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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얘기가 녹아든, 문턱 없는 사진들
‘서학동 언니’ 프로젝트 1탄 <응달 꽃은 짙다> 

 

 

올해 5월 말, 사진에 뜻있는 이들이 전주에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사진에서 규모 있는 축제인 전주포토페스티벌도 마무리된 시기인데 이들이 왜 이곳으로 모여든 것일까.

 

사진가 김영경, 김혜원, 노순택, 이갑철, 이상일, 이한구와 사진기획자 송수정이 직접 혹은 작품으로 전주를 찾았다. 말하자면 ‘서학동 언니’를 위해서인데 서학동 언니가 누구며, 왜냐고 묻는다면 좀더 긴 설명이 필요하다. 서학동 언니라 부르는 이는 김지연 선생이다. 지칭에서도 짐작하겠지만 전주 서학동에 산다. 그녀는 서학동 사진관 관장이자 사진가다. 

 

           ▲   전주 <서학동 사진관> 입구 전경.  © 홍진훤 
  

서학동 사진관은 흔히 짐작하는 사진관이 아니다. 미술 전시를 보는 곳에 미술관이라는 이름을 붙이듯, 사진 전시를 보는 곳에 붙인 이름이다. 전주에서 가장 붐비는 한옥마을 옆을 흐르는 전주천을 건너가면 서학동이 있고, 전주에선 이 인근을 서학동 예술마을이라 부른다. 한옥마을보다는 아직 차분하면서도 예술마을이라 불릴 만한 자분자분한 자취가 곳곳에 스며있는 동네 사이에 서학동 사진관이 자리한다. 골목 안으로 쑥 들어간 곳에 위치한 서학동 사진관은 아담하지만 진지하게 사진을 보고, 고민할 수 있는 공간이다.

 

사진 보고 생각하는 장소, 서학동 사진관

 

이곳에서 열린 전시 <응달 꽃은 짙다>는 ‘서학동 언니’ 프로젝트 1탄이다. 기획 의도에 따르면 ‘쉽지 않은 길을 먼저 걸어온 서학동 사진관을 응원하고 그동안의 우정을 나누기 위해 마련한 기획’이다.

 

‘이 프로젝트는 우선 1년마다 다양한 활동 폭을 지닌 기획자와 사진가들이 서학동 사진관에 전시를 꾸리는 것이 목표’다. ‘전시 기간 중에 작가와 기획자가 전주에 머물며 작가와의 대화, 강연 등의 연계 행사도 펼친다. 서학동 사진관의 가치에 주목하고 더 많은 생기를 불어넣기 위한 원정 행사이자, 시각예술이 지역 공동체와 공존하는 길을 모색하는 기회’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쉽지 않은 길을 먼저 걸어왔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누구에게나 쉬운 길은 없지만 어려운 길을 내처 걷기도 힘들다. 김지연 선생의 쉽지 않은 길목에는 전북 진안의 계남정미소가 자리한다. 오십을 넘기시며 사진을 처음 배우고 다루기 시작하신 김지연 선생은 전국을 돌며 잊혀지거나 무너져가는 정미소를 사진으로 기록하였다. 이후 선생은 당신의 생애에 의미있는 장소인, 전북 지역 중에서도 전북 진안군 계남의 정미소를 인수하여 그곳에 공동체 박물관 계남정미소를 꾸렸다. 이미 10년도 전의 일이다.

 

지금은 지역 공동체에 대한 고민이 싹트고 발아하여 각 지역마다 예술과 공동체에 대해 자생적인 고민을 하고 방향에 대해서도 열띤 논의와 실천이 있지만, 10년 전까지만 해도 상당히 이른 행보였다.  

 

▲  남겨진 도심의 자취를 담은 김영경 작가 작업, <군산-안녕 신흥동> 연작.   © 홍진훤 
  

이름이 고와 다들 젊은이를 기대하겠지만, 그리고 지금도 젊은이만큼 열정이 넘치지만, 참고로 이제 선생은 예순을 훌쩍 넘기셨다. 1년여 벌판에 가까운 이 정미소를 다듬고 정리하여 공동체 박물관을 열었고, 이내 계남정미소는 전국적으로 입소문이 돌아 서울이라는 ‘중심’뿐만 아닌, ‘지역’에서 공동체에 대해 고민하는 기관이나 단체라면 한번쯤 답사를 오는 곳으로 자리 잡아갔다.

 

공간을 찾는 이의 발걸음은 가벼울 수 있으나 공간을 운영하는 입장은 참으로 무거울 수 있을 텐데 선생은 그곳에서 이 운영의 무거움을 기꺼이 받아 안았다. 잊혀져가는 건 아쉬우나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주변의 기억을 성심껏 모으고 전시로 묶어내었다. 묵묵하게 지켜내던 공간이지만 선생 혼자서 꾸려나가기엔 벅찬 부분이 있었고, 그 고민을 지역 행정기관과 나누고자 하였으나 해갈이 어려웠다고 한다. 2012년을 기점으로 계남정미소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뜻을 기려 새롭게 운영의 뜻을 비친 지역 교사가 나타났다고 한다. 어쩌면 머지않아 계남정미소로부터 전해오는 마을공동체 소식을 다시 들을 날이 곧 올지도 모르겠다.

