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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인권 보호에 ‘국가의 책무’ 있다
요그야카르타 원칙 만든 인권전문가 비팃 문타본 방한 

 

 

“전 세계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어떤 나라에서는 받아들여지고 축복받는 반면 다른 76개 나라에서는 불법인 이것은 무엇일까요? 공적 수치심, 투옥, 고문, 그리고 7개 나라에서는 심지어 사형의 공포 때문에 숨겨져야 하는 이것은 무엇일까요? 가족을 갈라놓게 하는 이것은 무엇일까요? 잔인한 폭력의 위협을 일상에서 마주치게 하는 이것은 무엇일까요? 단순한 특성 하나 만으로 어디를 가든 2등 시민 취급받게 하는 이것은 무엇일까요? 아이들이 집에서 쫓겨나고, 학생들은 따돌림 당하며, 학교에서 추방되고, 노동자들은 예고도 없이 해고되도록 하는 이것은 무엇일까요? 모든 나라에서 예부터 존재해 왔지만 여전히 어떤 곳에서는 “비정상”으로 간주되는 이것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라는 존재 그 자체입니다. 전 세계 수백만의 사람들이 폭력과 차별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들 자신의 존재만으로도요.” 

 

▲  유엔인권사무소 ‘호모포비아 반대’ 영상 메시지 “수수께끼” 중에서 
 

이 수수께끼는 유엔인권사무소(UN human rights office)가 만든 ‘호모포비아 반대’ 영상 메시지에 실린 것으로, 2013년 5월 17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아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보급되었다.

 

영상 메시지의 말미에 나비 필레이(Navi Pillay)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은 “모든 국가는 국제 인권법에 의해 모든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들을 고문, 차별, 폭력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라고 말한다.

 

※ 유엔인권사무소 영상 메시지 “수수께끼”(The Riddle) 보기: http://bit.ly/1AAmU5j

 

성소수자에 대한 국제인권 기준을 명시한 최초의 문서는 2006년 ‘요그야카르타 원칙’이다. 당시 전 세계에서 살인, 사형, 고문과 학대, 프라이버시 침해, 자의적인 구금 등 성소수자에 대한 인권 침해가 끊이지 않았다. 이런 심각한 문제들에 적용하기 위해 당시 존재하던 국제인권법을 망라하여 방향을 제시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요그야카르타 원칙(yogyakartaprinciples.org)은 이러한 상황에서 국제인권법 전문가들이 인도네시아 요그야카르타에 모여 채택한 것으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대해 명확하게 정의 내리고 있다. 또한 평등, 생명, 인격의 안전에 대한 권리부터 의료적 침해로부터 보호, 효과적 구제와 보상에 대한 권리까지 성소수자의 권리를 총 29개 원칙으로 제시하고 있다.

 

국가의 실행 의무 강조한 ‘요그야카르타 원칙’ 

 

▲ 1월 6일 비팃 문타본과 성소수자 운동가들의 간담회 ©일다 
 

이 요그야카르타 원칙을 만드는 데 참여한 국제인권전문가 비팃 문타본이 방한했다. 지난 1월 6일 <인권재단 사람> 다목적홀에서 비팃 문타본과 성소수자 운동가들과의 간담회가 열렸다.

 

비팃 문타본은 현재 태국 방콕의 출랑롱콘 대학 법학 교수이자 유엔 시리아 조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요그야카르타 원칙을 소개하며 “이 원칙은 성소수자의 권리를 밝히는 데서 끝나지 않고,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까지 다루었기 때문에 더 효과적으로 쓰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요그야카르타 원칙에는 각 원칙마다 국가들에 대한 세부적인 권고 사항이 첨부되어 있다. 일례로 원칙 두 번째 “평등과 비차별에 대한 권리”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권고하고 있다.

 

‘국가는 다음을 해야 한다: A. 아직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개정과 해석을 수단으로 하는 것을 포함하여,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에 근거한 평등과 비차별의 원칙을 국내 헌법 또는 기타 적절한 법률에 구체적으로 표현하라. 그리고 이들 원칙의 효과적인 실현을 보장하라. (…)

 

C. 공적 및 사적 영역에서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에 근거한 차별을 금지하고 근절하기 위한 적절한 입법 및 기타의 조치를 채택하라.’ (번역문: ‘국제인권소식 통’)

 

비팃 문타본은 “요그야카르타 원칙이 국제인권법이 아님에도 조명 받아 온 이유는,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실행의 측면까지 강조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유엔이나 각국 정부 및 법원, 비영리민간단체들이 성소수자 관련 문제에서 요그야카르타 원칙을 참조함으로써 유사법과 갖은 지위를 갖게 되었다는 것.

