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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성폭력 예방책은 성적 의사소통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 10. 안전한 데이트 지침
※ 일다의 신간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 발간 기념으로, 데이트 폭력 문제를 심층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기획 기사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채팅을 통해서 남자를 만났다고, 그 남자 집에 갔다고, 혹은 밤늦게까지 그 남자와 함께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고 해서 데이트 성폭력을 당하게 된 책임이 그녀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피해 위험을 줄이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여성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미국 대학가를 중심으로 데이트 강간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 책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의 저자 로빈 월쇼는 “(아는 사람에 의한)강간 사건들은 예측하거나 피할 수 없지만, 예방할 수 있는 길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라면서 ‘안전한 데이트를 위한 8가지 지침’을 얘기한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한다.
1. 당신에게는 스스로 성적 한계선을 정하고 이에 대해 상대와 소통할 권리가 있다.
“성적 행동을 하기 전에 당신의 한계선을 정하고, 그것을 파트너에게 명확히 얘기하라. 대부분의 남자는 초능력자가 아니므로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만약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상대가 추측하도록 내버려둔다면, 결국 당신이 상처받을 수 있다.
섹스를 포함해 어떤 성적 행동이든, 그것은 둘 간의 소통에 의해 결정된 것이어야 한다. 당신이 성에 관심이 없음을 밝힌다고 해서 그게 무례한 게 아닌 것처럼, 성에 대해 관심을 표현한다고 해서 여자답지 못한 것도 아니다. 키스만을 원한다거나, 혹은 키스와 가슴 애무만 허용한다거나, 아니면 삽입 없이 다른 무엇만을 허용하든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다.”(로빈 월쇼)
▲ 민우회 성폭력상담소에서 진행한 <일상 속 성적 의사소통 문화 만들기> 캠페인 ©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민우회는 2012년 <20대의 성적 의사소통 경험과 인식>에 관해 조사하면서, 20대 남녀 956명에게 설문조사 응답을 받고 7명을 심층 면접하였다. 그 결과 “상대가 나에게 스킨십을 할 때 거절하기 어려웠던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여성의 60%, 남성의 27%가 ‘있다’고 대답했다. 스킨십을 거절하기 어려운 이유는 ‘상대가 무안해 할까봐’라는 응답이 53.7%로 가장 많았고, ‘사이가 멀어지거나 헤어지게 될까봐’가 20.4%, ‘싸우기 싫어서’가 11.3%로 뒤를 이었다.
거부 의사를 밝혔을 때 상대가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거나 갈등이 생기는 것이 두려워서 성적 의사소통에 소극적이라는 뜻이다. 특히나 관계를 중시하도록 사회화된 여성들은 원치 않는 스킨십을 거부하는 것이 그 관계나 사람 자체를 거부하는 것으로 비춰질까봐 걱정한다.
한편으로 여성들은 성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면 ‘문란한 여자’ 취급을 받기 십상이라고 배워왔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성적 의사소통을 하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33세의 여성 은경씨(가명)는 이렇게 말한다.
“다양한 성적 욕구가 있는데 그걸 말로 꺼내서 합의를 하는 게 굉장히 어색해요. 어색한 상황에서 남자들은 몸으로 먼저 실천을 하는 거예요. 시도를 하면서 상대 반응을 본다든지 일방적으로 관철을 시킨다든지 하죠. 그러다 여자한테 뺨을 한 대 맞으면 ‘아, 이게 아니구나’하고 생각하는 장면이 미디어에 많이 나와요. 그런데 여자들은 욕구가 있어도 말이나 행동으로 꺼내기 힘든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나 성적으로도 서로 다른 행동을 하도록 사회화된 남녀가 맺은 성관계가 성폭력이 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서로 스킨십에 동의하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만난 기간이 얼마 되지 않아 스킨십을 하게 되는 경우, 더더욱 명확한 의사표현을 해야 한다. 상대의 표정, 몸짓,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서로 알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사 스킨십을 하며 쌍방이 함께 그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해도, 섹스를 원치 않으면 성기 삽입 직전에 말할 수 있다. “삽입은 싫어”라고.
2. 당신의 결정과 선택에 확신을 가져라.
“수줍어하라고 배웠다면 다 잊어버려라. 여자답다는 것이 수동적인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당신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진짜로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분명히 말할수록 좋다. ‘No'라고 말할 때는 그것이 ’No'를 의미하는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YES'라고 말할 때는 먼저 당신이 무엇에 동의하는지를 스스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이 성적 행동에 제한을 두는데도 상대가 이를 무시할 경우에는 즉각 행동하라. 이런 상황에서는 당신이 무엇에 반대하는지를 상대에게 명확히 알려야 한다. 당신은 우호적이면서도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그렇게 했는데도 상대가 계속해서 당신의 원칙을 무시하면 화를 내라. 예의를 지키는 것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라. 다른 사람의 도움을 구하거나 도망치기 위해 고함을 지르거나 상대를 다치게 해야 한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하라. ‘괜찮은 여자’가 되는 것에 대해선 잊어라. 상대가 어떻게 느낄지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말고 소란을 피워라.”(로빈 월쇼)
이은의 변호사(이은의 법률사무소)는 “사랑한다면 그 사람과 성관계를 할 수 있죠. 하지만 원하지 않는다면 ‘싫다’고 말할 수 있어야 돼요. 만약 그 ‘싫다’가 이별로 이어진다면 그 관계는 붙잡고 있을 가치가 없는 관계에요”라고 말한다.
