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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위한 예산
성북구 주민참여예산 사업 불용(不用)에 주민들 항의 

 

 

“정말 나쁜 선례가 두 가지 남았다. 하나는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제로 선정된 사업조차 구청장의 입맛에 따라서 안 받을 수도 있다는 선례, 다른 하나는 지역의 모든 공적인 예산 영역에 성소수자 관련 예산은 잡힐 수 없게 된 선례이다.”

 

2014년의 마지막 날, 성북구청이 서울시 주민참여예산 사업인 <청소년무지개와 함께 지원센터> 예산을 불용(不用) 처리하자, 이 사업을 처음 제안했던 주민 안영신씨(42세, 여성)는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청소년무지개와 함께 지원센터> 사업은 우울, 자살 기도, 동성애 혐오와 폭력에 시달리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상담하고, 이들을 가깝게 만나고 있는 교사, 학부모, 상담가들에게 필요한 상담 매뉴얼을 제작, 배포하는 계획을 담고 있었다. 

 

          ▲  2014년 12월 31일 김영배 성북구청장과 지역 주민, 성소수자들과의 간담회.   © 일다 
 

서울시가 시민인권헌장을 수용하지 않은 것에 이어, 성북구청도 서울시 주민참여예산 사업을 불용 처리함에 따라 시민들이 민주적 절차에 의해 결정한 사항이 뒤집어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청소년 성소수자’ 위해 주민들이 직접 예산 편성

 

서울시 주민참여예산 사업은 예산을 편성하는 과정에 주민들이 직접 참여함으로써, 참여민주주의를 활성화한다는 이념에 따라 2012년부터 시행되었다. 각 자치구별로 사업을 제안하면 서울시 주민참여예산 위원들이 심사와 투표를 하고, 최종적으로 서울시의회에서 이를 심의하고 승인한다. 그리고 해당 구청에서 이 사업을 집행하게 된다.

 

성북구는 구청장이 직접 나서서 주민들의 예산 참여를 독려해왔다. 그리고 2015년에도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으로 34억1천900만 원을 확보함으로써, 주민참여예산제 도입 후 ‘사업비 100억’을 돌파한 최초의 자치구가 되기도 했다.

 

이번에 불용(不用) 처리된 <청소년무지개와 함께 지원센터> 사업은 2013년 4월, 성북구 주민참여예산위원회 복지분과위원회에서 제안한 것이다. 당시 250명의 서울시 주민참여예산 위원들의 투표를 거쳐 주민참여예산 사업으로 선정되었고, 2013년 12월 서울시의회의 승인을 받았다.

 

성북구청장 “목사님들과 약속한 게 있다”

 

그러나 2014년 사업 집행을 앞두고, 성북구 교구협의회 등 보수기독교 세력의 반발이 시작되었다. 이들은 ‘구청장 퇴진 운동을 벌이겠다’, ‘지역 복지협의체에서 빠지겠다’ 면서 성북구청장에게 사업을 불용하도록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보수기독교 세력의 압력이 계속되는 과정에서 사업 내용이 변경되기도 했다. 2014년 9월에는 당초 기획과 달리 ‘청소년 성소수자 실태조사 및 인식 개선 사업’으로 변경되었다.

 

12월에는 이마저도 밀려, 성북구청은 ‘위기청소년 실태조사’로 사업명과 내용을 변경했다. 그리고 사업 예산을 2015년으로 이월해달라고 서울시에 요청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보조금관리법에 의해 ‘변경 신청을 받을 수 없다’고 통보해왔다.

 

2014년 12월 31일, 성소수자들과 지역 주민들을 만난 자리에서 김영배 성북구청장은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구청장은 ‘사업을 원안대로 서울시에 제출하라’는 주민들의 요구에, “목사님들과 약속한 게 있다. 그 약속을 지키는 게 성북구를 인권도시로 만드는 데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목사님들과 한 약속을 깨면 앞으로 사사건건 충돌이 일어날 거라고 본다” 라고 말했다. 

