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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성희롱이 발생했다면 당신은? 

불이익 조치에 분노하는 사람들④ 직장 내 성희롱, 그 이후
 

 

※ 본 연재는 한국여성민우회 블로그(womenlink1987.tistory.com)와 오마이뉴스(ohmynews.com)에 공동 게재됩니다. 이 기사의 필자는 한국여성민우회 류형림 님입니다.

 

들어가는 말
 

▲ 주간 불분노 트위터 @weeklyfireanger 페이스북 페이지facebook.com/weeklyfireanger에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와 동료에 대한 직장의 불이익 조치를 제보하세요. 
 

당신, 혹은 당신이 아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아직 직장에 남아있나요? 혹시 상사가 앞장서서 피해자를 따돌리고 있지는 않나요?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순간, 또 다른 사건이 시작됩니다. 회사는 사건을 빨리 덮으려고만 하고, 제대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피해자를 콕 집어 모난 돌 취급하며 조직에서 도려내려 하기도 합니다.

 

많은 여성들은 직장 내 성희롱뿐만 아니라 그 이후 회사가 가하는 불이익 조치로 인해 안전하고 평등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순간에 쫓겨나거나 직장에서 고립된 채 하루하루 버티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 불같이 분노하고 있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에 분노하는 사람들’(일명 불분노)이 그 실태와 대안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려 합니다. 기획 기사는 총 4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회사에 반기 들지 말라’는 메시지

 

<처음엔 동료들이 나를 믿고, 내게 일을 시키지 말라는 매니저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하지만 매니저가 나를 도와주는 사람을 따로 불러 “너야? 네가 도와줬어?”라는 식으로 취조하듯이 추궁하고 “피해자가 무서운 애니까 가까이 지내지 마라”고 경고하자, 동료들도 태도가 바뀌었다. 동료들은 내게 “미안하다. 더 이상 도와주고 싶지 않다. 더 이상 끼어들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회사에서 이런 식으로 나를 고립시킨다.> -2011년 한국여성민우회 상담 사례

 

<대표의 성희롱에 대해 회사 안에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에게 얘기했다. 그랬더니 대표는 그 동료에게 소리치고 “너를 해고할 의사가 있으니, 네가 알아서 해라. 가만히 있지 않으면 네가 조용히 나갈 수 있다”라면서, 혹여 나를 돕는다면 동종업계에도 취업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동료를 협박했다.> -2013년 한국여성민우회 상담 사례

 

<내가 성희롱 피해를 겪었다는 것을 증언해준 여자 후배가 해고당했다. 회사에서는 “일이 없어서 뺀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나를 도와주었기 때문에 자른 것이다.> -2012년 한국여성민우회 상담 사례

 

위 사례들과 같이, 회사로부터 성희롱 피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를 도운 동료에게도 부당한 조치가 가해진 사례를 종종 상담을 통해 파악할 수 있었다. 도대체 회사가 이렇게까지 강력하게 대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하나다. 무엇이 됐든 회사에 문제 제기하지 말고 입을 다물라는 것이다.

 

성희롱을 문제 제기하는 구성원을 입막음 하는 회사는 성희롱 피해가 발생했을 때,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좀더 나은 회사의 구조와 문화를 만들 수 있는 계기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문제 제기 자체를 회사의 위계와 통제 권한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본다. 성희롱 피해자와 피해자를 도운 동료에게 회사가 행하는 부당한 조치들은, 조직 내 구성원 모두에게 ‘회사에 반기 들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본보기이자 강력한 경고다.

 

▲ 성희롱 사건 해결 과정에 함께하는 법을 안내하는 소책자 <평범한 용기> 중에서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 
 

성희롱이 용인되는 조직에서 성희롱이 일어난다

 

앞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이, 회사는 성희롱 피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를 도운 동료에게 해고, 부당징계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회사의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침묵해야 하는 걸까?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해결 과정은 피해자와 가해자, 회사가 알아서 해결하면 되는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 직장 내 성희롱은 한번 침묵하면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단발적인 사건이 아니다. 잘못한 것이 없는데 모난 돌 취급을 받던 피해자가 결국 사직했다면, 이후에 어느 누구도 부당한 문제에 대해 용기 있게 먼저 이야기하긴 어려울 것이다. 피해자를 지지하고 돕는 이가 아무도 없고, 상사의 압박에 의해 동료들이 피해자에게 등 돌리는 회사에서는 이다음에 내가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동료들이 나를 도와줄 거라는 신뢰를 가질 수 없다.

 

그러니 아닌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도 먼저 나서지 않고 모두가 침묵한다면 직장 내 성희롱은 결코 해결되지 않고 예방할 수도 없다.

 

동료들이 함께 성희롱 사건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직장 내 성희롱이 피해자와 가해자 둘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취약한 위치에 있는 여성-하급자를 동료로 대하지 않고 대상화하는 문화가 있었다면, 가해자의 성희롱은 일상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행위로 인식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부적절한 언행에 아무도 문제 제기하지 않았다면 ‘그래도 된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직장 내 성희롱은 가해자가 이상한 사람이라서, 피해자가 제대로 거부 의사를 표현하지 않아서 갑자기 툭 발생하는 일회성 사건이 아니다. 가해자의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조직의 분위기가 직장 내 성희롱의 배경이자 조건이 된다. 어떤 직장에서 성희롱 사건이 발생했다면, 이는 성희롱이 발생할 수 있는 구조와 문화가 그 조직에 이미 존재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직장 내 성희롱은 개인 간 문제가 아닌 조직 전체의 문제다. 구성원 모두가 당사자라는 관점을 바탕으로 성희롱 사건의 해결 과정을 밟아야 한다.
 

