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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이 곧 삶이고, 삶이 곧 굿이로구나
www.ildaro.com 다큐멘터리 영화 <만신> 


굿을 처음 본 것은 1998년, 스물세 살 무렵이었다. 그해 홍익대 앞, 지금의 <KT&G 상상마당> 자리에 공연예술 극장 <씨어터 제로>가 개관을 했고, 극장 앞 피카소 거리를 한바탕 떠들썩하게 만든 개관 기념 공연이 열렸다. 그 공연의 정점을 찍은 것은 황해도 만신 이해경의 등장이었다.

 

혈관을 요동치게 하는 풍물 가락에 몸을 싣고, 이해경 만신은 화려한 원색의 무복들을 여러 차례 바꿔 입으며 ‘신들린’ 무대를 펼쳤다. 무대 아래 숨죽인 이들에게는 마치 천 길 낭떠러지처럼 보였을 작두 끝에 그녀가 올라선 순간, 객석의 환희는 경이로 바뀌었다. 염색머리에 귓바퀴에는 주렁주렁 피어싱을 매단 ‘홍대패션’으로 치장한 젊은 여성의 입에서 ‘굿이 최고다’, ‘끝내준다’는 탄성이 연신 터져 나왔다. 

 

▲  배 위에서 흥겹게 배연신 굿을 하는 만신 김금화,  <만신> 

 

그 날의 강렬한 경험은 나를 굿의 세계로 이끌었다. 그러니까 나는, ‘유희’로써의 매력에 끌려 무속이라는 세계에 입문한 것이다. 그러나 깊이 파고들수록 ‘무당’이란 존재를 알게 된다는 것이 점점 무서워졌다. 무엇이 무서웠냐고?

 

무속에 대해 공포감을 가진 사람들은 ‘잡귀신’ 들린 기괴한 존재로 무당을 바라본다. 굿거리는 화려하고 재미난 것만은 아니고 때론 굉장히 ‘섬뜩한’ 모습으로 치러지는데, 이런 종류의 굿거리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충분히 공포감을 줄만도 하다. 다큐멘터리 영화 <사이에서>(2006, 이창재 감독)를 보면 만신 이해경은 사고로 인해 몸이 험하게 죽은 이의 넋을 달래는 굿에서 죽은 돼지를 ‘미친 듯이’ 흉기로 찌르며 생고기를 뜯어 먹는다.

 

하지만 그런 것은 ‘진짜’ 무서운 것이 아니다. 진짜 무서운 것은 부조리와 위로받지 못한 고통으로 가득한 ‘인간 세상’이다.

 

지난 토요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형제복지원 사건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거리를 청소한다’는 명목 하에 정권의 비호를 받아 3천명이 넘는 사람들을 납치해 감금하고, 강제노동과 폭행, 성폭력 등 인권 유린을 자행해 513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복지재벌’은 죄과도 치르지 않고 노년을 맞이했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가 물려준 재산으로 여러 개의 사업체를 거느리고 있다.

 

죽은 이들은 한 덩어리가 되어 땅에 묻힌 채 가족들 곁에 돌아가지 못했고, 살아남은 피해자들은 끔찍한 기억을 가슴에 품은 채 신음하고 있다. 진짜 몸서리가 쳐지는 공포는 인간 사회 속에서 펼쳐지는 이런 일들 속에 있다.

 

무당은 이러한 세상 속에서 들어줄 이를 찾지 못한 아프고 기막힌 사연들에 귀를 열고, 그것을 오롯이 받아 안아 자신의 몸과 영혼 안에서 승화시키는 존재다. 그들이 짊어진 슬픔과 아픔의 무게를 온전히 헤아려보면서 나는 몸이 떨려왔다. 그 운명의 자락이 행여나 내 영혼에 조금이라도 스칠까 싶어 한동안 무속에 대해 들여다보는 일을 멈추었다.  

 

▲  박찬경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만신>(2014)  

 

그리고 오랜만에, <만신>(2014, 박찬경 감독)을 보았다. 이해경 만신의 신어머니였던 (지금은 신어머니-신딸의 관계가 아닌 듯하다) 김금화 만신의 이야기였기에 좀더 관심이 가기도 했다. 2006년에 열린 이해경 만신의 진접굿(무당이 자신과 자신이 모신 신을 위해 벌이는 굿으로 교회로 치자면 부흥회 같은 것)에서 굿거리 하나를 선보이던 김금화 만신의 모습은 잊을 수 없는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꼿꼿한 자태와 거인 같은 존재감이라니.

 

이해경 만신이 등장했던 다큐멘터리 <사이에서>가 힘든 운명을 버텨내는 무속인들의 고뇌와 삶의 치열함에 집중했다면, <만신>은 감독의 적극적인 해석과 색채로 그려진 무당이라는 존재에 대한 그림을 펼쳐보는 것 같은 작품이다.

