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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할 린 SAKHALIN
얼어붙은 섬에 뿌리내린 한인의 역사와 삶의 기록
최상구 지음
사양 : 136×210 / 308쪽
정가 : 13,500원
출간 : 2015년 1월 15일
ISBN : 978-89-965100-6-2 03910
분야 : 인문> 인문학일반> 인문교양
사회과학 > 역사
담당자 : 윤정은 ilda@ildaro.com
02-362-2034
펴낸곳 : (유)미디어 일다
우리가 알지 못했기에 기억하지 못한 이야기!
기록되지 못한 역사를 찾아서 사할린으로 떠난 시간 여행
일제 강점기에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되어 탄광노동자로 일했던 수많은 사할린 한인들의 역사는 7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들의 존재에 대해 우리 사회가 알고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그들의 역사는 기록되지 못했고, 최근에서야 그들의 역사를 밝히기 위한 움직임이 조금씩 시작되고 있을 뿐이다.
당시 식민지였던 조선 땅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징용되었는지, 그리고 탄광에서 어떻게 일하고 먹고 살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했다. 알지 못했기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었고, 기억할 것도 없는 게 우리의 처지였다.
"이 책이야말로, 사할린 동포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그래서 기억할 것이 없는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열어젖힐 수 있다고 믿는다." -배우 권해효 '추천사' 중에서
사할린 한인들의 역사는 알면 알수록 "비극"이라는 단어조차도 무색하다.
겨울에는 바다까지 얼어붙는 섬 지역에서 탄광노동자로 일하며 열악한 환경을 이기고 언젠가는 고국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렸지만, 고국이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끝내 돌아올 수 없었다. 고국에 사는 가족들 또한 그들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겠지만, 평생 만나기는커녕 생사도 확인하지 못한 채 눈을 감은 사람들도 얼마나 많았으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사할린에 남게 된 한인들이 얼마인지 현재도 그 숫자를 정확히 알지 못한 상태이다. 약 4만3천여 명이라고 추산하고 있을 뿐이다.
"애초에 그들은 왜 이곳까지 오게 되었고, 또 대체 무슨 연유로 귀국을 하지 못한 것일까? 지난 70여 년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국산천과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죽어가야 했을까?… 이런저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수록 내 마음은 착잡해졌고, 그 사이에 우리 일행은 어느덧 첫 번째 방문지인 코르사코프(옛 일본지명 오도마리)에 당도했다." -1부 멈춰진 시계, 26쪽
돌아오지 못한 사할린 한인들, 일본 소련 남한 북한에서 길을 잃어
일본이 전쟁에 패한 후, "일본 정부가 소련과의 협정을 통해 (일본인들은) 산 사람은 물론 유골까지도 본국으로 이송시키는 사이, 한인들만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발이 묶인 것이다. 이는 애초에 한인 징용을 추진했던 일본은 물론이고, 승전국으로서 전후 처리에 최선을 다했어야 하는 소련과 고국 대한민국마저 한인들을 철저히 외면한 결과였다."
일본인들을 실은 배가 코르사코프 항구에서 멀어질 때, 한인들도 자신들을 고국으로 데려가줄 배가 도착하기만을 애타게 기다렸지만 끝내 그들을 실을 배는 오지 않았다.
현재는 코르사코프 항구가 보이는 언덕에 "타국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 한인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2007년에 세워진 배 모양의 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위령탑에 쓰인 시(김문환 씀)에는 "이분들은 굶주림을 견디며 고국으로 갈 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혹은 굶어 죽고, 혹은 얼어 죽고, 혹은 미쳐 죽는 이들이 언덕을 메우건만, 배는 오지 않아…" 라는 구절을 보면, 사할린 한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얼마나 처절하게 기다렸는지 알 수 있다.
사할린이 일제에서 소련으로 점령국가가 달라지면서 사할린 한인들은 일시에 무국적자의 신분으로 사할린에 갇히고 만다. 그리고 한반도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고, 또 분단이 되어버리자 사회주의국가 사할린에 사는 그들이 대한민국으로 돌아가기는 더 멀어져버렸다. 그때는 편지조차 자유로운 왕래가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오로지 국경이 열리기만 기다리다 반세기가 흘렀다.
"고향이 남한임에도 북한 국적을 취득한 사할린 한인 중에는, '언젠가 통일이 되면 고향으로 가기가 쉬울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런 결정을 내린 이들이 꽤 있었다. 무국적을 선택한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무국적자의 설움과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소련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끝내 귀향의 꿈을 저버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고향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릴 때 혹시 다른 나라 국적을 갖고 있는 게 문제되지 않을까, 그것이 염려스러웠던 것이다." -54쪽
이 책은 그런 사할린 한인들의 목소리와 역사, 또 그들의 고국으로 귀환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과 눈물의 시간을 담고 있다.
어떻게 하면 절망의 역사를 희망으로 바꿀 수 있을까?
