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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속 같은 시절을 버티는 방법
<여라의 와이너리 시즌2> 영동군 와인터널 뉴스를 보며 

 

 

우리나라에서 포도는 대체로 경기 남부에서 전라북도와 경상북도에 이르는 남한 땅 허리에서 생산된다. 충북에서 생산되는 포도의 70%을 차지하는 곳, 국내 전체 생산지의 12% 이상이 영동군에 있다. 온갖 포도 체험으로 가득한 ‘포도 축제’와 몇 년 전부터 열리고 있는 ‘대한민국 와인축제’에 참여하러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영동을 찾는다.

 

감와인을 생산하는 청도의 ‘와인터널’ 같은 지역 아이콘을 만들고자 몇 년 전 농어촌공사와 충청북도, 영동군은 와인터널을 파기로 결정했다. 작년 봄에 기공식도 치렀다. 그런데 터널을 내려던 용두공원 지하에 지반붕괴 위험이 있다며 안전성 논란이 일었다. 작년 지방선거 때 새로 취임한 군수가 이전 군수의 흔적을 없애려고 하네, 어쩌네 하는 말까지 나왔다. 새 군수의 핵심 공약 개발 예정지로 와인터널을 옮기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4월말 용두공원 와인터널 예정지 인근에서 바위가 무너져 내리는 아슬아슬한 사고가 났다. 그 덕분(?)에 터널 예정지 이전에 관한 논란은 일단락된 것 같다.

 

청도에 있는 와인터널은 백 년도 넘은 철도 터널(구 남성현터널)이다. 이처럼 오래된 시설은 말할 것도 없고, 새로 만드는 와인터널 역시 안전, 또 안전을 제일 앞세우길 바란다. 영동군 와인터널은 2017년에 완공 예정이란다.

 

와인을 숙성시키는 최적의 공간, 동굴

 

왜 와인을 동굴에 둘까? 와인을 숙성시키기 위해서든, 그냥 저장하기 위해서든 동굴은 천혜의 조건이다. 오적(빛, 산소, 온도, 습도, 진동)으로부터 와인을 지켜주기 때문이다. 동굴은 어둡고 온도 변화가 일년 내내 크지 않다. 여름 뙤약볕에도 겨울 추위에도 섭씨 13-18도, 딱 좋다. 습도 70% 이상의 축축함은 오크통 안에서 숙성중인 와인이 공기 중으로 증발하는 양을 최소화한다.
 

▲  스페인에서 제일 큰 까바 와이너리 프레시넷(Freixenet) 지하 저장고. 와이너리 투어 대부분은 어마어마한 크기 동굴 안에서 하고, 그 밖엔 현대식 공장을 둘러보고 테이스팅을 한다.  © 여라  

 

와인 냉장고는 이러한 자연 조건을 흉내 낸 것이다. 오늘날에는 와인 저장고로 사용할 건물을 짓는 것보다 와인동굴을 파는 것이 경제성도 좋고 친환경적이란다. 게다가 자연 경관도 그대로 둘 수 있다.

 

와이너리들은 동굴이 관광상품으로도 이용 가치가 높아 일부러 새로 파기도 한다. 영동군처럼 말이다. 와이너리 투어뿐 아니라 파티, 결혼식, 전시회 등을 열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 된다. 와인이 제일 중요하지만, 와이너리를 둘러싼 자연 경관이나 역사와 시설, 그리고 근사한 동굴까지 있으면 관광지로는 최고다.

 

작년 여름 캘리포니아 여행 때 찾았던 한 와이너리는 6백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와이너리의 캘리포니아 분점 같은 곳이었다. 나파 시내에서 꽤 올라가는 산 속에 있는데, 바위산에 어마어마한 동굴을 파놓았다. 지금은 관련법에 의해 그렇게 만들 수 없다고 했다.

 

나파 지역 와인 산업이 막 싹트던 1960년대에 일찌감치 나파에 와서 미래를 알아보고는, 1980년대에 지금 위치에 와이너리를 만들었단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그때 사진을 찾아보니 한참 구경했던 동굴 사진이 없다. 끙. 우연하게도 그날 투어와 테이스팅을 예약한 사람이 나 혼자였는데, 거의 두 시간을 개인 가이드를 대동한 듯 여유도 있고 흥분했던지, 동굴은커녕 와이너리 전체에서 찍은 사진이 꼴랑 두 장이다.)

