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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몸…통각 외에 다른 감각을 깨우자
반다의 질병 관통기④

 

 

※ 2015 <하늘을 나는 교실> 가을 학기에 “질병과 함께 춤을! -잘 아프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몇 가지 것들” 수업을 개설한 반다(조한진희)님의 ‘질병 관통기’ 마지막 연재입니다. -편집자 주

 

‘통증이 머무는 집’ 같았던 나의 몸

 

몸이 아프고 나서야 내가 ‘몸의 존재’임을 알았다.

 

그것을 극명하게 느끼는 순간 중 하나는 통증이 찾아 올 때였다. 몸 곳곳의 통증과 현기증이 심해서 유배되듯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만 머물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는 통증 때문에 잠 깨지 않는 날이 거의 없던 밤을 보냈다. 어떤 하루는 종일 통증을 느끼는 것 이외에 한 게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떤 순간은 통증 자체가 삶의 전부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질 때도 있었다.

 

하루는 머리가 유독 멍하고 약간의 두통도 있어서 방에서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머리로 피를 충분히 공급해 주기 위해, 머리가 땅으로 향하는 운동을 한 번씩 하라던 한의사 선생님 말씀이 떠올랐다. 서서 허리를 굽혀 머리로 피를 보내려는 순간 온 몸의 장기가 머리로 쏠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대로 두면 마치 눈과 귀로 창자가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  <통증과 질병이 머무는 집>     © 반다 
 

통증을 한참 경험하던 그때는 나의 몸이 ‘통증이 머무는 집’처럼 느껴졌다. 여러 질감의 통증들이 하루가 다르게 왔다가 가고 다시 오는 사랑방 같은 집. 그 집은 대문이 없고 창문도 없다. 햇살과 바람이 자연스럽게 집을 드나들 듯 그렇게 통증도 시시때때로 들락거렸다. 통증이라는 손님은 몸이라는 집 주인에게 어떤 예고도 없이 방문했고, 집 주인은 통증이 떠나길 바랄 뿐 떠나게 할 방법을 잘 알지 못했다.

 

내가 몸의 존재임을 강하게 인지하게 되는 또 다른 순간은 새로운 질환이 나타났을 때였다. 병원에 가고 여러 검사를 받은 뒤 약이나 주사를 처방 받고, 의사의 지시에 따라 열심히 약물을 복용하며 지시받은 생활 습관을 유지한다. 이후 호전이 없으면 다른 과(科) 진료를 추천받고, 다시 예약일에 맞춰 가서 검사와 약물처방으로 이어지는 그 반복되는 과정. 그런데 그 과정에서 전에 없던 새로운 질환이 등장하고, 다시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이 오곤 했다.

 

그렇게 한참 몸 곳곳이 아프던 그때는 내 몸이 질병의 숙주가 된 것만 같았다. 처음엔 고장 난 집을 조금만 보수하면 되는 줄 알았다. 떨어진 문을 달고 금이 간 벽을 고치면 괜찮을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를 고치면 저기가 탈이 났고, 저기를 고치면 또 다른 곳이 탈이 났다. 질병을 떠나보내려는 노력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마치 자신의 그림자를 떨궈내기 위해 아무리 도망을 쳐도, 내가 사라지기 전에는 그림자도 사라지지 않듯 말이다.

 

질병과 통증이 곧 내 몸인 것 같았다. 물론 통증도, 질병도 삶의 어떤 순간엔 나의 일부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곧 나일 순 없다. 그리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조차도 질병, 통증, 내 몸이 잘 분리되지 않았다. 그 셋을 구분해서 생각할 수가 없게되었다.

 

춤추다, 내 몸의 다른 감각이 살아나다

 

그 시기 어느 날 식탁에 앉아 귤을 먹는데 온 몸에 귤 향기가 퍼지는 게 느껴졌다. 아마도 식이요법을 엄격히 할 때라 미각이 예민하고 맑은 상태여서 그랬던 것 같은데, 귤의 여러 맛이 다 느껴졌다. 귤의 달콤한 맛이 혀에서 머리와 목으로 스미는 것 같았고, 신맛이 등과 발끝까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마치 생애 처음 귤을 먹어 본 사람처럼 온 몸으로 그 맛이 느껴졌다. 마침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이 등을 따뜻하게 해주고 있었고, 약간 비현실적일 만큼 기분이 좋았다.

