸어 볼멘소리를 한다. 의사는 별 이상이 없다는데, 자신은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단다. 열흘 넘게 입원해서 물리치료를 매일 받는 중인데 별로 호전이 없다며, 잠을 제대로 못 잘 만큼 통증이 심하니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는다. 목소리에 잔뜩 답답함이 묻어난다.

 

나는 양방에서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 교통사고 후유증에는 침이 더 빠를 수도 있으니, 근처 한의원이라도 가보라고 했다. 물론 담당의사가 알면 기겁을 할 테니, 점심시간에 몰래 나가서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흔적이 남는 부황이나 냄새가 배는 뜸 같은 건 하지 말고, 티 안 나게 침만 맞고 오라는 조언과 함께.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수행해야 하는 작전이다!


▶ 양방이냐 한방이냐, 전문 지식 없이 눈치껏 선택해야 하는 환자들.  © 이미지 제작: 조짱 

 

나도 예전에 그런 적 있다. 몇 년 전 수술을 하고 입원해 있던 때였다. 수술 부위 통증 뿐 아니라 몸이 전체적으로 너무 무거웠다. 그때는 뜸 치료를 한참 할 때여서 입원 전날 까지도 매일 뜸을 떴다. 뜸을 뜨면 몸이 따뜻해지고 가벼워지는 것 같았고, 숙면을 하기 좋았다. 병원에 있는 내내 ‘뜸을 좀 뜨면 잠이라도 푹 잘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의사가 알면 분명 화를 낼 일이었다.

 

병원 침대에서 잠을 못자고 뒤척인 지 며칠이 지난 어느 밤, 결국 나는 작전을 감행했다. 혹시나 해서 가방에 챙겨 왔던 뜸통을 들고 병원 정원의 후미진 곳을 찾았다. 혹시 환자복에 냄새가 배면 안 되니까 무릎담요와 점퍼로 환자복을 감쌌다. 그리고 뜸통을 꺼내 의사나 간호사에게 혹시라도 들킬 염려가 없는 다리 쪽에만 뜸을 떴다. 얼마 뒤 몸이 좀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고, 그날 밤 오랜만에 뒤척이지 않고 잠을 잘 수 있었다.

 

양방 치료와 한방 치료의 효과들

 

며칠 전 교통사고가 났던 지인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병원에서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해서 퇴원을 했고, 한의원 치료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침을 맞기 시작하면서 통증이 한결 완화되어 그나마 살 것 같단다. 한의사가 교통사고 직후 바로 치료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미 어혈이 몸에 스며든 후라 치료 기간이 좀 길어질 거라고 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지인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병원 앞에 한의원이 있는 것까지는 확인했는데, 몰래 치료를 하러 다닐 엄두가 나지 않아 포기했다는 말을 했다. 어차피 호전도 없었는데 병원에서 일찍 퇴원을 하거나, 몰래 라도 침을 맞으러 다니면 좋았을 거라고 뒤늦은 후회를 했다. 입원 내내 통증에 시달렸던 시간을 생각하니 뭐한 건가 싶고, 결국 회복도 더욱 더디게 될 거라고 하니 속 터진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리고 뭔지 모를 억울함이 든다고 했다.

 

‘뭔지 모를 억울함.’ 나도 그게 어떤 건지 알 것 같았다. 한의사들은 양방 진료에 대해 그나마 거부감을 덜 표하지만, 내가 만난 대부분의 의사들은 한방 치료에 부정적이었다. 의사들과 진료 상담 중에 침 뜸 치료나 한약을 먹는다는 얘길 하면 의사들 표정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어떤 의사는 마치 나를 미신을 신봉하는 사람 취급하며 혼내기도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컨닝이라도 하다가 들킨 학생처럼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의사의 말을 듣곤 했다.


▶ 양한방 병행 치료의 여러 효과가 환자들의 경험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 이미지 제작: 조짱


그런데 여러 환자들은 직간접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응급치료부터 정밀한 검사와 수술을 하는 건 양방 의학이 더 좋을 때가 많지만, 어떤 질환은 한방 치료가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를테면 중풍(뇌졸중)으로 급히 쓰러졌을 땐 양방에서 수술과 약물 등의 치료를 하는 게 우선인데, 수술 후 팔다리 경직(마비)등의 후유증이 오면 양방에서는 재활치료 이외에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이런 경우 한방에서 침 치료를 받으면 경직이 호전되기도 하고, 재발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물론 중풍 외에도 난임 치료, 디스크, 만성 어깨통증 등 한방 치료 사례는 많다. 특히 최근엔 암과 관련해 양방에서 수술요법을 시행한 후 항암 과정에서 발생하는 구토나 섭식장애 등 부작용은 침이나 여러 한방 치료를 병행한 사례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다양한 긍정적 효과를 언급한 의학칼럼이나 논문도 여럿 찾아볼 수 있었다. 양한방 병행 치료의 여러 효과는 환자들의 경험으로 이야기되기도 하고,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양한방 의료계의 불신과 갈등…피해는 환자 몫

 

그럼에도 나를 포함한 환자들은 양방, 한방 의사들의 전문적인 조언을 받으며 양쪽의 치료를 병행하기보다는 눈치껏 알아서 진행해야 한다. 물론 양한방 협진 병원이 극히 일부 있긴 하지만, 정책적으로 우리 사회는 양한방 이원 구조다. 여전히 양방에서는 한방을 비과학적이라고 배척하는 분위기가 있고, 한방에서는 양방이 국소적 의료라며 불신하는 분위기가 보인다.