▲ 성희롱 사건 해결 과정에 함께하는 법을 안내하는 소책자 <평범한 용기> 중에서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 
 
“동료들의 지지와 응원이 필요해요”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직장 분위기가 이상합니다. 다른 여직원들에게 뽀뽀하고 싶다고 말하고 손을 만지거나 어깨를 주무르는 상사가 있습니다. 당사자들까지 포함해서 다른 사람들은 신경 안 쓰는 것 같은데 보고 있는 제가 너무 불편합니다. 다음에는 저에게 그런 성희롱을 하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고요. 그만 두라고 말하고 싶지만 내 일도 아닌데 괜한 오지랖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직장 내 성희롱, 모두를 위한 안내서 평범한 용기> 중에서

 

직장에서 성희롱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가 아닌 동료들도 이런저런 고민을 하게 된다. 성희롱이라고 주장하는 피해자를 무작정 편드는 게 맞는 건지, 내가 당사자도 아닌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정작 당사자는 괜찮은데 내가 괜히 문제를 만드는 건 아닌지, 피해자를 도와줬다가 나에게 불이익이 오는 건 아닌지 고민을 하다 결국 침묵하거나 회사의 지시에 따르기도 한다.

 

피해자를 지지하고 피해자와 함께 사건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걸 주저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모르거나, 회사에서 찍힐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성희롱 피해자를 지지하고 함께 사건 해결의 주체가 되는 것은 거창하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피해자에게 응원의 마음을 전하고 공감할 때, 피해자는 큰 힘을 얻는다. 성희롱 사건 해결 과정에서 고립되는 것이 피해자에게는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다. 이전과 달리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거나 친하게 지내지 않고, 홀로 회사와 싸워야 하는 시간은 피해자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준다.

 

성희롱 사건의 해결은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어떻게 해결되길 원하는지, 피해자의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사건 해결 과정의 가장 기본적인 목표는 피해자가 성희롱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처럼 직장에서 잘 생활할 수 있도록 회복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동료들이 피해자의 용기 있는 발걸음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 성폭력 피해자가 혼자 견뎌야 하는 시간을 함께하고자 만든 소책자 <순간>(좌) 직장의 모든 구성원이 직장 내 성희롱 사건 해결 과정에 함께하는 법을 안내하는 소책자 <평범한 용기>(우) 표지.  © 한국여성민우회 
  

변화를 가져오는 평범한 용기, we say no!

 

“한 사람의 중요성을 깨달았어요. 사건이 발생한 조직 안에서 단 한 사람만이라도 옳은 방향을 지지한다면, 피해자는 힘을 얻어요. 큰 조직 안에서 어찌 보면 별 것 아닌 듯싶은 한 사람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어요.” (사측과 법정 싸움에서 승소한 이은의 씨)

 

“처음에는 어색하고 상대방이 기분 나빠할 수 있지만, 이제는 그게 ‘그건 좀 아니지 않아?’ ‘그렇게 하면 기분 나쁘니까 하지 마’라고 이야기하는 능력을 우리 모두가 다 갖추게 된 거예요. 잘 모르겠지만 영혼이 진보하고 있다 이런 생각도 들기도 하고 그래요.” -사회단체 내 피해자의 동료, <직장 내 성희롱, 모두를 위한 안내서 평범한 용기> 중에서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들은 왜 참지 않고 문제를 제기했느냐는 물음에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 피해 사실을 신고했다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부당한 일을 문제 제기하는 성희롱 피해자는 용기 있게 먼저 나서서 조직의 잘못된 문화를 바꿔나가는 사람이다. 피해자와 함께 동료들이 주체가 되어 사건의 올바른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피해자의 회복뿐만 아니라 성희롱 사건의 재발을 막고, 공동체의 변화를 만드는 시작점이 된다.

 

무엇보다 성희롱이 용인되지 않는 일상적인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상사가 부적절한 언행을 할 때 그냥 넘기지 않고 받아 치거나, 불쾌한 상황에서 난감해하는 동료 직원에게 방패막이 되어주는 등 일상에서의 작지만 용기 있는 행동이 하나하나 모인다면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

 

일상적으로 조직의 구조와 문화를 점검하고, 모두가 좀더 안전하고 행복하게 일할 당연한 권리를 지키기 위한 조건을 만들어나가는 일은 직장 내 성희롱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모든 직장에서 해야 할 일이다. 홀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있다’고 느낄 때 변화는 비로소 가능해진다. 이제 우리의 일상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바꿀 수 있는 변화를 시작하자. 침묵은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 we say no!  류형림 

  

▲ 직장 내 성희롱, 모두를 위한 안내서 <평범한 용기> 별책부록  ©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 
  

※ 성폭력 피해자가 혼자 견뎌야 하는 시간을 함께하고자 만든 소책자 <순간>과, 직장의 모든 구성원이 직장 내 성희롱 사건 해결 과정에 함께하는 법을 안내하는 소책자 <평범한 용기>를 나눠드립니다. 문의: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 02-737-5763, equallove@womenlin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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