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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 이야기> 동물에 대한 이중인식 극복하기(하)
동성애자 여성들의 인터뷰 기록 “Over the rainbow”의 필자 박김수진님이 “동물권 이야기” 칼럼을 연재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낯선 개념인 ‘동물권’에 대해 깊이 살펴보며,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생태적 삶을 모색해봅니다. www.ildaro.com
이기심만큼이나 보편적인 정서 ‘연민’
육식주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인간동물의 감정이입과 연민, 그리고 공감 능력은 큰 역할을 합니다.
“고기를 먹기 위해, 키우던 동물을 죽이고 먹어야 하는 환경에 있었음에도 함께 놀던 동물의 죽음을 대하면서 내가 공포를 느꼈다는 점이 중요해요. 막연하지만 무섭고 두렵고 이상하고 불쌍하다는 마음을 냈어요. 그런 경험은 내가 다른 동물의 고통에 무감한 사람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고 봐요. 나는 무감하지 않았던 거예요.” (A/ 35세 여성, 채식 4년)
“사람이 평생을 좁은 우리에 갇혀서 몸도 돌릴 수 없는 상태로 살다가 잔인하게 도축된다고 생각하면 그게 얼마나 끔찍해요? 그건 사람이 아닌 다른 동물들에게 적용해도 마찬가지잖아요. 많은 근본적인 것들에 있어서 나와 돼지가 어떻게 뭐가 다른지 모르겠어요. 마취 없이 팔과 다리를 자르고, 부리를 자르면 당연히 고통스러울 것이고.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다른 동물들에게는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가하는 것이 굉장한 폭력이라고 생각해요.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가 그렇지 않겠어요? 바다동물도 마찬가지고요.” (G/ 38세 여성, 채식 2년)
“동물도 사람의 말을 할 수 있다면, 고통스러운 일을 당하면 ‘고통스럽다’고 말할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인 나에게 고통스러울 일이라면 다른 동물들 역시 고통스러울 거예요. 사람인 내게 가했을 때 느낄 고통을 똑같이 다른 동물에게 가할 경우 역시 고통을 유발시킬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학대인거죠.” (F/ 32세 여성, 채식 2년)
서펠(Serpell)은 인간동물이 비인간동물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동일시하는 것, 그리고 비인간동물을 해치는 것에 대해 죄의식과 연민을 느끼는 것은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합니다. 남유철은 도덕적인 행위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러한 삶을 지향하려는 인간동물의 의지, 인간동물의 폭력 앞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비인간동물들에게 갖는 측은지심은 인간동물의 이기심만큼이나 보편적인 정서라고 말합니다.
인간동물의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공감 능력’은 비인간동물의 개별성을 깨닫게 되는 원인이자 결과가 됩니다. 비인간동물에 대한 인간중심의 가치관과 행동 방식이 ‘공감 능력’에 의해 비판을 받게 되고, 그 결과 인간동물은 육식주의 이데올로기에서 점차 벗어나는 것입니다.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힘이 변화를 가져와
‘공감 능력’은 동물을 인간/동물로 이분화하는 것에 반하여 모두 다 동물이라는 동종 의식을 강조하는 차원으로 확대됩니다. 인간동물은 비인간동물에 대해 그동안 가져온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인 사고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지요.
“정보는 차단되었고, 너무 오랜 시간을 아무 생각없이 살아왔어요.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다고 가르치는 것은 잘못이에요. 만일 어린 시절의 나에게 닭과 오리를 잡아먹을 것인지, 잡아먹지 않고 함께 놀 것이지를 선택할 수 있게 해주었다면 나는 후자를 선택했을 것이 분명해요, 확신해요. 나에게 선택권이 있고, 선택의 가능성을 알려주었다면, 나는 닭과 오리와 함께 놀기를 선택했을 거예요.” (A)
“누군가 내게 있는 그대로 자세하게 ‘네가 먹을 고기는 이런 환경에서 사육되었고, 항생제를 이만큼 맞았으며, 이런 과정을 통해서 네 식탁에 오르는 거다. 하지만 참 맛있지. 자, 너 먹을래? 안 먹을래?’라고 물었다면 나는 먹지 않는 것을 선택했을 거예요. 나에게 그 정도의 판단력은 있었다고 믿어요.” (I/ 39세 여성, 채식 9개월)
육식주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게 된 인간동물은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비인간동물을 사용하는 문제를 ‘선택’의 문제로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비인간동물에 대한 학대와 착취에 관한 정보를 접하고 대면하기 시작한 인간동물은, 동물을 바라보는 이중적인 인식에 대해 각성하고 의미화하는 과정을 거쳐, 결국 ‘육식하지 않을 권리’ 등 직접적으로 육식주의 이데올로기와 3N(Normal, Natural, Necessary. 동물을 착취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세 가지 방식. ‘정상적이다. 자연스럽다. 필요하다’)에 도전하는 대항 담론을 만들고 정치적으로 실천하기에 이릅니다.
