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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함’이라는 우표를 붙여 쓰는 편지
친족성폭력 생존자 16인의 이야기 <우리들의 삶은 동사다> 

 

 

“제가 나에 대해서 숨길 때는 아무한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거죠. 그래서 너무 힘들었어요. 새아빠에게 계속 당하고 있는데 나는 이것을 너무 부끄러워하고 오픈할 수 없으니까 계속 당하게 되고, 의지하거나 도움 받을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죠. 그런데 저에 대해서 열고, 말을 하고, 창피해 안 하려고 하고 그러니까…. 제가 오히려 이걸 말해서 저를 살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피해자가 당당해져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편견이 있기 때문에 그 정도는 아닌 것 같고요. 그런데 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당당해지자.” -<우리들의 삶은 동사다> 중에서

 

‘친족성폭력’.

미간을 좁히고 고개를 돌리고 리모컨을 찾게 하는 말.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성폭력의 대부분이 아는 사람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을 껄끄러워도 상식 정도로 외우고 있지만, ‘친족’이라는 말이 하나 더 붙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 내지는 ‘일어날만한 사람의 일’로 그 존재와 피해를 오롯이 홀로 남겨둔다. 이런 가운데 최근 친족성폭력 생존자가 다큐멘터리와 책, 무대를 매개로 자신의 경험을 우리에게 ‘함께’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삶은 동사다>(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열림터 기획, 이매진)는 올해 20주년을 맞이한 성폭력생존자 쉼터인 ‘열림터’ 활동가들이 쉼터에 살다간 16명의 친족성폭력 생존자를 인터뷰해 피해 이후의 삶과 치유의 과정을 담은 책이다. 이 기록은 지금껏 타인이 허락한 공간에서 오직 피해에 대해서만 진술할 수 있었던 생존자의 지금-여기를 살아가는 변화와 적응에 대한 ‘말하기’이자, 쉼터 생활, 수사와 재판 과정, 자립, 후유증, 어머니, 그리고 가해자에 관한 사회적 통념을 깨는 ‘말 걸기’이다.

 

나는 먼저 말을 걸어준 그녀들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읽는 것이 아쉬웠다. 이 만남을 상처입고 흉 지고 새살이 돋기도 하는 삶을 함께 살아가는 또 한 사람으로서, 아픔을 나누고 서로의 성장을 응원하는 만남으로 기억하고 싶었다. 그래서 숱한 두려움 속을 헤매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당당함’이란 우표를 붙여 무작정 편지를 쓰기로 했다.

 

To. 친족성폭력 생존자를 넘어서 말하기

 

10월의 끝자락에 당신(이 편지는 생존자 16명의 말하기와 열림터 활동가 6명의 기록에 대한 답장이나, 수신인은 때때로 나 자신이기도, 예비 독자이기도, 우리 사회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수취인불명이다)을 만난 첫인상은, ‘우리들의 삶은 동사다’라는 크고 진한 제목보다 부제로 쓰인 ‘친족성폭력 생존자’라는 글자가 더 눈에 들어왔습니다. ‘얼마나 힘든 이야기들이 쓰여 있을까’, 으레 그렇듯 외롭고 고된 삶 속에서 지울 수 없는 기억과 싸우는 한 여성이 흑백사진으로 먼저 떠올랐습니다.

 

미루고 미루다 매일 조금씩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그때마다 누가 볼 새라 빠르게 펼치고 덮었습니다. 내가 이 책을 읽는 것을 다른 사람이 본다면 나를 친족성폭력 피해자라고 생각할 것만 같았거든요.

 

그래요. ‘친족성폭력 피해자’라는 당신의 정체성이 짐작하게 하는 몸의 기억과 분노와 억울함이 내 역사를 건드릴 것만 같았고, 친밀하고 안전한 관계와 사회에 대한 믿음에 틈이 생길까 봐 두려웠던 겁니다. 그런데 당신의 이야기를 들은 지금, 난 더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말하고 싶습니다.

 

의심 받고 시선 받고 동정 받아왔던 당신과, ‘피해’에만 집중되었던 스포트라이트는 꺼졌습니다. 당신 스스로 낸 목소리를 따라가면서 내가 본 진실은, 당신은 한 장의 흑백사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뜨고 지는 해처럼 삶의 현장에서 마주치는 관계와 경험들 속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나’, 가족의 부재와 사회적 경제적으로 모자람을 느끼고 또 채워가면서 피해가 주는 의미를 다양하게 해석하는 ‘나’가 있었습니다. 모자이크 뒤에서 새나온 하나의 소리가 아닌, 당신이 가진 다양한 몸짓과 표정과 언어들을 보았습니다.

