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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않은 미래의 발견> 밀양의 할매들, 나무를 껴안고 별이 되다 
 

밀양 할매들의 구술사 프로젝트 <꽃보다 할매>팀 참여자들이 최종 마무리한 글들을 읽고 있었다.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공책에 꾹꾹 눌러 베껴 쓰지 않고서는 울컥 넘어오는 뜨거운 무언가를 막을 수 없게 만드는 구절들과 마주치곤 했다. 베껴 쓰고는 몇 겹으로 동그라미를 치고 그 위에 세 개 네 개 별을 그리게 만드는 구절들. “우째겠노, 또 해 봐야제. 내 가는 거 뭐 겁나노? 가면 되지.”

 

가령 상동면 도곡리를 지키는 88세 조계순 할매가 전하는 이 ‘목숨 내건’ 투쟁의 말은 참으로 가슴에 사무치고 참으로 고요해 심장이 터져버릴 것만 같다. (조계순 할머니의 구술은 유해정이 기록했다.)  

▲  밀양 할매들의 생애 구술사를 담은 <꽃보다 할매>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 노순택 작가 제공 
 
 

나는 할매들의 말에 동그라미를 치고 반복해서 별을 그려 넣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이 할매들이 별이 되었구나. 흙이다가 돌이다가 이제 별이 되어 하늘에 떠 있기 시작하였구나. 그러고 보니 은은하기가 이루 말 할 수 없다. 바라다보면 볼수록 깊게 굽이굽이 흐른다. 이 별들은 가까이, 아주 가까이 있어 손을 뻗기만 하면 그 빛 무리에 바로 접속이 될 뿐 아니라 아무리 깊숙이 들여다보아도 눈이 머는 일 같은 건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마냥 끌려들어가다 그저 함께 흐르고 싶다는 마음을 진하게 할 뿐이다.

 

원 많고 한 많은 눈물을 훔치다가 합창하듯 일제히 웃음을 터뜨리는 이 할매 별들. 그녀들의 목소리에는 된장을 닮은 듯 감을 닮은 듯 떫고 달달한 내음이 묻어나기도 한다.

 

밀양에 열린 창공

 

별은 빛나는 무엇이다. 어떤 별이든 빛남이 있기에 별이다. 그리고 빛남으로써 별은 손짓이 되고 미소가 되며 지도가 된다. 어두운 밤, 길을 잃었을 때 우리는 하늘을 본다. 떨쳐지지 않는 상념들로 마음이 혼탁할 때, 절망으로 마음이 새카맣게 타들어갈 때 우리는 하늘을 본다, 별을 센다. 홀로 버려졌다고 생각될 때 우리는 별을 보고 눈물짓는다. 별은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그 여정에 따라 천의 얼굴로 바뀐다. 살면서 우리가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 건, 삶이라는 어두운 여행길에 길잡이가 혹은 동반자가 되어줄 별이 아닐까.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며, 갈 수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별빛이 그 길을 환하게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게오르크 루카치(György Lukács)는 공동체적 삶의 방향을 상실한 채 제각기 알아서 길을 찾아나서야 하는 근대적 개인의 고단한 삶을 이렇게 표현했다(『소설의 이론』 1916). 칠흑같이 어두운 밤인데 지도 한 장 없이 긴 여행길에 나서야 한다. 과연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어디서 멈추고 어디로 다시 떠나야 하는지. 신발 끈을 아무리 단단히 조여매도 당혹스러움과 난감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털썩 주저앉아 울고 싶을 뿐이다.

 

루카치는 이러한 실존적 상황을 ‘선험적 거처 없음’이라고 불렀다. 비를 피하거나 지친 머리를 뉘일 수 있는 거처, 즉 고향을 상실한 현대인들의 삶은 표류하거나 무의미한 반복에 빠질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복잡한 역사철학을 언급할 필요도 없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는 삶의 여정이, 그 궁극의 목표나 의미가 모두에게 자명한 시공간이 아니다.

