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문화감성 충전

매일 호랑이를 만나는 워킹맘의 이야기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5. 3. 11. 16:00

매일 호랑이를 만나는 워킹맘의 이야기
그림책 <호랑이를 탄 엄마> 

 

 

<호랑이를 탄 엄마>(서선연 글, 오승민 그림. 느림보. 2015)를 처음 손에 들었을 때의 느낌은 조금 색달랐다.

 

그림책이라면 먼저 상상하게 되는 말랑말랑하거나 부드러운 느낌보다는 네온사인과 빌딩 창문으로 제목을 구성했기 때문인지 현대 도시의 느낌이 강하다. 그런데 제목에는 호랑이가 들어가 있다. 첫 느낌부터 혼재되고 다중적인 의미가 물씬 풍겨온다.

 

신화에서 현대인의 삶으로 들어온 ‘호랑이’

 

▲ 서선연 글, 오승민 그림 <호랑이를 탄 엄마>
 

유독 우리의 옛이야기 속에는 호랑이가 많이 등장한다. 그런 점에서는 호랑이만큼 우리에게 익숙한 동물도 없을 텐데, 막상 호랑이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떠올려보니 명확하지는 않다.

 

무섭고 용맹하다. 현대인들에게는 낯설지만 맘만 먹으면 어디서든 이미지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친근하기도 하다. 우리에게 있어서 호랑이는 다른 신화 속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익숙하면서도 신격화된 이미지도 가지고 있다. 그만큼 다양하고 폭넓은 상징을 가지고 있다.

 

<호랑이를 탄 엄마>는 그런 호랑이의 이미지를 잘 활용하고 있다. 옛이야기 속 호랑이는 무섭지만 가깝고, 가깝지만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호랑이도 결국 많은 동물들 중에 하나에 불과한 것 아닌가.

 

이 그림책 안에는 호랑이가 등장하는 우리의 옛이야기들이 이야기 진행을 따라 곳곳에 버무려져 있다. 은혜를 갚은 호랑이, 곶감이 무서워서 도망친 호랑이, 팥죽 얻어먹으려다 강에 빠진 호랑이, 썩은 동아줄을 잡는 바람에 땅에 떨어져 죽은 호랑이 등. 호랑이는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또한 인간이 꾀를 내어 피하거나 무찌를 수도 있는 존재로 등장한다.

 

퇴근길의 엄마는 난데없는 호랑이의 등장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어두컴컴하지만 휘황찬란한 도시의 거리가 호랑이의 등장과 함께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든다. 밤거리는 환상적인 이야기에 어울리도록 강한 대조를 이루는 색감으로 표현되었다. 옛이야기 그림책과 창작 그림책의 혼합이, 이런 분위기에서 더 자연스러워진다.

 

호랑이는 직장 상사처럼 와이셔츠를 입고 있기도 하고, 코트를 입고 있기도 하다. 책을 읽는 아이들은 호랑이라는 존재가 주는 무서움이 현대적 배경을 통해 더욱 호기심을 자극하여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퇴근길 호랑이쯤이야…

 

옛날부터 호랑이는 탐관오리에 비유되기도 했고, 사람들에게 은혜를 갚은 의리 있는 동물로 이야기되기도 했다. 어리석고 욕심 많은 동물, 때로는 인간을 위해 희생하거나 다른 동물로부터 지켜주기도 하는 힘센 동물이기도 하다.
 

               ▲  서선연 글, 오승민 그림<호랑이를 탄 엄마>(느림보. 2015) 중에서 
  

<호랑이를 탄 엄마>에서 호랑이는 주인공이 싸워서 꼭 이겨야 하는 존재라기보다는 오히려 공존하면서 대응해야 하는 대상이다. 호랑이는 엄마의 퇴근길을 부담스럽게 하는 팀장, 부장, 사장, 그리고 신입사원으로까지 변신한다. 하지만 두 아이를 돌보아야 하는 엄마는 그까짓 호랑이쯤이야 대수롭지 않다. 서류, 목걸이, 구두까지 팽개치고 집으로 달려간다.

 

엄마도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호랑이가 공포와 스트레스의 대상이었을 테고, 웬만큼 직장 일에 적응되었을 때는 분노와 기피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엄마에게 직장에서의 일과는 이미 삶의 일부가 된 것이다. 마치 밥을 먹고 잠을 자듯, 그때그때 넘기면 되는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호랑이를 탄 엄마> 이야기는 다채롭다. 팥죽을 쑤어달라는 호랑이에게 엄마는 팥죽이 만들기가 얼마나 복잡한 음식인지 토로한다. 날뛰는 호랑이를 보며 그와 닮은 신입사원이 얼마나 골칫거리인지도, 오만상을 찌푸리게 되는 냄새 나는 서류를 집까지 가져가야 하는 상황도 보여준다.

 

사실 이 그림책은 이야기 속 엄마의 존재가 직장 일을 하는 워킹맘이라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이전에는 책 속에서 아빠에게 부과되었을 과업이 엄마를 통해 이야기되고 있으며, 그것은 아이들에게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

 

‘작은 호랑이’ 아이들에게 들려줄 엄마의 서사

 

무엇보다, 맨홀에 빠졌을 때 잃어버린 빨간 구두 이야기가 재미있다. 엄마는 나머지 한 짝마저도 벗어버리고 집으로 달려오는데, 그 구두는 엄마가 노루 뼈를 빼준 호랑이에게서 은혜를 받았던 것처럼 마지막에 동아줄을 타고 올라간다.

 

엄마의 노력도, 언젠가는 보답을 받게 될까?

 

                    ▲   서선연 글, 오승민 그림<호랑이를 탄 엄마>(느림보. 2015) 중에서 
  

그러나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를 맞이해주는 아이들도 역시 작은 호랑이들이다. 둘도 없이 소중한 존재들이지만 역시 엄마를 쉬지 못하게 하는 존재임에는 분명하다.

 

나의 어머니도 직장 일을 하셨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시면 우리들 저녁 식탁을 차려주기에 바빴지만, 나는 어머니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얼굴은 늘 평온했기 때문이다. 어린 우리는 어머니가 직장과 집을 번갈아 가며 어떤 고충을 겪는지 알아보지 못했다. 그것이 바로 어머니의 얼굴이었구나, 생각해본다.

 

그림책을 보며 아이들이 만약 이미 알고 있던 옛이야기 속의 호랑이를 떠올린다면 아마 더 재미있게 이 이야기에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모른다면 왜 곶감을 무서워하는지, 호랑이와 곶감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다. 팥죽에 얽힌 호랑이 이야기도.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보여주며 맘껏 엄마 자신의 이야기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엄마 회사에는 호랑이보다 더한 사장님이 있단다 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호랑이를 만나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중요한 것은, 엄마는 더 이상 호랑이를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은 엄마의 행동에서 두려움과 공포를 넘어서는 것을 배우고, 동시에 자신을 향한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호랑이를 탄 엄마> 속의 호랑이에 얽힌 옛이야기들은 엄마와 아이들 모두에게 좋은 서사를 열어주는 열쇠를 선물하고 있다.  오승원
 
        여성주의 저널 일다      |     영문 사이트        |           일다 트위터     |           일다 페이스북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