“고통을 기반으로 길러진 존재를 먹는다는 것은 결국 나에게도 고통을 남기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동물에게 좋은 것이 곧 내게도 좋은 것으로 돌아온다고 믿어요. 내게 좋은 선택이 동물에게 좋은 것으로 되돌아가기도 하고요. 나의 고통과 나 아닌 존재의 고통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인식할 수 있다면, 동물들의 고통이 동물들에게만 머물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봐요. 모든 존재는 서로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를 맺잖아요.
하나를 보기 시작하니까 두 개가 보이더라고요. 소, 돼, 닭을 보니 유기견 보호소 안의 개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동물실험으로 죽어가는 동물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횟집 수족관에 있는 물고기들의 눈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동물원은 더이상 갈 의미도 찾을 수가 없고, 가고 싶지 않고. 그렇게 더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더 많은 것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이전까지는 아무 생각없이 편안하게 누리던 일상이 영화였던 것처럼, 내가 살았던 그 현실이 꿈이었던 것처럼 그렇게 깨어났어요. 진짜 현실이 뭔지 보기 시작한 거죠.” (A)
“갈수록 그 범위가 넓어지고 있어요. 닭을 제외한 다른 고기는 모두 끊은 상태에서 우연히 닭의 사육 환경에 관한 정보를 트위터에서 접하고는 과감하게 닭을 끊을 수 있었고, 그렇게 고기를 안 먹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럼, 생선은 다를 게 뭐지?’라는 생각도 들거라고요. 수족관에 있는 애들을 바로 잡아서 먹는다는 것이 이미지로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회를 먹기가 어렵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다른 생선류 소비도 줄이게 되고. 풀어놓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면 개를 키우고 싶지도 않고, 동물원은 아예 가고 싶지도 않고요. 최근에는 가죽 제품 대신에 인조가죽 제품을 사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어렵지만 앞으로 이런 방식으로 더 줄여 나갈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요.” (E/ 36세 여성, 채식 2년)
“채식을 시작하면서 점점 모피 등 동물 부산물로 만든 것들에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고기를 안 먹는 이유는 동물을 죽이고 싶지 않아서거든요. 그런 내가 동물의 모피를 입는 것도 모순이잖아요. 채식 덕분에 인생이 참 피곤해졌어요.” (J/ 29세 여성, 채식 2년)
인간동물의 ‘공감 능력’은 비인간동물의 존재와 구체적인 현실을 타자화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육식주의 이데올로기의 지배에서 벗어난 인간동물은 존재와 고통에 관한 이분법적 인식을 극복하기 시작하지요.
비인간동물을 위한 것이 곧 인간동물을 위한 것이고, 인간동물을 위한 것이 곧 비인간동물을 위한 것이라는 사고방식 즉, 존재와 고통의 순환 구조를 이해하게 됩니다. 또한 수동적인 의미에서의 ‘연민’이 아닌, 적극적인 행위와 의지라는 점에서 ‘공감 능력’을 발휘합니다. 스스로 관찰자에 머물지 않고 비인간동물의 경험에 관한 느낌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의식적이고 정치적인 행위 변화는 특정한 비인간동물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육지동물을 중심으로 하여 식용동물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문제 의식이 또다른 식용동물인 바다동물의 문제로 확장되며, 전시동물과 모피동물의 문제로도 확대됩니다. 또 다른 차원으로 인식이 확장되는 것이지요.
리프킨(Rifkin)의 표현을 빌자면 여성, 동성애자, 장애인, 유색인종, 소수민족, 소수종교를 믿는 사람들처럼 종전에는 동료로 생각하지 않았던 다른 인간에까지 공감의 범위를 확대하지요. 사회적 권리와 정책과 인권법, 심지어 이제는 동물보호법이라는 형태에 이르는 정치적 행위로 발현됩니다.
동물권은 결코 동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 만화책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미디어 일다, 2011)의 작가 권경희씨가 그린 그림.
