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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한 관계에 가려진 폭력을 수면 위로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 끝. 연애문화 돌아보기

 

※ 일다의 신간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 발간 기념으로, 데이트 폭력 문제를 심층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기획 기사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미디어 Daum 뉴스펀딩으로 데이트 폭력에 관한 기획 “그건 썸도 데이트도 아니었다”를 10화까지 연재하면서, 가장 많이 접한 댓글은 주로 남성 네티즌의 불만 섞인 얘기였다.

 

“남성이 가해자, 여성이 피해자로만 묘사되어 있다.”

“잠재적 범죄자 취급받는 불쌍한 한국 남성들”

“왜 남성만 폭력 행위자로 몰고 갑니까? 여성의 집착과 감시도 동등한 폭력 아닌가요?”

“집착, 통제는 여자가 더 심하지 않나?”

“성차별적인 글. 남성들을 죄인 취급하는 글. 이제 그만 좀 씁시다.”

 

연애관계에서 여성도 남성에게 욕을 하거나 뺨을 때리는 경우가 있고, 집착하며 통제하기도 한다. 또 동성애인 간에도 데이트 폭력이 발생하는 걸 보면 단순히 생물학적 남성만을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로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데이트 폭력 문제를 성별을 떠나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 또 남녀 간에 유사한 비중으로 발생하는 폭력이라거나, 폭력성의 정도가 대등하다고 가정할 수 있을까?

  

▲  한국여성의전화가 한양대학교에서 진행한 '데이트UP데이트' 캠페인 (2014년)   © 한국여성의전화 
  

연애문화를 근본적으로 돌아봐야 하는 이유

 

광운대 미디어학부 김신현경 박사후 연구원은 “우리 사회에서 폭력이 남성성, 여성성과 맺는 관계가 다르다”고 말한다.

 

“이성애 관계 안에서 여성은 집착, 언어폭력, 감시, 따라다니기 등 주로 ‘여성적 폭력’을 행해요. 그러나 심각한 수준으로 가면 남성은 물리적 폭력으로 상황이나 관계를 제압해 버리기 쉽죠. 성적인 관계를 맺었다면 상대 여성을 창녀 취급하기도 쉬운 일이예요. 그러나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폭력을 행사하겠다는 건 ‘살인자가 되기로 결심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둘만의 관계처럼 보이는 이성애 연애관계 안에서도 사회적으로 남성, 여성이 가진 위치와 권력관계는 작동한다. 데이트 폭력의 원인은 결국 개별적인 남성, 개별적인 여성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를 견고하게 떠받들고 있는 성별 권력관계와 깊은 관련이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정상적’인 이성애 관계로 규정하고 있는 모습 안에 이미 데이트 폭력으로 발전할 수 있는 요소들이 숨어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여성의전화 완두 활동가는 “연애 안에서 욕망하는 방식,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고 느끼는 방식이 성별에 따라 다르게 구성돼 있다”고 말한다. 집에 데려다주거나 귀가 시간을 체크하거나 옷차림이나 인간관계를 구속하는 것은 ‘정상적’인 남성의 역할로, 그런 남성에게 구애받고 보호받으면서 한편으로는 남성을 정서적으로 돌보거나 챙겨주는 것이 ‘정상적’인 여성의 역할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

 

“반대로 여성인 내가 남자친구를 집까지 데려다 준다거나 남자친구가 무거운 거 들어준다는데 ‘됐다’고 하면서 내가 들면, 낭만적이지 않은 관계가 되는 거죠. 강도 높은 폭력이 아닌 일상적인 침해에 대해서 폭력이라고 알아차리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성도 그런 ‘낭만적인’ 행위를 욕망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완두 활동가)

 

사회가 부여하는 성역할을 수행하지 않는 것은 연애할만한, 매력적인 여성이나 남성이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렇듯 여성성, 남성성이 규범으로 존재하고 그러한 이성애 관계가 ‘정상’으로 간주되는 사회에서는 데이트 폭력이 일어나기 더 쉽다. 따라서 데이트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연애문화 전반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  고등학교 체험형 성교육 장면   © 아하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마님 연애’는 여성이 주도하는 관계? 착각일 뿐

 

혹자는 이제 데이트 관계에서 성별 권력관계가 변화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남성이 여성의 가방을 들어주고 공주처럼 모시는 소위 ‘마님 연애’라는 현상을 봐도 그렇고, 이제는 여성도 남성의 외모를 따지고, 연상(여)연하(남) 커플도 늘어났으며, 여성이 데이트 비용을 나눠 내거나 데이트 코스를 주도하는 등의 변화가 보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남존여비의 과거에 비하면야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이전보다는 향상되었고 여성에게만 순결을 강요하던 성문화도 퇴색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현상만으로 연애관계에서 남녀가 평등해졌다고 진단해버리면 매우 곤란하다. 조금씩 그 형태를 달리하여 드러낼 뿐, 여전히 성별 권력관계는 복합적으로 작동하며 데이트 폭력을 유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학자 변혜정은 한 논문에서 어떤 여성들은 “여성을 마님, 공주로 존중하는 ‘마님 연애’가 여성의 불만족과 억압을 보상해주며 여성의 자율성을 표현”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것을 바라보며 즐기는 남성들은 ‘너는 내 손 안에 있다’는 여유를 부”리고 있다고 설명한다. 남성은 여성이 “자신의 권력에 근본적으로 도전하지 않는 한 봐주는 것”이며 “여성에 대한 보호자(폭력자)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성애 관계에서의 자기 계발 연애와 성적 주체성의 변화”, 서강대학교 생명문화연구원 <생명연구 17집> 2010)

 

또한 혼전 성관계에 대한 여성들의 가치관이 달라지고 여성도 만남을 시작해 성관계하기까지의 기간이 짧아졌다고는 하지만, (섹스의) 장소 선택, 비용 지불, 피임 실천 등에 있어서 여전히 “섹스는 남성 주도적으로 이루어지며 여성은 보조적”이다. 더불어 여성은 “오히려 성폭력 경험은 말할 수” 있어도 “적극적인 성경험”은 드러내기 여전히 어렵다고 분석하고 있다.