 

▲ 1월 5일 성북무지개행동(가) <청소년무지개와 함께 지원센터> 사업불용 및 경찰폭력 규탄 기자회견. ©일다 
 

이날 주민들이 구청장을 면담하러 가려 하자, 경찰은 성북구청의 모든 출입문을 봉쇄했으며 경찰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부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역 주민들과 인권단체들은 ‘성북무지개행동’(가칭)을 꾸리고, 1월 5일 성북구청 앞에서 <청소년 무지개와 함께 지원센터> 사업 불용과 경찰 폭력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또한 반드시 성북구의 예산으로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위한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주민들 힘 모을 것’ 사업 제안자 안영신씨 인터뷰

 

1월 5일, <청소년무지개와 함께 지원센터> 사업의 제안자인 안영신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 씨는 성북구 주민으로 지역에서 오랜 기간 교육운동을 해왔으며, 시민모임 ‘즐거운교육상상’의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작년 마지막 날, 사업 예산이 결국 불용되었을 때 어떤 심정이었나? 이런 상황을 예상했는지.

 

“그날은 아침부터 예상치 못했던 상황들을 직면했다. 경찰이 좀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구청 출입문을 막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부상자가 발생하는 과정에서 비명 소리, 이런 것들을 잊을 수가 없다. 그날은 정신이 없었고, 다음날 많은 생각들이 밀려오는데 미칠 것 같았다. 분노, 후회, 자괴감…. 여러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와 힘들었다. 그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구청장을 믿었던 만큼 배신감이 더 크다.”  

 

▲  1월 5일 기자회견에서 안영신씨.  ©일다 
 

-김영배 구청장은 31일 면담에서 “목사들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계속 얘기했다. 구청장이 목사들에게 발목을 잡힌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구청장이 발목 잡힌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성북구 교구협의회에 4백개 교회가 함께 한다고 한다. 교구협의회에서는 김영배 구청장에게 ‘각 교회에 구청장 퇴진 현수막을 걸겠다’, ‘복지협의체에서 다 빠지겠다’, ‘주민소환운동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권역 별로 복지협의체가 있는데, 복지협의체마다 교회 목사들이 들어가고 있고 복지 예산의 많은 부분을 교구협의회에서 담보하고 있는 것 같다. 지역의 복지를 그렇게 의존하고 있고, 그 의존 때문에 정책까지 휘둘리는 이 상황은 문제가 있다.”

 

-구청장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성소수자들이 ‘커밍아웃’을 하며 직접 자신들이 감내해온 폭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이 사업을 하느냐 마느냐가 우리에겐 목숨이 걸린 문제다”, “우리를 살려달라”고 절절한 호소를 하기도 했다.

 

“정말 참담해서 눈물이 많이 났다. 2013년 12월 10일에 성북구 인권 선언을 하는 날에도 커밍아웃을 하신 분이 있었다.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만들 때도 한 분이 커밍아웃을 했고. 현장마다 자꾸 커밍아웃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 자체가 참담하다. 광야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그냥 서게 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 같다. 사람의 존재를 이렇게 확인시키는 게 맞는가,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싶어서 자괴감이 많이 들었다.”

 

-이 사업을 제안했을 때 성북구와 서울시 주민참여예산 위원들의 반응이 좋았다고 들었는데…

 

“2013년에 내가 성북구 주민참여예산위원회의 복지분과 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복지분과 위원들이 80대부터 50대, 60대 주민들이 많았는데도, 이 사업 취지를 들으시고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하시면서 복지분과 사업 중 2순위로 선정했다. 그 해 7월에 서울시 주민참여예산 위원들이 현장 실사를 나왔을 때도 ‘이 사업 굉장히 좋다, 일회성으로 끝나지 말고 연속성이 보장됐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다.

