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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대비 실명제’로 성접대 규제해야
성산업 떠받치는 접대문화 이대로 둘 것인가
37살 남성 A씨는 모 패스트푸드 본사에서 일하던 몇 년 전 술자리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A씨는 당시 6년차로 영업기획팀에서 대리급으로 일하고 있었다. 친화력이 좋아서 점포개발팀의 직원들과도 자주 어울렸다. 한번은 점포개발팀 직원들과 같이 술을 마시게 됐는데 인테리어업자들이 그 술자리에 왔다. ‘같이 공사를 해서 친하나’ 보다 생각했는데, 그 후 자리를 옮겨 룸살롱에 가는 것이었다. 말로만 듣던 접대 현장이었다.
직원들은 룸살롱에서 취하도록 술을 마시면서 접대 여성들을 고르고, 이를 거절하는 A씨에게 “너는 왜 안 고르느냐” 하고 물었다. 이후 A씨만 빼고 나머지 직원들은 그 여성들과 ‘2차’를 나갔다.
A씨는 “점포개발팀의 직원들은 룸살롱의 마담이나 접대 여성들과 이미 친한 관계였다. 마담과 수시로 연락을 하고 문자도 주고받았던 걸 보면 자주 갔던 것 같다” 라고 말했다. 또한 “그 자리에 과장급이 있으면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빠져 나오기 힘들다. 내가 망설이는 동안 다 결정된다”면서 곤란한 상황을 토로했다.
성 접대하면 업무 진행이 매끄럽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3년, 기업이 영업 활동을 위해 쓴 접대비가 9조원대에 이른다. 1999년과 2005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증가추세에 있는데, 특히 룸살롱과 단란주점, 나이트클럽 같은 유흥업소에서의 법인카드 사용액이 1조 2천억 원대로 접대비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또 최근 몇 년 사이에 여성 접객원이 나오는 고급 요릿집, 이른바 ‘요정’에서의 접대비 사용이 급증하고 있다.
‘고객사에 성 접대를 하면 업무 진행이 매끄럽게 된다’는 이유로, 성 접대는 술 접대와 함께 효과적인 영업 방식이 되어 한국 기업들의 관행으로 자리 잡아왔다.
이 과정에서 성 접대를 원치 않는 남성직원은 거부 의사를 밝혀도 강제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그리고 여성직원은 ‘여성 도우미’가 있는 유흥업소에 따라가서 불편한 상황을 감내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직장 문화에서 소외되는 것이 현실이다.
▲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성매매 방지 홍보영상 <성매매, 그들의 일상이 무엇을 만드는가?>(2013)
직장 회식 자리를 포함하여, 한국의 접대문화는 성 산업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과 같다. 고객사 직원과 ‘여성 도우미’가 있는 카페, 노래방, 단란주점, 룸살롱에 가는 것은 일상다반사이고, 접대 여성과 각자 ‘2차’를 나가 성매매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모든 비용을 개인 돈이 아닌 법인카드로 결제한다. 집단 성매매를 할 수 있게 기업에서 돈을 대주고 있는 꼴이다. 법인카드로 비용을 지불하기 때문에 접대를 받는 쪽이나 접대를 하는 쪽 모두 경제적 부담 없이 성매매를 할 수 있다.
이름과 목적 밝히는 ‘접대비 실명제’ 부활시켜야
9월 26일, 성매매방지법 시행 10년을 맞이해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성매매 정책과 시스템에 대한 평가와 반성매매 여성인권운동 방향 모색>을 위한 토론회에서, 이런 현실에 대한 대안으로 ‘접대비 실명제’가 제기되었다.
접대비 실명제는 이미 2004년 시행된 바 있다. 건 당 50만 원 이상의 접대비는 이름과 장소, 목적을 밝히고 업무 관련성을 입증하는 지출 증빙을 남기도록 한 것이다. 접대비 실명제 시행 후, 금액을 나눠서 결재하는 등의 부작용이 있긴 했지만, 2005년에는 접대비가 6.5% 감소하였다.
하지만 접대비 실명제는 이명박 정부 들어, 규제를 완화하고 경제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폐지됐다.
이에 대해 박진경 인천대 기초교육원 교수는 “접대비 실명제가 폐지되면서 경기가 좋아지고 기업하는 여건이 좋아졌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오히려 “성매매 단속이 소홀해지고 실제 검거 인원이 급속하게 감소했다”라고 진단했다.
‘성매매문제해결을 위한 전국연대’와 국회의원 남윤인순, 국회 성평등정책 연구포럼이 주최한 이번 토론회에서, 박진경 교수는 “접대 문화는 부패의 온상이 될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된 성 산업을 부추길 뿐”이라며, 접대비 실명제와 함께 성 접대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처벌을 위해 성매매방지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행 성매매방지법에는 ‘성 접대’에 대해 ‘거래나 업무 관계에 있는 상대방에게 거래나 업무 행위에 대한 대가로서 성을 제공하거나 알선.권유하는 행위를 말한다’ 라는 규정만 있을 뿐, 이에 대한 처벌 규정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 나랑
<여성주의 저널 일다> http://www.ildaro.com <영문 사이트> http://ildaro.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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