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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사회라면
[내가 만난 세상, 사람] 성폭력 그 이후의 삶(1) 

 

※ 너울 님은 <꽃을 던지고 싶다: 아동 성폭력 피해자로 산다는 것> 수기를 쓴 저자입니다. 

 

 

한 해를 보내는 어느 겨울, 우리는 조용한 카페에 모여 앉았다. 서로 다른 배경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성폭력 생존자’라는 이름으로 정기적으로 모이고 서로의 삶을 나누며 서로를 지지하는 관계를 맺어가고 있다.

 

2014년은 성폭력특별법이 만들어진 지 20년이 되던 해였다. 이제는 성폭력에 반대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다. 오히려 성폭력은 진부한 이야기로 들리고 새로울 것도 없는 일로 취급 받는다. 우리에게 사람들이 던지는 가장 많은 질문 중 하나는 ‘이제는 조금 좋아지지 않았느냐’라는 것이다. 법이 만들어지고, 성폭력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고, 더 이상 억울한 피해자가 되는 일은 없지 않느냐고.

 

성폭력 생존자들이 체감하는 사회는 과연 어떤 사회일까? 20년이라는 긴 시간과 성폭력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노력만큼, 조금은 따스한 사회가 되었을까? 성폭력 그 이후의 삶은 어떠한 것일까?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연속으로 다루어 보고자 한다.

 

지선의 이야기: 아동 성폭력 사건 20년 후 

 

▲  한국 사회는 ‘나쁜 기억은 빨리 잊어버리라’고 강요한다.   © 그림: 천정연 
 

지선은 여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성폭행 사건을 겪고 오랜 기간 치유의 길을 선택했다. 자신의 경험이 ‘성폭력’이라는 단어로 설명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 7년의 시간을 보낸 후, 이제 더 이상 그 경험들에 묻혀서 지내기보다 20대의 다른 사람들처럼 좋아하는 일, 사람들과의 관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성폭력이라는 주제에 빠져 지내는 시간이 줄었다고 스스로에 대해 느낄 때, 이젠 회복이 되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지선에게는 여전히 아픈 시간이 존재한다. 상처를 받는다는 것, 그 아픈 시간은 사건 자체보다도 사람들의 관계와 반응에서 온다. ‘상처는 주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다’ 라는 말처럼, 지선 역시 사람들의 무심한 한 마디에 상처를 받게 된다.

 

사람들은 누구나 때때로 아픈 시간이 존재하고 그 시간 속을 살아간다. 그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삶을 이루는 한 축에 지나지 않는다. 지선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지선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은 위로를 포함하여 충고를 건넨다. ‘왜 아직도 힘들어 하니? 그 까짓 일로.’ 아홉 살 때 겪은 성추행 경험을 성인이 되어 엄마에게 털어 놓았을 때 돌아온 반응도 비슷했다. ‘언제까지 그러고 살 건데.’

 

사람들의 이러한 반응을 만날 때마다 아프다. 지선에게 그 때의 사건은 ‘그까짓 일’도 아닐뿐더러 ‘없었던 일’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선의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는 ‘나쁜 기억은 빨리 잊어버리라’고 강요한다. 당사자에게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덮어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세월호 침몰 사건이 일어난 지 채 1년이 지나지 않았고, 여전히 누군가는 실종자로 남아있으며 책임자 처벌은 멀게만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언제까지 세월호에 묶여 살겠느냐’는 식의 반응은 어김없이 나온다.

 

사회는 피해자가 침묵하기를 원하고, 개인적인 일이라며 책임을 전가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지선이 처음 피해를 경험한 여섯 살 때로부터 20년 가까이 되는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일이다.

 

‘네가 피해자라서 그래’

 

사람들은 저마다 사회적 관심사가 있다. 누군가는 동물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에 꽂혀서 살기도 하고, 누군가는 아동의 인권에, 장애인 인권에, 또 누군가는 노동권을 지키는 데에 마음이 간다. 사람들은 자신이 더 마음 가는 일에 열중하고, 헌신하며, 보람을 느끼고 행복해하고 때로 마음 아파하며 살아간다. 누구도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네가 그 일에 관심이 가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라며 문제 삼지도 않는다.

