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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간은 머무름 없이 이어질 것이다
3집 발매를 앞둔 인디뮤지션 시와 인터뷰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여기 앉아서 좀 전에 있었던 자리를 본다

  아. 묘한 기분 저기에 있었던 내가 보인다

 

  저 하늘 저 나무 저 그늘 저 계단 여기서도 저기서도 똑같아 보일까

  저 하늘 저 나무 저 그늘 저 계단 거기에 있었을 땐 볼 수 없었지

 

  흐르는 물소리 떨어지는 꽃잎 발소리 내는 것도 조심스럽게

  흐르는 물속에 세상이 비치네 내 얼굴도 비춰볼까」 
 

 

시와의 1집 <소요>(逍遙)에 수록된 “랄랄라”의 노랫말이다. 내가 시와에게 관심을 가지게 만든 곡이자, 시와의 노래 중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기도 하다. 예술가의 인간성이 창작물에 늘 반영되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창작물 속에서 그 창작자의 인간적 결이 느껴질 때가 있다. “랄랄라”가 그랬다.

 

이 노랫말은 짧지만 깊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물은, 바라보는 자리가 달라지면 달리 보인다. 하지만 단순히 서 있던 곳을 옮긴다고 그 다름을 포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관점(觀點)에는 태도가 포함된다. 내가 내는 발소리조차 죽이고, 흐르는 물속에 세상만이 아닌 내 얼굴도 비추어볼 때, 살포시 떨어지는 꽃잎의 소리가 들린다.

 

나에게, 그리고 너에게 ‘나무가 필요해’

 

시와는 2006년 2월 서른의 나이에 홍대 앞에 있는 라이브 클럽 ‘빵’에 오르면서 공식적인 뮤지션의 삶을 시작했다.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삶의 속도로 볼 때 ‘늦은’ 나이에 데뷔했지만 시와는 자기만의 색을 지닌 아티스트로 꾸준한 성장을 이루어오고 있다.

 

1집 <소요>(2007년), 2집 <Down to Earth>(2011) 이외에도 두 장의 EP(Extended Play: 싱글보다는 많고 정규 음반보다는 수록곡이 적은 음반)을 냈으며, 세 번째 정규 음반이 오는 10월 22일 발매될 예정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여성들을 위한 컴필레이션 음반 <이야기해주세요>1, 2에 참여했으며,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오월愛>의 음악을 맡았다. 기타리스트 RAINBOW 99와 함께한 두 장의 프로젝트 앨범 <We Are All Together>(2009), <우리 모두는 혼자>(2011), 그리고 프랑스 팝밴드 페퍼문(Peppermoon)과 함께한 앨범 <Skyside Melodies>(2014) 등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시와는 올해 있었던 6.4 지방선거에서 녹색당의 당가를 부르기도 했다. ‘시와’와 ‘녹색’의 만남은 그간의 그의 행보를 보면 자연스러운 것처럼 여겨진다. 2013년 2월에 발매한 <시와, 커피>라는 EP는 ‘CD없는 음반’으로 온라인을 통해서만 유통했다. 이 앨범은 이후에 플라스틱이 아닌 생분해성 소재로 만들어진 CD로 다시 발매되었다. 당연히 ‘환경’에 대한 고민에서 시도된 것이다. 그가 만든 독립레이블은 “나무가 필요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나무를 좋아해요. 나무가 줄어드는 것보다 늘어나는 게 지구를 위해 좋잖아요. 나무는 한결같은 무언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도 한데, 그런 한결같은 게 저한테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연습도 없이 즉흥 오디션을 본 날

 

시와가 라이브 클럽 ‘빵’의 오디션을 보았던 때는 2005년 11월이다. 그날 시와는 공연을 보기 위해 관객으로 그 클럽을 찾았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 무척이나 행복한 표정으로 노래를 하고 있는 사람을 보게 된다.

 

“나도 노래를 하면 저렇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공연이나 전시를 보고 책을 읽거나 하는 일들이 제가 살면서 느끼는 어떤 공허한 마음을 메꾸는 일이라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나는 그런 건 전혀 몰라’ 하는 듯한 표정으로 진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며 노래를 하더라고요.”

