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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과 연결되지 못하는 SNS시대 ‘관계’
홍석재 감독의 영화 <소셜포비아> 

 

 

사람들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 작은 화면을 향한 집중력, 같은 공간 안에 있다고 말하기 무색할 만큼 고립된 각각의 세계들- 영화 <소셜포비아>(홍석재 감독, 2014)는 개인, 개인들이 스쳐 지나가는 거리, 도시 풍경으로 배경을 확장해가면서 특정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트윗(tweet, 트위터에서 글을 올리는 것) 메시지를 쏟아지듯 보여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트윗 메시지들이 스쳐 지나가는 속도는 글을 훑기 위한 눈의 속도를 앞서간다. 타임라인에 끊임없이 새로운 메시지가 반짝이는, 무엇을 읽는지도 모른 채 손가락은 계속 ‘새로 고침’을 누르고 있는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지배적인 일상의 평범한 모습이다.

 

‘현피’, 집단 권력이 낳을 수 있는 파괴적인 영향력

 

▲ 영화 <소셜포비아>(홍석재 감독, 2014) 포스터 
 

<소셜포비아>는 군인이 자살한 사건에 대해 비하하는 트윗을 남긴 ‘레나’가 네티즌들의 분노를 사고, 경찰 지망생인 ‘지웅’(변요한 분)과 ‘용민’(이주승 분)이 인터넷방송 BJ(Broadcasting Jockey. 인터넷방송에서 방송활동을 하는 사람)가 주축이 된 ‘현피 원정대’에 합류하게 되면서 발생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병역 문제를 사건의 소재로 삼은 점이나, ‘레나’를 향한 네티즌들의 혐오 발언 등의 설정은 최근 논란이 된 개그맨 장동민의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고’ 등 여성혐오 발언 이슈와 연결점을 가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해자로서 ‘레나’의 과거가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여성혐오 이슈보다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를 쉽게 규정지을 수 없는 복잡한 이면들을 드러내는데 관심을 둔다.

 

화가 난 남성 네티즌들은 집단을 구성해 ‘현피’(현실의 앞 글자 ‘현’과 Player Kill의 앞 글자 ‘P’를 딴 합성어. 게임, 메신저 등 웹에서 벌어지는 일이 실제 현실에서 싸움, 살인으로 이어지는 것을 뜻하는 신조어)를 계획한다.

 

‘레나’에게서 사과를 받아내야겠다고 모인 이들은 발이 공중에 10cm 정도 붕 뜬 듯 설레어 보인다. 이런 정서는 ‘레나’의 집으로 우르르 몰려가면서도, 문이 열린 집에서 ‘레나’의 시체를 발견한 이후 진범을 잡겠다고 나서는 상황의 면면에서도,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에서 벗어나고자 ‘레나’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겠다며 온라인 카페를 만들어 사람들을 모으는 과정에서도 빈번히 목격된다.

 

‘현피’는 만남이 아니며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집단 행동이다. 집단 권력이 낳을 수 있는 폭력적인 영향력에 대해서 성찰하지 못하는 남성 캐릭터들은 본인들이 ‘레나’를 죽이지도 않았는데 욕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억울할 따름이다.

 

소통 없이 발화하는 SNS시대 개인들의 고독

 

‘지웅’과 ‘용민’은 진범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레나’의 대학 동기를 만나, 타인에 대한 모욕과 비판의 말은 쉽게 하면서도 자신을 드러내고 타인에게 평가 받는 것은 지독히 꺼렸던 그녀의 과거에 대해 듣게 된다.

 

“에고는 강한데 그 에고를 지탱할 알맹이가 없다”는 대학 동기의 평가는, 연결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자아가 상처입지 않는 것을 우선 순위로 두며 한없이 웅크리는 연약한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

 

온라인상에서는 거친 악플과 끈질긴 모욕을 일삼으며 ‘네임드’(named, 온라인에서 유명세를 타는 것을 뜻함)가 되었을지언정 오프라인 세계에서는 자신의 글 한 편을 보여주지 못하고 물러나버린, 물질성을 잃어버린 영혼으로 랜(LAN)선을 떠돌다가 자살하는 순간에도 랜선을 뽑아 목을 맨 ‘레나’의 캐릭터는 SNS 시대의 관계 맺기가 특정한 삶의 양식을 공유하는 세대의 가치관을 규정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 섞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  인터넷방송 BJ가 주축이 된 ‘현피 원정대’   ©영화 <소셜포비아> 
 

스마트폰만 ‘잠금 해제’하면 타인들이 보는 공간에서 소통을 전제하지 않은 상태로도 얼마든지 발화할 수 있고, 피 튀기는 토론이 아니어도 타인이 쓴 트윗을 RT(리트윗)하는 것만으로 손쉽게 입장을 취사 선택할 수 있으며, 직접 만나 대화하지 않아도 ‘좋아요’ 클릭 한 번으로 관계가 유지되는, 점이 만나 선이 되고 면을 만드는 관계가 아니라 각각의 점과 점으로 남고 마는 고립된 세계에 대한 <소셜포비아>의 묘사는 현실적인 결을 지닌다.

 

자신의 고통만을 바라보는 사람들

 

이후 영화의 중요한 반전이 드러나는데, ‘용민’은 악플로 인해 무너졌던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던졌다는 “나는 왜 이렇게 되었나”라는 질문을 복기하게 된다.

 

그러나 ‘왜’라는 질문은 자신의 고통이 어떤 구조를 담지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고통을 돌려주기 위한 복수의 원동력이 될 뿐이다. 타인을 손쓸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면서도 자신이 개입한 힘에 대해 인정하거나 책임지지 않으려는 그에게 남은 것은 ‘나도 피해자’라는 변명뿐이다.

 

자아에 매몰되어 자신의 고통만을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타인에 대한 이해,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대는 불가능한 것이 되고 만다. 

 

▲   ‘지웅’은 이 영화에서 타인의 동기를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 <소셜포비아> 
  

혹독한 악플로 타인들에게 고통을 줬던 ‘레나’의 행동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원래 그런 애”라는 ‘용민’의 대답에 “그래도 이유가 있지 않을까?”로 응답하는 ‘지웅’은 이 영화에서 타인의 동기를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하지만 온라인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오프라인상의 ‘레나’의 모습을 알게 된 후 ‘지웅’은 몰이해의 혼란스러운 감정에 봉착한다. 이해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공포 혹은 거부감을 어떻게 다루면서 살아가야 할까. 이해할 수 없다면 연결될 수 있을까, 연결이 불가능하다면 단절되는 것은 가능할까.

 

‘지웅’은 ‘용민’과 함께 다녔던 공무원 학원으로 돌아가고, ‘용민’의 사물함 위에 붙은 비난의 메모들을 떼어낸다. 이 장면은 ‘지웅’이 ‘용민’의 행동을 이해하거나 그의 고통에 직접적으로 손을 뻗는 것은 아닐지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타인의 고통과 연결되어 살아가게 됨을 담담한 톤으로 보여준다.

 

일상의 공간으로 돌아가 ‘사건 이후’를 읽어 내려가는 ‘지웅’, ‘레나’의 시체를 앞에 두고 신고를 하기보다 먼저 트위터 멘션을 지우는 ‘현피 원정대’,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를 오가지만 죽음을 걸기 전에는 “미안하다”는 말도 쉽게 하지 못하는 ‘용민’, 자극적인 소재라면 어디든 카메라를 들이대는 인터넷방송 BJ까지.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인물들의 성장이 드러나지 않는 지독한 현실 드라마는 ‘괴물들’의 이야기인 것만은 아니라서 더욱 섬뜩하다.  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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