 

그 순간, 잊고 있었던 몸의 여러 감각이 다시 깨어나는 것 같았다. 통각(痛覺)이 아닌 몸의 다른 감각을 이렇게 온몸으로 느낀 게 얼마 만이었는지 익숙하고도 낯설었다. 그때 처음 생각했다. 몸의 건강을 위한 운동이나 치료 말고, 몸의 즐거움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투병기간 동안 한없이 발달하게 된 통각 이외에 다른 감각들을 깨우고 성장하게 만들고 싶었다.
 

▲  공기에 섞인 몸    ©사진: 경옥 
 

그리고 건강이 다소 호전되었을 때, 춤을 추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현기증이 남아 있어서 춤을 추기에 적당한 몸은 아니었지만, 길에서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몸이 움직여졌다. 아마도 건강이 호전됐다는 사실에 들떠 있던 터라 그랬던 것 같은데, 몸에서 나도 모르게 춤이 새어 나오는 것만 같았다.

 

사실 나는 몸치였다. 예전에 집회나 문화제 등에서 떼춤을 출 때 느꼈던 즐거움을 기억하고 있긴 했지만, 그런 자리를 제외하고 춤을 추는 상황이 되면 팔다리가 뻣뻣해지면서 갑옷 입은 사람처럼 되곤 했다. 그런데 통증 때문이긴 하지만 질병 경험 후 몸의 감각이 예민해졌다. 그 때문인지 예전과 달리 나도 모르게 음악의 흐름에 따라 몸이 섬세히 반응하며 움직여졌다.

 

음악과 몸의 느낌에 따라 움직이는 막춤을 자주 추다 보니, 언젠가부터 통증과 질병에 갇혀 있던 몸이 조금씩 해방되는 것 같았다.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열려서 꿈틀거리는 것 같았고, 늘 천근만근 무거워서 싫기만 하던 몸이 깃털처럼 가볍게 공기와 섞이며 유쾌한 기분을 느끼게 해줬다.

 

춤을 출수록 몸을 더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호흡에 따라 근육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허리를 숙일 때 얼마나 많은 뼈와 근육이 협동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춤을 통해 내 몸에서 통증이나 질병 말고도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매순간 일어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내가 생존해 나가고 있다는 것을 새롭게 발견했다. 몸의 수많은 근육과 조직의 움직임이 경이롭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협업하는 몸, 놀이하는 몸

 

춤을 추며 해방감과 즐거움을 누리게 되자 통증과 통각에 대해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한창 투병할 땐 예민해진 통각 때문에 너무 힘이 들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통각은 개체에 닥친 위험을 뇌에게 경고해 주는 역할을 한다. 결국 생명체 생존에 기여하는 중요한 기능이라는 의미고, 사실은 그 지긋지긋한 통각조차도 내 몸을 살리기 위한 몸의 협동작업 중 일부였던 것이다.

 

내가 춤을 추지 않았다면, 건강이 호전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몸에 대해 온갖 통증이 몰려드는 집이나 질병의 숙주가 되어 주는 몸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을 것 같다. 나는 춤을 통해 질병과 통증에 점유된 무거운 몸에서 매순간 협업하고 보살피는 경이로운 몸으로 경험과 인식을 전환할 기회를 얻었다.

 

▲  호흡을 느끼는 순간    © 사진: 경옥 
 

가끔 지인들이 오랫동안 아팠던 엄마나 연인, 친구를 위해 어떤 선물을 하는 게 좋을지 내게 묻곤 한다. 나는 건강보조제나 운동기구 말고, 취향에 맞는 놀이도구 같은 걸 선물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말한다. 작은 악기, 재즈댄스 신발, 콘서트 티켓 같은 것들을 고려해 보는 건 어떠냐고. 그리고 가능하다면 아픈 이의 체력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함께 노래를 하러가거나 춤을 추는 게 더 좋은 선물일 수 있다는 말도 덧붙인다.

 

이건 단순히 잠시라도 스트레스를 날리고 웃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만은 아니다. 그런 시간이 매우 중요한 건 맞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통증과 질병이 전유한 몸에서 놀이하는 몸, 쾌감을 느끼는 몸으로 이동할 수 있는 구체적 과정이 필요하다.

 

오랫동안 질병을 경험한 사람들은 병리학적으로 건강이 회복된 이후에도 여러 과정이 필요한 것 같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를테면 재발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고 일상을 영위하는 법을 익히는 게 필요다. 그리고 이미 중증질병을 한차례 경험했기 때문에 약해진 몸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모색하는 일도 필요하다. 그러니까 야근이나 스트레스에 취약해진 몸으로 노동 강도 높은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다시 직장생활을 해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대안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데 가장 필요하고 소중한 것은 자기 몸에 대한 느낌과 시선을 다시 구성하는 일인 것 같다. 몸이 곧 나니까.  반다(조한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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