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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전증후군은 난소를 제거하면 좋아진다?
<반다의 질병 관통기> 의료연구와 젠더
※ 질병을 어떻게 만나고 해석할 지 다각도로 상상하고 이야기함으로써 질병을 관통하는 지혜와 힘을 찾아가는 <반다의 질병 관통기> 연재입니다.
난소, 자궁, 갑상선 제거…과잉수술 논란
“월경전증후군은 배란성 월경 주기에 국한되어 있으며 초경 전, 폐경 후, 무배란성 월경에서는 생기지 않습니다. 난소 호르몬을 나오지 못하게 하거나 난소를 제거하면 좋아집니다.” -모 병원 건강칼럼 중에서
‘월경전증후군은 난소를 제거하면 좋아집니다.’
이게 도대체 뭔 소리야!
‘만성비염은 코를 제거하면 좋아집니다.’
이렇게 말할 것이야?
최근 월경 직전에 너무 기운이 없고 체온도 유독 떨어지는 느낌이라 인터넷에서 관련 정보를 찾다가 위의 병원 칼럼을 발견했다. 정말이지 저런 걸 치료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걸까? 단지 칼럼일 뿐인데, 마치 의사가 코앞에서 내 얼굴을 보며 한 말인 양 삐죽 화가 났다.
엄청난 양의 방사선 치료로 암 세포를 다 죽이긴 했는데 환자도 죽어버렸다는 얘기가 떠오른다. 현대의학이 환자의 몸을 기계처럼 다루는 것 같아서 불쾌한 기분마저 든다. 그러니까 마치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버벅거리면 분리해서 버리고 새로운 하드로 갈아끼우듯, 몸이 가진 유기성이 간과된 채 장기가 쉽게 잘려지고 버려지는 대상이 된 것 같다.
▶ 몸의 유기성. 자궁과 난소는 임신 목적 외엔 떼어버려도 상관 없는 기관이 아닐 것이다. ⓒ이미지 제작: 조짱
문득 한의사 선생님이 기분이 다운되거나 화가 날 때 빨리 기분 전환을 하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떨어진 체온도 올릴 겸 대중목욕탕에 갔다. 평일 낮 시간이어서 그런지 사우나실엔 대부분 흰머리 많은 아주머니들이었다. 사우나실에선 인공관절수술을 했더니 좋다는 이야기와 후회한다는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그곳에 있던 예닐곱 명 중 무려 세 명의 무릎에 세로선이 그어져 있었다. 무릎인공관절 수술 자국이다.
무릎인공관절 수술 후에 집 앞에 있는 산도 다시 걷기 시작했다고 예찬론을 펼치던 아주머니가 자궁을 들어낸 것에 대해선 후회한다고 말했다. 자궁근종 수술을 두 번 했는데 다시 근종이 생겼고, 의사는 애도 다 낳았는데 쓸데도 없다며 자궁 적출을 권했단다. 아주머니는 수술을 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의사가 지금까지는 단순 근종이었지만 다음엔 악성종양인 암이 생길 수도 있다고 말해서, 결국 적출 수술을 했다고 한다.
그 아주머니는 10년 전 자궁 적출 수술을 한 후 요실금에 빈혈까지 생겼고, 몸에 늘 찬바람이 부는 것 같다고 했다. 봄마다 한약을 두세 재는 먹어야 한해를 날수 있다며, 다른 아주머니들에게 절대 자궁 적출을 하지 말라고 손사래를 쳤다. 옆에서 누군가 그래도 의사가 시키면 해야지 별수 있냐고 하자, 병원이 환자를 돈벌이 수단으로 본다는 얘기, 아는 사람도 적출 수술을 했는데 그 사람은 별 문제가 없다는 주장, TV에서도 우리나라가 자궁 적출 1위라며 문제라고 나왔다 등등. 사우나실 열기만큼이나 뜨겁게 이야기가 쏟아졌다.
자궁 적출을 했다는 아주머니는 낯모르는 나에게조차 절대 자궁 적출은 하지 말라며 말을 건넸다. 무릎 관절이나 눈 쌍꺼풀 수술 같은 것과는 절대 차원이 다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기는 나름대로 살아서 다 자기 몫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자궁이 애 다 낳았다고 필요 없는 게 아니라고. 자신도 자궁이 ‘아기집’인줄만 알았는데 수술해서 떼어버리고 보니, 여자들이 집안일 하듯 그렇게 자궁이 몸 안에서 조용히 하는 일이 많았던 것 같다고 이어지는 말.
그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아까 병원 칼럼을 읽으며 느꼈던 불쾌한 기분에 물을 한바가지 뿌린 듯 시원했다. 맞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저런 말이었다. 현대의학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아직 다 밝혀내지 못한 장기의 기능이나 질환은 많다.
월경 전 증후군이나 생리통, 월경불순, 부정출혈, 자궁근종, 다낭성난포증후군 등등 자궁과 관련된 증세나 질환만 봐도 그렇다. 이런 질환으로 병원에 갔을 때, 속 시원히 발병 원인이나 치료법을 듣지 못하는 경우는 흔하다. 관련 질환 환우 카페에 들어가 봐도 산부인과를 가봤지만 막막할 뿐이라거나, 적당히 아프며 체념하고 산다, 불안한 마음에 주기적으로 새로운 병원을 찾아다닌다는 이야기가 넘친다.