 

서로에 대한 불신에는 양방과 한방이 인간의 몸과 질병을 바라보는 시각, 즉 의료에 대한 근본적인 관점의 차이가 작용하는 것 같다. 그리고 양한방 병행 치료에 대한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심심찮게 보도되는 양한방 갈등에 대한 기사를 보면 두 집단이 겉으로는 전문성이나 국민의료 증진을 말하고 있지만, 영역 다툼과 밥그릇 싸움도 큰 몫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는 세상에서 의료계도 예외는 아니니, 그 자체가 놀랍지는 않다.

 

하지만 환자들이 양방과 한방을 오가며 눈치를 보는 현실은 정말이지 부당하다. 특히 나처럼 통증이 많거나, 양의학으로 치료가 잘 되지 않는 질병을 가진 이들은 한의학 혹은 대체의학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현재 시스템으로는 의료 전문가들로부터 양한방의 다양한 치료법을 비교해서 제대로 듣고 선택을 할 수 없다.

 

환자가 양한방 의사들에게 각각 듣고, 알아서 판단하고 진료를 선택해야 하는 게 너무나 아쉽다. 게다가 한국의 한방치료 기술은 세계적으로도 뒤지지 않는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는 터라 아쉬움은 더하다. 나와 같은 환자들이 한국 사회에 적지 않을 텐데,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상황에 놓여야 하는 것일까.


▶ 오히려 서구에서는 양한방 통합 치료가 이뤄지는 곳들이 많다.  © 이미지 제작: 조짱


양한방 통합치료 논의, 돈보다 생명을!

 

전에 입원해 있을 때 다른 환자로부터 외국에서는 양한방 통합치료가 이뤄진다는 얘기를 들은 게 떠올랐다. 혹시나 해서 관련 자료를 찾아 봤다.

 

서구에서는 우리가 한방이라고 부르는 침이나 뜸, 한약 같은 치료를 동종요법(homeopathy. 자연치유력에 근거해 질병 증상과 유사한 반응을 유발시켜 치료하는 방법)이나 카이로프랙틱(chiropractic. 수술을 하지 않고 척추를 교정하는 수기 치료법) 등 다른 여러 치료법과 함께 대체의학이라는 이름으로 포괄적으로 규정한다고 한다. 국가마다 대체의학의 범위가 다르고 자격증을 관리하는 방식도 차이가 났다. 대체로 현대의학과 대체의학으로 구분하는 것 같다.

 

대체의학을 다룬 한 논문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환자에게 유익하다고 여겨지면 현대의학 이외 침술이나 동종요법 등 대체의학을 진료할 수 있고, 영국도 의료진의 선택으로 대체의학을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고 한다. 미국은 국립보건원 국립암연구소에 암보완대체의학 사무국이 설립되어 있고, 특히 주요 암센터에서는 침, 명상 등 대체의학 치료가 병행되고 있다. 중국의 경우도 중의학과 현대의학을 결합한 전문병원이 여러 곳 있다고 한다.

 

몇 가지 논문 자료들만으로는 외국에서 통합의료가 얼마큼 실효성 있게 진행되는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환자들이 하나의 병원 안에서 양쪽 의사들 눈치를 보지 않고 의료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상황에선 이상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한국처럼 양한방이 완전히 이원화된 체계가 아니라 통합적 의료가 시행되는 사례들을 보니, 외국의 사례임에도 반갑고 조금은 안심이 된다.

 

한국도 의료통합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있어왔고 한국의 많은 시스템이 소위 ‘서구 선진국’ 사례를 따르는 경우가 많으니, 의료시스템도 통합하는 방향으로 잘 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싶다. 하지만 역사에서 언제나 그랬듯 우리가 원하는 방향대로 저절로 흘러가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양한방 의사들 각각 집단이 의료통합을 두고 갈등을 하고 있는 가운데, 조만간 국회에서 의료일원화 토론회가 열린다고 한다. 조금 매서운 시선으로 무슨 얘기를 하는지 지켜봐야겠다.

 

양한방을 떠나 모든 의학은 질병에 갇히지 않는 건강한 삶을 목표로 한다. 의학을 도구 삼아 더 많은 돈을 버는 게 목표인 직업인들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정부는 시민의 건강권을 보장하고,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책을 만들 의무가 있다. 올 봄에는 선거도 다가온다. 나는 이번에 처음으로, 의료일원화 관련해서 의견을 표명하고 소신을 갖는 후보자들이 있는지 살펴볼 생각이다. 반다

 

※ 참고 자료

유화승, 권해경, 김정선 <세계 암 보완대체의학의 현황에 대한 연구> 대한암한의학회지, 2009.

최희경 <한국의 의료갈등과 의료정책> 지식산업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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