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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성 충전

초저가 와인의 미스터리와 포도밭 노동자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5. 11. 9. 08:30

싸구려 와인이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
<여라의 와이너리 시즌2> 와인농장 노동자를 생각하다 

 

 

초저가 와인 ‘투벅척’의 미스터리

  

미국에서 ‘투벅척’(Two-Buck Chuck)이라는 초저가 와인이 돌풍을 일으킨 적이 있다. 이름 그대로 한 병에 2 달러다. 투벅척은 유통 구조와 제품이 살짝 특이한 트레이더 조(Trader Joe's)라는 슈퍼마켓 체인점에서 독점 판매하는 찰스 셔(Charles Shaw) 브랜드 와인의 별명이다.

 

지금은 세금전 가격이 2.49달러로 올랐지만 2002년 출시되었을 때엔 1.99달러, 정가에 붙는 판매 세율이 9% 가까이 되는 캘리포니아에서 2.20달러가 채 안 되는 가격이었다. 열두 병 한 케이스를 사도 우리 돈으로 3만원 아래다. 다른 주에선 한 병에 3 달러라고 했다.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된 것이 운송료어치 비싸진 것이겠지만, 여전히 놀라운 와인 가격이다.

 

▲  캘리포니아 트레이더 조 슈퍼마켓에 진열되어있는 다양한 투벅척(Two-Buck Chuck) 와인   © 여라 
 

와인 종류도 여느 저가와인처럼 대형포장에 ‘캘리포니아 레드’ 와인, ‘캘리포니아 화이트’ 와인이 아니라,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시라, 샤르도네, 소비뇽 블랑 등 다양한 와인이 750 밀리리터 들이 병에 폼 나게 담겨있다. 아니, 고구마 전분과 타피오카로 만드는 희석식 소주도 아니고 이 가격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진정 미스터리였다. 미스터리인 이유는 가격에 비해 맛이 제법이기 때문이다.

 

그 가격에 소비자가 집 앞 슈퍼마켓에서 와인 한 병을 살 수 있다니 획기적이었다. 물론 캘리포니아는 광활하고 태양이 뜨겁다. 그래도 그렇지, 끝이 보이지 않는 중부 캘리포니아 너른 포도밭을 기계로 후려쳐 추수하여,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무난한 맛을 내면 이 가격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러던 어느 여름 우려했던 사달이 났다. 투벅척 와인을 생산하는 와인회사가 공동 소유한 어떤 포도밭에서 17세 계약직 여성노동자가 종일 뙤약볕에 일하다 열사병으로 쓰러진 것이다. 그녀는 결국 사망했다. 마리아는 나이도 어렸고 장시간 노동 중이었다. (그래도 적법한 노동이었다고 한다. ㅠㅠ) 포도밭에서 일하는 중에 마시거나 몸을 식힐 수 있는 물이 걸어서 십 분이나 떨어진 거리에 있었고, 게다가 쓰러졌을 때 바로 병원으로 옮겨지지도 않았다고 한다.

 

정도가 달라도 유사한 일들이 더러 이어서 들려왔다. 그때마다 트레이더 조는 늘 직접적인 혹은 법적인 책임이 없었다. 투벅척 와인은 여전히 싸고, 항상 가격에 비해 질이 좋았다. 없어서 팔지 못할 지경의 초기 돌풍은 다시 오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그 슈퍼마켓 체인의 대표적인 상품이다.

 

시저 차베스와 포도밭 노동자들의 행진

 

캘리포니아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처럼 존경받는 인물중에 시저 차베스(Cesar Chavez)라는 인물이 있다. 농장노동 조직가이자 인권운동가이다. 그의 이름을 따라 길 이름, 학교 이름, 공원 이름을 붙였다. 오바마 대통령이 ‘두 딸에게 쓰는 편지’라는 부제를 붙여 미국 역사를 만든 인물 13명을 소개한 어린이책을 펴냈는데, 그 중 한 명이 차베스다. 오바마는 차베스의 생일인 3월 31일을 ‘시저 차베스의 날’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미국 연방 공휴일은 아니어도, 캘리포니아를 비롯해서 몇 개 주에선 관공서가 쉬는 공휴일이다.

 

차베스는 멕시코 출신 인권운동가로 소개되기도 하는데, 그는 미국 아리조나에서 나고 자란 라티노 미국인이다. 집안이 소유한 목장과 집을 대공황 때 잃고, 가족이 캘리포니아로 이주하게 된다. 11세부터 농장에서 일한 차베스가 1940-1950년대 겪는 불의와 차별은, 존 스타인벡이 <분노의 포도>에서 그린 1930년대 집단이주 농장노동자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  디에고 루나 연출, 영화 <시저 차베스>(Cesar Chavez, 2014) 중에서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고 차베스는 주민들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신용협동조합을 만들고, 1965년엔 열악한 노동 조건을 바꾸기 위해 포도농장주에 맞서 파업을 한다. 작년에 그 이야기를 그린 영화 <시저 차베스: 역사는 한 번에 한 걸음씩 이루어진다>가 나왔다. 존 말코비치가 크로아티아 이민자 포도농장주로 출연한다. (영화는 다소 빤하고 지루하게 전개되지만 생각거리는 많이 준다.)

 

이 영화는 포도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조합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렸다. 비폭력 파업을 하고, 포도 불매운동을 벌이고, 평화행진을 한다. 당시 뉴욕 상원의원이었던 로버트 케네디가 지지방문을 오고, 로널드 레이건은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되고, 케네디 상원의원이 암살당하고, 닉슨이 대통령이 되고…. 가까운 역사라 여러 연상 작용 때문에 마음이 답답했다. 그들의 비폭력 평화 파업은 1970년 여름까지 5년이나 계속되었다. 그리고 농장노동자들은 뜻하는 것을 끝내 이루어낸다.

 

포도수확, 이주노동자들의 한철 일거리

 

영화 <시저 차베스>의 배경이 된 1960년대는 미국의 금주령(1920-1933)이 해제되고도 여전히 지지부진하던 와인 산업이 캘리포니아에서 다시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한 시기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현대사가 더 가깝게 와 닿는다.

 

영화를 보고 나서, 그로부터 거의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은 얼마나 다른가를 질문했다. 나의 노동으로 거둔 농작물을 내 아이에게 먹일 수 있는 사치에 관해 울부짖던 그 때만큼 열악하진 않다. 젊은이들은 한때 로맨틱한 아르바이트로서 포도 수확철에 허리가 끊어질 듯한 고된 작업을 선택하고 임시숙소와 와인을 제공받는 꿈을 꾸기도 한다. 유럽도 마찬가지지만, 미국에서는 주로 싼 이주노동자(때로 불법노동자)들의 한 철 일거리이다. 포도가 적절한 당도에 이르러 와이너리가 수확을 결정하면 되도록 빠른 시간 안에 거두어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와인농장은 원래 가족이나 마을 단위의 일이었다. 지금도 가족이나 마을조합이 경영하는 와이너리가 많다. 하지만 일반소비자가 마트나 백화점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정도로 유통되는 와인 대부분은 경제적인 이유든 편의 때문이든 큰 주류회사가 맡아 경영한다. 예술작품에 가까울 정도로 훌륭한 와인이 주는 즐거움은 크지만, 난 그런 와인 한 병보다는 적절히 저렴한 와인 여러 병이 백 배 좋다. 그래두, 생산지에서라면 몰라도 와인이 너무 싸면 여러 가지 생각에 마음이 불편해져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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