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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날들

집과 길, 사람과 풍경, 몸과 마음을 잇는 삶 또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
 

 


이 책은 자연의 흐름을 따라 살아가며 자연을 닮아가는 사람의 모습과 그 여정을 담고 있다.

 

읊조리듯 졸졸졸졸 흘러나오는 작가 특유의 문체는 읽는 이들을 조용히 주목시키고, 마음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보도록 돕는다. 작가의 나직한 목소리는 어린 시절부터 형성되어 우리 안에서 “말없이 웅크리고 있”을 어린 아이를 토닥토닥 다독이며 위로한다. 또, 자연과 야생에 대해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도시에서 형성된 공포의 이미지나 편견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그 사이로 평화로운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는, 당분간 이대로 살기로 한다. 가진 것 없고 아직은 변변한 계획조차 없지만, 왠지 올 한 해도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이 예감이 꽤 그럴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나에겐 이 상태로 갈 데까지 가보는 게 결코 나쁘지만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다. 어차피 하나의 길을 넘어서지 않으면 다른 길을 경험할 수 없을 테니까. 지금 내가 발 딛고 선 길이 품고 있는 수많은 이정표를 만나고 선택하는 가운데, 비로소 다른 길로 향하는 통로를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이대로 괜찮을 거라는 예감 혹은 믿음] 中 , 259면

 

첫 번째 이야기, 집과 길

 

“한참 잊고 있던 그 엽서를 다시 보게 된 것은 달포 전 청소를 하면서다. 마루 구석 책장에 꽂힌 책들 사이에서, 그것은 오래되어 변색이 진행 중인 종이들과 함께 천천히 삭아가고 있었다. (중략) 왠지 마음이 애잔해져서는 한참을 엽서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가 문득 알게 된 사실 하나가 있다. 그림 속 집, 그러니까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이 오래 전 내가 살던 어떤 집과 참 많이 닮았다는 것이다.”

[집에서 집으로, 아득한 시간 여행] 中, 32면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처음 만나고 마치 첫눈에 반한 것처럼 사랑에 빠져 “냉큼 짐을 싸갖고 들어앉은 지 5년째.” 어느 날, 이 집에서 과거의 기억 속의 사람들을 만난다. “약간은 뚱한 표정에 어깨를 웅크린 한 아이.”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은 어린 날의 작가 자신이다.

그리고 또 “불쑥 떠오른 엄마의 꽃밭”과 “엄마”. 그리고 “한여름 볕이 뜨겁던 어느 일요일, 마당에 커다란 함지박을 갖다 놓고 나와 동생에게 물놀이를 시켜 주던 아버지의 장난기 넘치는 눈빛을” 차례차례 만난다.

 

이 책이 주는 또 하나의 선물!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빚어내는 문학, 그 깊고 수려한 말투를 느껴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이 주는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텃밭 양배추 위를 날아다니는 나비를 보면서, 헤세가 쓴 『나비』를 떠올리며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목적 없이, 계획하지 않고 애쓰지도 않고, 다만 꽃에서 꽃으로 빈둥거리는 방랑자. 이 구절을 읽으며 나는 알 것도 같았다. 누군가 나비를 통해 자신에게 결핍된 무언가를 느낀다면, 그 무언가는 바로 자유롭게 빈둥거릴 자유라는 것을. 목적이 분명해야 성공할 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강변하는 세상에서,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게 미덕으로 칭송되는 사회에서, 대다수의 사람은 목적과 계획 없이 방랑할 권리를 잃어버렸기에 마음속 한 구석에서나마 그걸 동경하고 그리워한다는 것을.”

[감꼭지 쓸다, 나비에 취하다] 中, 70면

 

 

두 번째 이야기, 사람과 풍경

  

동네에서 할머니들의 모습, 어느 비 내리는 날 두 팔을 하늘로 치켜들고 춤을 추던 인도인 친구들, 저녁상을 물리고 뜨근한 방바닥에 나란히 누워 책을 읽는 밤, 좁은 골목길을 내달리는 아이들, 천 년 역사를 간직한 나무 사이를 걷는 사람과 침묵…

그리고 미얀마 파고다 숲에서 수천 개의 불탑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재빨리 사라진 노을, 시골고양이들이 만드는 무심하고 태연한 풍경, 매화 꽃잎이 일시에 흩날리면서 꽃비가 되어 내리는 풍경….