 

그 행복한 표정에 끌려, 시와는 그날 당장 오디션을 보았다. 연습도 없이 즉흥적으로 본 오디션이었다. 기타도 가져가지 않아서 공연자로 온 사람의 기타를 빌렸다. 오디션 다음 날, 클럽 사장은 “노래는 괜찮은데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며 “한달 정도 더 연습하고 오라”는 연락을 주었다. ‘내 노래가 괜찮다는 뜻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신이 났다. 한달 연습을 하고 다시 오디션을 봤다. 그러나 아직도 무대에 오르기엔 미흡했다. 다시 한달 더 연습을 한 후 찾아간 세 번째 오디션에서, 사장은 공연 일정을 잡자는 답을 주었다.

 

“어릴 때부터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걸 좋아했어요. 잘 한다는 소리도 들었고요. 그렇지만 직업으로 삼으려면 훨씬 뛰어난 재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대학교에 들어와 노래패를 하면서 공연을 만드는 전 과정을 다 겪어봤어요. 그 때는 대본도 짜고 선곡도 하고 무대 연출도 하고 무대 설치하는 것까지 다 하니까 재미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렇지만 그 때까지도 ‘직업’으로 할 생각은 못했어요.”

 

그러나 서른 살 무렵의 늦가을 어느 날, 음악은 ‘행복’이라는 이름과 함께 시와의 또 다른 ‘직업’이 되었다.

 

자폐아이들과 소통의 문을 열어준 ‘음악’

 

시와는 자신이 뮤지션이 된 계기 중 하나로, 특수교사로 일하던 시절 접했던 ‘음악치료’의 경험을 꼽는다. 초보교사에게 아이들과의 소통은 녹록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음악을 통해서 그 문을 열 수 있었다고 말한다.

 

“교사와 아이가 친밀감이 형성되어야 그때부터 뭐든지 전달이 가능하거든요. 그러나 평소에 자폐성 발달장애를 가진 애들과는 눈을 마주치기도 힘들어요. 그런데 자폐아들 중에는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의미 없이 계속 흥얼거리는 거예요. 수업 시간에도 자기가 좋아하는 걸 흥얼거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보통은 그게 수업시간에 방해가 되니까 못하게 하죠. 제지하는 교사도 좋지 않고, 그걸 그만둘 수 없는데 계속 그만두라고 강요 받는 애한테도 좋지 않아요.

 

음악치료 연수 때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자폐성 발달장애 아이들과 소통을 시작하려면 그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를 일부러 교사가 먼저 그 옆에 가서 불러보래요. 부르다가 중간에 멈추는 거죠. 그러면 그 애가 뒤를 이어서 노래를 불러주는 거예요. 내가 얘한테 말로 ‘안녕’ 했을 때는 답이 돌아오지 않는데 노래로 하면 돌아오는 거죠. 굉장히 작은 거지만, 그게 의사소통이 시작되고 친밀감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는 거죠. 우리가 지적으로 어떤 한계가 있다거나 자폐가 있어서 마음을 열지 않는 친구들 하고도 이어주는 다리가 되는 거예요. 음악이.” 

 

음악은 타인과 소통하는 언어와 계기를 제공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저도 음악치료를 받아본 적이 있어요. 음악치료 연수를 해주셨던 선생님과 친해져서 이런저런 개인적인 얘기까지 하다가 상담기법 중의 하나인 음악치료를 받게 된 거죠. 그때도 느꼈어요. 학교 다닐 때 교내 상담센터에서도 상담을 받아본 적이 있었지만, 말보다 음악을 매개로 해서 속마음을 열어보는 게 더 쉽더라고요. 말할 때는 뭔가 마음의 저항이 많잖아요. 그런 거 없이 진짜 무의식을 건드리는 거예요.”

 

음악이 가진 힘을 깨닫고 더 깊이 음악에 이끌렸지만, 시와는 노래를 통해 누군가에게 다가가겠다거나 무언가를 바꾸어내겠다는 거창한 시도를 덧씌우지는 않았다.

 

“제 노래가 그냥 자기 이야기처럼 받아들여지면 좋죠. 노래를 만들게 된 것도 제가 제 마음을 위로하거나 다독이기 위해서인데 사람들 앞에서 부르고 보니까 공감하는 분들이 생기잖아요. 그게 무척 기분이 좋더라고요. 나를 다독이려고 만든 노래인데 또 누군가의 마음을 그렇게 해주니까. 그런데 아마 제가 처음부터 위로가 되는 노래를 만들려고 했다면 그렇게 안됐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지금도 경계를 많이 해요.”

