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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 되어주고싶은 사람들의 기록
<모퉁이에서 책읽기> 내성천 생태 도감

 

※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읽고 쓰는 사람, <여성, 목소리들>의 저자 안미선의 연재입니다. -편집자 주

 

 

연휴에 고향에 갔다. 내 고향은 경상북도 영주다. 자전거를 타고 고향 친구와 같이 무섬마을에 가보았다. 무섬마을은 내성천 중류에 있는데 구부러진 외나무 다리와 그 아래로 얕게 흘러가는 금빛 천이 몹시 아름다운 곳이다. 물이 깊지 않고 발목을 적시거나 무릎 아래께까지 오는데 그건 두텁게 쌓여 있는 모래들 때문이다. 맑게 들여다보이는 물속에서 작은 물고기들이 재바르게 헤엄치고 발가락들 사이로 모래가 지나간다. 햇빛을 받아 강은 은빛으로 일렁이며 희번득댄다.

 

한옥촌인 무섬마을에서 그 앞에 펼쳐진 넓은 모래벌과 내성천을 본다면, 굽이굽이 몸을 틀며 흐르는 유장한 강과 그 굴곡을 따라 가로놓인 외나무다리를, 그 다리 위를 점점이 걸어가는 사람들을 본다면, 우리가 자연 속에서 시간 속에서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무섬마을에 가고 싶다.
 

▲  무섬마을 모래벌   © 안미선 
 

놀라서 두리번거렸다. 기억 속의 그곳이 아니다. 바닷가 백사장처럼 깨끗하고 드넓었던 고운 모래밭이 척박해져 거뭇하게 색이 변하고, 잡초들이 드문드문 나 있다. 여뀌와 가막살이 같은 억센 풀들이다. 손으로 뽑아보려고 했으나 뿌리가 단단히 박혀 있어 꿈쩍도 안 한다. 곧 이곳에 창궐할 낌새였다. 친구 말로는 물속도 이전엔 고운 모래였는데 지금은 자갈과 굵은 돌, 심지어 유리조각까지 떠내려와 놀던 아이가 발을 다칠 뻔했다는 것이다.

 

“4대강 사업 때문에 다 버렸어.” 친구가 아쉬워하며 말했다. 연휴라 이곳에는 둘러보러 온 사람들이 여전히 있지만 버짐이 핀 듯 얼룩덜룩한 모래 색과 거칠어진 강의 변화를 유심히 지켜보는 이는 드문 것 같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 보았던 고운 모래벌이 사라지고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 난감했다. 이렇게 빠르게 강이 변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사라지고 있는데 그대로 있다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 나도 있다.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알게 되는

 

조금 더 내성천을 따라 가면 제방의 나무를 깡그리 베어내고 잡석과 시멘트로 제방 공사를 하는 모습과, 탁한 녹색으로 변색되어 느릿하게 흘러가는 물을 볼 수 있다. 4대강 공사가 시작되기 전, 자연제방이었던 수변의 나무들은 우거져 있고, 다리 아래로 흘러가는 물은 맑았다. “기억하라, 기록하라”고 그때 안내해준 지율 스님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사람들에게 말했는데 그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 풍경일지 기약이 없었기 때문이다.

 

4대강 공사 작업이 ‘전광석화’처럼 시작될 무렵, 다리를 건너다 보면 한쪽에는 푸른 습지가 살아 있는 강이 있고, 고개를 돌려 한쪽을 보면 인공제방을 하고 강제로 폭을 넓혀 직선화된 강이 있었다. 어긋난 데칼코마니처럼, 기억과 현실의 사이에 있는 것처럼 그 풍경은 지독히 낯설었다. “여기 강 다 버렸네.” 쉽게 말하고 발을 돌리는 사람들 뒤에서 지율 스님은 외쳤다. “지금은 껍질만 벗겨낸 거지만 이제 곧 뼈까지 드러낼 겁니다. 아직 늦지 않았어요. 상류의 지천을 지켜야 낙동강이 다시 살아날 수 있어요.”
 