 

‘여성성=외모, 남성성=돈’ 이런 문화는 위험하다

 

김신현경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객원 연구원은 “여성, 남성이 서로 자원을 교환하는 관계가 아닌 다른 식의 친밀한 관계를 상상하기 힘든 시대가 됐다”고 말한다.

 

“(결혼 아닌) 연애관계에서는 그런 계산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순수한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갈망도 있어요. 그런데 요새는 돈 안 쓰는 데이트가 없잖아요. 데이트를 하고 선물을 주고받고 기념일을 챙기다 보면 각자가 가진 자원이 나오게 돼요. 사랑과 정성도 한두 번이지 하다보면 견적이 딱 나오는데, (자기가 기대하는 바를 상대가 충족 못 시키면) 그 안에서 분열을 느끼게 되죠.”

 

김신현경 연구원은 근래 들어 “여성성은 ‘외모’, 남성성은 ‘돈’과의 연결이 명확해졌다"고 말한다. 여성적인 자원과 남성적인 자원이 구분되어 있고, 각각의 자원이 행사할 수 있는 힘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면, 한 쪽(남성)의 폭력은 더 쉽게 관철된다.

 

“남성들은 예전부터 ‘기브 앤 테이크’가 명확했는데, 전에는 신사도를 지키거나 결혼까지 가기 위해서 체면을 차렸다면 요새는 그럴 필요가 없게 됐어요. 내가 돈을 더 많이 냈으면 여자인 너도 너의 자원을 내 놓으라고 요구하죠. 예를 들어 여자가 원하는 걸 해줄 수 있는 돈 자원을 가진 남자는 다소 거친 성관계를 요구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여성들 입장에서는 그런 자원을 가진 남자가 자기가 원하지 않는 걸 요구하고 침해하는 걸 수용하게 되고요.”

 

따라서 “이거 데이트 폭력이에요?”, “이것도 데이트 성폭력이야?”라는 질문을 넘어서 “나는 연애관계에서 무엇을 욕망하며 그것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나는 타인과 어떤 관계를 맺고 싶은가” 등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  한국여성의전화 데이트공작단이 출제한 '전국 공정 연애실력고사'   © 한국여성의전화 
  

데이트 폭력, 끈질기고 섬세하게 논의해가야

 

피해 여성들의 용기 있는 말하기로 몇 개월 전부터 데이트 폭력이 한국의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친밀함에 가려져있던 폭력에 ‘데이트 폭력’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된 건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지금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잔혹한 데이트 폭력 사건을 접하고 일시적으로 분노하는 방식으로는 데이트 폭력이 왜 발생하는지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어렵다. 남성들은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가 자신과는 다른 부류의 남자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며, 여성들 또한 잔혹한 폭력 피해와 자신의 일상을 연결 지어 인식하기 힘들다. 오히려 여성들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키는 효과를 낳을 뿐이다.

 

최근 메갤에 ‘페미니스트 남자를 만나는 방법’이 올라와 많은 여성들의 호응을 얻은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여성들이 남성에 대한 경계심을 강화하고 자기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것, 안전한 남성 파트너를 찾는 매뉴얼을 공유하는 것이 데이트 폭력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명확하다.

 

또한 심각한 폭력 상황에서는 즉각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법적, 정책적 대안이 필요하지만, 신고나 고발 등의 법적 해결만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데이트 폭력이나 그 폭력이 남긴 상처를 해결할 수 있는 전략이 공유되고 계발되어야 한다.

 

연애와 데이트 폭력에 대해 ‘말하기’를 할 수 있는 공간, 일상적인 연애문화에 대해서 함께 토론하고 성찰할 수 있는 커뮤니티 역시 필요하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꾸려져 활동하고 있는 ‘한국여성의전화 데이트 공작단’이 그 좋은 사례다.

 

애인에게 경제적 갈취를 당한 경험이 있는 26살 다정(가명, 여자)씨는 작년에 데이트 공작단 활동을 하면서 “고립에서 벗어났다”고 말한다.

 

“작년에 애인과 헤어진 직후에 데이트 공작단 친구들을 만나서 같이 활동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내가 경험한 것들을 새롭게 해석해 볼 기회들을 충분히 얻었어요. (피해 상황에 있을 땐) 남들한테 얘기도 할 수 없었고 뭐가 문젠지 전혀 알 수 없었거든요. 나와 그 사람의 관계에만 갇혀 있다가 좀 더 넓게 보게 되면서 내 탓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고, 여성들이 무엇을 불편하게, 예민하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알게 됐어요.”

 

데이트 폭력을 근절하는 것, 그것은 폭력의 요인이 문화적 배경을 깔고 있는데다가 예방책도 단순하게 매뉴얼화할 수 없는 것이기에 더 섬세하고 더 끈질긴 사회적 논의를 필요로 한다. 나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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