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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가슴을 느끼는 방법
<모퉁이에서 책읽기> 다큐멘터리 “오르가슴 주식회사” 

 

※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읽고 쓰는 사람, <여성, 목소리들>의 저자 안미선의 연재 칼럼입니다.

 

여자의 오르가슴처럼 말 많은 것이 있을까. “느꼈어?” “안 느꼈어?” 분분한 대화 속에, ‘난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은밀한 고민 속에, 성기의 어느 부분에서 느끼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학문적 논란까지 오르가슴은 첨예한 주제다.
 

▲  <오르가슴 주식회사>(Orgasm Inc. 리즈 캐너, 미국, 2009)  스틸컷 
 

나는 다큐멘터리 <오르가슴 주식회사>(Orgasm Inc. 리즈 캐너, 미국, 2009)를 1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보았는데, 인상적인 장면은 감독이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나간 방에서 여성이 자위를 하는 얼굴을 촬영한 것이었다. 자기 몸을 통해 즐거워지고 삶에 대해 행복한 느낌을 품게 만드는 얼굴이었다.

 

그것이 낯선 감동을 주는 것은 이때까지 여자의 ‘오르가슴’은 관음의 대상으로 남성의 성적 지배를 관철하기 위해 통용되는 상업적 이미지였지, 여성 스스로 자신의 몸을 긍정하고 인생의 한 부분으로 오롯이 누리는 기쁨으로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몸을 가졌다는 것, 몸에서 만지면 즐거워지는 부분이 있다는 것, 기꺼이 자신의 몸을 알고 누리고 사랑한다는 태도는 상업적이고 가부장적인  문화에서 아직 낯선 장면이다. 소문과 죄책감과 은밀함 속에 감춰야 하는 오르가슴의 표정이 얼마나 밝고 활달하며 생생한 것인지 영화는 보여주고 싶어 한다.

 

<오르가즘 주식회사>의 부제는 ‘여성의 쾌락에 대한 이상한 과학’이다. 1998년 남성용 비아그라가 나온 이후, 초국적 제약회사는 여성용 비아그라를 만들고 미국 연방식약청에서 승인받으려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감독은 자본의 이익 추구와 마케팅에 따라 여성의 오르가슴에 대한 의학적 통계와 사회적 담론이 날조되는 것을 목격하고 기록한다.

 

여성들의 ‘반’은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하는 질병을 앓는다는 근거 없는 보고서가 정상적인 현실을 병적인 현실로 탈바꿈시킨다. 여성의 성과 욕망은 결핍되고 불충분한 것으로 진단되고 성기능 장애가 과도하게 강조되며 거대 제약회사는 새로 만들어낸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하고 제휴한다. 의료 전문가들은 합세해 전문성으로 포장한 허위 발언을 하고 모호한 질병을 확산시키며 여성의 몸과 마음을 해치는 의약품을 양산하는 데 기여한다. ‘건강하고 행복해지고 싶습니까? 부유하고 멋지게 살고 싶습니까? 그럼 이 약을 복용해보세요. 당신에게 부족한 것을 우리가 알고 있으니까요.’ 이런 식이다.

  

▲  <오르가슴 주식회사>(Orgasm Inc. 리즈 캐너, 미국, 2009)  스틸컷 
 

영화에는 또다른 여성의 인터뷰도 나오는데 기혼여성인 그녀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하고 산다. 질에서 느끼는 오르가슴이 바람직하며 그렇지 못한 자신은 비정상이라고 여긴 그녀는 급기야 수술을 받기로 한다. 수술의 위험성과 입증되지 않은 결과는 ‘정상’이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로 여겨진다. 그녀는 결국 수술을 통해 얻은 것이 없었으나, 자신이 이미 ‘정상’이었다는 것을 긍정함으로써 자유를 얻는다.

 

“저도 자위를 하고 거기에서 오르가슴을 느끼고 있었어요. 하지만 남자와의 성관계에서 오르가슴이 없어서 문제라고 생각했거든요. 이제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요.”

