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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지수 117위, 그래도 여성전용주차장이 부럽니?
유리천정이 깨어졌다고 착각하는 한국 사회 
 

 

 

지난 달 28일 세계경제포럼(WEF)은 ‘2014년도 글로벌 성 격차(Gender Gap) 보고서’에서 한국의 성(性) 평등 지수가 0.640점으로 세계 142개국 가운데 117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에는 136개국 가운데 111위였다.) 언론은 여성대통령을 배출한 한국의 성평등 지수가 너무 낮다며 대대적으로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문제는 항상 언론의 이러한 뜨거운 질타는 뜨거운 만큼 빨리 차게 식으며, 대중의 관심을 끌만한 새로운 뉴스에 묻혀 ‘성평등 지수’같은 것은 금방 잊혀진다는 점이다.

 

여성 최초 OOO! 그런데 2호는 누구지?

 

정치철학이나 정책은 논외로 하였을 때, 한국에서 최초로 여성대통령이 당선되었다는 점은 그 자체로 상징적이다. 한국보다 한 발 앞서 민주주의가 발달한 미국에서도 여성대통령은 등장하지 않은데다가, 최초의 흑인대통령이 등장하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 최초’나 ‘여성 1호’이라는 수식어에 기뻐하기는 아직 이르다. 떠들썩하게 여성 1호가 등장한 이후, 그 후로 오랫동안… 여성 2호가 등장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세계 밑바닥 수준인 성평등 지수 또한 한국의 이런 현실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한국은 성평등 지수의 여러 평가 항목 중에서 ‘경제활동 참가 및 기회’면에서 124위로, 매우 낮다. 고위직 여성 간부 수도 113위, 의회 내 여성정치인 수도 91위, 정부 고위직 수 94위에 그치고 있다.

 

특히 세계경제포럼측은 “한국은 연구개발(R&D) 분야 남녀 인력 비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격차를 보이는 국가”라고 지적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한국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 기회도 적을 뿐만 아니라 연구개발, 기업 임원, 정치인, 정부 고위직 등 소위 사회지도층의 영역에서 배제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지난 2월 여성가족부가 “유리천장을 깬 여성 1호 간담회”를 개최한 배경 또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 문제는 여성 1호가 존재하는 것만으로 이제 한국 사회의 유리천장, 유리벽은 깨어졌다고 쉽게 믿어버리는 것이다. 한국 최초의 여성대통령이라는 상징적 존재는 이러한 믿음에 확신을 주며, 그간의 뿌리 깊은 성차별을 만회하는 자랑스러운 훈장인 양 반짝인다. 문제는 우리가 당면한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고 질기다는 것이다.

 

남성이 역차별 당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한국의 여성운동은 정말 성실하고 발 빠르게 고용평등, 성폭력, 성매매 등 각 분야에서 성평등을 제도화하는 입법운동을 추진하였다. 그리고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의 현실과 비교해볼 때 급진적인 성평등 관련 법제화를 이루어내었다. 한편으로는 눈부신 성과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남성들의 강한 저항을 마주하고 있다.

 

그래서 세계경제포럼의 발표에 대해서도 ‘한국이야말로 여성이 더이상 차별 받는 게 없는데, 난데없이 왜 성평등이야?’, ‘한국 성평등 지수가 117위라고? 진짜야? 이제는 남성이 역차별 당하고 있는데?’ 같은 대중적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세계경제포럼에 뇌물을 써서 성평등 지수를 낮게 조작한다는 인터넷 게시판 음모설부터, 성평등 지수의 일부 항목의 순위 선정 자체가 불공정하다는 사뭇 진지한 뉴스 보도까지 다양한 양상이다.

 

직업 상 대학생들을 만날 일이 많다. 학생들에게 성평등에 대한 과제를 발표하라고 하면 빠지지 않고 따라붙는 것이 ‘남성 역차별’이다.