 

동굴 바깥으로 나간 면벽도사를 떠올리다

 

▲ 마당에 심은 포도나무. 지난 번 칼럼 이후 포도 잎이 마구 나와 열심히 자랐다.    © 여라 
 

영동군 와인터널 논란 뉴스가 나올 때, 문득 소크라테스의 ‘동굴의 비유’(플라톤의 <국가론> 7권 중)가 떠올랐다. 아마도 가슴저리고 뼈아픈 4월을 지내며 동굴 같은 시절을 보내고 있다 여겼기 때문이리라. 뭐가 진짜인지, 내가 믿고 있고 겪고 있는 이게 진짜 현실인지 의심스러워서일까. ‘동굴의 비유’를 다시 읽었다.

 

동굴 안에 묶여서 눈앞 그림자들과 그들이 하는 말소리가 진짜라고 믿는 면벽도사들 중 한 명이 어쩌다 풀려났다. 묶여있던 몸도, 눈도, 머릿속도, 마음도 막상 풀려나니 아프고 혼돈 속에 빠졌다. 하지만 이내 동굴 속 상황을 파악하게 되고, 어찌어찌 억지로 동굴 바깥으로 나가게 되었다.

 

역시 고통과 실명 위기와, 분노의 과정을 겪었고, 그러면서 처음에는 그림자나 물에 비친 모습을 보다가 차츰 밤하늘에 별과 달을 제대로 바라보게 되고, 어느 날 모든 것을 보이게 하는 해를 마주한다. 이 과정을 겪게 되어 행운이라고 생각한 이 탈동굴인은 이제 동굴 안에서만 존재하던 지혜를 따를 수 없다. 동시에 과거 동료였던 면벽도사들에게 미안해졌다.

 

그는 동굴 안으로 다시 돌아간다. 갑자기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니 눈앞이 깜깜하다. 이 자유인이 동굴 속 면벽도사들에게 그들이 진짜라고 믿고 있는 그 꼭두각시들의 그림자와 지혜에 대해 아무리 설명한들 씨알도 먹힐 리 없다. 제대로 앞을 보지도 못하는 것이 헛소리한다고 무시를 받았다. 그럼 그렇지, 동굴 밖으로 나가봐야 좋을 일 없다고 그들은 굳게 믿고 있다.

 

그리고, 자신들을 동굴 밖으로 데려나갈 수 있는 사람을 붙잡아 죽일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지 않겠냐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질문이다. 너무 오래 전에 읽어서일까. 막연히 동굴의 비유는 철학자가 우매한 것들을 동굴에서 나가는 길로 인도하는 해피엔딩인 줄로 착각하고 있었다. 동굴의 비유는 비극이었다.

 

동굴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 또 하나는 어린 시절 살던 동네에 있던 ‘반공호’다. 아이들에겐 더없이 좋은 놀이터였다. 조금 겁도 났지만, 전깃불을 켤 수도 있었고, 동네 사람들이 저장음식을 더러 보관하기도 했다. 들리는 말로는 전쟁이 나면 동네 사람들이 다 들어가 얼마간 지낼 수 있다고 했다.

 

왜인지 현실과 분리된 그 공간이 꽤 매력적이었다. 그 안에서 여기와 동떨어져있는 현실인 것 같은 ‘바깥’을 이따금 상상해보곤 하였다. 지금 바깥에선 무슨 일이 있을까. 우리들이 지금 이 안에 있는 것을 어른들은 알까. 여기서 한 이야기는 우리끼리 비밀이야, 뭐 이러면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

 

몇 년 전 아르메니아에서 기원전 4천년 경 신석기시대 동굴유적지에 공동 묘지가 발견되었다. 그런데 거기에 와이너리가 있었다.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로 알려져 고고학이나 와인계에서 회자되었다. 6천년 전 인류의 조상은 참 로맨틱했구나 생각했다. 물론 살아있는 이들이 제의로도 사용했겠지만, 죽어서도 와인 만들어먹을 수 있게 해주다니! 우리가 제사상에 고인이 좋아하던 음식을 올리곤 하는 것과 같은 마음이겠다.
 

         ▲  지난 주, 마당에 있는 포도나무에 꽃대가 올라왔다.   © 여라  

 

와인이 어둡고 조용한 곳에서 숙성의 시간을 보내고 한결 더 깊은 향과 맛을 내듯이, 지금을 돌아볼 미래에 이 시기가 꼭 필요한 시간이었노라 하는 동굴을 지나고 있다고 믿고 싶다. (아니면 무척 억울할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동굴 같은 공간을 일부러 만들어 때때로 현실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그 동굴 안에 와인도 좀 있으면 좋겠다. 이 동굴 속 같은 시기에도 포도꽃이 달렸다.  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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