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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 ‘일’을 논하다> 대기업 입사 3년차, 수민 
 

2014년 <일다>는 20대 여성들이 직접 쓰는 노동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경험을 토대로 ‘일’의 조건과 의미, 가치를 둘러싼 청년여성들의 노동 담론을 만들어가는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의 지원을 받습니다. www.ildaro.com

 

훌훌 털고 떠나는 동기들의 뒷모습

 

▲  나는 대기업 입사 3년차 사원이다. 요즘 들어 퇴사하는 동기가 늘었다. 
 

회전문이 빙그르르 돌아가는 순간, 불현듯 시간의 흐름이 느리게 느껴지면서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찬찬히 눈에 들어온다. 무심한 듯 보이지만 피로와 체념이 가득한 눈을 한 일단의 무리가 시큰둥하게 회사 정문을 들어서는 모습. 회사에 입사한 이후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익숙해진 월요일 아침의 풍경이다.

 

입사 합격자 발표를 PC방 한 귀퉁이에서 확인하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던 기억은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초등학교 동창의 모습처럼 희미해졌고, 사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월요병만이 생생한 현실로 남았다. 이제는 무엇을 위해 사는지 알 길이 없어 헤매고 있는 입사 3년차 사원, 그게 바로 나다.

 

퇴사의 유혹이 찾아온다는 3, 6, 9년차의 첫 번째 시기. 그래서일까. 요즘 들어 유난히 퇴사하는 동기가 늘었다. 훌훌 털고 떠나는 그들의 마음에도 불안은 있겠지만 왠지 그 뒷모습이 부럽고 눈에 밟히는 것은 비단 직장 생활에 대한 싫증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하청업체 직원 “OO씨, 우리도 요새 너무 힘드네”

 

물론 나도 처음 입사할 때는 꿈도 포부도 자신감도 충만한 상태였다. 패션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옷에 관심은 있었던 터라 잘 배워보겠다는 각오로 누구나 들으면 알만한 패션기업에 입사했다. 영업부서를 거쳐 상품기획부서로 옮기기까지 열심히 달려왔다. 야근을 해도 야근수당을 올릴 수조차 없는 분위기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야근에 야근을 거듭했다. 나에게 가장 소중했던 ‘내 시간’은 없어졌지만 그래도 그 때는 즐거웠고, 행복했다.

 

그런데 내가 변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건, 회사에 들어온 어느 하청업체 직원과 대화를 할 때였다. “OO씨, 우리도 요새 너무 힘드네. 손해 나는 일을 하자고 해도 여기서는 거절도 못 하고… 나도 이 일 그만둘까 싶어.” 엄마와 닮지도 않았고, 엄마 또래도 아닌 아주머니 뻘 되는 업체 직원 분의 얼굴에 삶의 노곤함이 가득한 엄마의 얼굴이 겹쳐졌다. 중고등학교 시절 엄마 혼자 나와 동생을 키우느라 점점 말라가시던 고된 삶의 무게가 그 분에게서도 느껴졌다.

 

나는 사실 그래도 어르고 달래고 윽박질러서 일을 맡겨야 했다. 업체 입장에서는 다른 회사 일을 맡는 것보다 더 손해임을 잘 알고 있음에도, 대기업의 일을 맡아 한다는 명목으로 다른 일도 수월하게 따낼 수 있을 거라며 두리뭉실하게 치장하고 일을 떠 안겼어야 했다. 그게 내 일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몇 주 후. 그 업체와 상담이 잡혀 있는 날이었다. 낯익은 아주머니가 아닌 다른 사람이 회의실로 들어섰다. 그 아주머니는 결국 일을 그만두셨다고 했다. 우리 회사 높은 분들과의 간담회에서 임원씩이나 되신다는 분이 많은 업체 분들을 앉혀 놓고 이 새끼, 저 새끼 하며 욕을 하셨단다. 자기네 직원들한테 하는 것도 모자라 조그만 업체랍시고 다른 업체 사람들에게조차 그 따위 몰상식한 폭력을 일삼는 무식한 행태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의사소통이 하늘과 땅 차이 수직구조인 이곳

 

어느덧 익숙해진 일상이 낯선 풍경이 되어 다가온다. 조그만 업체가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는 듯한 회사 분위기, 마찬가지로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라고 생각하는 대다수의 직원들. 임원이라는 사람은 팀장들을 모아 놓은 회의에서 실적을 이유로 핸드폰을 집어 던지고, 그렇게 당한 팀장들은 팀에 돌아와 밑의 직원들을 들들 볶는다. 겉만 번드르르하게 포장했지 현실과는 거리가 먼 거짓 보고를 올려야 하고, 또 그래야 번드르르한 내용에 흐뭇해하는 상사들.