 

여성들이 취직, 승진, 육아에서 불평등을 겪는다는 다소 무미건조하고 뻔한 발표가 끝나면, 남성들이 일상에서 겪는 다양한 성차별에 대한 참신하고 절절한 토로가 이어진다. 모 코미디프로를 인용하여 남성 아이돌이 무서운(?) 누나팬들에게 성희롱을 당한다거나, 여성전용주차장 때문에 남성들이 불편을 겪는다거나, 총여학생회나 여학생휴게실로 인해 남학생들이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마치 여성들이 이런 점에서 성차별을 당한다면, 남성도 저런 점에서는 성차별을 당해야 소위 ‘양성평등’이 이루어진다고 생각되는 듯하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남녀 간의 권력 관계를 50 대 50처럼 보이게 만들 뿐만 아니라, ‘여성도 남성도 모두 성차별을 당하는 면이 있지’ 하는 식으로 쟁점을 희석화시킨다. 그럼으로써 성별 권력 관계가 은폐되는 동시에 그냥 단순한 차이의 문제로 만들어버리는 효과를 가진다.

 

마치 이런 식이다. 성희롱 예방교육을 하게 되면 자주 받게 되는 질문 중의 하나가 “요즘은 남성도 많이 성희롱 당한다고 하는데, 그런 사례는 없나요?” 하는 것이다. 물론 남성도 성희롱을 당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남성이 피해자라고 해서 가해자가 모두 여성인 것은 아니다. 남성 피해자의 대부분은 남성 가해자에게 피해를 당하고, 남성 성폭력은 군대, 학교 등 남성들이 밀집한 공간에서 많이 일어난다.

 

사실상 여성에 의한 성폭력은 소수에 불과한데도, 여성에 의한 남성 성폭력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남성과 여성 모두 성폭력 피해를 받는다, 그러니 성차별의 문제는 아니다’식으로 단순하게 정리되는 것이다. 전체 성폭력 피해자의 90%가 여성이며, 여성 피해자의 대부분 남성에게 피해를 당한다는 사실은 ‘남성도 역차별을 당한다’는 남성들의 분노와 박탈감에 크게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 많은 학생들이 남성 역차별을 이야기하면서 여학생휴게실이나 여성전용주차장을 예로 들지만 정작 이런 공간이 생겨난 맥락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많은 남성들이 성폭력 예방책으로 여성안심택배서비스에는 찬성하지만, 여성전용주차장은 반대한다. 여성전용주차장은 현재 단순히 고객 편의성이나 업체의 상술로 설명되고 있지만, 여성전용주차장이 도입된 다른 맥락은 과거 어두운 주차장에서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 퍽치기 강도 사건이 빈발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여성안심택배서비스와 여성전용주차장은 가르는 결정적 차이는 무엇일까? 오로지 ‘여성의 안전’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여성 편의’가 포함된다면, 이는 여성의 특권이 되는 것일까?

 

성평등은 우리 사회의 절실한 과제이다

 

한편으로 남성 역차별을 호소하는 남자 대학생들이 안쓰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안전이든, 고용이든, 여러 가지 의미에서 한국 사회 전체가 ‘위험 사회’로 향해 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은 바에야 누구인들 편할 수가 있으랴.

 

특히 남자 대학생들이 경험한 학교라는 공간은 그나마 사회에 비해서 성평등이 실현되는 곳이다. 입시라는 관문 앞에서 만인은 시험 성적 앞에 평등할지니, 각종 수석을 휩쓸며 기세 등등한 여학생들 등쌀에 시달린 남학생들이 자신도 역차별 당했노라 주장하는 것은 심정적으로 이해되는 바가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최대 아이러니라면, 그렇게 잘 나가던 여학생이 학교 문턱만 넘으면 엎어져서 힘을 못 쓰고, 다시 공무원시험이나 임용고시 등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 아닐까? 한국 성평등 지수가 말해주듯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 및 기회 124위, 동일 직군에서 남성과의 임금 평등 125위라는 ‘성별 격차’앞에서 여전히 우리 사회의 성평등은 절실한 과제이다. ▣ 이은심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영문 번역기사 사이트ildaro.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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