“동물권은 동물들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환경과 인권에 이르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동물권을 생각한다는 것은 내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만드는 것, 내 삶을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봐요.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온 것인지, 잘 살고 있는지 성찰하는 기회랄까요.” (I)
“큰 그림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것도 방법이죠. 지구온난화 문제, 식량위기의 문제가 육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잖아요. 1세계 사람들이 먹는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서 3세계에서 재배되는 식물이 얼마만큼이어야 하는지, 어떤 경로를 통해 과도한 육식문화가 전세계 식량 위기를 부채질하는지 밝히고 알려나가야 해요.” (D/ 40세 여성, 채식 10년)
“인간 외 자연을 인간의 필요와 욕구를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만 보고 공존의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는 근본적인 문제도 있지만, 자본주의의 결과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공장식축산업을 통해 고기를 생산하는 이유는 그런 방식으로 생산하고 많이 팔아야 많은 돈이 되니까 그런 것이 아니겠어요? 고기를 대량으로 생산하면 많은 이윤을 창출해야 하니 진실을 가리고 세뇌를 시키고 그럴 수 있는 거죠.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난다’거나 ‘좋은 날에는 고기를 먹어야 한다’라거나 하는 생각들을 조장하고, 끊임없이 세뇌를 시켜온 것 같아요.” (E)
“미국의 경우 목장 주들은 정치권과 결탁되어 있어요. 미국이 전 세계로 수출하는 식용동물의 비율은 굉장하죠. 마치 제약회사들처럼 식용동물을 생산하는 기업이 정치권과 결탁되어 육식에 관한 올바른 정보들을 은폐하고 있는 형국이에요. 단순히 채식이냐, 육식이냐의 문제가 아니죠. 자본주의의 고질적인 문제들과 육식의 문제는 얽혀 있어요. 그러니 고기를 먹지 않을 권리라든가, 선택 가능성을 가르쳐주지 않는 거죠. 이윤의 문제인 거예요.”(I)
“쉬운 일은 아니지만 직접 씨를 뿌리고 수확해서 직접 만들어 먹는 기회들을 늘려야 할 것 같아요. 공동체에서 이런 시도를 해보면 좋을 것 같고. 소비자로서만 살아왔다면 생산과 소비를 함께 하는 시스템으로 삶을 재구성해보는 거죠. 이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럴 수 있다면 채식도 훨씬 수월해지겠죠.” (E)
처음에는 특정 비인간동물에 대해 사유하기 시작했더라도, 이것은 또다른 비인간동물의 문제를 포함하여 환경과 인권과 기업의 권력 등의 문제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이는 육식주의 이데올로기의 지배 하에 있던 인간동물이 ‘생명’ 중심의 다른 세계관과 가치관을 확립하는 과정이지요.
비인간동물에 관한 이중 인식을 통합해 나가는 과정은, 비인간동물의 삶의 문제를 ‘특정한 존재들의 권리’ 문제에 국한시키지 않습니다. 우선, 육식주의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 자신의 이중 인식을 깨닫는 과정에서 비인간동물을 사용하는 문제와 자신의 삶을 연결해서 생각해보기 시작합니다.
캐서린 그랜트(Kathryn Grant)는 ‘동물권’에 대해, 인간동물이 가진 편견을 정직하게 검토하여 오만한 우월감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시험이라고 평한 바 있습니다. 인간동물이 비인간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시작하고, 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 사이의 연결감을 회복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일 때, 인간동물은 “너”와 “나”를 갈라놓는 그릇된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물권’에 관한 인식의 변화는 동물의 문제에만 머물지 않고, 육식 등 비인간동물을 중심으로 소비해 온 ‘소비 시스템’의 변화, 지구온난화 문제 등 지구환경 문제, 식량위기, 공장식 축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 그 체제 속에 또다른 사람들이 처한 문제 등으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만물에 연결되지 않은 문제들은 없지요. 인간이 아닌 동물들이 처한 현실적인 문제들은 돌고 돌아 인간에게로, 다시 또 돌고 돌아 인간에게로 돌아올 문제들입니다. ▣ 박김수진 www.ildaro.com
[참고 문헌]
남유철. 2005. 『개를 위한 변명』. 유미디어.
제레미 리프킨. 2010. 『공감의 시대』. 이경남 역, 민음사.
제임스 서펠, 2003. 『동물, 인간의 동반자』. 윤영애 역, 들녘.
캐서린 그랜트. 2012. 『동물권, 인간의 이기심은 어디까지인가』. 황성원 역, 이후.
할 헤르조그, 2011. 『우리가 먹고 사랑하고 혐오하는 동물들』. 김선영 역,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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