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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되지 않은 노동> 학생 머릿수보다 수업으로 평가받기를! 
 

 

일다는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과 공동 기획으로, 기록되지 않았던 여성노동자들의 일과 삶을 이야기하는 기사를 연재합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결혼, 출산, 육아 등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은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할 틈을 노리며 재취업을 꿈꾼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문화센터와 각 단체들에서 여는 다양한 자격증 강좌를 듣거나, 하다못해 인터넷 강의라도 들으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애를 쓴다. 몇 해 전부터 주부들에게 인기 있는 ‘초등학교 방과 후 교사’가 되기 위해 분야별 방과 후 자격증을 취득하려는 여성들도 늘어났다.

 

방과 후 교사가 되면 어떤 일을 하게 될까? 방과 후 교사의 노동 환경은 어떠한지, 경기도 수원시에서 초등학교 방과 후 과학교사로 일하고 있는 K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초등학교 방과 후 과학교사로 일한 지 8년

 

“옆집 아는 분이 이사 가면서 못하게 된 과학 강의를, 내가 이과 전공이란 걸 알고 소개해줘서 이어 하게 되었어요. 방과 후 교사를 하기 전에 문화센터나 도서관 등에서 과학 수업을 했던 터라 부담 없이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죠. 어느새 8년이 되었네요.”

 

천문학을 전공한 K씨는 그렇게 40대 후반에 우연히 초등학교 방과 후 과학교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요즘은 방과 후 관련 자격증 기관에서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따는 교사들이 많아졌다. 방과 후 학교에 재료를 납품하는 전문업체에서 재료 구입을 약속하면 자격증을 발급해주기도 한다. 업체 소개로 수업을 할 경우는 보통 7대 3으로, 30%를 교육비 명목으로 소개업체에 수수료를 내야 한다. 심한 경우는 50%를 받아가는 업체도 있다.

 

그러나 K씨는 직접 학교에 서류를 접수하고 면접을 보기 때문에 수수료 부담이 없다.

 

“방과 후 교사는 주로 40대가 많아요. 자녀들을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될 때까지 키우고 방과 후 교사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방송 댄스, 축구, 농구 같이 몸을 많이 움직이는 스포츠 분야의 강의는 30대 교사가 많은 편이고요.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는 여성이라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죠. 오후에만 수업을 하면 되니 개인 일을 보거나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에요.”

 

제 교실은 어디인가요?
 

▲ 초등학교 방과 후 교실을 홍보하는 포스터. 
 

방과 후 학교 수업은 오후 1시부터 4시까지이다. 교사는 20~30분 전에 교실에 가서 미리 오는 아이들의 안전 관리를 해주어야 하고, 수업이 끝난 후 뒷정리에도 30분 정도 소요된다.

 

“저는 과학 수업만 뒷정리할 것이 많은 줄 알았는데 미술, 요리 수업을 보니 청소할 것이 정말 많아요. 요리 수업은 방과 후 교실이 없어서 일반 교실을 줄 경우엔 냄새까지 없애 놓고 가야 해요. 방과 후 교사들은 방과 후 지정 교실이 없을 경우 힘들어요.”

 

지정 교실을 받은 방과 후 교사의 경우 수업 시간 30분 전에 미리 교실에서 수업 준비를 하며 아이들을 맞이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 교실을 배정 받은 교사는 종례가 끝난 후 해당 반 아이들이 다 나온 후에야 교실에 들어갈 수 있어서, 대기 시간이 길다.

 

“저학년의 경우 정규 수업이 끝났다고 끝난 게 아니에요. 나머지 공부하는 아이들, 점심 늦게 먹는 아이들도 있어요. 이런 걸 기다렸다 들어가면 수업 시간이 촉박할 때도 있고, 미리 온 아이들을 복도에서 제대로 봐주기가 힘들죠.”

 

토요일에 방과 후 수업을 할 경우는 수업이 없는 날이라 일반 교실을 사용해도 상관이 없지만 평일에 일반 교실을 배정 받으면 부담이 된다. 과학 수업은 학교마다 과학실을 쓰게 해주는 곳이 많아 그나마 괜찮은 편이다.

 

아이들 머릿수 채우려고 선물 공세까지?

 

학생들에게 분기 별로 수강 신청을 받아 한 학교당 저학년, 고학년으로 하루 2회 수업을 한다. 수강 정원은 20명. 정원이 넘으면 추첨을 하거나 보조 강사를 둔다. 학부모들도 학생 수가 많으면 학교에 항의하기 때문에, 정원을 무리하게 많이 잡으면 안 된다. K씨는 강사 한 명이 체험 수업을 진행하기에는 20명 정도가 적당하다고 말한다.

 

보통 저학년이 방과 후 학교를 많이 신청하고, 고학년은 방과 후 수업보다는 학원을 많이 다녀서 신청자가 10명 이하인 경우도 종종 있다.

 

“아이들 몇 명이에요? 학교 측에서 방과 후 교사들에게 자주 하는 질문이죠.”

