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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력과 주거환경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

<반다의 질병 관통기> ‘건강 불평등’에 대하여


 

※ 질병을 어떻게 만나고 해석할 지 다각도로 상상하고 이야기함으로써 질병을 관통하는 지혜와 힘을 찾아가는 <반다의 질병 관통기> 연재입니다.


위암 수술을 받은 언니의 소식

 

“딸기가 레몬보다 비타민이 두 배 많고, 딸기를 먹으면 암세포가 자살을 한다더라. 내가 뭘 아냐, 티비에서 들은 얘기지.”

 

아버지는 한 번씩 내게 무슨 음식이 어디에 좋더라는 정보를 읊는다. 아버지는 평생 ‘하면 된다’로 살아온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라, 건강도 음식과 적절한 운동으로 잘 관리하면 반드시 지킬 수 있다고 믿는다.


▶ 건강정보 프로그램. MBN <황금알> 195회- 암 걸리지 않는 법(2016.01.25)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는 사람들 근황을 이야기하다가 강원도 아저씨네 집 딸이 위암 수술을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나도 어릴 때부터 가끔 본 적이 있는 언니였다. 아버지는 ‘그 애가 어릴 때부터 성격이 예민하고 급했었는데, 음식도 급하게 먹는 습관이 있었나?’ 라며, 아직 젊은데 어쩌다 위암인 건지 모르겠다고 옅은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녀가 몇 년 전 재취업을 하느라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것과, 경쟁이 무척 심한 직종에 몸담고 있다는 게 떠올랐다. 회사에서 늘 긴장감 속에서 지냈던 게 아닐까. 그러다보니 점심시간에도 무의식적으로 빠르게 밥을 먹고, 짜게 먹게 되었을 테고…. 남은 시간 여유를 즐길 틈도 없이 다시 컴퓨터에 앉아 데이터를 검토하는 삶을 살고 있던 건 아닐지.

 

남성 동료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애쓰며, 혹시나 정규직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와 다시 정리해고 대상이 되면 안 된다는 불안을 오가진 않았을지. 그러면서 더욱 일에 매달리는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생각이 미쳤다.

 

나는 아버지에게 질병을 개인의 예민한 성격이나 습관과 연결시키는 건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고, 사회적 위치가 개인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다 정신력의 문제라고 일축했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에 비해 질환 유병율이 높고, 산재 사고나 산재 사망이 더 잦다는 말은 꺼내지도 못했다.

 

‘동네’가 주민들 건강에 미치는 영향

 

부모님 집 아파트 창밖으로 산책로를 따라 빼곡히 운동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말이 산책로지 나무가 거의 없고, 연일 미세먼지는 경계수위다. 미세먼지는 소리 없는 살인이라고 부를 만큼 뇌심혈관계에 치명적 영향을 주는데, 뇌심혈관계 질환은 한국인에게 암 다음으로 높은 사망 요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미세먼지에 대한 경각심은 그 위해에 비해 높지 않은 것 같다.

 

사실 미세먼지가 없는 날도 공기가 쾌적하지 않다. 산책로 건너편 동부간선도로에서 넘어오는 먼지가 만만치 않다. 그런데도 그 산책로는 운동복 차림으로 걷고 뛰는 이들로 늘 붐빈다.

 

문득, 서울 강남과 강북의 ‘건강 불평등’에 관한 기사가 떠올랐다. 강남 시민들의 평균 수명이 강북보다 3년 이상 길고, 질병과 자살을 포함한 사망률도 강북이 높다고 한다. 그 기사를 보며 ‘강남으로 이사 가면 더 오래 살 수 있는 걸까’라는 어이없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단순히 개인의 ‘경제력’ 차이뿐 아니라, 실제로 강남과 강북이 갖는 ‘사회적 환경’이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녹지가 풍부한 지역의 공기, 치안 좋은 산책로와 공원, 질 좋은 의료 서비스, 사고로부터 안전한 도로 등의 차이가 실제 주민들의 건강이나 사고 위험 등에 적지 않은 작용을 할 것 같다.


▶ <지역 별 기대수명>    ⓒ 이미지 제작: 조짱

 

동네에 나무가 풍성한 공원이나 산책로가 있다면, 그 지역 주민들의 운동 습관에 분명 영향을 줄 것이다. 그 공원이나 산책로가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에도 치안 관리가 잘 되는 안전한 곳이라면, 특히 여성들의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집 가까운 곳에서 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환경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생사를 가르는 골든타임이 중요한 급성질환은 물론이고, 장기적 치료가 필요한 만성질환이나 고령화에 따른 건강 관리 등. 수명은 물론 삶의 질도 달라질 것이다.