 

그러나 모두에게 통용되는 단 하나의 의미라는 것도 규범적 억지, 쉽게 폭력으로 전화할 수 있는 강요된 합의 아닌가. 이것은 자연과 인간 사이의, 그리고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관계가 조화와 교감 속에 뿌리내리고 있었다고 간주되는 저 근대 이전의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공동체가 제시하는 지도가 (공동체 외부의 타자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공동체 내부의 ‘모든’ 사람에게 선험적 고향이나 지붕일 수는 결코 없다.

 

그러니 창공에 별들도 더 이상 빛나지 않고, 지도도 더 이상 전승되어 내려오지 않는다고 한탄할 일만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 생성되고 있는 별과 새로 제작되고 있는 지도를 향해 눈을 돌리고 손을 뻗는 게 지혜로운 여행자의 모습이다. 잘 살펴보면 의외로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별들이 적지 않음을 발견하게 되리라. 그 별들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 걷다보면 함께 동행할 수 있는 이웃 또한 적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리라.

 

내게는 밀양의 할매들이 바로 그런 별들이다. 은하수가 되어 흐르고 있는 이 별들이 비춰주는 길이 아프고 소중하다.

 

내 나이가 어때서, 투쟁하기 딱 좋은 나인데

 

'밀양의 할매'는 상징적 기호가 되었다. 밀양에서 투쟁에 동참하는 사람들 중에는 할배도 있고, 할매나 할배라고 부르기에는 생물학적으로 나이가 꽤나 젊은 사람들도 드물지 않다. 사십대에서부터 팔십대까지 찾아보면 모두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밀양에서 저 무지막지하고 집요한 자본폭력과 국가폭력에 맞서 분노하고 저항하는 사람들은 모두 '할매' 안으로 수렴된다.

 

사전적으로 ‘할머니’의 지역 방언이라고 설명되는 ‘할매’라는 호칭에서는 그러나 할머니와는 다른 느낌이 묻어난다. 어느 정도 격식 허문 장난기를 허용하는 친근함이랄까, 삶의 구체적 현장에서 자라난 지략의 맛이나 질감이랄까 뭐 그런 것이 느껴진다. 정통이나 주류가 가지지 못한 비주류의 상황적 수행성이 할매의 정체성에는 깔려 있다. 특히 ‘밀양 할매’에는 이런 수행성의 의미가 풍부하다.

 

할매들, 특히 서울로 농성 오는 할매들은 말 잘하고 가무에 능하기로 소문났다. 내가 만난 86세 김사례 할매는 ‘서울 가서 농성할 때 기타 음악이 좋길래 고고 춤을 좀 췄더니 수녀님들이 좋아하대’라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음악이 괜찮고 ‘좀 돌 줄 아는’ 파트너가 있으면 지르박 추는 것을 제일 선호하신단다.) 예전에는 못하던 욕도, 분이 치밀어 오르면 거침없이 쏟아내는 ‘능력’을 가진 할매들도 있다. 손과 발로 힘껏 나무를 끌어안는 것 외에는, 크레인 앞에 누워버리는 것 외에는 힘이 없어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현장에서 그나마 거친 욕설이라도 퍼부을 수 있는 이들의 역할은 너무나 중요하다.

 

할매들은 또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손수 깊은 구덩이를 파고 그 옆에 수십 명은 너끈히 묵을 수 있는 거처를 짓는다. 깻잎 개키면서 농성하고 타지로 농성 갈 때엔 버스 안에서 내내 춤추고 노래한다. 나는 할매들의 이처럼 다양한 즉흥적 수행성이 놀랍기만 하다. 도시에서 나이 들며 영락없이 전형적인 ‘할머니’가 되는 여성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힘이다.  

