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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새지평

비정규직 20대 여성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4.10.10 08:55

계약직 20대 여성의 자살을 애도하며
[내가 만난 세상, 사람] 당신의 일터는 안녕한가요 

 

※ <꽃을 던지고 싶다>(아동 성폭력 피해자로 산다는 것)의 저자 너울 님의 칼럼 “내가 만난 세상, 사람” 연재가 시작됩니다.  ▣ 일다 www.ildaro.com      

 

 

-돌아보면 사실 힘든 싸움의 와중에도 나는 불행하지 않았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방황하며 잠시 멈춰 선다 해도 불행해지는 건 아니라고.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내가 할 수 있어서, 오늘은 조금 더 행복하다.-  이은의 <삼성을 살다>(사회평론. 2011)

 

박사과정 중에 돌연, 학업을 중단하고 떠난 친구A

 

나는 1994년에 대학에 입학했다. 흔히 농담으로 주고 받는 ‘저주받은 94학번’이다. 한국의 입시 제도는 항상 일관성이 없었지만, 우리 때는 새로운 시험 제도가 도입되어 94학번들은 ‘주관식 세대’, ‘수능 1세대’로 불렸다. 운이 좋게도 나는 별 무리 없이 대학에 입학했지만, 대학만 졸업하면 취직할 수 있다고 여겼던 꿈은 1997년 IMF 금융위기로 허망해졌다. 직장에 잘 다니던 선배들도 퇴사하게 되는 일이 속출했고, 특히 여성의 취업은 더욱 멀게만 느껴졌다.

 

몇몇 가정이 부유한 친구들은 대학원에 진학했고, 공부에 뜻이 있던 친구들도 역시 대학원에 들어갔다. A는 공부에 뜻이 있어 대학원을 마치고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나에게 A는 자랑스러운 친구였다. 공부에 별로 흥미가 없던 나에게 공대 대학원생이던 그녀는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공부가 삶의 전부였던 그녀가 그 좋아하던 공부를 그만두게 된 것은, 엉뚱한 곳에서 발생했다.

 

어느 날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박사 과정 그만둘까?”

“아깝게… 복에 겨웠구나?”

“좋은 학벌에, 좋은 부모 밑에, 똑똑한 머리에, 뭐가 부족해서!”

“조금만 참아.”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딨어.”

 

나는 친구가 박사 과정을 그만두겠다는 말 한 마디를 듣고, 사정없이 ‘복에 겨운 넋두리’라 몰아붙이며 말을 쏟아냈다. 나의 말들은 어김없이 그녀에게 아픈 화살이 되어 날아갔을 것이다.

 

어느 날, 그녀는 떠났다. 바다 건너 멀리.

 

시간이 흐르고 또 흐르고 난 뒤, 나는 그녀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어딘가에서 결혼해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유학이 아닌 결혼을 선택했다는 것도 의아했지만, 나에게 아무 말도 없이 떠난 친구에게 부아가 나서 “잘난 년이라 잘 살겠지, 뭐.” 하며 마음에게 없는 말을 던졌다.

 

지도교수의 성희롱…모든 꿈을 접어야 했다

 

A가 떠난 지 5년이 지난 어느 날, 메일이 왔다. 그 친구와 좋았던 감정, 서운했던 감정이 시들어 갈만큼 넉넉한 시간이 흐른 뒤였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들려준 A의 메일에는, 내가 미안한 마음에 차마 답장조차 하지 못할 사연들이 담겨있었다.

 

공대 대학원이라는 특성상 A가 다니던 학교엔 여성이 거의 없었다. 밤새 과제와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말끔하지 못한 상태에서 교수님을 맞아 인사를 하게 되면, 남학생에게는 노력과 수고로 비춰졌던 모습이 자신에게는 ‘단정치 못하고’ ‘여자답지 못하다’ 라는 지적으로 날아왔다고 한다.