 

건강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다는 수면을 기준으로 생각해 봐도 그렇다. 낡은 집이 빼곡한 동네에서 옆집 휴대폰 소리가 들릴 만큼 방음이 안 되고, 낮에도 형광등을 켜야 하는 원룸에 사는 사람. 그리고 조용한 주택가에 있는 잘 지어진 햇살을 머금는 집에 사는 사람. 이 둘의 수면 질은 다를 수밖에 없다. 수면으로 피로를 회복하는 정도와 정신건강 등에 각기 다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빈곤층, 비정규직이 건강도 취약해

 

건강과 질병은 개인의 노력으로만 지키고 관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의사와 환자만의 노력으로 지켜지고 관리될 수 있는 영역도 아니다. 국가와 사회가 안전한 대기환경을 관리하고, 풍부한 녹지와 적정한 주거환경 기준을 설정하고, 평등한 의료 접근권을 보장하고, 합당한 고용형태를 관리하는 등, 건강한 사회 구조가 형성되고 개입되어야 하는 영역이다.

 

그러나 넘쳐나는 건강 정보를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건강이란 개인이 좋은 음식을 챙겨먹고 적당한 운동과 좋은 습관으로 관리하면 지킬 수 있는 영역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미디어가 쏟아내는 건강 정보 자체가 문제인 건 아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건강과 질병이 자꾸만 개인의 문제로 환원되고, 사회적 조건이나 책임은 잘 보이지 않게 하는 효과가 발생한다면 그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 OCED 가입 국가들의 <성별 임금 격차>  ⓒ 이미지 제작: 조짱

 

‘건강 불평등’의 사회적 맥락을 살펴보면 고용 상태에서 비정규직이 더 취약하고, 부의 상태에서 빈곤한 사람이 더 취약하다. 비정규직이 여성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여성비정규직 비율이 60%에 달하고, 여성비정규직 4명 중 1명은 최저임금에 미달한 임금을 받는다고 한다. 또한 여성 임금 수준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합쳐도 남성의 70%가 채 안 된다.

 

평균 수명은 여성이 남성보다 길지만, 여성노인의 연금 수령액은 남성노인의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거기에 동일 빈곤 상황에서도 빈곤으로 인한 건강 영향에 남성보다 여성이 더 민감하다는 보고 등을 떠올려 본다면. 여성들은 고용이나 경제적 지위에서 불평등한 위치에 놓임으로서 건강에서도 더 열악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아프면 사회 참여도 제한된다

 

건강은 한 인간의 삶의 질에 절대적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한 명의 사회 주체로서 활동하는데 주요한 요소가 된다. 특히 한국처럼 개인의 능력과 무한경쟁이 강조되는 사회에서는 건강해야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고, 건강해야 경쟁에서 앞서기 위한 시도를 부단히 할 수 있게 된다.

 

건강하지 않다고 해서 사회활동을 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건강한 사람이 훨씬 많은 에너지와 안정적 조건을 가지고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건 사실이다. 특히 이 사회는 강하지 않은 몸, 즉 질병이나 장애를 가져 표준에서 벗어난 취약한 몸의 속도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건강 불평등’ 문제는 가난하거나 차별을 받는 사람이 더 많이 아프고 삶이 더 불안정하다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 것 같다. 아프다는 건 그 개인의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적극적인 사회 참여가 제한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는 질병으로 취약한 몸 상태에 머물게 됨으로써 동료들만큼 의미 있는 많은 일을 수행하지 못한다. 그로인해 때로는 중요한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고, 내가 행사할 수 있는 의사 결정권에도 영향을 받는다. 건강은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적극적으로 발언할 기회를 갖는데 주요한 전제 조건된다. 사회 구성원이 평등하게 건강권을 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평등한 사회 참여 또한 보장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는 서울 강북구는 평균 수명이 낮은 동네다. 얼마 전 기사를 보니 서울에서 연평균 미세먼지 농도가 가장 높은 구가 광진구, 강북구, 성동구라고 한다. 미세먼지조차 서울의 다른 지역에 비해 가난한 동네에 더 많이 머물고 있다. 미세먼지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같은 그룹에 속한 발암물질로는 방사성 물질 플루토늄이 있다. 숨 쉴 때마다 발암물질을 흡입하고 있는 셈이니, 일단 딸기라도 먹어야 하는 걸까.

 

주말엔 지인들과 딸기를 먹으며, 건강 불평등과 사회적 책임에 대해 진지한 수다를 떨어야겠다. 그리고 건강권이 평등하게 보장될 때 사회 참여도 평등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좀 더 진척시켜 봐야겠다. ▣ 반다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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