 

여성 인디뮤지션으로 ‘살아남기’ 위해

 

시와가 자신만의 독립레이블을 만든 것은 2013년 <시와, 커피> 음반을 발매하면서이다. 이 음반은 동명의 장기 기획공연에서 부른 곡들을 담아 만든 음반이다. 2012년 10월부터 시와는 작은 카페들에서 소규모 단독 공연을 이어갔다. 열 명이 조금 넘는 관객 앞에서, 때로는 마이크조차 잡지 않는 ‘오붓한’ 공연이었다.

 

“직장을 그만둘 생각을 할 무렵 내게 된 게 1집 <소요> 거든요. 뭔가 기반이 잡혀야 일을 그만둘 수 있을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그 때 욕심이 많았어요. 좀더 유명해지고, 좀더 큰 무대에 서고 싶고. 이런 생각을 많이 하면서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물론 활동이 저조했던 건 아니지만 제 생각만큼 안 되는 거예요. 기획사라든가 홍보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의 도움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더라고요.

 

저 혼자 하는 거에는 한계가 있다는 걸 2010년도 <소요> 앨범 이후로, 2011년에 2집을 내면서도 쭉 느꼈어요. 그렇다면 큰 무대나 유명해지는 것을 목표로 삼기보다는 지금 내 음악을 좋아해주는 사람과 계속 꾸준히 만나는 걸 나의 방향으로 잡자. 그래서 <시와, 커피> 공연을 기획하게 되었죠.” 

 

 

독립레이블을 만들게 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2집을 낼 때 소속사에 들어갔는데 그때 음반을 전국유통 해봤어요. 그냥 제가 ‘향뮤직’에서 팔 때랑 큰 차이가 없더라고요. 너무 큰 것을 바라보기보다는 조그맣게 내 주변에서 내 음악 좋아해주는 사람들과 오래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회사를 나오고 제 독립레이블을 만들었죠.”

 

여성 인디뮤지션으로 ‘살아남기’ 위해 시와는 다양한 실험을 거듭해왔다. 자비를 들여 만들기 시작한 1집은 음반 선 판매를 통해 제작비를 일부 충당했다. 10월 22일에 발매될 3집도 음반이 만들어지기 훨씬 전에 ‘투자자’를 모집했다.

 

“이번에 기획한 3집 음반은 이전 앨범에 비해 많은 돈이 들어가는 거였어요. 이 돈을 어디서 투자를 받는다거나 어디 회사에 기댄다거나 하기보다 내 음악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음반 한두 장 사는 걸로 미리 모으면 가능하지 않을까. 막연한 희망에 기댄 거긴 한데, 한 사람 한 사람이 큰 힘이 될 수 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노래에만 집중한 3집, 협업으로 만들어낸 ‘변화’

 

시와는 곡을 직접 쓰지만, 음악을 찾아 듣는 시간보다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책을 읽는 시간이 더 많다고 말한다. 음악을 어릴 때부터 좋아했어도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찾아가면서 듣지는 않았다.

 

“대신 라디오를 많이 들었죠. 사춘기 때 방 안에 박혀 있을 때 라디오 듣고. 그때 처음으로 산 테이프가 이문세 6집, 변진섭 2집 이런 거 있잖아요. 이번 음반 작업하면서 알았는데 제 음악의 뿌리가 그때 정도의 음악이더라고요. 1980년대, 1990년대 가요. 그런 정서가 있더라고요.

 

저한테 제가 부르는 노래에서 중요한 건 그 노래에 담는 이야기인가 봐요. 부끄러운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음악적인 다른 부분이 더 중요하다면 음악을 지금보다 더 많이 들어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노래에 담는 이야기가 첫 번째고, 그 다음이 음악적인 형식이에요. 처음부터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 제가 지금까지 만든 거를 돌이켜보면 그랬더라고요.

 

제가 편곡에 대해서 고민을 이야기하면 주변에 음악 하는 언니는 ‘그러면 음악을 많이 듣고 고민해야 돼’ 그러죠. 언젠가는 공부 삼아 많이 듣게 될 것 같아요.”

 

음악적으로 더 발전하고 싶은 욕심이 있지만, 그렇다고 혼자서 모든 걸 다해내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제가 잘할 수 있는데 집중하고, 모자란 부분은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서 협업을 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와는 곧 발매될 3집 음반에서 이전 앨범들과는 다르게 오직 노래에만 집중했다. 편곡자도 따로 있고, 기타도 치지 않았다. “노래에 더 집중하면서 한마디, 한마디 표현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노래의 색이 달라진 것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게 긍정적인 변화 같아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고 다 잘해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던 적도 있다. 사실 한국사회는 모든 면에서 ‘만능’을 요구하는 사회지 않은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의 가치와 즐거움에 더 깊이 눈 뜨게 된 것도 음악이 시와에게 준 또 다른 선물이었다.