물론 “싫다”고 말하고 끝내버리는 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연애를 잘 하고 싶고 연애를 잘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구, 이 사람을 붙들고 싶은 욕구 때문에 원치 않음에도 억지로 참고 성관계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순간이 쌓이면 오히려 관계가 나빠지거나 힘들어질 수 있으며 관계가 끝난 후에는 피해의식과 억울함이 깊이 남기도 한다.
▲ 나는 어떤 스킨십을 원하는가,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를 명확히 아는 것은 중요하다. ©Unsplash
‘착한 사람이 되라’는 메시지를 어렸을 때부터 주입받아온 여성들이 친밀한 사람과 단 둘이 있을 때 단호하게 어떤 행위를 거절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대체로 사회가 기대하는 ‘여성다움’이란, 남을 배려하고 때론 자신의 욕구보다 다른 사람의 욕구에 맞춰주는 것이다. 이런 ‘여성적’ 특징은 데이트 성폭력이 일어나는 상황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학교 때 같은 과 선배랑 연애를 했어요. 그때 섹스를 거절하면 상대가 민망해 할까봐 걱정도 됐지만, 그렇게 해서 이 관계가 이상해지면 (이 관계에 얽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이상해질까 봐 걱정이 됐었어요. 착한 여자 콤플렉스가 확실히 있었어요. 상대를 내가 만족시켜주고 싶다거나, 아니면 그 사람이 굳이 요구하지 않아도 이렇게 하면 좋아할 것 같아서 하기도 했죠.”(은경씨, 33세)
은경씨는 “내가 지금 섹스를 하고 싶은지 안 하고 싶은지 잘 모르기도 했고, 해도 되는 건지 그런 결정을 내가 하면 되는데, 결정해 본적이 없으니까 힘들었다”고 말한다. 이것이 성관계인지 성폭력인지, 그 일이 일어나는 순간에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여성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 한다.
갑작스럽게 닥쳐온 상황에 “예스”도 “노”도 아닌 어정쩡한 반응을 보일 때, 섹스를 원하는 상대방은 “예스”라고 받아들이고 행동하기 십상이다. 그 관계가 끝난 후 뒤늦게 성폭력이었다는 것을 문제 제기하고 해결 방법을 찾으려하다가, 이를 입증하거나 징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괴로워하는 여성들도 꽤 있다.
나는 어떤 스킨십을 원하는가, 이 사람과 어디까지 진도가 나가길 바라는가, 어디까지 내가 책임질 수 있는가를 명확히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자신의 성적 경험을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주변의 친구들과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3. 깨어있는 상태를 유지하라.
▲ 로빈 월쇼 지음,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울림연구소 역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미디어일다. 2015)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내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계속해서 파악하는 것이다. 아는 사람에 의한 강간 사건의 많은 경우는, 술에 취했거나 몽롱한 상태에 빠진 여성에게 발생한다. 특히 아는 사람을 강간하기로 계획한 남자들은 상대 여성의 지각을 흐리게 하고 저항력을 떨어뜨리기 위해 일부러 술과 약물을 먹이는 수법을 쓴다. 그러므로 술을 좋아한다면 적당히 조절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스스로 취함으로써, 그런 여성을 찾는 가해자를 돕지 말라는 것이다.”(로빈 월쇼)
33살 남성 승호(가명)씨는 이렇게 말한다.
“남자들 사이에선 ‘야, 술 먹고 (성관계) 해’ 이런 얘길 자주 해요. 술 먹고 성관계를 하면 문제도 안 생기고 별로 나쁠 것도 없다는 생각들이죠. ‘술 먹으면 걔(여자)도 달라져’ 하고.”
누구라도 스킨십을 하고 싶을 때 술기운을 빌리고 싶을 수 있다. 그러나 몸을 주체하지 못하거나 의식을 잃을 정도로 술을 마시면 스킨십의 수위나 방식을 조절하기 힘들어진다. “NO”라고도, “YES”라고도 말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상황의 주도권을 상대에게 넘겨 버리게 된다. 설사 당신이 성관계를 원했다고 해도 당신이 원하지 않는 방식이나 장소, 체위 등으로 성관계가 이루어질 수도 있으며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 등의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다.
4. 통제력을 유지하라.