 

K씨는 수강생의 수에 따라 교사의 능력이 평가되는 학교 분위기에 대해 지적했다.

 

“지금의 학교 분위기에서는 수강 학생들이 적으면 선생님이 위축돼요. 교사의 능력을 숫자로 평가하지 말고, 선생님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주면 좋겠어요. 저도 초보 교사일 때는 그런 거에 기분과 수업이 많이 좌우되었는데, 지금은 다른 선생님을 위로해주는 편이에요. 학생 수가 적다고 자학하지 말고, 학생 수가 많다고 자만하지 않는 마음가짐이 필요하죠.”

 

아이들이 적고 많은 건 수업의 재미뿐만 아니라 학부모들 사이의 유행, 선호도, 학원 수업 등 외부 환경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런데 학생 숫자가 학교의 수업 평가와 연결되고, 교사의 수입에도 영향을 끼치다 보니, 아이들의 마음을 끌기 위해서 매 수업마다 작은 선물을 주거나 먹을 것을 사주는 교사들도 있다.

 

“다른 OO수업 선생님은 맛있는 거 사주는데 선생님은 왜 안 사줘요? 이러는 아이도 있어요.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교사의 문제죠. 수업의 질에 신경 쓰기보다 다른 흥미거리로 아이들의 관심을 사려고 하는 교사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트러블메이커와 융통성 발휘하기

 

방과 후 수업 시간은 80분이다. 저학년은 오후1시, 고학년은 2시 30분에 수업을 시작한다. 분기 별로 신청하는 방과 후 학교의 특성상, 3개월마다 아이들이 바뀌기 때문에 교사는 항상 긴장을 하게 된다.

 

아이들은 백 명이면 백 명의 특성이 다 다르다. 특히 요즘 아이들은 협동하는 것보다 각자 혼자 만드는 걸 더 좋아한다. 과학 수업은 모여서 실험하는 것, 협동하면서 하는 것이 많아 아이들이 서로 협동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려고 하는 편이다.

 

“수업 중에 학생이 학원에 가야 해서 일찍 간다고 할 때는 난감해요. 이럴 때는 요령껏 오늘 할 부분 중 그 학생 몫을 빨리 끝내서 가게 해줘야 해요. 융통성을 발휘해야 하죠.”

 

가장 난감한 경우는, 학생들을 공평하게 대하는 교사의 태도를 못마땅해하는 아이들과 마주할 때다.

 

“제일 힘든 아이들은 욕심이 많은 아이에요. 교사들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몸 많이 쓰고 돌아다니는 애들보다 더 힘들던데요. 욕심이 많은 아이들은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지만 재료를 더 달라거나 관심도 더 받고 싶어 하고, 뭐든지 더 가지고 싶어하는데 똑같이 나눠 주면 삐쳐요. 다음 분기 수업을 안 듣겠다고 선생님을 협박하기도 해요. 이런 아이들은 ‘네 것 꼭 챙겨, 넌 더 가져야 해.’ 이런 말을 많이 듣고 자란 거 같아요. 친구들과 공평하게 갖는 걸 싫어하고 화를 내니 난감하죠.”

 

가끔씩 수업이 재미없으면 학원 핑계를 대면서 일찍 가겠다고 하는 아이도 있는데, 반대로 수업이 재미있으면 아이들이 학원에 빠지는 것도 감수한다.

 

1년이면 물갈이 되는 방과 후 교사

 

“영원한 친구가 없어요. 1년 계약직이니까. 교사들마다 강의 시간이 서로 다르고 학교가 매번 바뀌기 때문에, 교사들 간에 소통이 거의 없어요.”

 

K씨는 교사들 간에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겨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시스템은 자신이 담당한 수업에만 신경을 쓰게 되어 있어 전체 강사들의 역량 강화나 전체 방과 후 학교 질을 향상시키는 게 힘든 구조예요. 학교와 계약 기간이 1년이 아닌 적어도 2년 정도로 바뀌어 안정적으로 수업을 할 수 있도록 개선되면 좋을 것 같아요.”

 

방과 후 교사는 해마다 흔히 말하는 ‘물갈이’가 된다. 방과 후 교사는 공개 채용으로 해마다 형식적으로라도 면접을 보는데, 강의 평가가 좋게 나와도 안심하면 안 된다. 우수강사라도 채용이 안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 우수강사, 교육청 우수강사면 다음해 계약 시 우대를 해준다고 하지만, 학교 학부모위원회에서 특정 강사를 강하게 밀거나 하면 다른 사람이 들어올 수도 있다. 그만큼 고용이 불안정하다.

 

묻지마 원서와 콜비, 3% 떼이는 전기 사용료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여성일 경우 보통 서너 개 학교에 방과 후 수업을 나간다. 이렇게 다니려면 방과 후 교사 모집 기간에 ‘묻지마 원서’처럼 이곳 저곳 우선 서류를 많이 넣고 봐야 한다. 일반적으로 12월에 각 교육청 홈페이지에 다음해 강사 모집 공고가 올라온다. 그 한 달간은 서류 넣는 일로 정신이 없다.