 

책 속에서 저자가 그리는 풍경은 기적적인 순간처럼 그려지고, 아름다운 영상처럼 느껴진다. 그는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을까?

“내게 좋거나 좋지 않거나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거나, 그 모든 게 결국은 내 영혼을 빛나게 해주는 기적임을 자각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내 생애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놀라운 기적”이 아닐까 하고 책은 답을 하고 있다.

삶의 진정한 기적은, 지금 이 순간 내게 일어나는 일들이 더함도 덜함도 없이 똑같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서 시작될 거라며.

 

“좌절과 희망, 고통과 기쁨을 동시에 안겨준 그 방황을 통해, 나는 내 안의 분열된 자아상들, 혹은 내 안의 분열된 자아상이 투사되어 나타난 타인들과 전쟁을 치르고 화해하기를 반복하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변하지 않는 한 다른 삶은 없음을. 나로 사는 삶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하든 매 순간에 나는 내가 선택한 나로 사는 것임을. 그러므로 한 순간도 내가 아닌 적은 없었음을.

[나는 매 순간 내가 선택한 나로 산다] 中, 314면

 

 

세 번째 이야기, 몸과 마음을 잇는 삶과 사랑

 

“소음이 적은 머리형 남자, 감정에 충실한 까다로운 여자”와의 만남.

사랑보다 우정에서 관계를 시작하고 싶어서 처음에 K가 ‘사귀자’고 했을 때는 딱 잘라서 거절했다가, 이후에 시골 생활을 시작하면서 “아직도 내가 좋으면 같이 한 번 살아보자”고 제의하고, 둘이 시골생활을 함께 시작한 지 5년째.

 

상을 다 차리고 나니, 어느새 밖은 환하고 창유리 가득 낀 성에꽃이 창백한 겨울 햇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지난밤 매서운 추위가 다녀가면서 희뿌연 자취를 남긴 마당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나는 작은 목소리로 ‘해피버스데이투유’하고 속삭인다.

이는 앞으로 우리 두 사람이 스스로를 더 많이 열고 서로에게 스미면서 사랑할 날들에 던지는 축하의 메시지다. 그 소리에 일어난 건지, 아니면 고소하고 비릿하게 퍼져 가는 생선 굽는 냄새에 깬 것인지, K가 방문을 열고 부엌으로 걸어오고 있다. 다시 한 번 해피버스데이투유. 당신과 나, 그리고 날마다 다시 태어나는 우리의 관계를 위해.

[생일상 차리는 아침] 中, 135면

 

자연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이번 생에 가장 가까운 인연으로 만난 동반자 K와 함께 햇살과 바람과 별들과, 또 마당을 오가는 길고양이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고 있”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서른아홉에 그 전환점을 찍은 이후로 과거와는 전혀 다른 방랑을 시작한 나는, 감히 말하건대 좀 더 많은 것들에게 다정해지고 살가워졌다. 이를테면 흠집투성이인 파란 나무대문과, 비만 오면 깨지고 금간 시멘트 사이로 실지렁이가 기어 나오는 마당과, 두더지가 파헤쳐놓아 엉망이 된 텃밭에, 또 꿉꿉하고 눅진한 유년의 기억과, 그 위로 겹쳐지는 상처들에. 심지어는 내 몸과 마음을 비롯해 찬란한 빛을 잃고 점점 쇠락해가는 세상의 모든 덧없는 것들에게까지.

그러고 보니 지난 7년의 시간은 나 자신과 삶과 이 세상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위해 꼭 필요한 여정이었음을 이제 알겠다. 앞으로 더 많이, 더 깊이 사랑하기 위해서 지금 이 순간이 존재한다는 것도.