▲  '밀양의 할매'는 상징적 기호가 되었다.   © 밀양 765kV송전탑 반대 대책위 (촬영 - 이상범) 
 
 

할매들이 즐겨 부르다 아예 자신들의 투쟁가로 삼은 노래가 있다. <내 나이가 어때서>다. “투쟁의 나이가 있나요 / 마음은 하나요 느낌도 하나요 / 그대만이 정말 내 사랑인데 / 눈물이 나네요 내 나이가 어때서 / 투쟁하기 딱 좋은 나인데 / 어느 날 우연히 거울 속에 비춰진 /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세월아 비켜라 / 내 나이가 어때서 투쟁하기 딱 좋은 나인데.” ‘사랑’이 들어갈 자리에 ‘투쟁’을 넣고 춤바람 신바람 날리며 목청을 뽑는 할매들을 보면서 신나게 손뼉 치고 깔깔거리며 웃다가도 슬그머니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렇게 투쟁가가 갖춰지기까지 견뎌온 혹독한 ‘아픔’의 시간이 어렴풋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그 ‘아픔’의 시간 속에서 나이 든 여성들의 숨겨진 능력이 빛을 발하게 된 게 울컥 하도록 고맙기 때문이다.

 

부북면의 127번 움막을 찾아갔을 때 그곳의 지킴이 중 한 분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밀양 투쟁의 이야기는 세 개의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외지에서 와 잠시 있다 가는 사람이 첫 단계 이상을 알 수 있겠냐.’ 아마도 그 첫 단계가 늘 언론이나 인권 관련 보도가 언급하던 단계일 것이다. 주민들의 삶 터전에 대한 권리, 한전의 폭력에 맞서 싸워온 투쟁의 현장, 핵 발전의 문제, 탈핵의 필연성, 환경보호,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오염 덜 된 생태계 등, 누구라도 올바른 안내서를 쓰려면 짚고 넘어가야 하는 항목들이 잘 배치되어 있는.

 

그렇다면 두 번째 단계는? 세 번째 단계는? 알 수 없다. 더듬이로 짐작할 뿐이다. 보상금이나 투쟁의 방식, 매일 매일 몸으로 해내야 하는 역할들, 토착민이냐 이주민이냐에 따른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선, 한전 ‘놈들’에게 당한 치욕과 수치심 등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드는 상처들 사이에 켜켜이 쌓인 감정과 이야기들을 다 알거나 이해할 수는 결코 없으리라.

 

그러나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주름진 얼굴을 보면서 받게 되는 놀라움은 이해나 앎의 부재와 무관하게 충분히 강렬하다. 그 이야기 안에는, 그 얼굴에는 굳은 결기와 고요한 체념과, 일상의 물결에 띄워 보내는 순진한 미소가 동시에 머문다. 7년간 이어져 온 투쟁의 마디에서마다 변형되고 익어 간 그녀들의 삶, 그 삶에 대한 그녀들의 이해와 해석, 그 이해와 해석을 통해 도달한 그녀들의 자기이해. 그리고 그전과는 다른 이웃이 된 이웃들. 이 모든 것이 얼마나 놀라운지.

 

‘이렇게 최선을 다했는데도 결국 송전탑이 들어온다면’ - 송전탑이 하나 둘 세워지기 시작하면서 할매들의 이마에는 늘 이 질문이 걸려있다. 그래도 앞으로는 어디서든 송전탑을 세우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7년 동안 투쟁을 해 오면서 그녀들은 지칠 대로 지쳤다. 그리고 ‘저들’이 원하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송전탑이 자고 나면 떡 보이고 자고 나면 떡 보이고…. 맥이 하나도 없다. 살맛이 안 난다. “이게 들어오면 우리가 생명을 보존하고 살 수 있을까. 눈만 뜨면 시야를 가로막고 괴물 같이 서 있을 텐데.” 그녀들의 한숨이 깊어진다.

 

송전탑은 그녀들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세워지고 있다. 바람 불면 휘휘 스산한 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철탑만 들어오겠나, 싶다. “나중에는 완전 거미줄처럼 새끼를 칠거다.” 시야를 가로막는 송전탑을 보며 막막한 심정으로 기도하듯 읊조린다. “이래서 우리가 그렇게 목숨 걸고 싸웠던 거구나. 내가 싸우지 않다가 이걸 봤으면 얼마나 후회했겠나. 송전탑 안 들어오게 하려고 그리도 오래 싸웠는데 그래도 들어왔구나. 그러나 역시 싸웠으니까. 이제 어쩔 수 없다. 내 힘으로는 되지 않는가보다.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겠나. 우리 정말 많이 싸웠다. 밤낮없이.”