 

난 우리의 대화가 무르익을 즈음, 성폭력 말하기를 가로막는 금기, 강요, 침묵, 권력, 무지, 편견이라 불리는 ‘두려움’ 그 자체를 마주하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서로가 가진 두려움을 인정하고 불편한 진실을 적극적으로 마주할 때 ‘불편함’이라는 허울이 벗겨지고, 우리 사이에 놓인 어렴풋한 두려움에 보기 좋은 균열이 생긴다는 것을 말입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문장의 길이와 상관없이 자주 숨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것은 힘겨움이 아니라 내 경험과 내 인식에 새로운 바람이 통과하면서 생기는 멈춤이었습니다. 말하고 싶었습니다. 말하기에 필요한 용기와 당당함은 당신만의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다시 질문해봅니다

 

“열림터에서 생활인들은 성폭력에 관한 대화를 자연스레 주고받는다. 처음에 여운이는 생활인들이 ‘언니는 친족이야?’라고 묻는 말에 놀라고 당황스러웠다. 십대 시절을 보낸 가출 청소년 쉼터하고 다르게 성폭력 문제를 일상적으로 얘기하는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이렇듯 성폭력을 자신이 이상해서 겪는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보통의 경험’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분위기 속에서 여운이는 자신의 피해 경험을 마주할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삶은 동사다> 중에서

 

당신은 열림터를 ‘집이면서 집이 아닌 곳, 가족이면서 가족이 아닌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오랜 기간 지속된 폭력적인 관계 안에서 침묵을 강요당하며 나름의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했던 ‘집’과 달리, 열림터는 내게 일어난 일을 ‘친족성폭력’이라 이름 붙이고 안전한 관심과 돌봄 속에서 치유와 자립을 준비하는 ‘집’입니다.

 

열림터 가족은 대부분이 10대 여자들이기에 그 어느 집보다 시끌벅적합니다. 이곳에서 당신은 열림터 식구들과 함께 등교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잡니다. 활동가들과 함께 당신의 진로를 찾기도 하고, 부족한 과목은 과외의 도움을 받습니다. 음악, 미술 등 치유회복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심리적 신체적 고단함에 대한 돌봄과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관계를 경험합니다.

 

하지만 열림터는 공동 생활을 위해 빡빡한 규칙에 적응해야 하고, 정들 새도 없이 새 식구와 만나고 헤어집니다. 생활인의 안전을 위해 퇴소자에게는 개방되지 않는 집이자, 당신이 학교 친구들에게 친척집이라고 말하고, 주민들은 ‘혐오시설’이라고 말하는 집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혈연과 혼인으로 맺어진 가족을 기본으로 하고 이를 ‘정상’이라 여깁니다. 사랑이 넘치고 안전한 집.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가족. 이런 ‘정상가족’에 대한 사회적 기대 때문에, 자기를 낳고 키워준 아버지 혹은 믿고 따르는 오빠나 삼촌을 ‘가해자’로 만난 당신이 고소를 결심했을 때, 많은 것을 감수하게 됩니다. 사실을 묻으려 하는 가족들은 당신을 ‘집안의 수치’라며 냉대하고, ‘아버지를 고소한 딸’이라는 사회적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당신이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폭력’이라고 인지하고 말하기까지 분노와 연민 등이 뒤엉킨 감정들로 뒤척일 때, 당신의 어머니는 남편과 자식에 대한 의심, 딸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자책과 가족 해체에 대한 두려움과 주변의 비난, 생계유지에 대한 걱정 등으로 피해 사실을 외면합니다. 당신에게 이런 어머니는 가해자보다 더 미운 존재가 되기도 합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우리가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그 가족과 구성원에게 당연하게 기대하는 ‘-다움’(어머니다움, 딸다움 등)이라는 초인적인 역할은 무엇인지, 또한 우리가 진정 원하고 필요로 하는 가족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했습니다.

 

치유와 회복은 관계 속에서 가능하다는 그 말

 

“마지막으로 재판장님께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며, 해주신 말씀. 사나운 동물이나 미친 사람이 달려들면 어쩔 수 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고. 그런 일은 일어나는 거고, 나는 그런 사고를 당했던 거라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겁에 질려 있었고, 약했다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그런 일은 일어나기도 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자책하지 말고, 수치심을 느끼지 말라고. 여기를 둘러보라고. 자신뿐만 아니라, 검사, 공무원들, 모두 함께 있다고. 혼자가 아니라고. 그러니까 극복하고. 앞으로 건강하게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라고. 그 말을 들으니 마음속으로부터 너는 죄가 없어, 땅.땅.땅. 하고 무죄 판결이 내려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힘들었을 텐데 증언을 해줘서 고맙다는 재판장님의 말씀을 끝으로 나는 법정을 빠져 나왔다.”

