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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속속들이 아픈 그 심정, 내가 잘 안다’
밀양-청도 할매 할배들의 ‘저항과 연대의 약속’① 

 

밀양, 청도 주민들과 함께 한 72시간의 기록을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필자 박이은희 님은 <밀양을 살다> 공동 저자이며 여성학을 공부하는 연구자입니다. [편집자 주]

 

 

2014년 12월 28일 송전 개시를 이틀 앞둔 12월 26일, 밀양시 상동면 고답마을 115번 철탑 선하지에서 할매, 할배들은 송전 저지를 위한 농성에 돌입하였다. 그들은 철탑 접근을 막기 위해 쳐놓은 철망 팬스 밑을 파고 기어들어가 끝내 철탑 밑에 앉았다가 끌려 나왔다. 그들의 숙박 농성은 계속되고 있다.

 

밀양과 청도에서 송전탑 건설에 저항하며 싸움을 멈추지 않고 있는 할매와 할배, 언니들이 꼬박 72시간 동안 전국 열한 곳 저항의 현장을 찾아가는 순례길에 올랐다. 12월 15일부터 3일간 계속된 이 순례 여정을 “밀양․청도 72시간 송년회 -저항과 연대의 약속”이라고 이름 붙였다.

 

관광버스에는 “밀양과 청도의 할매, 할배들이 아픈 현장을 찾아갑니다”라는 현수막이 붙었다. 그들을 순례자라고 부르기로 했다. 눈물과 웃음이 교차하던 수많은 순간들, 그들의 마음 표정 몸짓을 글로써 다 담아낼 수 없었다. 이 거친 기록은 스케치에 불과하다.

 

‘길 위의 송년회’를 준비하는 농부들

 

▲  밀양 765㎸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밀양과 청도의 할매, 할배들과 함께하는 ‘길 위의 송년회’에 기록을 핑계로 묻어 다니기로 하고 출발 전날 늦게 내려갔다. 밀양 시내에 송년 모임을 나와 있던 김옥희 씨(57)와 2차로 늦도록 술을 마셨다.

 

농부 김옥희는 언제나 그랬듯 동트기 전 새벽부터 일어나 움직여 다녔다. 군불 땐 그녀의 별채 방에서 늦게 일어나 부엌으로 갔더니 주방 싱크대 위에 뚜껑이 덮인 윤기 나는 흰색 밥공기 아홉 개가 나란히 놓여있다. 마침 들어온 남편에게, 보온 밥솥 안에 한 개의 밥공기를 넣으며 “이거 꺼내 자시고 다음에 또 한 공기 이렇게…” 신신당부를 하고 있었다. 같은 국을 계속 먹으면 ‘물릴까 봐서’ 국도 두 가지를 준비해 놓았다.

 

이렇게 삼시세끼 아홉 개의 공기 밥, 국과 반찬이 김옥희 씨가 3일 동안 길 위의 송년회를 떠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준비 작업이다. 그렇게 아침의 분주함을 뒤로하고 우리는 여덟 시에 관광버스에 올랐다. 농사일 하는 작업복인 동시에 투쟁복, 등판에 ‘핵발전 반대! 송전탑 싫어~’라는 구호가 새겨진 팥죽색 조끼를 갖추어 입고.

 

밀양 입구 삼거리와 청도를 거치며 버스에 오른 주민들은 집에 남은 식구들의 걱정과 안부를 묻고 있었다. “우예, 할배 밥은 어짜고 왔십니꺼? 아(애)들은 누가 보나?”

 

10년을 싸우는 동안 거리가 먼 다른 면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훤히 꿰뚫고 있었다. 활동가들은 온갖 홍보지와 간식 거리 그리고 단감, 감말랭이, 풋고추, 김장김치, 말린 대추, 막걸리, 쌀, 사과 등 ‘전국의 아픈 현장’에 전달할 손수 농사지은 것들을 싣느라 분주했다.

 

버스는 주민 스물 세 명과 밀양과 청도의 대책위 활동가, 미디어 활동가, 언론사 취재팀, 사진 작가, 기록노동자 등 마흔 다섯 명을 꽉 채우고 출발했다.

 

길 위의 송년회, 아픈 현장을 찾아간다는 버스 안은 흡사 송전탑 문제로 인심이 사나워지기 전 가을걷이와 김장 등 겨우살이를 모두 마쳐놓고 마을마다 여행을 떠나곤 했던 관광버스처럼 설레는 기운들로 가득했다.

 

구미 스타케미컬 굴뚝농성 중인 차광호

 

버스는 한 시간을 달려 해고노동자 차광호 씨가 203일째 농성중인 구미 스타케미컬 공장 굴뚝 앞에서 멈추었다. 80미터의 굴뚝에는 ‘스타케미컬’ 글자가 세로로 큼직하게 쓰여 있고 차광호 씨가 있는 하늘 세상, 탑 꼭대기엔 ‘분할매각 중단하고 공장가동 실시하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분할매각! 애초 기업 운영이 아니라 부동산 장사를 하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른다.