 

“전에는 방학 중인 1월에 강사 모집 공고가 났어요. 지금은 12월에 면접을 봐야 하는데 12월에는 강의 중이기 때문에 각 학교별 면접 시간을 맞추는 것이 힘들어요. 시간은 없고 마음은 급하고, 차도 없으니 매년 12월이면 면접 보러 다니는 콜택시비만 10만 원 정도 나와요. 이 일로 생계를 책임지고 있어서 채용이 절실하거든요. 서류를 넣고 나면 항상 몇 곳 더 넣을 걸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욕심이기도 한데, 2학기가 되면 학생들이 줄거든요.”

 

방과 후 수업의 강의비는 매달 받는데, 학생 1명당 교육비 2만원으로 몇 년째 똑같다. 서류 심사 시 원하는 교육비를 교사가 직접 적어내지만, 다른 사람보다 높은 액수를 쓰면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적절한 액수로 수강비를 올리기가 쉽지 않다. 어떤 경우에는 학교에서 다른 강의와 형평성을 맞춘다면서 깎아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학교에서는 매달 강사가 받는 교육비에서 3%를 학교 운영비로 떼어가요. 전기와 에어컨 사용 명목이죠. 그 비율이 매년 조금씩 올라가는 추세예요. 방과 후 학교는 공교육에서 방과 후에도 아이들이 다양한 체험과 경험을 할 수 있게 마련한 제도인데, 왜 강사들이 운영비를 부담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끊임없이 공부하며 즐거운 교실을 위해 노력하다
 

K씨는 아이들이 더 재미있게 참여하는 수업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처음 방과 후 교사를 할 때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책도 많이 읽고. 지금은 노하우가 많이 쌓였죠.”

 

과학 수업 이야기를 하는 K씨의 얼굴이 밝아진다.

 

“올해 영화 <명량>이 유행해서 방학 방과 후 학교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거북선을 만들어 봤어요. 지구온난화를 주제로 걸어가는 북극곰 모형도 만들고요. 클레이를 이용해서 만든 로봇은 인기가 많았어요. 여러 가지 주제와 재료를 응용해서 아이들에게 과학을 재미있게 알려주려고 해요. 융합과학 분야죠. 아이들은 특히 먹는 것, 색이 다양한 작품을 만드는 걸 좋아해요. 미술 선생님도 가끔 색 수업으로 피자를 만들어요.”

 

학생들에게 특히 인기 있는 수업은 색소 실험이다. 식용색소로 무지개 탑을 만들거나 설탕으로 밀도 차이를 줘서 층을 쌓는 실험이다. 알록달록 예쁘게 완성된 색소 탑을 보면서 아이들이 환호한다고 한다. 이런 실험을 하면 수업 후 청소만 1시간여 하기 때문에 일찍 퇴근하고 싶으면 엄두도 못 낼 실험이다.

 

K씨는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학 수업을 고민하고 추구하다 보니 시간외 수당이 적용될 리 없는 뒷정리 시간으로 퇴근 시간이 늦어지고, 실험 준비물로 항상 가방이 무겁다. 어느 날 가방이 가벼우면 ‘내가 뭐 준비를 안 했나?’ 이런 생각이 든다고 한다.

 

음악이나 방송 댄스처럼 공연 분야인 수업은 각종 크고 작은 학교 행사에서 공연해주는 걸 요구할 때도 있다. 수업 외 시간까지 아이들을 연습시켜야 하고 행사 날짜에도 맞춰야 해서 방과 후 교사에게 부담이 된다.

 

학부모들은 특히 경연대회에 민감해서 “왜 우리 아이는 안 보냈냐?”며 항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경연대회는 아이들에게 수업 참가 동기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학생들 간에 실력 격차가 드러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교과 연계 수업보다는 창의적인 내용이 좋아요’

 

“지금 내가 50대 초반인데, 50대 후반에는 아무래도 방과 후 교사 활동이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학교에서 젊은 사람을 선호하니까요. 아이들이 집중하면서 즐거워할 때, 제가 기대하지 못한 부분에서 재미있어할 때, 이러한 장면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방과 후 교사로서 큰 즐거움이에요.”

 

교사가 편하게 수업을 하면 아이들은 재미가 없고, 교사가 청소를 많고 해야 하고 힘들면 그만큼 아이들이 재미있어 한단다. 일종의 과학 공식처럼, 아이들한테도 교사의 정성과 마음이 전달되는 것 같다.

 

“교과 연계 수업은 학원에서도 할 수 있으니까 아이들이 오히려 재미없어 해요. 방과 후 수업은 창의적인 수업들, 학원에서 할 수 없는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을 해야 돼요.”

 

부드럽게, 하지만 강하게 말하는 K씨의 말에서 아이들을 사랑하는 방과 후 교사로서의 자부심이 묻어났다. 이제 2학기다. 12월이면 다시 방과 후 교사들의 조용하지만 치열한 서류 전쟁이 시작된다. ▣ 리온소연
 

          <여성주의 저널 일다> http://www.ildaro.com         <영문 사이트> http://ildaro.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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