 

호응이 좋았다. 2013년 8월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위원회 총회 당시, 보수기독교 쪽에서 서울시청 앞에서 3일 내내 반대 시위를 하고 전단지를 나눠 주고 그랬다. 그럼에도 서울시 주민참여예산 위원들에 의해서 218개 사업 가운데 57위로 선정된 거다. 총회 자리에서는 다른 구의 주민참여예산 위원들이 나에게 질문을 하고 관심을 많이 보여주셨다. 구로구 주민참여예산 위원은 ‘처음에 반대했었는데 내용을 들어본 후에는 적극적으로 찬성한다’고 말씀하셨다.” 

 

▲  2013년 8월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위원회 전체 총회에서 사업 설명자로 나선 안영신씨.  © 제공 사진 
 

-그 후 사업 명칭과 내용이 변경되면서 끝내 불용되는 상황에까지 오게 되었다. 그 동안의 과정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중간에 보수 기독교 세력이 구청장을 압박할 때 ‘구청장도 힘들겠지’하면서 사업 내용을 변경하는 것에 동의를 했었다. 그 부분에 대해 후회가 크다. 이렇게 부침이 있을 때 좀더 빨리 지역 단체들이나 주민들과 긴밀하게 논의를 하고 구청장에게 요구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운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가 절망적이라고만 보이지는 않는다. 지역 사회에서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활동할 수 있는 동력이 생긴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힘을 모으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가시적으로 힘을 모으기 시작한 건, 2014년 8월 21일 사업 이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진 이후부터다. 그날 기자회견에 많은 분들이 참석하였고, 함께하는 단위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날 발언 하나 하나가 정말 소중했다. 어떤 교사는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했다. 수학여행 가기 전에 어떤 학생이 와서 자신에게 커밍아웃을 하면서 ‘방 문제로 수학여행 가기가 어렵다’고 얘기했는데, 자기가 어떤 도움도 줄 수 없었던 게 아팠다고 하더라. 세월호에 있던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던 것처럼, 청소년 성소수자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서 결국 그들이 죽어가고 있는 걸 방관하고 있는 거라고, 이 사업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시간이 넘어간 기자회견이 배움의 장이 되었다. 그때 힘을 많이 받았고, <청소년무지개와 함께 센터> 성북 지역 대책위를 꾸리자는 제안이 나와서 지금까지 온 거다. 그리고 오늘 낸 성명서에 연명할 단체를 모집하는데, ‘함께하는 성북마당’이라고 성북구에 있는 75개 시민단체 네트워크의 대표 분들이 연명하겠다고 적극 얘기해서 큰 힘이 되고 있다.”

 

-지역의 교육단체, 장애단체들이 연대해 ‘성북무지개행동’(가칭)을 구성했는데,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달라. 

 

▲ 1월 5일 성북구 주민들이 성북구청에 매단 현수막. ©일다 
 

“일단, 우린 법적 대응을 할 생각이다. 사업 예산을 불용한 것과 12월 31일 경찰 대응에 대해서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할 예정이다. 그리고 지방재정법과 주민참여예산조례 등 관련 법규를 검토해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다. 부상자 손해배상 청구도 할 것이다.

 

1월 20일에 토론회 일정이 잡혀있다. <청소년무지개와 함께 지원센터> 사업 예산 불용 과정에 대해 함께 평가하고, 민주주의와 인권, 민-관 거버넌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우리는 성북구의 예산으로 이 사업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북구청장이 주민참여 예산으로 선정된 사업을 자기 멋대로 망가뜨린 것에 대해, 책임을 묻고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구청장이 1월 초에 바로 면담하자고 했는데 어떻게 할 지 고민 중이다.

 

사업이 불용되는 과정에서 나는 진심으로 구청장과 공무원들, 그리고 성북구 주민들이 인간의 존엄함, 존재의 존엄함에 대해 조금 더 성찰하고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마음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한 사람이라도 그런 어려움, 고통 속에 있다고 한다면 이 사업은 필요한 것이다.”  ▣ 나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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