 

“이번 앨범에 ‘겨울을 건너’라는 곡이 있는데 편곡에 김목인 씨의 도움을 받았어요. 처음에는 편곡자가 기타와 피아노에 하프를 얹는, 하프가 부가적인 느낌으로 편곡을 했어요. ‘겨울의 얼음판을 걷는 위태위태한 느낌을 하프로 살려보자’ 라고 데모를 보내줬는데, 이게 그런 느낌인가 확신이 안 섰죠. 그 이야기를 목인 씨한테 한 거예요. 목인 씨가 참고하라고 보내준 영상은 하프 위주에 피아노와 첼로가 들어간 연주더라고요.

 

하프를 넣는다고 했을 때 하프가 부가적으로 들어가는 것만 생각했는데 아예 발상이 달라진 거잖아요. 그래서 하프 연주자를 섭외해서 만났는데, 연주를 들으니까 다른 악기가 필요 없는 거예요. 진짜 좋아서. 그래서 다른 악기 안 넣는 걸로 하고 하프로만 갔어요. 편곡자와 김목인 씨와 저의 생각, 그리고 하프 연주자의 연주가 합쳐져서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곡이 만들어졌어요. 그런 게 재밌는 거 같아요.”

 

‘순간에 집중하고 작은 것들을 놓치지 않는다면’ 

 

▲  시와 <행복이 아니라도 괜찮아: 서른의 한가운데> 
 

음악적인 변화를 시도했지만, 곧 발매될 3집에 대해 시와는 성장이나 성숙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을 조심스러워 했다. 그런 판단은 결국 듣는 이의 몫이기 때문이다. 시와에게 3집의 의미는 그가 늘 중시하는 ‘지금 이 순간’이다.

 

“3집은 10곡이 들어가는데 그 중에 8곡이 올해 2월부터 4월 사이에 만든 곡이에요. 사실은 음반 제목을 ‘서른여덟’이라고 하고 싶을 만큼 지금 이 나이에서 세상을 보는 시각을 담고 있죠. 이 나이만큼 살아서, 혹은 지금 내가 굉장히 어른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동안 어리석은 일들을 하면서 살아왔던 자신이 이제야 보이는… 그런 가사들이 써지더라고요. 그래서 ‘서른여덟’으로 하고 싶었는데 주변에서 굳이 나이를 밝힐 필요가 있냐는 반대에 부딪혀서. (웃음) <머무름 없이 이어지다>라고 음반 제목을 지었어요.

 

한 친구가 3집에 들어갈 노래를 쭉 듣더니 ‘계절의 말’ 같다는 이야기를 해줬어요.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것이기도 하고, 또 시간의 흐름이라는 건 무언가와 만나고 이별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의미를 아우르는 제목을 짓고 싶었는데 잘 안됐어요. 또 다른 친구가 그럴 때는 국어사전을 찾아보라고, 그러면 의외로 답이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사전에서 ‘시간’이라는 말을 찾아봤더니 과거와 현재가 머무름 없이 계속되는 흐름이라고 쓰여 있었어요. 그 말이 정말 좋은 거예요. 머무름 없이 흐름. 그 말을 응용해서 <머무름 없이 이어지다>라고 3집 제목을 붙였죠.”

 

흐르는 물속에 비친 세상을 발견하며, 그 속에 자신의 얼굴을 비추어온 예술가는 이제야 지난 시간 속의 자신의 모습을 잘 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시간을 되새김질 하며 그는 모든 것들이 머무름 없이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성실하게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온 시와에게도 앞날에 대한 불안의 순간은 있다. 그러나 그는 순간에 집중하고 작은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 하는 삶의 태도가 불안감을 이기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한치 앞의 일조차 사람은 알 수 없으니, 설령 지금 만들고 있는 음반이 완성 안 될지라도 오늘 녹음이 만족스러웠으면 그걸로 행복하면 좋다. 2012년에 펴낸 에세이집의 제목 <행복이 아니라도 괜찮아>(책읽는수요일)에서 말하듯이, 때로 절망한다고 해도 그의 시간은 머무름 없이 이어질 것이다.  ▣ 박희정  

 

* 시와 홈페이지 www.withsiwa.com

* 시와 3집 예고편 SIWA 3rd album teaser http://bit.ly/1vVYzTA

 
     <여성주의 저널 일다> 바로가기 www.ildaro.com      <영문 기사 사이트> 가기 ildaro.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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