 

A는 자신의 논문 작업, 그리고 그 이후 취업 등 모든 일에 선택권을 쥔 교수님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화장을 했고, 뒤풀이 자리에선 술 따르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박사 과정이 자신의 삶에 전부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녀에겐 꿈이 있었다. 교수가 되고 싶어했고, 그렇게 되지 못하더라도 박사 과정을 무사히 마치면 공기업 연구소나 대기업 연구소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연구실에 있던 A가 교수실로 올라오라는 전달을 받은 그 날, 그녀가 가진 모든 꿈이 그녀의 몫이 아니라고 운명이 차갑게 말을 건네는 듯했다.

 

교수는 연구도 좋지만 여학생이 그 꼴이 뭐냐며, 자신이 지켜보는 데에서 옷을 갈아입으라고 했다. A는 거부했다. 그 후 학과에서 그녀는 그림자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프로젝트에서 제외되고, 잘 진행되던 논문에 제동이 걸렸다. 교수는 그녀에게 건방지다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네가 어딜 가든 자신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을 거라고도 했다. 무엇보다 참기 어려웠던 건, 그녀를 피하던 다른 동기들의 모습이었다.

 

메일에서, 그녀는 나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말을 전했다.

 

당시에 나는, 내 친구인 A가 얼마나 힘든 일을 겪고 있는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다만 말없이 떠난 그녀에 대한 서운함이 희석되는 정도의 이해와, ‘박사 과정이 힘들어도 참았어야지’ 하는 말도 안 되는 기대감에 대한 투영이 있었을 뿐이다.

 

‘정규직 전환’ 빌미로 성희롱 당했던 20대여성의 죽음
 

▲ 계약직 노동자가 성희롱에 항의하는 것은, 직장을 포기하는 각오를 하지 않고선 어려운 일이다.  © 일다 
 

그녀와 마지막 메일을 주고 받은 지 10년이 지난 2014년. 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자살 소식에, A가 떠올라 명치가 아려왔다. 정규직 전환을 미끼로 성추행을 가했던 사람들을 참아냈던 그녀는, 끝내 정규직도 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갔다.

 

박사 과정에 있는 사람에게 있어서 지도교수는 논문을 통과시킬 수도, 혹은 그 반대의 경우도 할 수 있고, 이후의 전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이다. 또 계약직 노동자가 회사에 성희롱 피해를 문제 제기하는 것은, 직장을 포기하는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학습권도, 노동권도, 그녀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직장내 성희롱 문제가 가시화된 것은 1993년 서울대 신 교수에게 제기된 소송이 최초였다. 이후 여성의 노동권을 보호하기 위해 직장내 성희롱 관련 법과 정책이 마련되었다.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남성들 중 약 87%가 성희롱을 한 경험이 있고 여성들 중 93%가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친구가 멀리 떠나버렸던 1990년대 후반,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흐른 2014년, 여전히 변하지 않는 현실을 본다. 그녀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현실까지도.

 

누군가 성폭력을 겪고 자살을 하면, 그동안 침묵을 강요했던 사회는 ‘불쌍하다’라는 동정을 보내며 마음 속에 담겨 있는 죄의식을 덜어낸다. 나조차도 친구의 말을 귀 담아 들어주지 않았다. 잔인한 아동 성폭력 사건이 언론에서 보도되고 나면, 역시나 사회는 부채감을 덜어내기 위해 강력한 대책들을 쏟아낸다. 화학적 거세니 강력 처벌이니 똑같은 말이 반복된다.

 

2014년, 한 계약직 여성노동자의 죽음으로 우리 사회는 또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그러나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시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폭력이 발생하는 조건들을 차단해야 한다. 노동자와 연구자의 신분을 위협하는 사회적 조건과, 상사 혹은 남성 혹은 연장자 등이 갖는 위계를 해체해나가야 한다.

 

직장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하러 가게 되면 “평등한 조직문화”라는 플랜카드를 보게 된다. 평등은 말로서 얻어지는 것이 결코 아닌데, 공허한 말들만 맴돌 뿐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성폭력을 가하고, 침묵을 강요했던 직장,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못한 사회, 억울함 호소하기 위해 한 여성노동자가 목숨까지 던져야 했던 현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또한 자유로울 수 없기에, 미안한 마음을 담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너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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