“데이트가 마치 거래처럼 여겨지고 그 안에서 당신이 상대에게 뭔가 ‘빚’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지 않도록, 당신 자신에게 든 비용은 당신이 지불하라.(혹은 상대가 영화티켓을 사면 나중에 당신이 피자를 사는 식으로 나누어 내라.) 첫 번째 데이트에는 당신의 차를 가지고 나가고, 만나는 장소도 당신이 선택하는 것을 고려해보라. (...) 그리고 방금 만난 남자가 태워다주겠다고 제안할 때, 그것을 받아들이지 말라.”(로빈 월쇼)
어떤 여성들은 “데이트 비용을 내면 여성으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기분이 든다”고 말하기도 한다. 남자가 나를 어디에 데려가는지가 나의 매력을 평가받는 척도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돈을 남자가 일방적으로 쓰는 관계에서 남자로부터 성관계를 요구 받았을 때, 여자가 거절 의사를 분명하게 밝히기는 더욱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불균형한 관계에서는 폭력이 일어나기 더 쉽다. 많은 남성들이 남자는 어떤 ‘기대’를 갖고 데이트 비용을 내면서 데이트를 주도한다고 이야기한다. 그 기대는 여성과의 관계 자체일 수도 있지만, 상대 여성의 예쁜 외모나 몸일 수도 있으며 오로지 성관계일 수도 있다.
비용뿐만 아니라 데이트 장소, 스킨십의 진도 등 데이트를 여성이 주도해 보는 경험 또한 중요하다.
“여성들이 알아서 먼저 조심해야 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는 것과 DVD방에 가는 건 다르겠죠. DVD방에 간다고 내 몸에 손을 대어도 된다는 건 아니지만, 상대에게 어떤 오해의 소지를 줄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어야 해요. 내가 하고 싶은 스킨십의 진도가 이 정도라면 그것에 어떤 장소가 적합한지 생각해 보고, 나를 보호하고 상대가 자제할 수 있을만한 공간에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적극적으로 데이트를 주도해 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은의 변호사)
안전한 데이트를 위한 이 지침들이 자칫 “계단을 오를 때 핸드백이나 가방으로 뒤를 가린다” 식의 ‘지하철에서 성폭력 예방요령’같이 여성들에게 성폭력 예방을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여성들이 경계심을 갖고 운신의 폭을 좁히며 살아가는 것은 결코 데이트 성폭력의 대책일 수 없다. 그러나 위 지침들을 숙지한다면 좀 더 자신의 욕구에 솔직하게, 자신이 원하는 성적 관계를 맺고 자유로운 성적 의사소통을 하며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남자들의 좋은 변화를 위한 지침들
▲ 지난 7월 23일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열린 집담회 “데이트 폭력을 말하다” © 한국여성의전화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는 ‘남자들의 좋은 변화를 위한 11가지 지침’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안전한 데이트와 평등한 관계 맺기, 그리고 좋은 남자친구 혹은 섹스 파트너가 되기 위해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지침들이다.
1. 절대로 여성에게 성관계를 강요하지 말라.
“비록 상대 여성이 당신을 ‘유혹’했다 하더라도, 그녀가 이전에 당신과 성관계를 한 적이 있거나 혹은 당신의 친구들과 잤다고 하더라도, 또한 그녀가 “YES”라고 하고 난 후 성관계 직전에 마음을 바꾼다 하더라도, 당신은 그 여성에게 성관계를 강요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2. 깨어 있어라.
“강간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여성들이 반드시 ‘깨어’ 있어야 하듯,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 술이나 약물 복용이 위험한 이유는, 그로 인해 의사 결정 능력과 충동을 조절하는 능력은 약해지는 반면 폭력의 수위는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취한 상태에서는, 본인이 상대의 의사에 반해 성관계를 강요했으면서 여성이 자발적으로 동의했거나 혹은 유혹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취했거나 몽롱한 상태라면 성관계를 갖지 말라. (...) (또한) 취한 상태의 여성은 성적 행위에 대해 지적인 동의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이런 상황에서 이루어진 성적 행위는 대개 강간이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당신은 알아야 한다.”
3. 상대 여성이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고 짐작하지 말라. 또한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상대 여성이 안다고도 생각하지 말라.
“당신은 짐작하고 추측하는 대신 상대 여성에게 직접, 그것도 억압적이지 않은 분위기에서 묻고, 그녀 스스로 대답하게 해야 한다. 만약 그녀가 당신과 성적으로 얼마나 가까워지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하면, 기꺼이 뒤로 물러서라. 상대가 애정표현이나 성적 유희를 원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성교를 원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성교를 원한다면, 다시 한 번 그녀에게 물어 분명한 대답을 들으라. 그리고 이때 명확한 대답을 얻지 못한다면, 성관계를 해도 괜찮을 것이라고 절대로 추측하지 말라.”
4. 여자들과 소통하라.
“당신이 데이트하고 싶어 하거나 현재 데이트 중인 여성뿐 아니라 좀 더 다양한 여성들과 만나 대화하도록 노력하라. 그를 통해 당신은 여성의 전반적인 삶과, 그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하게 될 것이며, 그것은 당신의 모든 관계에 도움을 줄 것이다.” (로빈 월쇼) ▣ 나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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