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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안티 에이징’ 낙천주의자 할머니들!
<오지 않은 미래의 발견> 영화 “할머니 배구단”을 읽다 
 

 

※ 이번 기사는 여성인권영화제 피움(FIWOM) 홈페이지(fiwom.org)에도 게재되었습니다.

 

 

66세에서 98세에 이르는 ‘할머니’들로 구성된 배구단 “낙천주의자들”(The Optimists). 대략 15명의 회원이 참여하고 있는 이 배구단은 1973년에 창립되어 지금까지 명랑한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10주년 기념 사진에서 밝게 웃고 있던 사람들 중 거의 반 정도가 그동안 암이나 치매로 죽었다. 그들이 남긴 빈자리는 신입 회원이 채우면서 그렇게 배구단은 어제에서 오늘로 이어지고 있다.

 

노르웨이 할머니들 배구한다, 즐겁다, 부럽다 

 

▲  제 8회 여성인권영화제 ‘피움’ 상영작 <할머니 배구단>(The Optimists) 2013.  
 

배구단 창설 멤버인 릴레모어는 사진 속 사람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이이는 암으로 죽었고, 이이는 치매로 죽었고…’ 읊조린다. 창설 당시 50대였던 그녀는 이제 88세가 되었다. 40년 동안 배구단과 함께 늙어온 셈이다.

 

사라진 사람들을 확인하는 그녀에게서 회한이나 슬픔은 찾아볼 수 없다. 담담하게 함께 했던 시간을 떠올리고 기억하는 목소리나 눈빛에서는 ‘때가 되면 가는 거다, 나도 그럴 것이다’는 평온한 수긍이 배어있다. 사진에서 앞줄 왼쪽에 앉아 자신 있게 웃고 있는 한 ‘젊은’ 여성은 현재 98세 최고령자로, 배구단 안과 밖에서 영예를 누리고 있는 고로(Goro)이다.

 

<할머니 배구단>은 지난 40여 년 동안 언론의 조명도 드물지 않게 받았다. 릴레모어가 보관한 자료들 중 “다시 소녀가 된 거 같다”는 제목의 기사도 눈에 띤다. ‘다시 소녀가 된 거 같은’ 기분으로 40년 동안 다양하게 나이 든 여성들이 30세 정도의 나이차를 가로지르며 함께해 왔다.

 

인생의 그 어떤 단계보다 길어진 노년기. 30세 정도의 나이차는 이제 ‘노년 공동체’에서 친구가 되기에 별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퍼즐을 맞추듯 각각의 특성대로 역할과 책임을 나누며 ‘낙천주의자들’이라는 다채로운 그림을 완성시킬 수 있으니 더 즐겁고 더 뿌듯하다.

 

가장 ‘어린’ 66세의 이르마는 책임을 많이 지는 자신의 자리가 마음에 들고, 98세의 고로는 최고령자라는 자신의 자리가 자랑스럽다. 자신이 함께하는 걸 진심으로 반기고 좋아하는 다른 멤버들 곁에서 그녀는 행복하다. 잔물결처럼 파도 치는 주름살들 속에서 투명한 호수처럼 빛나는 두 눈. 호기심과 기대감을 감추지 않는 그녀의 두 눈은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마음껏 늙어가는 여성들을 보는 즐거움

 

젊은 여성 감독이 만든 이 영화 <할머니 배구단>(원제: The Optimists. 감독: 군힐 망노르 Gunhild Magnor. 2013) 속에서, 충분히 나이 든 이 여성들은 체육관에서, 각자의 집에서, 혹은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건강센터에서 카메라의 애정 어린 시선을 받는다. 

 

                   ▲  영화 <할머니 배구단>(The Optimists) 스틸  © Gunhild Westhagen Magnor. 2013.   