 

그래서 현업의 고충도 현실의 문제도 깨닫지 못한 채 의사소통이 하늘과 땅 차이의 수직구조를 이루고 있는 이곳의 현실. 지시 받은 대로 일을 하다 보면, 아무 논리도 없이 단지 더 윗사람이 시켰다는 이유로 방향을 틀어야 하고, 그렇게 반복하다 같은 일만 10번쯤 하게 되는 무개념한 업무 방식. 도대체 회사가 어떻게 굴러가는 건지 알 도리가 없다. 넌덜머리가 난다. 머리가 띵하게 울린다. 나는 도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그렇게 숨이 턱까지 차 있는 나를 발견했다. 쿵! 무언가 내려 앉는 소리가 들린다. 어느 순간 발견한 나는 물도 음료도 아닌 ‘2%’ 같은 흐리멍텅한 모습이었다. 부당한 일을 봐도 ‘그냥, 내가 어쩔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불합리한 논리를 들어도 ‘그냥, 내가 얘기해도 듣지 않으려고 할 테니까…’

 

학교 다닐 때의 나는 분명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크게 소리 내어 웃어도 부끄럽지 않고,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어도 쪽팔리지 않고, 옳다고 생각하는 건 옳다고 주장할 줄 알고, 그르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몸부림 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충분히 자유분방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이 좋았다. 세상에 웃고 싶을 때 웃고,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사람이란 그리 많지 않으니까. 그래서 대기업에 입사한다는 나를 두고 친구들이 많이 웃었었다. 그런데 나는 기업 문화에 물든 초라한 행색의 샐러리맨이 되어버렸다. 쿵!

 

어떤 사람들은 이야기할 것이다. 배부른 소리라고. ‘청년실업’이라는 화두가 식상해질 만큼 일상화된 시대에, 대기업에 취직해 생활이 넉넉할 만큼의 돈도 벌고 엄마의 어깨를 으쓱하게 해 줄 수 있는 지금의 내가 불만이라는 건 배부른 자의 여유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나는 나를 잃었다. 밤을 새워 이야기해도 지치지 않을 꿈도, 스스로 굽히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용기도 잃고 현실감각만을 날카롭게 갈아놓았다. 전혀 행복하지 않다. 이 순간 내 자존감은 저 밑바닥을 기고 있다. 가진 거 쥐뿔 없어도, 쌀이 없어 이틀을 굶어도 스스로를 부끄러워 한 적은 없었는데… 내 스스로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소리 없는 반항을 하며

 

그렇다고 막상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강단은 나에게 없다. 없는 형편에 학원 한번 보내주지 못했다며 눈물을 훔치던 엄마의 얼굴,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해 부산을 떠날 때 꼬깃꼬깃 쌈짓돈을 쥐어주시던 꺼끌한 엄마의 손, 딸의 대학 졸업식이라며 아픈 몸을 이끌고 상경한 엄마의 밭은 기침 소리. 홀랑 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도, 엄마는 “그래 네가 그래야 한다면 이유가 있겠지” 하고 마시겠지만 분명 속으로 쓴 물을 삼키고 있을 거라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울컥하는 가슴을 부여 잡고 일단은 주저 앉았다.

 

그리고는 그저 소리 없는 반항을 하고 있다. 봉제공장에 샘플 생산을 넣고 샘플비를 지급할 때, 업체가 요청한 금액이라며 하도급법을 빌미 삼아 회사가 자체적으로 정한 규정보다 조금 더 샘플비를 지급하곤 한다. 부자재 업체와 새로운 부자재를 개발하면, 업계 관행상 가격 협상을 고려해 조금 올려 책정해 요청한 개발비를 협의하지 않고 지급해줘 버린다.

 

하청업체 담당자들의 불만과 목맨 소리에 잠시라도 귀 기울이고 따뜻한 차 한잔 대접하며 서로를 한탄해 본다. 참 소소하다. 그런 소소한 것들로 내려 앉은 자존감을 찾고 다시 한 번 시동을 걸어본다.

 

내가 언제까지 이 회사를 다닐지는 알 수 없다.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가는 나 또한 훌훌 털고 일어서지 싶다. 얼마간의 불안을 끌어안은 채. 그래도 확신할 수 있는 건 좀더 많이 웃고, 좀더 많이 울고, 좀더 많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용기를 가진 나는 이전의,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행복할 거란 사실이다.  ▣ 수민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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