 

지선은 여성의 인권에 관심이 많다. 열네 살 때 밀양에서 집단 성폭력 사건이 터지고, 그때 처음 집회에 참여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여성 인권은 지선에게 중요한 관심사였다. 20대 들어 여성폭력 피해자들을 상담하는 기관에서 자원 활동을 하고 앞으로도 그런 일을 하고 싶어한다. 지선이 가지고 있는 상담 관련한 자격증만 해도 서너 가지는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지선을 보고 ‘네가 피해자라서 그래.’ 라고 쉽게 말하곤 한다. 지선이 갖고 있는 열정과 노력이 ‘피해자의 몸부림’이나 ‘같은 피해자에 대한 연민’이라고 취급되는 순간이 존재한다. 사람들 대부분은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지선이 다른 피해자를 돕는 것을 보고 칭찬하지만, 지선에게는 칭찬을 받을 일도 연민을 받을 일도 아닌 자신의 관심사일 뿐이다.

 

교회 수련회에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해 ‘언니’들이 무심히 던진 ‘인생 망쳤네.’ ‘불쌍해서 어떡해.’ 등의 말에 마음이 상했지만, 성폭력 피해자들이 불쌍하지만은 않다고, 생존자들을 불쌍하게 만드는 사회가 문제라고 목소리 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지선의 상처는 이제 단단한 새살이 되어 있다.

 

이제는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사회에서는 연일 성폭력 사건이 보도되는 만큼, 대책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들이 나온다. 그러나 생존자들에게는 그 많은 대책들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기 쉽다. 추후 대책도 중요하지만 성폭력이 발생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지선은 성폭력에 대한 질문과 프레임을 바꾸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성폭력을 반대하기는 쉽다. 성폭력 사건을 보고 분노하기는 쉽다. 연일 보도되는 아동 성폭력 사건에 대해 사람들은 분노하고 가해자를 비난한다. 그러나 자신의 주변에 일어나는 성폭력 사건에는 침묵하거나 외면한다. 더한 경우 피해자를 비난하기까지 한다. 조직을 와해시키는 사람으로, 가족을 위태롭게 하는 존재로, 혹은 직장을 딱딱하고 불편하게 만든다고 하면서.

 

지선이 여섯 살 때 경험한 성폭력 사건은 이웃집 오빠에 의한 것이었다. 지선이 성장해서 그 사실을 알렸을 때, 당시 보호자는 자신에게 피해가 올까 봐 그 사건을 부정했다. 지선에게는 성추행 사건보다도 믿었던 사람이 그 사건으로 인해 자신에게 등을 돌렸다는 사실이 더 힘이 들었다.

 

성폭력 가해자는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덜어진 괴물이 아니다. 아는 사람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 주변에는 피해자만큼이나 많은 가해자가 존재한다. 자신이 알고 지내는 사람이 가해자가 된 경우, 사람들은 쉽게 피해자의 말을 오염시키고 피해 경험조차 의심한다.

 

내가 일하고 있는 직장에서, 몸담고 있는 조직 내에서, 그리고 내 가정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럼에도 사회는 여전히 성폭력을 특별한 일, 예외적인 일로 취급한다.

 

지선은 ‘우리 주변에서 성폭력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질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 가족이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성폭력은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그러므로 ‘우리’ 안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성폭력은 아주 특별한 경험이거나, 나쁜 사람으로 보이는 자가 저지르는 범죄라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피해자가 선한 사람이라거나 가해자가 악한 사람이라는 정형화된 이미지에서 탈피해야 한다. 그래야만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낙인이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야 성폭력을 안 당한다’는 식의 교육은 잘못됐습니다.” 라고 지선은 말한다. 성폭력 예방은 가해자가 되지 않는 교육을 통해 가능하지, 피해자가 되지 않는 교육은 있을 수 없다고. 지선이 고등학교 때 보건선생님이 ‘네 잘못이 아니야.’ ‘말할 수 있는 건 용기야.’ 라고 말해준 것이 자신에게 힘을 주었듯이, 성폭력 생존자들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 라고 말해주는 사회를 희망한다.

 

지선이 경험한 성폭력 그 이후의 삶은, 끝없는 낙인들과 여전히 가끔씩 저린 마음의 상태이다. 앞으로의 삶을 예측할 수는 없지만, 2015년 지선의 바람처럼 모든 성폭력 생존자들에게 조금은 따스한 사회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 너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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