 

공을 잡은 손등에도, 허공을 가르는 공과 함께 움직이는 얼굴에도, 치료를 위해 드러낸 다리와 발등에도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 뚜렷하다. 등도 굽었고 배도 나왔고 허리는 가슴까지 올라올 정도로 굵어졌다. 그 모든 시간의 작업이 남긴 흔적들과 함께 그녀들은 코트에서 뛰고 소리 지르고 웃는다.

 

자신들이 가장 잘할 수 있고, 자신들에게 가장 익숙한 일이 바로 웃고 즐거워하는 것이라는 듯 그녀들은 웃고 또 웃는다. “진짜 재밌어.” 릴레모어의 이 말은 그들 모두 합창을 해도 되리라.

 

웃고 있는 얼굴 사이사이로 웃음 없는 얼굴들도 보인다. 웃지 않고 있는 그 얼굴들도, 특별한 표정 없는 그 얼굴들도 ‘괜찮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1시간 반 동안 마음껏 기분 좋게 늙어온, 늙고 있는 여성들을 보고 있노라니 ‘힐링캠프’에 다녀온 것 같다. 이 힐링캠프의 모토는 안티-안티 에이징(anti-anti-aging)이다.

 

할머니들의 집, 숨결과 역사가 담긴 박물관 

 

▲  영화 <할머니 배구단>(The Optimists) 스틸  © Gunhild Westhagen Magnor. 2013.  
 

<할머니 배구단>을 보면서 지속적으로 환기하게 되는 사실이 하나 있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그냥 할머니들이 아니라 ‘노르웨이 할머니들’이라는 것이다. 누구 눈치 보는 일 없이 마음껏 늙고 마음껏 ‘낙천적으로’ 사는 이 ‘할머니들’은 노르웨이라는 복지국가를 떠나서는 제대로 이해되기 힘들다.

 

노르웨이 노년여성 배구단과 스웨덴 노년남성 배구단의 한판 게임. 문자 그대로 참 ‘노르딕’하다. 그리고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거의 모든 장면들이 ‘노르딕’한 요소들을 부족함 없이 전시하고 있다.

 

66세부터 98세까지의 노년여성들로 이루어진 배구단. 일단 66세라는 나이는 은퇴 후의 시간을 추측케 한다. 여성의 일할 권리 혹은 ‘일-가정 균형’이 주제가 될 때면 늘 첫 번째 모델로 등장하는 ‘선진국’이 노르웨이임을 염두에 둔다면, 이 ‘할머니들’이 어떻게 66세가 되었을지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너무 섣부른 판단일까?

 

영화는 그녀들의 사생활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지 않지만 그녀들이 등장하는 집이나 사무 공간, 건강센터, 마을, 길, 공공기관, 카페 등을 통해 그녀들의 삶(의 조건)을 보여준다.

 

고로나 릴레모르, 엘드뵈르크 등 그녀들의 집을 보자. 침실이든 부엌이든 거실이든, 모든 공간은 전형적이라고 할 수 있는 북유럽 중산층 시민들의 삶을 전시한다. 침대와 협탁, 침대보, 커튼, 거실 테이블과 소파 및 의자들, 식탁과 식탁보, 색깔 맞춘 꽃장식과 촛대. 벽에 걸린 그림들과 사진들. 모든 물건과 사물은 형태와 색, 기능에서 서로 안정된 조화를 이루고 있고 오랜 시간 함께 살아온 자신들의 삶을 서로 인정하고 있다.

 

모두 어느 정도의 품위와 질을 갖추고 있지만 이 품위와 질은 꼭 ‘상품’으로서의 시장 가치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물건들은 그 물건을 사용하고 깨끗이 청소하고 지켜온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살아왔고, 그렇게 함께 ‘거기에’ 있다. 그렇게 그녀들의 집은 그녀들 삶의 역사가 고스란히 축적되어 있는 일종의 박물관이 되고 있다.