 

송전탑 건설을 막는 싸움은 이렇게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되었다. 싸웠기에 후회가 없다.

 

“내 팔자 내가 안고 산다 카지”

 

“할매가 온다” 글씨가 새겨진 동그란 배지를 단 투쟁 조끼를 입고 바스라지는 몸에 아픈 다리를 끌며 화악산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이 할매들은 지금 자신의 팔자를 스스로 완성시키고 있다. 일제시대, 대동아전쟁, 6.25 전쟁과 빨갱이 시대 다 지내왔지만 이런 전쟁은 처음이라고 말하는 86세 김말해 할매. 손톱 발톱 뭉개지도록 오만 일 다 하며 힘겹게 살아왔어도 이 삶은 할매의 삶이고 할매는 자신의 삶을 껴안고 마지막 순간까지, 끝까지 가고 싶다. (김말해 할머니의 구술은 배경내가 기록하였다.)

 

밀양에 세워지는 송전탑 괴물을 막으려 온 몸을 던지는 할매들 모두를 묶어주는 강한 연대의 힘은 ‘분함’이다. 이 분한 느낌은 분노이면서 분노 이상이다. 이 ‘분함’에는 평생 껴안고 살아내야 했던 ‘팔자’의 소유권조차 빼앗으려 하는 자본과 국가를 향한 항거가 있다. 시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자식들이 돌아올 수 있는 장소를 남기기 위해서, 병든 몸과 마음을 낫게 해 준 저 고맙고 아름다운 나무와 잎새를 다치게 할 수 없어서 등등 각자 투쟁의 이유는 다르지만 할매들의 투쟁에는 평생 살아낸 삶의 의미와 가치를 훼손당하거나 빼앗길 수 없다는 강한 감정과 의지가 일렁인다.

 

살면 살고 죽으면 죽는 거지, 길게 말할 것도 없이 이렇게 딱 잘라 말하는 할매들. 유서를 품고 다니는 이 할매들의 시간에는 ‘이제 다 늙어서 무슨’, ‘나이 들어 외롭다’, ‘안 아픈 데가 없이 오만 군데가 다 아프니 슬프다’ 등의 푸념이 깃들지 않는다. ‘감 내고 콩 내고 쌀 내고 그래 쪼금씩 모아 가지고…. 정확히 한 해에 한 마지기씩 사 모은 밭’을 무용지물로 만들면서 ‘그 한 마지기 살 때마다 그리 좋아했던’ 기쁨과 가치까지 모조리 헛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자본에 분하고, 힘없는 백성이 국가에 하소연해야 할 판국에 사지 잡아 내동댕이치는 경찰이 애달플 뿐이다.

 

나는 할매들이 평생의 삶을, 고통이든 슬픔이든 하나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온전하게 자기 것으로 안고 가려는 그 태도야말로 밀양 할매들이 별이 되어 우리에게 비춰주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자기를 부정하지 않고, 살아온 삶의 가지들을 다가올 죽음 안으로까지 심고 이어가려는 이 단순하고 명료한 태도야말로 우리가 함께 제작해 나갈 지도가 아닐까. 나는 밀양 할매들처럼 늙고 싶다. 국민을 배신하는 국가에, 공동체의 현재와 미래를 파괴하는 파렴치한 자본에 ‘분하다’ 부르르 떨면서 온몸으로 끝까지 싸우는 밀양 할매들처럼 포기 없이 늙고 싶다. ▣ 김영옥 www.ildaro.com
 

※ <꽃보다 할매> 프로젝트는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의 의미와 필연성을 투쟁 주민들 각자의 전 생애 안에 통합적으로 위치시키고자 생애 구술사를 시도하고 있다. 필자도 참여하고 있는 이 프로젝트의 구술 원고들을 참조할 수 있게 허락해준 참여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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