 

“전 생애는 아니지만 제 청춘을 바친 제 삶의 터전입니다. 전 스무 살부터 일했고 지금 마흔 한 살입니다.”

 

‘삶의 터전’이라는 대목에서 밀양과 청도의 순례자들은 이 말이 가슴에 와 박혔을 것이다. 이 멈추어진 공장이 해고노동자 김덕원 씨에게는 청춘을 바친 삶의 터전이고, 그래서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 일하고 싶다고 했다.

  

▲ 구미 스타케미컬 공장 앞. 굴뚝 농성 중인 차광호 씨의 생일 축하 케잌을 손에 들고. © 촬영: 정택용 
 

밀양과 청도의 순례자들은 언제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신났던 것일까. 굴뚝 밑에 서자마자 모두들 눈물바람이다. ‘청도․밀양의 할매들이 차광호 동지의 생일을 억쑤로 축하합니다’라고 적은 현수막을 펼쳐 들고, 또 바람 때문에 자꾸 촛불이 꺼지는 케잌을 손에 들고, 할매들은 연신 눈물을 훔쳤다. 끝까지 싸우자고 서로 격려하는 말을 주고받았고, 생일축하 노래를 목청껏 불렀으며, 청도 할매들은 따뜻한 미역국을 곁들여 밥과 반찬을 올렸다.

 

그들은 굴뚝 위를 올려다보며 끊임없이 손을 흔들거나 기도하듯 가슴 앞에 손을 합장했다. 허리를 숙여 반절을 계속 하는 이도 있었다. ‘아픈 현장’을 방문하는 내내 그들은 “너~무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우야노.” 라고 말을 잇지 못하였다.

 

곁에서 지켜보지 않고서 그들의 그런 표정과 몸짓을 떠올릴 수 있을까? 나는 ‘하늘사람’이 아니라 그/그녀들의 눈물과 몸짓 때문에 울어버렸다.

 

송전탑 반대 투쟁에 참여한 주민들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데모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물은 적이 있다.

 

“부정했지. 좀 왜 부정을 했냐면… 엄칭이 (몸이) 양호한 사람들이 막 했잖아요 이렇게. 일해가 돈 벌어라. 건~강하고 실한 사람들이 일 안하고 맨날 저러카고. 그렇게 하느니 돈 벌라는 생각만 했고. 그걸 몰랐지. 근데 내가 해 보니까 아 ~그분들이 이래서 이래서 했구나를 알았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그 사람들이 어디서 이래 한다면 도와주러 가고 싶고.” (사라)

 

“티브이에 학생들이 데모한다든지 노동자들이 데모하면은 ‘저 또 쳐먹고 할 일 없으이 저지랄 해 싸코 있다’ 이캤거든예. 근데 그 데모를 갖다가, 쳐먹고 할 일 없는 짓을 내가 하고 있다 말입니더.” (김영자)

 

나랏일에 반기 드는 일은 무엇이든 역적질로 알고 산 70-80세 고령의 주민들은 처음 연대자들을 만나면서 “철탑 막아야 하는 게 맞제? 우리가 옳제?” 라고 수도 없이 물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묻거나 듣지 않아도, 싸움의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감정이입 한다.

 

‘남의 초상집 가서 제 설움에 운다’는 말이 있지만, 이들이 다른 점은 그 설움이 지금 저 아득히 높고 추운 곳의 차광호 씨와 같은 설움이고, 연결되어 있다는 각성이다.

 

순례자들이 가진 힘은 자본의 부정의와 국가 폭력에 대한 딱 떨어지는 저항의 언설이 아니다. 천막농성을 이어가는 해고자들과 공장 부지의 부동산 투기를 공언한 ‘구조고도화’에 맞서 싸운 KEC 노동자들에게, 심지어 가 닿을 수 없는 하늘 사람 차광호 씨에게 그들은 경험을 통해 그들 속에 각인되어 있는 언명, 분함과 억울한 설움을 당장 그 자리에서 꺼내어 놓는다.

 

‘너 속속들이 아픈 심정을 내가 잘 안다. 나도 아프다. 힘내자.’ 쓰다듬고 다독이고 어루만진다.

 

골프장 반대 주민 17명이 전과자가 된 홍천 구만리

 

2011년을 기점으로 강원도에서 운영 중인 골프장은 42곳, 건설 추진 중인 골프장은 41곳이다. 면적만 약 1천 225만평(43,769,652㎡)에 달하며 여의도 면적의 18배, 축구장 6천690개에 해당하는 규모다. 더욱이 홍천군에만 13개의 골프장이 들어선다.

 

구미 스타케미컬 해고노동자들이 준비한 뜨끈한 국밥으로 점심을 먹고 나서 두 시간 가까이 달려 경기도와 강원의 경계를 지날 무렵부터 눈발이 흩날렸다. 눈은 밤새도록 폭설이라는 이름으로 내렸다.
 