다수의 여성들이 겪고 있는 자궁 관련 증세나 질환에 대해 정말로 특별한 원인이 없는 건지, 자궁 관련 연구가 임신 출산에만 맞춰져 있기 때문인 건지, 아니면 자궁 자체가 연구가 덜 된 영역인건지 알 수 없다.
자궁 관련 질환으로 인한 자궁 적출, 그것만큼 자주 이야기되는 것이 갑상선 암이다. 갑상선암으로 인한 갑상선 제거 비율 또한 한국이 높다. 그런데 갑상선암은 여성암이라고 불릴 정도로 여성에게 주로 발생하는 질병이다. 또 갑상선 제거는 자궁 적출과 함께 언론에서도 과잉 수술 논란으로 자주 회자되는 대표적 사례다.
▶ 글로리아 스타이넘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혹시 여성들이 겪는 질환이라서 그런 건 아닐까 의구심이 밀려온다.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질병이라서 더 쉽게 자궁 적출이나 갑상선 제거 수술이 행해지는 건 아닐지, 손쉽게 제거하는 방식이 아닌 ‘대안적 치료법’이 제대로 개발되고 있지 않은 건 아닐지.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책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현실문화연구, 2002)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월경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남자들은 자기가 얼마나 오래 월경을 하며, 생리양이 얼마나 많은지 자랑하며 떠들어댈 것이다. 지체 높은 정치가들의 생리통으로 인한 손실을 막기 위해 의회는 국립 월경불순 연구소에 연구비를 지원할 것이다. 의사들은 심장마비보다는 생리통에 대해 더 많이 연구할 것이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상상에 나도 한 표를 던진다. 한정된 연구비, 산적하게 쌓인 연구 질환 속에서 우선순위가 되는 질환은 무엇일까? 연구비와 자원 분배에 더 많은 영향력과 결정권을 지닌 집단이 주로 걸리는 질환이 아닐까, 그러니까 백인 남성 부유층이 주로 걸리는 질환들 말이다.
의료연구에서 성차는 얼마나 고려되고 있을까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의학 연구는 보통 남성 몸이 기준으로 설정된다고 한다. 임상실험도 주로 동물은 수컷 쥐, 사람은 백인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동물의 경우 암컷이 더 비싸기 때문이고, 사람의 경우엔 여성을 대상으로 할 때 임신 출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모성보호’ 차원에서 그런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중요한 것은 성별에 따라 발병이나 치료가 달라질 수 있는 증세나 질환이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남성에게는 심박을 안정시키는 약물이 여성에게는 치명적인 부정맥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뇌졸중의 경우 발병률은 남성이 높지만, 사망률은 여성이 두 배 가까이 높다. 여성의 무릎 앞 십자인대 파열은 남성보다 무려 18배나 많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런 차이는 여러 질환에서 발견된다고 한다.
현대인들이 흔히 겪는다는 우울증의 경우, 뇌의 세로토닌이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남성의 세로토닌 생산량이 여성보다 많다거나, 여성이 항우울제를 복용할 경우 월경주기나 피임약 복용에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도 접한 적이 있다. 그에 관해 성별 차이를 고려한 의학 연구는 충분히 진행되고 있을까?
의사들이 쓴 자료를 찾아봐도 생식기나 임신 이외의 영역, 그러니까 의학 전반에서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 자체가 겨우 몇 십 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니, 여성 몸에 대한 연구는 충분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막연히 짐작할 뿐이다.
▲ 의료연구에서 성차는 얼마나 고려되고 있을까 ⓒ이미지: 조짱
자궁 질환과 갑상선 질환을 둘 다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이런 현실 앞에서 더욱 답답함을 느낀다. 갑상선은 여성 남성 모두 가지고 있으나, 관련 질환의 여성 발병률이 절대적으로 높다. 어쩌면 성별로 발병 원인이나 치료법이 다르게 접근되고 발전되어야 할 영역인지도 모른다. 자궁은 여성 몸에만 있는 기관이니 말할 것도 없다.
여러 증세로 몸은 아픈데 효과적인 치료는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선 작은 실마리라도 찾아보려고 노력하기 마련. 나는 혹시나 자궁과 갑상선 질환을 연결해서 치료해야 하는 건가 싶어 각 과의 담당 의사들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돌아온 답변은 동일하다. 자궁과 갑상선 질환의 연관성은 없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관련 환우 카페에 들어가 보면, 갑상선과 자궁 관련 질환을 동시에 앓고 있는 여성들이 많다. 심지어 갑상선 제거와 자궁근종(혹은 자궁 적출) 수술을 협진으로 동시에 수술했다는 사례들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둘은 전혀 관련 없는 질환이라는데, 단순히 우연의 일치인 것일까?
질병은 타고난 생물학적 특성과 사회적 조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차이가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채, 남성 몸을 기준으로 연구된 약물이나 치료법을 여성 몸에 그대로 적용함으로써 발생하는 부작용이나 효과 없는 결과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혹시라도 여성질환이기 때문에 연구비 책정 우선순위에서 상대적으로 밀리거나, 주요한 연구 결과로서 덜 인정받고 있는 건 아닐지. 그럼으로써 몸의 조직 일부를 제거하는 방식이 아닌 더 나은 치료법이 개발되지 못하고 있는 거라면? 물론 이 모든 건, 여성뿐 아니라 장애나 인종 등에 따른 ‘다른 몸’들이 공통으로 겪을 수 있는 일일 것이다. ▣ 반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 참고 문헌: 메리앤 J. 리가토 <이브의 몸>(사이언스북스,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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