 

2013년, 선생은 계남정미소의 후신으로 전주 서학동에 서학동 사진관을 열었다. 수년을 걸치며 이곳에서는 개관전 <우리동네>, <일어나라 사진비평>, 김옥선, 한금선과 같은 사진작가의 개인전 등 우리가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분류하는 사진 전시를 선보였다. 알찬 기획에는 김지연이라는 사진가에 대한 사진마을 사람들의 신뢰와 계남정미소에서 서학동 사진관까지를 잇는 지역 공간을 향한 선생의 애정에 대한 믿음이 주효했다. 바로 이 길에 우정과 연대의 뜻을 보인 전시가 바로 <응달 꽃은 짙다>이다.

 

계남정미소에서 서학동 사진관까지 ‘힘내요, 언니’

 

이 ‘언니’를 위한 프로젝트 1탄인 <응달 꽃은 짙다>는 전주 서학동 사진관을 거쳐 서울 사진위주 공간 류가헌으로 릴레이 전시를 펼쳤다. 두 곳을 거친 사진 작품들은 소박한 한옥을 정비한 두 공간만큼 담박하고 진솔하게 세상을 품었다.  

 

           ▲   "응달 꽃은 짙다" 서울 사진위주 공간 <류가헌> 전시 전경  © 김현주 
  

전주에서 멀지 않은 군산 신흥동에 말 그대로 이젠 남겨진 도심 자취를 담은 김영경의 <군산-안녕 신흥동> 연작은 슬레이트 지붕, 타일, 허물어진 시멘트 덩이, 낡은 장판이 사진의 단편으로 부분부분 등장한다. 기억으로는 더듬어 돌아봐야할 도시 흔적이지만 오늘을 살기 바빠 외면하는 과거가 현재로 지속되고 있다.

 

김혜원은 2001년 완공된 전북 용담댐 건설이 낳은 환경의 변모를 담담하게 포착한다. 댐 건설을 위한 자갈 언덕이나 흙 둔턱의 사면과 골이, 본디 그곳에 있었고 생활의 편리가 아니라면 지금도 생을 다해갈 나무와 풀들과 어우러져 있다. 행정과 건설 논리를 간취하지 못한다 하여도 실상 우리의 풍경이다. 그만큼 개발은 문턱 앞까지 치고 들어온 것이다.

 

노순택의 <얄읏한 공>은 평택 대추리에 떠올랐던 30미터짜리 하얀 공이 사진에 드문드문 등장하여 사진의 주요 대상을 이루거나 저 먼 발취에 자리한다. 이 공은 군사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미군이 사용한 레이더 돔이다. 대추리라는 지역이 지닌, 정겹고 구수한 이름에 ‘일제 강점기에는 비행장 건설로, 한국전쟁 직후에는 미군기지 건설로’ 우리 땅이었던 적 없어서 이곳 아닌 ‘그곳’을 바라볼 때 시야에 들어오는 대추리의 역사와 아픈 호흡을 드러낸다.

 

김영경, 김혜원, 노순택이 우리 환경에 대한 기록을 견지한다면 이갑철, 이상일, 이한구는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을 기념한다. 내 누이, 내 노모를 기억에서 소환해 내는 이갑철의 작품은 굴곡에도 생을 살아가는 바로 우리의 초상이다. <한국인의 초상> 연작은 초상이 지니는 경외와 존경의 파고를 눌러 그 앞에서 젊음에 대해 방긋 웃고 늙음에 대해 고개 숙일 수 있게 만든다.

 

이상일의 <메멘토 모리> 속 이들은 울산 온산공단 일대에 살다가 원인 불명의 통증을 호소했던 주민들이다. 설명에 따르면 ‘이 집단 발병으로 온산병 혹은 한국판 이타이이타이병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결국 원인 규명을 하지 못한 채 정부는 무려 1만 명의 주민을 이주시키는 계획만 발표했다.’  

 

▲  이상일 작가의 <메멘토 모리> 울산 온산공단 일대에 원인불명의 통증을 호소했던 주민들 모습.   © 김현주 
  

이갑철의 초상 사진이 우리를 보드랍게 응시한다면 <메멘토 모리> 연작에서는 서로의 시선이 아프게 교차하는, 나를 바라보지 않는 이들이 담겨 있다. 그렇기에 우리의 응시에는 끝날 수 없는 책임이 따른다.

 

이한구의 <쳥계천> 연작에는 청계천을 따라 이어져있던 상가 시장의 성쇠가 오롯하다. 30년 가까이 여기를 드나들며 찍은 사진에는 노동이 있고 땀내가 있으며 희로애락이 있고 이 모두를 포괄해 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이 있다.

 

지역의 예술 공간들, 응달 꽃내음을 찾아서

 

응달 꽃으로 응축된 사진과 그 사진이 담아낸 밝지 않아도 빛나고 향내 나는 삶, 그리고 그 삶을 조명해 내는 이들과 선보이는 공간, 이 모든 기운이 만들어낸 <응달 꽃은 짙다> 1탄은 내년에도 이 기운을 모아 2탄을 준비할 예정이다. 언제든 닫을 수 있는 공간이에요, 라며 김지연 선생은 담담하게 말씀하시지만 이 기운이 선생이 이 여름, 가을, 겨울을 거쳐 새해를 맞이하는데 조금은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리라 믿어 본다.

 

전주에 들를 때엔 한옥마을처럼  정비되어 환하고 분주한 곳 말고도 서학동 사진관처럼 지역예술의 공생을 위해 제 몫을 다하는 곳에 한번쯤 들를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또 한 번 손쉽게 검색해 보자. 내 지역의 이름과 주변의 예술 공간이 무엇이 있나. 대안 공간, 신생 공간 등 그 이름은 다양하다. 산보만으로도 들릴 수 있는 그 공간들은 사람들의 응원과 발길을 언제든 기다리고 있다.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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