 

이사가 정말 하고 싶지 않은 힘든 일이 되는 것은 신체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심리적인, 역사적인 문제다. 릴레모르에게는 사십 년 동안 사용한 오븐과 헤어지는 것이 매우 중요한 주제이고, 고로는 마찬가지로 그렇게 오래되었을 게 분명한 오븐에다 ‘구식’의 방법으로 젊은 노년 친구들을 위해 과자를 굽는다. 이 노년여성들의 일상이 내게 큰 위로가 되는 것은 ‘구식’을 보존하고 그 ‘구식’ 속에서 시간의 향기와 숨결을 지켜나가는 그녀들의 태도 덕분이다.

 

노년에게 듣는 ‘삶의 조언’을 값없다 하는 사회

 

한국사회에서는 급속도로 노년이 비가시적, 주변적 존재로 추락하고 있다. 모든 낡음을 폄하하고 경멸하는 한편 늙음과 낡음을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등가로 여기는 사고방식 때문이다.

 

테크놀로지 발달은 너무나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노년에게 고유했던 지식이나 지혜, 즉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삶의 지침’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유선전화기를 사용하던 사람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해줄 조언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년이 주는 인생의 조언을 이렇게 협소하게 이해하는 태도야말로 삶 자체가 협소하고 얄팍하게 쪼그라들고 있다는 증표 아닐까. 시간은 그냥 앞을 향해 불가역적으로 흐르는 것만은 아니다. 시간은 멈추고 고이고 또 뒤로도 흐르면서 경험에 이야기의 목소리와 색을 입히고 ‘고유성’이라 일컬을 수 있는 어떤 가치를 발효시킨다.

 

사진이 시간을 결빙시켜 영원 속에 가둔다면 손때가 묻고 시선이 머물던 물건들은 시간을 여러 개의 층으로 겹으로 물결로 숨쉬게 한다. 자기 집에서 오래된 물건들과 함께 천천히 늙어가는 노년의 삶은 신지식이 없이도 충분히 삶의 전범이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

 

한국의 할머니들에게도 낙천주의를 허하라! 

 

▲ <할머니 배구단>(The Optimists)  2013.  
 

영화 <할머니 배구단>이 드러내고 있는 ‘낙천’은 ‘나는 이렇게 나이가 들었다’, 즉 ‘나는 이렇게 시간을 살았다’를 일상 속에서 보여줄 수 있는 그들의 환경 덕분이기도 하다.

 

그녀들이 살고 있는 곳이 대도시의 소비문화와 거리를 둔 장소라서, ‘구식’을 서로서로 인정주는 노년 친구들이 있어서, 들판 길을 자전거로 달리고 눈 덮인 거리에서 썰매를 타며 신체 단련을 할 수 있어서, 스웨덴 노년남성 배구단과 게임을 하려 한다고 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국제적 게임이니 기꺼이 유니폼에 국기를 달겠다고 말할 만큼 국가와 사이 좋게 지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연금보장제도!) 98세가 되어도 새해가 또 어떤 새로운 것을 가져다 줄지 흥분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노르웨이니까’라는 한 마디로 축약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이 모습 안에 담긴 것들을 바라보자.

 

모든 복잡하고 다양한 세부사항, 통계, 사회문화적 배경을 축소하고 왜곡하는 위험을 감수하고 말해본다면, ‘노르딕’이라는 기호를 ‘복지’와 그로 인한 ‘다양한 삶, 특히 제멋대로의 느린 삶의 가능성’으로 치환시키고 싶다.

 

늙은 사람들이 아직 채 늙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생산노동의 수레바퀴를 부지런히 돌려야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뛰어나게 가장 전범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게 있다면 ‘마음껏 즐겁게 마음껏 느리게 사는 모습’이다. 낙천주의적 태도다.

 

그러나 낙천주의는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다. 이 ‘이즘’은 국가를 믿고 국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국민이라야 비로소 선택할 수 있는 아주 희귀한 ‘이즘’이다. 한국의 할머니들이 이 ‘이즘’을 선택할 수 있도록 국가여, 개과천선하라.  ▣ 김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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