           ▲  강원도 홍천군 서면 동막리. 골프장 반대대책위 주민들과 만나다.   © 촬영: 허란  

 

“지금 넘고 있는 고개 이름이 널미재인데 옛날에 이 고개 넘기가 넌덜머리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차에 탑승한 홍천군 골프장 반대대책위 주민활동가의 멘트가 끝나고 나서 버스는 경사진 언덕에서 멈추었다. 강원도 홍천군 서면 동막리, 장락산 자락에 건설되고 있는 골프장을 조망하기 위해서였다. 눈발은 사람들의 머리와 어깨로 소복이 내려앉았고 골프장은 눈발 속에서 희미하게 보였다.

 

“철탑이 우리 머리 위에 세워진다 아이가?” 라던 밀양 할매의 말이 떠올랐다. 동막리, 구만리, 월운리, 갈마곡리, 괘석리, 월운리, 팔봉리, 두미리의 골프장들 역시 주민들이 사는 마을, 사람들의 머리 위에 세워진다. 농업용수와 식수로 쓰는 하천의 상류에, 심지어 하천 한가운데를 뚝 떼 내어 골프장으로 조성 중이다. 골프장에 퍼부은 농약들이 밤이면 마을에 내려앉을 것이라 했다.

 

구만리 골프장 대책위 사무실은 구만리 농산물 집하장 큰 창고다. 이들은 정말 초면인 것인가? 아님 재회인가? 만나자 마자 포옹하고 한없이 따듯한 눈길을 주고받는 그들을 보면서 버스에서 주민활동가가 말했던 골프장 투쟁의 내용들이 떠올랐다.

 

“도청에서 406일 홍천군청에서 200일 넘게 천막을 치고 농성을 했습니다. 골프장 건설이 공익 사업이라고 주민들의 집과 땅을 강제 수용했습니다. 90여 가구가 사는 구만리는 골프장 투쟁 때문에 17명의 주민이 전과자가 되었습니다. 이 마을은 범죄 없는 마을이었습니다.”

 

민주노총 강원본부에서 마련한 저녁 식사를 하고 홍천리 골프장 반대 투쟁을 해온 주민들과 인근의 한 교회에서 송년회 행사를 가졌다. 눈은 계속해서 쏟아져 내렸지만 교회 안은 그야말로 잔칫집이다. 영상 시청, 춤과 연극 공연이 이어졌고 밀양 평밭 마을의 할매 ‘사라’는 “녹슬은 기찻길”을 답가로 부르며 화답했다.

 

마지막 기념 촬영 전, 밀양과 청도의 할매 할배들은 홍천의 골프장 건설에 맞서 저항하고 있는 주민들에게 연대와 저항을 약속하는 증표와 손수 농사지은 먹거리를 전달했다. 밀양과 청도의 순례자들은 빨간 목도리를, 홍천 주민들은 손수 뜨개질한 목도리를 주거니 받거니 사이 좋게 매어 주었다.

 

            ▲ 밀양, 청도 순례자들에게 홍천 주민들은 뜨개질한 목도리를 매어 주었다. ©촬영: 박승화 
  

70,80대 고령의 할아버지들이 서로를 깊이 바라보고 저토록 뜨겁게 포옹하는 것을 나는 다시 볼 수 있을까? 누구든 망설이지 않고 부둥켜안고 쓰다듬고 등을 토닥일 때, 내가 가장 많이 본 것은 자글자글 주름진 얼굴과 일생의 노동을 증거하는 믿기지 않을 만큼 크고 굵은 손마디였다. 홍천 골프장 반대 주민들과의 송년회는 밤 11시 가까이 되어서야 겨우 끝이 났다.

 

‘겨울에 비닐 한 장 덮고 산꼭대기에서도 잤는걸’

 

홍천군 동면 덕치리 소군이 쉼터. 첫날 묵을 장소다. 계속 내리는 눈 탓에 송년회 참가자들은 버스에서 내려 종아리까지 빠지는 눈을 밟고 거의 이백 미터를 걸어야 했다. 그리 크지 않은 방을 열다섯 명의 할매들이 함께 써야 했고 화장실은 하나. 요와 이불도 부족했다.

 

한 명이라도 불편한 기색을 보일 만도 한데 모두들 안온하고 편안해했다. 주무시기 불편하시지 않겠냐고 물었을 때, 그녀들은 “괘안타. 좋다. 여긴 호텔이다. 이런 겨울에 비닐 한 장 덮고 산만데이(꼭대기)에서도 잤는데 뭘.” 그렇지! 그녀들은 45도가 넘는 비탈진 길 위에 노숙하면서 비탈길을 떼구르르 구르며 미끄러지며 잤던 바로 그 할매들이다.

 

활동가 전체 회의는 밤 12시에 시작되었고, 그 시간에 홍천교회 목사님과 주민은 눈길에 차를 몰아 아침 식사 거리인 쌀과 육개장을 끓여 담은 큰 솥을 들고 방문했다. 국에 넣을 야채 재료들과 김치도 함께 왔다. 눈이 이렇게 밤새 내린다면 내일 아침 길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새벽 한시 회의를 마친 젊은 활동가들은 그 시간에 밥을 하고 국을 마저 끓이기 시작했다. 아침 식사 시간은 일곱 시, 출발은 여덟 시로 공지되었다. ▣ 박이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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