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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항상 ‘을’입니다…대한민국의 자화상
[내가 만난 세상, 사람] 영화 “카트”를 보고 
 

 

 

1997년 한국에 외환 위기가 찾아왔다. 일명 IMF 사태는 대한민국이 국가부도 위기를 겪으며 국제통화기금에 자금지원 양해각서를 체결한 사건이다. IMF사태 원인에 대한 논문과 글은 다양하지만, 대체적으로 정부의 외환관리 정책의 미숙과 실패, 금융 기관의 부실 그리고 정경유착에 따른 부정 대출이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정부기관이 한보철강에 편법으로 대출을 해준 것 등이 5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액수의 한보그룹 부도로 이어졌는데, 권력형 비리 사건이었던 이른바 ‘한보 게이트’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가 연루되어 구속되는 등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 개봉을 앞둔 부지영 감독의 영화 <카트> 포스터 
 

당시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었던 내가 기억하는 IMF 사태의 여파는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양산, 그리고 금모으기 운동이다.

 

뉴스에서는 연일 ‘국가 위기’라고 말하고 있었다. 기업이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며, 기업의 빚을 국민의 세금으로 갚아주고 일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했다. 외화를 갚기 위해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모습도 보도되었다. 손에는 아이들 돌 반지부터 꼭꼭 숨겨둔 황금두꺼비 그리고 자신의 금반지까지 들고나와 금모으기 운동에 동참했고, 언론들은 훌륭한 국민성을 찬양하기도 했다.

 

국제통화기금에서 자금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노동 시장 유연화’를 요구하였다. 1998년 정부는 근로자파견법을 제정하였고, 이후 계약직, 사내하청, 아웃소싱, 시간제근로자 등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양산되었다.

 

많은 노동자들이 반대했지만, 정부는 고용을 유연화하지 않으면 국가가 부도가 나고, 그러면 국민도 존재할 수 없게 된다며 고통분담을 설파했다. 노동계 측에서 요구한 일자리 나누기 정책이나 근무시간 단축 등의 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김대중 정부 때 IMF 사태를 극복하고 10%대의 성장을 이룩하였다는 뉴스를 접했다. 차츰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듯했지만 비정규직은 줄지 않고 더 늘어갔다. 우리가 왜 비정규직이 되었는지 잊어갈 무렵, 2007년 TV 화면에서 홈에버 노동자들이 농성을 하다가 경찰에 끌려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영화 <카트>는 바로 그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부당해고에 맞서 싸웠던 이랜드 홈에버 사태로부터 출발한 영화이다.

 

2007년 당시 이랜드그룹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2년 이상 사용하면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도록 하는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계열사인 뉴코아와 홈에버에서 계약 기간도 끝나지 않은 비정규직 계산원 등 700여명을 무더기 해고했다. 그리고 외주 용역으로 전환하겠다고 일방 선언했다. 

 

              ▲  2007년, 이랜드 해고노동자들의 점거 농성에 이랜드 정규직 여성노동자들도 힘을 모았다.   © 일다 

 

대부분 여성이었던 500여명의 해고노동자들은 6월 30일 상암동에 있는 홈에버 월드컵 점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장장 512일 동안 농성이 계속되었으며, 이 투쟁은 기업의 편법 외주화 문제와 더불어 한국 사회의 심각한 고용 불평등 문제를 제기하였다. 당시 사건은 2009년 김미례 감독에 의해 다큐멘터리 <외박>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고객이 왕’이고 ‘마트의 매출이 최우선’이었던 여성노동자들은 어느 날 회사로부터 문자로 해고 통보를 받는다. 정규직 전환에 대한 기대는 물론, 남은 계약 기간조차 헛되게 버려진다.

 

영화는 이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부당해고에 맞서 싸우는 과정을, <시선, 너머>라는 인권영화로 이미 익숙한 부지영 감독 특유의 섬세함으로 그려낸다.

 

마트를 점거하고 농성을 하는 과정에서, 주인공들의 삶이 드러난다. ‘반찬 값’ 벌려고 나오는 아줌마들이 아니라,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 온 이야기들이.

 

영화를 보는 내내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라는 문장으로 시작된 <카트>의 이야기는 한 시점에서 일어나고 끝난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곳곳에서 지속되는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  영화 <카트>의 한 장면. 
 

이제는 비정규직, 부당해고, 파업 등의 뉴스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사회가 되었다.

 

기륭전자 해고자, 쌍용자동차 해고자, 재능학습지 해고자 등 여전히 투쟁이 진행되고 있는 사업장들이 있다. 기업들이 부당해고임을 명시한 법의 판결조차 무시하는 것도, 노조원들에게 엄청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도, 그리고 쉽게 공권력과 용역깡패들을 동원해 노동자를 제압할 수 있는 것도 현재 진행형의 상황이다.

 

영화 <카트>에서, 마트 창고 창가에 “우리는 항상 을입니다”라는 스티커가 스치듯 지나간다. 지금 이 순간도 부당한 대우를 받고 싸워야만 하는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영화는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지난 달 23일, 노동부 장관이 비정규직 고용 제한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겠다고 말했다. 노동자들 입장에서 2년 일하고 잘리는 것보다는 비정규직이라도 3년을 일하는 편이 낫지 않냐는 얘길 덧붙였다. 우리네 삶을 얼마나 더 절망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일까.

 

비정규직 6백만 시대, 그러나 기업들은 사상 최대의 돈을 쌓아두고 있다고 하는 지금, 비정규직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하지 않는 것이라는 걸, 이제는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기업들은 불법, 편법을 동원해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묶어두고 있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집 앞에 있는 마트에 갔다. 노조원들이 “10년을 일해도 비정규직”이라고 쓰여 있는 조합단체복을 입고 계산대에 서 있었다. 며칠 째 보아온 그 옷이 <카트>를 보고 나서 보니 더 선명한 아픔으로 새겨진다. 5년 째 드나들어 낯이 익은 계산원에게 당신들의 요구가 정당한 것이라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네는 것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대신했지만, 영화 <카트>의 마지막 장면처럼 우리, 함께 카트를 밀고 있기를 희망해 본다. ▣ 너울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영문 번역기사 사이트ildaro.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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