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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산다는 것
<이 언니의 귀촌> “너 같은 애가 더 오래 살게 될걸”(하) 

 

※ 비혼(非婚) 여성들의 귀농, 귀촌 이야기를 담은 기획 “이 언니의 귀촌” 기사가 연재됩니다. 이 시리즈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통해 제작됩니다. [편집자 주]

 

 

여름에 에이드를 파는 가게를 열다

 

한량처럼 떠도는 내가 안타까웠는지 “너 뭐해 먹고 살래?” 자꾸 물으시던 할머니는 어느 날 나를 부르시더니 슈퍼 앞 작은 공간을 보여주시고는 “여기서 뭐라도 해볼래?” 하셨다.

 

나는 ‘곧 돌아갈 거야’라고 노래를 불렀고, 할머니는 언제나 ‘이런 시골이 뭐가 좋다고 있냐, 여기 있지 말고 시집이나 가라’고 하셨는데…. 할머니는 ‘어서 떠나라’ 하시더니 내게 공간을 소개해주셨고, 나는 ‘곧 돌아갈 거에요’하면서 그 공간을 받은 것이다.

 

그렇게 나의 제주살이는 의도치 않게 운인 듯 운명인 듯 연장되어 갔다. 사실 나는 모르는 척하며 마음이, 시간이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둔 것이었다. 계획 없는 삶은 처음이었다.

  

         ▲  한여름 에이드 가게   © 쇼코  

 

그 공간이 있는 덕에, 친구와 여름에는 에이드를 파는 가게를 충동적으로 열었다. 가게의 모토는 굉장히 이기적이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한도 내에서 우리는 여름에만 한시적으로 프로젝트처럼 가게를 열었고, 날이 너무 궂거나 혹은 날이 너무 좋거나 등의 이유를 들어 가게 문을 열고 닫았다.

 

그런 덕에 당연히 손님을 맞는 날보다 손님을 기다리는 날이 잦았고, 이럴 바엔 육지로 올라가서 주는 월급 받으며 풍족하게 살 거야! 라는 후회가 밀려와 하루 단위씩 우울해지기도 했다.

 

제주에서 가게를 한다고 하니 가족이나 친구들은 번듯한 사장님이구나, 기대하곤 했지만 허름한 공간에서 하루 간신히 벌어 그 다음날 재료를 사면 동이 나는 수익 정도였다. 동네 술꾼들이 와서 귀찮게 굴기도 하고, 일흔이 넘은 할아버지가 맛있는 거 사주시겠다고 “김여사”라고 부르며 전화번호를 묻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지금 뜬금없이 여기서 뭐 하는 건가 싶었다. 어쩌다 단골의 인연을 맺은 분들은 가게의 존폐 위기에 나보다 더 동동거렸다.

 

명절이 되어 집에 가면 ‘너는 도대체 제주까지 내려가 뭘 하는 거냐?’라는 친인척들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어 진땀을 뺐다.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가게요’ 라고 이해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럴 때면 공무원인 동생과 비교 당하며 영락없이 온 가족들의 걱정거리로 전락하는 거다.

 

이 나이에 소질 계발이라니!

 

▲   에이드집 공사 준비 중.  © 쇼코 
 

그러나, 사실 괜찮았다. 그 모든 것이 재미있었다. 새로웠다. 신선했다. ‘가난해도 괜찮아’가 통용되는 것은 다른 가치 있는 것들에 대한 통찰을 높여준다. 사람 간의 소통, 오가는 마음, 내 마음이 시키는 것 같은 것들…. 정말 우선 순위에 두어야 하지만 바쁜 생활에서는 치워두었던 것들 말이다. 아마도 제주이기에, 시골이기에 계획이 없어도 가난해도 괜찮았다.