그러나 이 책이 무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사할린 한인들의 고통스러웠던 지난 과거에 눈물도 짓지만, 한편 어떻게 하면 이제 고령이 된 사할린 한인들에게 절망의 역사 대신 희망의 시간을 안겨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그것은 이 책이 단지 지난 과거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금 여기서 새로 쓰는 역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KIN(지구촌동포연대)에서 자원활동을 하면서 사할린한인 문제를 처음 접한 저자는, 평범한 시민의 눈으로 역사를 발굴해서 기록했다. 순수한 자원 활동으로 사할린과 일본을 스스로 오가며 사할린 한인들과 같은 마음으로 뛰고, 만나고, 듣고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사할린 한인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본격적으로 <사할린 희망캠페인단> 자원활동에 뛰어들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 참담하고 부끄러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공부를 시작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여는 글 '고난의 시간을 살아낸 모든 분에게' 중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와 함께 어떻게 하면 이 절망의 역사를 희망으로 바꿀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는 건 자연스럽다. 저자가 한 명의 시민으로 딱 거기서 출발해, 스스로 자료를 찾고, 사람들을 만나가며, 이 문제와 함께 걸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함께 역사를 만들자며, 이 행렬에 동참하면 어떻겠냐고 말을 건네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매해 새해면 어김없이 사할린을 방문한다. 사할린 한인들이 음력 문화를 지키고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로 해마다 음력 달력을 제작해 달력 배달부로 사할린을 찾아간다. <세상에 하나뿐인 달력>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이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사할린 한인들의 '국적확인 소송'을 담당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윤지영 변호사가 이렇게 말한다. "작가는 무거운 이야기를 치우침이 없이 차분하게 그려낸다. 음력 달력, 씨름대회, KBS 방송에 얽힌 이야기는 재밌고 신기하기까지 하다"고.
추천사
“한 여인의 삶을 통해 우리나라 근대사의 비극을 담아낸 영화 <명자, 아끼꼬, 쏘냐>를 찍던 1991년 당시, 내게는 영화의 배경이 된 사할린의 낯선 풍광보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동포들이 더 큰 관심사였다. 그들은 영화 촬영 기간 내내 현장에 머물며 러시아어에 서툰 우리를 대신해 입과 귀가 되어주었고, 때로는 배우로 변신해 장면 장면을 채워주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할린 동포들은 그 영화가 자신들을 대신해 이렇게 외쳐주길 바랐던 것 같다. "여기 사할린에도 사람이 있다!"고.
영화 속 '쏘냐'는 결국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고, 영화 또한 사할린 동포들의 외침을 알리는 데는 실패했다. 그래서 내게는 이 책이 더없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그곳에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려주는 이 책이야말로, 사할린 동포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그래서 기억할 것이 없는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열어젖힐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배우 권해효
“사할린 동포들이 어떻게 고국의 무관심과 방관 속에서 고통을 대물림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이 책에는, 문장 하나하나에 사할린 동포의 삶과 감정, 작가의 애정과 번뇌가 응축되어 있다. 누군가의 아픈-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과거를 끄집어내는 것은 읽는 이들까지 고통스럽게 한다.
그러나 책의 무게감에 짓눌릴 일은 없다. 작가는 무거운 이야기를 치우침이 없이 차분하게 그려낸다. 음력 달력, 씨름대회, KBS 방송에 얽힌 이야기는 재밌고 신기하기까지 하다. 수만 명의 한 가지 이야기가 아니라 수만 명의 수만 가지 이야기를 통해, 이 책은 사할린 동포 한 명 한 명이 살아 있는 역사임을 보여준다.
안타깝게도 그 역사가 사라져 가고 있다. 시간이 부족하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함께 역사를 만들기를 꿈꾼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윤지영 변호사
저자 소개 : 최상구
영화와 라디오를 가까이하며 사춘기를 보낸 그는 1991년, 자기 또래의 신입생을 비롯한 많은 청춘들이 거리에서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청년시절 내내 386세대와 X세대 중간 그 어디쯤에서 서성거렸다. 그러다 시민단체 KIN(지구촌동포연대)를 통해 사할린을 알게 되어 자원 활동을 하게 됐다. 그 춥고 시린 땅에서 삶의 온기를 이어가는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면서, 최근 몇 년 동안 사할린, 한국, 일본을 오가며 사할린 한인들을 인터뷰하고, 기록 활동을 하고 있다.