- 11회 성폭력생존자 말하기대회 팜플렛 중에서

 

친족성폭력 생존자에게 고소는, 남은 가족의 생계에 대한 걱정과 ‘가족을 고소한다’는 무거운 짐을 안고 수사재판 과정에서 있을지 모르는 ‘2차 피해’를 견뎌야 한다는 걸 예고합니다. 하지만 고소는 당신에게 있어 남은 가족을 보호하는 일이고, 가해로부터 분리된 안전한 일상을 꾸리는 치유의 시작입니다. 무엇보다 가해 행위에 대한 유죄 판결은 고소한 행위가 정당하다는 점을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죄책감을 떨쳐내며, 세상을 향한 믿음을 회복하는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당신의 어머니의 신고를 받고 집에 온 경찰은 ‘딸이 예뻐서 그랬다’는 아버지의 말만 듣고 그냥 돌아갔습니다. 이후 신고에도 경찰은 아무 기록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용기를 낸 대가로 남은 것은, 더욱 심해진 남편의 협박과 폭행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장애를 지닌 채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을지 여부는 많은 부분 그 사람 주변의 사회적이고 물리적인 환경들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 있는지에 달려있다’는 얘기가 있지요. ‘치유와 회복은 관계 속에서 가능하다’는 당신의 말처럼, 살아가면서 겪는 두려움과 고통을 혼자만의 몫이 아닌 같이 살아가는 공동체와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걸, 당신을 통해 배웁니다.

 

이제 당신은 ‘피해’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 From. 친족성폭력, 피해를 넘어서 듣기 © 완두
 

사람의 여러 정체성 중에서 ‘친족성폭력 생존자’라는 정체성을 안은 당신은 또래들보다 먼저 노는 것을 미루고 당장의 의식주를 걱정합니다. 가족관계 안에서 몸에 밴 건강하지 못한 생활 습관을 바꾸고, 때론 신뢰와 불신을 오가며 삐걱거리기도 합니다. 유머러스한 매력에 상담과 미용에 남다른 재능을 보이기도 하고, 수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고, 직장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고소 후 가족들과 관계가 끊어진 채 살기도 하며, 가해자였던 아버지를 ‘외로웠던 사람’이라고 기억하며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당신입니다. 피해 경험은 생존자의 삶의 일부로 없어지지 않고 남아있으면서 때론 불쑥 당신을 주저앉게 하겠지만, 믿음을 회복하고 삶의 다양한 변화 과정 위에 서 있는 당신은 피해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성폭력 피해가 없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 것 같으냐고 묻자 유림이는 이렇게 대답한다.

콧대가 막 이만해가지고 진짜 뭐랄까, 고등학교 졸업하고 외국에 대학교가서 커리어를 쌓고 ‘라면이 뭐야? 굶주림이 뭐지? 돈이 없는 게 뭐야? 노동자들은 왜 노동운동을 해?’ 이러면서 ‘밥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묻는 사람이 돼 있을 것 같은 거예요. 신나게 뭔가 해나갔을 것 같아요. 나를 위해서. 그렇지만 다른 사람의 고통은 잘 보지 못하는, 왜냐면 내가 고통이 없으니까. 내 안에 있으니까 다른 사람의 고통도 좀 볼 수 있게 되는 여지가 더 많고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 <우리들의 삶은 동사다> 중에서

 

괴로웠던 과거를 지나온 현재의 내가 그 과거를 오직 고통으로 귀결하지 않고, 그러한 경험을 통해 성찰하게 된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건, “나는 친족성폭력 생존자입니다” 라는 말하기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말하기는 온전히 내 의지로 나의 삶의 맥락에서 내 경험을 꺼내보고 정리하는 것,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다른 누군가를 만나 내 경험에 새로운 수식어를 더하기도 덜기도 하는 것, 이 모든 것을 인정받고 공감 받는 경험을 통해 믿을만한 공동체와 사람을 발견하고 삶의 자원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자율성을 바탕으로 우리가 ‘함께’ 말할 때, 그런 당당함과 안전한 공간이 우리 모두의 안에 있을 때, 무수한 두려움 속에서도 내가 나로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얼마 전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주최한 ‘성폭력생존자 말하기대회’에 듣기참여자로 처음 함께했습니다. 말하기 참여자(성폭력 피해생존자)들은 그 자리에 친구나 지인을 초대했습니다. 불이 꺼지고 잠시 후 켜진 조명이 무대의 한 켠에 서 있는 그녀를 비췄습니다. 이후 시작된 그녀의 말하기는 사실 관계를 증명할 필요도, 말하고 싶지 않은 장면을 반복적으로 꺼낼 필요도 없었습니다. 지금-여기 자신의 속도에 맞는 눈물, 분노, 주저함, 성숙함, 유쾌함, 용기, 박수, 위로, 지지가 창밖에 낙엽만큼이나 각양각색으로 그 자리를 가득 채웠습니다. 그날 우리 모두는 당당했습니다.

 

가을입니다. 출근길. 아직은 낯선 서늘함에 몸을 움츠리고 걷는 사람들 속에서 바삐 뛰어가는 당신과 어깨를 스치는 상상을 해봅니다. 끝으로, 당신과의 오랜 수다에 마지막 장을 넘긴 표지에서 잔 숨결이 느껴졌다는 아쉬움을 뒤로하며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From. 친족성폭력, 피해를 넘어서 듣기 ▣ 완두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영문 번역기사 사이트ildaro.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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