 

그녀는 오르가슴을 정의한 가부장적 관점에서 벗어남으로써 약품과 의료기계와 병원에서도 벗어난다. 병원에서 나가면서 그녀는 몸을 흔들며 춤을 춘다. 걱정에서 해방되었다는 것, 자기는 아무 문제없다는 것을 즐거운 춤이 보여준다. 한편 그 춤은 그녀가 얼마나 남몰래 노심초사하고 불필요한 고통에 눌려 있었는지 보여주는 것이라서 뭉클한 느낌을 들게 했다.

 

영화는 ‘오르가슴’을 둘러싼 담론의 전쟁과, 여성용 비아그라 개발을 통해 돈을 벌려는 제약회사의 계산적인 음모를 까발려 보여준다.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약이 성욕을 돋워주고 불감증을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세계 시장에 경쟁적으로 출시되는 것이다. 병은 이름 붙이기 나름이고 공권력의 승인을 받으면 그만인 셈이다.

 

사람들은 불안 속에 약을 구매하도록 강요당하고 위험한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대 위에 눕는다. 정상이라고 사회가 인정하는 오르가슴을 얻기 위해서. 충분하다고 여긴 것은 착각이었으며 실은 자신이 불건강한 상태였던 건 아닌지 의심하면서.

  

          ▲   다큐멘터리 <오르가슴 주식회사>(Orgasm Inc. 리즈 캐너, 미국, 2009) 
  

여성은 몸에 대해 무지해야 ‘정상적’이라 훈육 받으며 몸을 통해 즐거움을 스스로 아는 것은 ‘문란하다’는 암시를 받는다. 오직 ‘결혼’해서 ‘남자’가 주는 ‘오르가슴’을 통해 자신의 몸을 비로소 ‘알고’ 오르가슴을 ‘습득하는’ 존재로 문화적으로 상정된다. 가족과 사회의 공식적이고 제도적인 관점은 어디까지나 그러하다.

 

그래서 자기 몸을 잘 알고 만지면 기분 좋아지는 부위가 있으며 이를 즐길 수 있는 것, 성행위에서 상대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 상대가 없더라도 스스로 충만할 수 있다는 것은 억압된 지식이 된다. 제약 회사는 그 강요된 무지에 불안까지 가하며 자기 회사 약품을 사면 넌 ‘진짜 끝내주는 정상 쾌락’을 누리게 될 거라고 선전한다.

 

자기 몸을 알고 성기를 바로 보고 있는 그대로 긍정할 수 있는 관심과 그 정도의 지식만 있으면 그 거대한 선전과 맞설 수 있다. 어려운 것은 여자인 자기 몸을 긍정적으로 보는 ‘관점’이다. 그것은 학습으로 습득되는 것이다. 여성의 몸을 혐오하게 만들고 남성의 성적 지배를 관철하기 위해 유포되는 무수한 상업적 이미지와 언설에 맞서 여성은 자신의 몸을 그 자체로 온전하고 충만한 것으로 안아주어야 한다. 가부장제의 학습에 대항해 몸과 삶에 대한 긍정이라는 또다른 학습이 필요하다. 학습이란 것은 문화적 투쟁이므로 불필요한 불안과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동료가 필요하다.

 

여성의 오르가슴은 여성들이 말해야 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말한다. ‘여기, 우리는, 그 자체로 즐겁다!’ 오르가슴은 세상의 각본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우리의 것이 된다. 왜냐하면 오르가슴은 약을 먹고 수술을 받아 ‘얻어내거나’ 병든 몸을 ‘고쳐’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몸과 함께 자연스럽게 그 일부였으며, 보아주지 않아도 그 자리에 있었던 즐거움이었으므로.

 

오르가슴을 방해하는 것은 오르가슴을 정의하는 타인의 시선이다. 우리는 자신의 몸을 들여다볼 용기를 내고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인생인 몸을 찬찬히 쓰다듬어주고 안아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안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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