 

무당이 신적 능력, 즉 귀신을 보고, 작두에 올라타고, 과거를 맞추거나 예언을 하는 것은 이승의 사람들에게 ‘신의 대리자’로서 자신의 권위를 인정받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무당의 역할과 의미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보다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한편으로는 즐거움을 주면서 무당이 치유와 회복, 화해를 위해 하는 일련의 행위들에 있다.

 

강신무의 입무 과정은 ‘신병’으로 시작된다. 몸과 마음에 지독한 고통이 엄습한다. 운명을 거부할수록 고통의 시간은 길어진다. 운명을 받아들이고 고통을 직시하고 잘 견뎌내어야 무당으로서의 삶이 시작된다. 내림굿을 통해 신내림을 받는 것은 무당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무당이 되기 위한 시작에 불과하다. 진짜 무당이 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부단한 수련을 해야만 한다.

 

굿판에 올라선 순간, 무당은 다양한 장르의 극을 연기하는 배우이자 소리꾼이자 춤꾼이 되어야 한다. 익혀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또한 무당이 ‘신의 대리자’가 되었다고 해도 그가 한 사회에 속한 인간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내림굿을 받기전의 ‘나’와 그 후의 ‘나’가 무 자르듯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으로서의 삶을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가의 문제도 여전히 그에게 현존하는 과제로 던져진다.

 

내림굿을 받은 무당들의 세계도 ‘인간 사회’와 같아서 돈벌이를 위해 사람들의 상처와 불안한 마음을 이용하는 무당들도 많이 있다. 자신의 능력을 그저 사람을 현혹하거나 지배하는데 이용하려 한다면 그는 결코 좋은 무당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신적 능력은 양날의 검이다. ‘인간’으로서 가진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자신을 성찰하지 않는다면 무당이 가진 능력은 무당 자신부터 망가뜨린다.  

 

▲ 김금화가 적군묘에서 여러 무녀들과 함께 진오귀굿을 하는 장면. 

 

무당은 경계에 선 자이다. 두 세계를 가른 경계에 누군가 서는 순간, 경계는 지워진다. 무당은 소통의 단절을 회복하고 서로 다른 존재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때로는 외면한 이들조차 마주보게 한다.

 

<만신>에서 김금화 만신과 신딸들은 6.25 전쟁에서 희생된 이름 없는 군인들의 묘를 찾아가 진오귀 굿(죽은 이의 넋을 위로하는 굿)을 벌인다. 황폐한 묘지에 외롭게 묻혀 있는 이름조차 모를 북한군을 ‘진심’으로 위로하는 것이, 이 무녀들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진오귀 굿에는 죽은 자의 아픔마저도 땅 속에 그냥 묻어두지 않아야 한다는 무교의 철학이 담겨 있다.

 

<만신>은 인상적인 장면들이 많지만, 그 중 특히 내 눈을 사로잡은 부분이 두 군데 있다. 한 곳은, 문소리 씨가 맡은 1970년대의 김금화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의 미신타파 단속을 피해 달아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김금화는 계곡을 끼고 있는 벽에 난 아찔하게 높은 창을 뛰어넘어 달아난다. 감독은 배우가 직접 뛰어넘는 장면을 보여주는 대신 그녀가 쓰고 있던 전립이 홀로 공중을 가로지르는 장면을 느리게 보여주는데, 당시 무당이 처한 위태로운 처지가 시적으로 전달된다.

 

산으로 도망친 김금화 만신과 동료들은 지쳐 주저앉는다. 죄지은 사람처럼 쫒기는 신세에 잔뜩 풀이 죽은 그들은 말이 없다. 이때 김금화는 혼자 조용히 일어나 무가를 읊조리기 시작한다. 그의 소리에 맞춰 동료들이 하나씩 호응하며 한판 흥겨운 굿이 되살아난다.

 

이때 김금화가 부르는 무가는 여성의 한과 욕망을 해학적으로 풀어낸 가사를 담고 있다. 이 무가가 선택된 것은 상징적이다. 이 장면은 무속이 수많은 탄압 속에서도 오래 생명을 이어온 힘을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도 오롯이 헤아리게 한다.

 

또 한 곳은 <만신>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쇠걸립’ 시퀀스이다. 어린 김금화(김새론)가 신내림을 받기 전에 쇠걸립을 도는 것으로 시작된다. 쇠걸립은 무당이 될 사람이 동네를 돌며 마을사람들에게 놋그릇 등 쇠를 얻는 일을 말하는데, 이 쇠들을 녹여서 방울이나 칼 같은 무당이 쓸 무구를 장만하게 된다.

 

박찬경 감독은 이 시퀀스에서 ‘한판 굿’의 의미를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체험하게 만든다. 그는 경계를 허문다. 다큐와 극영화의 경계, 영화와 영화 밖의 경계,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허문다. 화면 안의 모든 이들은 한데 어우러져 ‘죽은 쇠’를 모아 ‘산 쇠’를 만드는 일에 함께한다. 굿이 영화가 되고, 영화는 굿이 된다. 우리 사회가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고 평화와 공존의 세계로 나아가길 바라는 감동의 소망까지 녹여낸, 참 아름다운 시퀀스다. ▣ 박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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