▲   무섬마을 모래벌에서.   © 안미선 
 

유일하게 남아 있는 모래 강,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한반도의 모래톱’ 내성천은 그동안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사라질 위기에 처해서야 주목을 받았다. 살아서 흐르던 모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 모래 덕에 큰 강이 어떻게 살게 되고, 사람들도 살게 되는지 뒤늦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탈핵 문화제에서 만난, 후쿠시마에서 온 주민이 한 말이 내 귓가에 맴돌았다. “고향을 잃고 나서야 내가 고향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내성천이 떠올라 울컥했다.

 

“댐 또한 강바닥 채굴처럼 침식을 일으켜 ‘배고픈 물’을 만들어낸다. 강물이 상류에서 휩쓸고 내려온 토사, 자갈 등이 댐에 막혀 인공 호수 바닥에 가라앉는다. 짐을 빼앗긴 채 댐을 빠져나온 강물은 그 대신 댐 아래쪽의 강바닥, 옆구리, 모래톱을 갉아먹는다. 상류의 퇴적물은 공급되지 않고 그저 빼앗기기만 하니 모래톱이 남아날 리가 없다. 무주군 내도리에서 벌어진 일은 댐 아래쪽에서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안동댐 아래쪽의 하회 마을 모래톱도 비슷한 변화를 겪고 있다. 그리고 영주댐이 생기면 무섬 마을과 회룡포도 같은 운명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우리보다 먼저 댐 시설을 발전 및 홍수 조절에 활용해 온 나라들은 하류의 침식을 막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독일은 운반물을 잃은 배고픈 라인 강에 정기적으로 자갈과 토사를 넣어 준다. 강바닥이나 제방을 먹지 말라고, 강의 허기를 달래 주는 것이다. 모래톱과 모래의 강, 모래의 지형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지속 가능한 개발을 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 -손현철 <모래강의 신비>(민음사, 2011) 251p~252p

 

우리 삶에서 추방된 강

 

친구와 나는 말없이 강가를 걸었다. 오면서 흥을 내던 소리들도 잠잠해졌다. 눈에 보이는 것만 사라지는 게 아니다. 자연 제방이 사라지면서 그 속에 깃들어 오가던 동물도 식물도 사라져갔다. 모래가 사라지면서 얕은 물에 살던 새들이 사라져간다. 모래톱이 육지화되면서 모습이 바뀌고 농민을 쫓아낸 농경지는 부들이 우거지며 습지가 되어간다. ‘조상의 묘를 파내 떠나야 했던’ 노인들의 울음소리도 사라지고 동물이나 식물처럼 말없이 뽑혀나가야 했던 사람들의 피울음 나는 자리도 사라져간다.

 

▲  박은선 <내성천 생태 도감>(Listen to the City, 2015) 
 

“우리는 강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 댐은 물을 다스리고 전기를 얻기 위해 1900년대 초부터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이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 100년이 지난 시점에서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 댐들을 가능한 한 모두 철거하려고 노력중이다. 왜냐하면, 대형 댐이 생물 종의 절멸과 숲, 습지, 농지의 손실을 포함해 되돌릴 수 없이 환경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세계의 큰 강 중 60%가 댐과 배수로에 의해 조각으로 나누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대형 댐으로 인해 수중 생물의 종 다양성, 하류와 상류의 어장과 하류의 범람원, 습지, 강변, 강어귀, 인근 해양 생태계의 혜택을 상실하게 된다. 대형 댐에 의해 관개된 토지의 20%가 염분과 침수로 손실되었으며, 세계 담수 총량의 5%가 저수지에서 증발하는 중이다. 또 댐이라는 것은 곡물의 생산성을 잠시 높이기는 하지만 결국 강의 물고기들은 전멸하고 물은 차가워지고 하류 토양은 산성화되며 주변의 지하수 체계는 고갈된다. 콘크리트 둑방과 댐은 물의 자유로운 흐름을 방해해 결국 40~50년 뒤에는 그 주변이 사막화된다. (…)

 

4대강 공사 이후에도 강에 대한 간섭은 상당히 심각하다. 지나친 준설, 상류 저수지 건설, 댐의 지속적 건설, 강변 습지를 없애는 공원화 추진, 경상북도의 ‘고향의 강’ 사업 등 비상식적인 토목공사가 끊이지 않는다.“ -박은선 <내성천 생태 도감>(Listen to the City, 2015) 86~87p

 