[더 많이, 더 깊이 사랑하기 위한 시작] 中, 23면

 

저자 소개 : 자야

세련되고 폼 나는 도시여자로 먹고사는 게 힘들어 시골로 내려와 이전과는 다른 삶의 여정을 시작한 지 8년째. 지금은 함양의 작고 평범한 마을에서 이번 생에 가장 가까운 인연으로 만난 동반자 K와 함께 햇살과 바람과 별들과, 또 마당을 오가는 길고양이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고 있다.

도시에서 살 때와 마찬가지로 현재도 글 쓰고 책 만드는 프리랜서로 최소한의 밥벌이를 하는 중. 앞서 펴낸 책으로는 인도 여행과 요가 수련의 경험을 담은 『인도, 휘청거려도 눈부시다』가 있다.

 

차 례

프롤로그.

더 많이, 더 깊이 사랑하기 위한 시작

 

1장. 낡은 집, 오래된 풍경

집에서 집으로, 아득한 시간 여행 / 포도나무와 그들의 사랑 / 우리 집 마당 고양이들을 소개합니다 / 감꼭지 쓸다, 나비에 취하다 / 사라지는 개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 빈집에 온기를 불어넣는 상상 / 별은 없어도 아궁이는 반짝반짝 / 이오덕과 권정생을 읽는 밤 / 생일상 차리는 아침 / 그 하나가 없어도 삶은 눈부시다

 

2장. 삶, 이전과는 조금 다른

춘분, 한 해의 시작 / 다르게 상상하고 사랑할 능력 / 산 아래 밭의 일곱 계절 / 비 내리는 어느 멋진 날 / 어느 날 포플러가 내 가슴에 들어왔다 / 언플러그드로 여름 나기 / 내 밥상 위, 심심한 소울푸드 / 되살아나는 호모 파브르의 기억 / 개비리길을 걸을 날이 또 올까?

 

3장. 가깝고 먼 길 위에서

새해 첫날, 안국사에서 / 서울 영화관 나들이 / 뱀골저수를 향해 걷다 / 다시 찾은 지리산 뱀사골 / 미얀마의 파고다 숲에서 / 백암산을 오르며

 

추천의 글

“자야가 귀촌했다는 소식을 들은 지 몇 년. 그간의 생활을 조곤조곤, 그러나 솔직담백하게 풀어놓은 이야기는 마치 소박하지만 정성을 들인 시골 손님밥상 같다. 저자는 ‘귀촌살이’를 방랑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이전의 정처 없는 방랑이 아니라 자신의 본성과 가까워지기 위한 방랑으로 보인다. 또 본인 말대로 부족하거나 허점이 많이 때문이 아닌, 진리에 관한 한 어떤 정형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자유인의 마음으로 읽힌다. 그 점에서 저자의 경험은 귀촌을 꿈꾸는 이에게는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도 유용한 지침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자연과 가까운 일상을 통해 행복해지거나 지혜로워진 자야의 목소리가 담긴 이 책을 통해, 좀 더 많은 이들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 것보다 원하지 않는 것을 비켜가는 법을 배우길 바란다. 자신이 진정 바라는 삶의 모습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비결은 결코 거창하거나 아주 많은 희생과 큰 용기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도.“

- 임순례  영화감독.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남쪽으로 튀어> 등 제작,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대표


“지은이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잘 넘어지고 쉽게 상처 입고 겁이 많아서 방어적인 데다가 예민하며 삶에 서툴러 보인다. 보통사람인 내가 겪었거나 겪고 있는 감정, 상황, 상처를 보여준다. 그런데, 너무 잘 보여주는 거다. 자신을 보여주는데 내가 보이고, 자신을 위로하는데 내가 위로를 받고 있다. 자박자박, 자분자분, 가만가만, 졸졸졸졸, 걷고 말하고 행동하고 흘러가는 그녀의 삶을 한동안 곁에 두고 읽으리라. 존재하는 것으로 이미 충분하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 박계해 『빈집에 깃들다』저자, 경남 상주시 함창읍 <까페 버스정류장>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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