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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가장 멋진 결혼식
사사의 점심(點心) 시골살이 20. 덜어지고 채워지는 것 
 

 

 

※ 경남 함양살이를 시작하며 좌충우돌, 생생멸멸(生生滅滅) 사는 이야기를 스케치해보기도 하고 소소한 단상의 이미지도 내어보려 합니다. [작가의 말] 

 

▲ 내 생애 가장 멋진 결혼식    © 사사의 점심(點心)  
 

“스무 살에 고향을 떠나 시골마을에서 청춘을 보낸 두 청춘 남녀가 있습니다.”

왠지 싱그러운 냄새가 나는 문장이다.

 

지훈과 주희는 12년 전쯤에 경남 함양에 있는 생태대안학교에 왔다. 주희가 먼저 그리고 지훈은 이후에. 처음엔 그냥 학교친구 사이였을 거다. 그 당시 주희는 학교와 가까운 마을에서 노부부가 사는 집에 방 한 칸을 얻어 살고 있었고, 지훈은 집 없이 방황하며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 학교 동기생을 도와주고자 주희는 노부부를 설득하여 그 집 빈 방에 하숙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한 울타리에서 살다보니 싸우는 일도 많아져 거의 원수처럼 지내기도 했다. 그러다 연인이 되었고 올해 5월의 신랑, 신부가 되었다.

 

대구에 있는 연수원에서 올린 결혼식은 재기가 넘치는 두 사람의 기획력으로 한편의 문화공연처럼 펼쳐졌다. 한 시간에 걸친 세레모니는 풍물과 사자춤놀이로 시작되었다. 노련한 놀이꾼들은 신부의 절친이었고, 그들은 흔쾌히 그들의 결혼식을 춤사위로 장식해주기로 했다.  

 

새 삶을 시작하는 신랑, 신부가 등장할 길을 꽹과리, 장구, 북쟁이들과 사자 한 마리가 먼저 밟아보고 놀아봄으로서 안전한가를 확인한다. 역동적인 사자춤은 힘이 넘치고, 붉은 얼굴과 붉은 털들이 붉은 융단위에서 너울거리며 둥그렇게 둘러싼 하객들의 박수와 함께 어우러졌다. 풍물패들이 신랑, 신부의 결혼식 길이 안전하다고 하객들에게 큰 소리로 고한 뒤 붉은 얼굴의 사자가 앞장을 서서 신랑, 신부를 식장으로 이끈다. 그럼으로써 결혼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시골 할매 할배, 청장년들의 그을린 얼굴은 식장 안의 하얀 배경과 소품 덕에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전날 썬크림도 바르지 않은 채 땡볕 아래서 호미질을 했던 나도 얼굴이 타 있었다. 옷차림도 세련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 생애 가장 멋진 결혼식을 만났다.

 

도시의 삶을 시골의 삶으로 바꾸면서 내려놓은 것이 있는가 하면 얻어지는 것도 많다. 덜어지고 다시 채워진다. 덜어져 나간 것들에 마음이 가벼워지고 채워지는 것에 깊이 만족한다. 이만하면 시골 촌년이 되어갈 만하다. 흡족하다.  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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