이전에 나와 내성천을 함께 둘러보았던 지홍 작가가 쓴 글의 마지막 구절은 이것이었다. ‘추억하는 것조차 비겁함임을 깨닫게 되겠지.’ 유기농지를 지키기 위해 서울지방국토관리청 앞에서 단식을 하던 농민이 이렇게 말해준 적이 있었다. “강의 문제는 참 어렵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강변에 서 있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고 그런다. 힘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한다. 더 가지고 싶은데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고, 자랑할 것은 오래된 고택이지 자신들의 삶이 아니고, 강을 파헤친다는 소리를 들어도 나라가 하는 일이니까 받아들여야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비겁한 사람들이, 살림을 끌어안고 슬프도록 전전긍긍하며 이곳에 산다. 또는 저곳에 산다. 강가에 살고 있어도 도심에 살고 있어도 강이 멀기는 마찬가지다. 강은 우리 삶에서 추방되어 있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 바쁜 삶에서 강이 들어올 자리는 없다.

 

“말해도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인터뷰 중에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그만하자고 하던 한 영주 농민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보리밭이 사라진 공사 현장에서 할매들이 소리 내어 울었던 것처럼, 땅을 빼앗긴 인디언처럼, 삶의 터전이었던 내성천이 없어진다고 그는 울었다. 그 앞에서 나도 내성천을 안다고 말하지 못했다. 차마 안다고 말할 수 없었다.

 

비겁하지 않은 추억

 

▲  무섬교 내성천 풍경    © 안미선 
 

어린 시절 내 몸을 적시고 흘러가던 이 강을 쳐다본다. ‘넌 나를 알고 있지, 그렇지?’ 강이 나에게 묻고 있다. 그렇게 물으며 다시 물으며 흘러가고 있다. ‘어디 가 있었던 거니? 돌아오지 않고.’ 흘러가고 다시 흘러가면서 묻는다. ‘나는 언제나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닌데, 너는 너무 멀리 있구나.’ 나는 신발을 신은 채 강 속으로 첨벙첨벙 뛰어 들어가고 싶다. 그리고 강과 함께 나뒹굴고 온몸을 적신 채, 아직 강 속에 들어오지 못하고 저쪽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힘껏 부르고 싶다.

 

<내성천 생태 도감>(박은선, Listen to the City, 2015)은 강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물길 속의 모래를 밟으며 강을 따라 걸은 꾸준한 발자국을 새기고 있는 책이다. “풀 수 없는 질문은 우리를 생각하게 하고 행동하게 합니다”라고, 수몰 예정지 평은초등학교의 한 선생님이 말했다. “우리가 강이 되어주자” 사람들은 그렇게 외치며 아이들의 손을 잡고 모여들었다.

 

박은선 씨는 ‘내성천의 친구들’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과 함께 지켜본 내성천의 모습을 기록했다. 농민들이 떠난 논은 어떻게 습지가 되어가는지, 마주쳤던 먹황새, 흰꼬리수리, 새호리기가 어떻게 멸종해가는지, 낙동강에 1급수를 공급하던 금모래 강에서 어떻게 모래가 사라지고 잡풀이 무성해지는지 목격하고 기록했다. 내성천에 살았던 동물과 식물을 그렸다. 강에서 만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썼다. 아이들도 내성천에서 만난 달맞이꽃이며 냉이, 미국 가막사리까지 그렸다.

 

‘지율스님과 리슨투더시티, 지역주민들은 삼성물산, 수자원공사, 대한민국을 대상으로 영주댐 공사중지 가처분 소송을 했고, 영주댐 해체를 위한 소송을 진행하려고 한다.’(가처분 소송은 작년 기각되었다. 현재 영주댐 철거 소송 중이다.) 책에서 그 이유를 박은선 씨는 한마디로 설명했다. ‘이 강이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십 년 후에도 백 년 후에도 강이 자신의 빛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용기와 진심과 시간이 담긴 책이다. 떠난 것과 남아 있는 것 사이의 어긋난 시간 가운데에 놓여 있는 다리 같은 이 책은 우리에게 경계의 풍경을 전해준다. 추억하는 것이 비겁한 일이 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 책이다. 내성천의 배후 습지가 되기를, 길 잃은 강이 범람해서 숨 쉴 수 있기를, 그러한 공간과 시간을 허락하여 다른 강들마저 모두 살려낼 수 있기를 바라는, 강이 되어주고 싶은 사람들의 기록이다. 안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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