차례
여는 글 - 고난의 시간을 살아낸 모든 분에게
1부. 사할린, 세 번의 방문
2012년 8월_ 첫 번째 방문
●멈춰진 시계 / '강제징용'에서 시작된 고통의 역사
●국경 열려 돌아갈 날만 기다렸는데… / 징용피해자 껴안지 못하는 편협한 정책
2013년 1월_ 두 번째 방문
●그 시절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작은 일상에 담긴 큰 의미를 찾아서
●한 번 징용도 억울한데 두 번씩이나! / 이중징용의 쓰라린 기억을 말하다
2014년 1월_ 세 번째 방문
●우리는 당신들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 '세상에 하나뿐인 달력' 이야기
2부.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찾아서
● 전쟁의 광기에 스러져간 목숨들 / 마침내 밝혀진 사할린 한인 학살사건의 진실
● "우리에게 해방은 기쁨 아닌 절망이었다" / 그들은 왜 귀향하지 못했는가?
● 아직 끝나지 않은 이산가족 잔혹사 / 사할린 한인 '영주귀국'에 관한 모든 것
#1.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2. 1970년대 말에서 2014년 현재까지
●19대 국회 넘기면…, 미래가 안 보인다 / 사할린동포특별법의 과거와 현재
3부. 그들, 목소리
● 뜨거워서 더 고독한 '경계인'의 삶 / <화태귀환 재일한국인회> 회장 이희팔
● "처음에는 좋았지, 지금은 죽을 일이 걱정이야" / 영주귀국자 한문형, 김임순 부부
● 내 가슴에 고인 이 슬픔을 어찌할까 / '이중징용' 피해자 유가족 안명복
● 국가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라! / 사할린 한인 국적 확인소송에서 승소한 김명자
맺는 글 - 사할린 한인, 그들은 누구인가?
사할린 한인연표
참고 문헌
본문 중에서
● 사할린 한인들의 '망향望鄕'의 세월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코르사코프 항구엔 망향의 언덕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그 언덕에 올라서니,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다 가슴이 타들어갔을 동포들의 애환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목이 메었다. -27쪽
● "부모님들 고생이야 말로 다 못하죠. 처음에 여기 사할린에 들어오자마자 일본 사람들하고 얘기하려고 겨우 일본말을 배웠는데, 또 러시아 사람들이 들어오잖아요. 그니까 또 러시아 말을 배워야 했어요. 여자들은 뭐 더 힘들었지. 어디 가서 직장 생활하는 것은 꿈도 못 꾸고.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살았으니까 꼭 공부해서 이겨야 된다', 그러면서 공부를 시켰어요. 집에서 (공부)시킬 때도 '너희들이 러시아 사람보다 한층 더 올라가야 같게 공부하고 같게 일할 수 있다'면서 그렇게 키웠어요."
무국적자 한인에 대한 공공연한 차별과 억압이 만연한 소련 사회에서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는 것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최선을 다해 치열하게 살아도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게 만드는 현실은, 사할린 한인들을 좌절시키기에 충분했다. -53쪽
● 내가 처음으로 사할린에 갔을 때는 뜨거운 햇살이 살을 파고드는 한여름이었는데, 두 번째 행장을 꾸려 나선 지금은 그와 정반대로 한겨울, 그것도 일 년 중 가장 춥다는 1월 대한 무렵이다. 아닌 게 아니라 며칠 전 몰아친 풍설 때문에 사할린 기온이 영하 36도까지 떨어졌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에 겁을 잔뜩 집어먹고 비행기에 오른 나는, 그러나 사할린 공항에 도착함과 동시에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예상과 달리 적당한 기온, 유난히 맑고 산뜻해 보이는 하늘이 기분 좋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곳이 바로 '사할린'이었기 때문이다.
● 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그깟 달력이 뭐라고 그곳까지 짊어지고 가느냐고 말하겠지만, 사할린 한인들(특히 1세대)에게 음력 달력이란 생활에 꼭 필요한데 구하기는 매우 어려운, 다시 말해 그 어떤 것보다 귀하디귀한 물건에 속한다.
자신의 생일을 비롯해 부모의 생신과 기일 등 가족 관계에서 기억해야만 하는 특별한 날들을 대부분 음력으로 알고 살아온 분들에게 음력달력이 큰 사랑을 받는 현상은 매우 자연스러워 보인다. 다만 문화와 전통과 생활방식 등 모든 게 한국과는 다른 사할린에서, 그분들이 어떻게 수십 년 동안 음력을 기억하고 지켜왔느냐 하는 점은 여전히 신기하고 놀랍기만 하다. -66쪽
● 아버지가 이중징용으로 끌려간 그때, 어머니는 겨우 32세였고 큰아들 명복은 13세에 불과했다. 낯선 타국에서 가장 없이 살아갈 가족의 안부가 걱정되었던지, 아버지는 장남을 붙들고 거듭 당부했다. 앞으로 네가 남은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고. 나는 나라를 위해서 떠나니, 네가 남자로서 가족들을 잘 보살피라고.
"그게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지. 그런데 그때 아버지가 한 그 말씀이 끝이었던 거라. 내 인생에서." -240쪽
● 그는 또한 내가 '무국적자인 당신은 스스로를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었을 때, 당연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여 '까레얀카!'(러시아어로 한인 여성을 의미) 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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