 

‘다른’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은 병이 아니다

 

이날 간담회에서 비팃 문타본은 성소수자들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지적하며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는 정신적으로 장애나 질환이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누군가의 성적 행위는 개인적 차원의 문제이지 공적인 차원이나 의료적인 차원에서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최근 중국의 한 지방법원이 내린 판결을 언급했다.

 

중국의 한 심리치료 기관에서 남성 동성애자를 이성애자로 변하게 해준다면서 전기 충격 요법을 쓴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베이징의 하이디안 법원은 ‘동성애는 치료를 요하지 않기 때문에 전기 충격을 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하며, 심리치료 기관에 ‘원고에게 560달러를 배상할 것’을 명령한 바 있다.

 

이는 요그야카르타 원칙 열여덟 번째 “의료적 침해로부터의 보호-개인의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은 본질적으로 의료적 병이 아니며, 의료적 병으로 다뤄지거나 치료되거나 억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조항과도 맞물린다.

 

비팃 문타본은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관련하여 자국인 태국의 트랜스젠더 여성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태국에서는 군대 징병을 면제받으려면 입대 관련 양식에 자신이 정신병이 있다고 체크해야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법적 소송이 진행되었고 트랜스젠더들이 승소한 바 있다. 그러나 일상 생활에서 쓰이는 여권이나 출생 신고서 등의 성별을 바꾸려고 하면 새로운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  1월 6일 <인권재단 사람> 다목적홀에서 비팃 문타본과 성소수자 운동가들과의 간담회가 열렸다.   © 일다 
 

혐오 발언은 타인의 권리 침해, 제재가 필요

 

이날 간담회에서 한 참가자는 “한국에서 혐오 발언이 도를 넘고 있고 이에 대한 법적 제재가 중요하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비팃 문타본은 이와 관련해서 법률적 효력이 인정되는 국제 규약인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 19조가 그 답을 제공한다”고 답변했다.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 19조는 ‘표현의 자유’를 언급하고 있으며, 뒤이어 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경우를 명시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다.

 

그는 “누군가를 싫어하는 것을 규제할 수는 없지만 그 발언이 폭력과 차별로 이어지는 표현에 대해서는 제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는 누군가가 싫다”라고 말하는 것은 제재의 대상이 아니지만, 누군가를 혐오하게끔 조장하는 발언이나 제 3자에 대해 위해를 야기할 수 있는 발언은 국제법상으로 제한할 수 있다는 것.

 

그러면서도 비팃 문타본은 “하나를 규제하게 되면 그것의 부작용으로 또 다른 규제가 생겨날 수 있”으니, 신중할 것을 당부했다.

 

성소수자 운동가들에게 ‘긴 호흡’ 당부

 

비팃 문타본은 전 세계 성소수자 운동이 직면한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며 싱가폴, 말레이시아, 인도 등의 국가에서 소도미법(구약성서 창세기 19장을 두고 ‘소돔과 고모라가 동성애 때문에 신의 징벌을 받아 멸망했다’고 해석하는 보수 기독교의 주장과 관련이 있다. 특정한 성적 행위를 규제하거나 처벌하는 법을 통칭한다)에 의해 성소수자가 처벌받는 현실을 지적했다.

 

최근 인도 고등법원에서는 소도미법이 위헌이라는 판결이 있었으나, 대법원에서 이 판결을 뒤집으면서 다시 항소를 한 상황이다. 비팃 문타본은 이에 대해 “(성소수자 인권이) 두 걸음 앞으로 갔다가 한 걸음 후퇴하기도 하고, 두 걸음 앞으로 갔다가 도로 두 걸음 후퇴하기도 하는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에서는 군대 내 동성애를 처벌하는 군형법을 제외하고는 동성애 자체를 처벌하는 법이 있는 것은 아니니 새로운 법(차별 금지)을 제정하는 쪽에 집중하고, 싱가포르처럼 소도미법이 여전히 남아있는 곳에서는 구식 법을 폐지하는 쪽으로 운동을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팃 문타본은 1980년대에 한국에 있었으며,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때는 선거 참관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한국의 정치가 성장해 온 과정을 목격한 사람으로서 그는 성소수자 운동가들에게 당부했다.

 

“성소수자 인권 운동도 장기적으로 진행될 싸움이며 한 번에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닙니다. 하나의 전략만이 아니라 여러 전략을 창의적으로 고민하면서 돌파구를 찾으면 좋겠습니다.” ▣ 나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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