 

에이드 가게를 하면서 정말 내가 재미있어 하는 것은 무엇인가 찬찬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대부분 이 나이에는 이미 정해진 길을 열심히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다 지치면 넘어지는 거다. 그래도 숨이 차게 다시 일어나 그 길을 걸어야 한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많은 이가 그렇게 하고 있는 길을 가는 게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제주에서 계획이 없고 가난한 덕에 여전히 내가 어떤 소질이 있는지를 찾게 되었다. 이것 저것을 시도해보며 정말로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에 있는 거다. 아마 이 나이에 쉬이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닐 것이다. 다 늙어(?) 소질 계발이라니!

 

그리하여 나는 음료 가게의 사장이 되어보기도 하고, 칼국수 집에서 칼국수를 날라보기도 했으며, 산속 마을축제에서 공룡완구를 팔아보기도 했고, 마을 도서관에서 책들을 분류하는 작업도 해보았다. 사실 대부분은 생계 관련이긴 했지만, 시골이 아니었다면 괜한 자존심에 시도도 하지 않았을 경험들이었다. 그렇기에 그것마저 재미있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던 순간들….

 

가끔, 아니 꽤 자주 ‘뜬금없이’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그때야말로 내가 지금 살아내는 순간이 가장 밀접하게 다가오는 때이다. 그 뜬금없음을 파고들다 보면 스치는 지금의 삶을 자꾸 살피고 내 스스로 마음 결을 고른다.

 

동네 친구들, ‘지금’을 놓치지 않는 사람들

  

▲  동네 친구들은 책을 함께 주문해 돌려 읽기도 한다.   © 쇼코 
 

사실 여기까지 오는 데는 이곳에서 맺은 많은 인연들이 모두 선생님이 되어주었다. 멋대로 내 삶에 손을 쑥 넣은 할머니를 비롯해 비슷한 고민들을 거쳐 내려왔을 동네 친구들. 그저 맛있는 거 같이 먹자고, 그저 좋은 거 같이 보자고 나를 부른다. 달이 예쁘다거나 밤바다가 좋다고 불러낸다. 그들 덕에 나는 그것들을 놓치지 않고 산다.

 

손님이 많아도 재료가 떨어지면 욕심내지 않고 문을 닫는다거나, 며칠씩 여행 간다고 가게를 비운다거나, 바다에 다녀온다며 쪽지 한 장 놓고 바다로 향하는… 삶의 순간을 위해 지금을 놓치지 않는 그들.

 

그런 자세를 처음 대했을 때는 어떻게 그럴 수 있나 대단하게 느껴졌는데 사실 알고 보니 그들 모두 나처럼 거창한 포부나 계획 없이, 어떠한 환상 없이 어쩌다 마음을 살펴 흐르는 대로 살아내다 보니 지금 그 자리에서 느리게, 천천히 자리를 지키고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하여 이미 지나와 알고 있었기에 나를 보며 “너 같은 애가 더 오래 살게 될걸”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개인주의로 무장하고 다른 사람의 삶에 관심이 없었으며 ‘그냥 주는 것’이 낯설고 ‘그냥 받는 것’이 어색하던, 그래서 사람 대신 물건들이 해결해주는 편리함을 갖춘 도시 생활을 좋아하고 불편한 시골살이에 불만투성이던 ‘나 같은 애’가 제주에서 맺은 인연들이 주는 가르침에 얼마나 새로워할지, 그리하여 처음 들여다본 스스로의 마음결에 어떤 자세를 취할지, 거창한 포부와 계획이 없기에 차라리 흐르는 대로 맡기는 삶을 살아낼 수 있다는 걸 친구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은 삶의 순간을 느끼며 사는 데에는 너무 큰 마음가짐은 필요하지 않음을.

 

나 같은 애라서 나는 아직도 제주에 있다.

곧 돌아갈 거야, 라고 말하면서 여전히 제주에 있다.

그리고 ‘나 같은 애’를 보며 말해줄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

“너 같은 애가 더 오래 살게 될걸.” 
 

         ▲  바닷가에 텐트를 치고 여름 바다를 보며.   © 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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