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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김수진의 동물권 이야기]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 사회에서 아직 낯선 개념인 ‘동물권’에 대해 살펴보고,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생태적 삶을 모색해보는 “동물권 이야기”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일다]  www.ildaro.com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 이에 관한 다양한 방법을 소개하기에 앞서, 개인적인 경험을 나누고자 합니다.

 

완전채식을 시도하다

 

비인간동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저의 일상에도 참으로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소, 돼지, 닭, 오리 등 소위 ‘식용동물’, ‘농장동물’로 불리는 비인간동물을 재료로 하는 음식 섭취를 끊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친구들과 만나 함께 식사를 하는 과정에 약간의 불편함을 겪기도 했고요, 외식의 기회가 점점 줄어들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지출도 그만큼 줄어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변화는, 평소 채소와 과일을 굉장히 싫어하던 제가 그야말로 ‘의식적으로’ 육식을 끊고 나니 억지로라도 채소와 과일을 먹을 수밖에 없었고, 그리하여 조금씩 채소와 과일을 친숙하게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비육식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잊지 않고 열심히 비인간동물들의 현실이 담긴 영상들을 찾아보았고, 동물권이나 동물보호에 관한 책들도 읽으며 마음을 다잡곤 하였습니다.

 

비육식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바다동물의 존재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기더군요. 어릴 때부터 회와 초밥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어느 정도였냐면 오랜 꿈 중의 하나가 ‘생선초밥으로 가득한 방 안에 들어가서 그 초밥들을 다 먹으면서 죽는 것’일 정도였죠. 그랬던 제가 바다동물에 관심을 갖게 되다보니, 일정 기간 동안에는 그 관심을 끊어버리고 싶어서 무시, 회피, 부정 등의 굉장한 방어 기제를 억지로 작동시키기도 했답니다. 그런데도 한 번 생긴 바다동물에 관한 관심이 멈추지를 않는 거예요. 그래서 3개월이라는 기간을 정해두고 육지동물에 이어 바다동물 섭취를 끊어보기로 결심, ‘완전채식’이라는 것을 실천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결과요?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채소와 과일을 먹는 기쁨을 아는 사람이었다면 조금 더 성공할 수 있었을 테지만, 저의 경우에는 바다동물까지 완전히 끊어 버리니 세상천지 먹을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더라고요. 가족이나 친구들을 만나서도 식사 메뉴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야 하고, 집에서 식사를 해도 불행하게 느껴져서 살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은근슬쩍 완전채식 도전을 끝내고는 ‘나는 아직 완전채식을 할 수 없나봐. 이건 사는 게 아니야’라며 정당화를 하곤 했지요.

 

하지만 그 시도 자체가 완전히 무의미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 시기를 지나고 다시 바다동물 섭취를 시작했지만, 회와 초밥을 끊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회식이나 친구/가족과의 만남이 있어 단체로 식당을 찾는 경우가 아니라면, 애써 바다동물로 만든 음식을 사 먹거나 만들어 먹지는 않게 되었어요. 완전채식에는 ‘실패’했지만, 바다동물 소비를 줄이는 데에는 큰 ‘성공’을 거둔 셈이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제가 완전채식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그리고 오징어가 곁들여진 ‘충무깁밥’의 유혹에서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요. 그러나 정치적인/윤리적인 이유로 완전채식을 실천하는 분들에 대한 깊은 존경심과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제가 완전채식을 실천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고, 앞으로도 노력해 볼 생각입니다.

 

‘구스 다운’ ‘덕 다운’ 대신 ‘솜 패딩’을 찾다

 

▲ <FFA, The Fur Free Alliance>가 제작한 이미지 중 일부    © 동물권연구활동모임 프로젝트 "A" 
 

육지동물과 바다동물 소비를 끊거나 줄이는 시도와 함께했던 것은 소위 ‘모피동물’로 만든 제품을 구입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지갑이나 가방은 물론이고 벨트 하나를 사더라도 소가죽 등 비인간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제품을 사지 않았고, 앞으로는 메이커 운동화 구입도 하지 않기로 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메이커 운동화들은 대부분 소가죽으로 만든 것들이지요.

 

작년에는 처음으로 비인간동물을 이용하지 않은 겨울옷을 구입해보기도 하였습니다. 요새는 라쿤(너구리) 털이 안 달린 옷을 찾기가 어렵지요. 오리나 거위의 털이 들어가 있지 않은 옷을 찾기도 어렵고요. 작정을 하고 집을 나서 옷을 구하는 과정에서, 육지동물이나 바다동물이 들어가 있지 않은 음식을 찾는 것만큼이나 비인간동물의 털이나 가죽을 사용하지 않은 제품 찾기가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였습니다.

 

그래도 ‘구스 다운’, ‘덕 다운’이 아닌 ‘솜 패딩’을 찾고, 모자며 어디에고 동물의 털이 아예 안 달린 옷을 찾아보니 결국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요새는 패딩에도 프리마로프트 등 신소재를 이용한 옷들이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고, 가죽 대신 인조가죽을 이용해 만든 제품들도 활발하게 제작/판매되고 있습니다. 필요한 건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 이뿐인 것 같습니다.

 

이제 저의 관심은 동물원에 전시되는 전시동물, 인간동물의 건강과 장수를 위해 학대당하는 실험동물, 개체수 조절이나 인간동물의 이기심으로 합법 총살형을 받은 멧돼지, 제주 노루 등 야생동물 등으로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들 비인간동물을 위해서는 아직 저의 일상에서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지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의 과제입니다.

 

글을 읽는 분들 중에 피로감을 느끼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저도 저의 변화한 일상을 되돌아보면서 글로 적어 나가니 약간의 피로감이 몰려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지, 그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할 수 있는 만큼의 변화를 시도해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느끼는 이 ‘피로감’과 비인간동물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인간동물인 우리 모두가 갑자기 완전채식인이 되고, 비인간동물을 전혀 이용하지 않은 상태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외면하지 않고, 무시하지 않고, 일상에서 할 수 있는 ‘다른 선택’을 해보는 것뿐입니다. ‘내가 덜 입고 덜 먹으니 나로 인해 죽고 이용되는 동물들의 수도 줄겠거니’라고 생각하며 소비를 최소화하고, 소비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지요.

 

지금 당장 모든 고리를 끊어 버리려고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리고 저와 같은 초심자들에게 이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그저 할 수 있는 만큼만 찾아 시도해보기를 권합니다.

 

싸움닭과 ‘치맥’ 닭, 어느 쪽이 더 비참할까

 

‘무엇을 할 것인가?’ 이에 관해 동물권, 동물보호 관련 학자들과 활동가들은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해 왔습니다. 진 바우어나 남유철은 다소 시혜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개념이기는 하지만 ‘측은지심’을 발휘해보라고 권합니다. 측은지심은 인간동물이 비인간동물들이 겪는 고통에 무관심하려 들고 회피하려는 것만큼이나 보편적인 정서라고 설명합니다. 정치적이고 윤리적이고 당위에 가득한 이유가 아니라 해도 인간동물에 의해, 인간동물만을 위해 착취당하고 학대당하는 비인간동물에 대한 측은지심만으로도 작은 결심을 해낼 수 있지요.

 

캐서린 그랜트, 제임스 서펠, 제러미 리프킨, 피터 싱어 등 많은 이들이 강조하는 것은 인간동물의 ‘공감능력’입니다. 리프킨에 따르면, 공감은 다소 수동적인 의미의 측은지심을 넘어 적극적인 참여를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나와 다른 주체들이 하는 경험과 느낌을 공유하는 것이 바로 공감인데요, 공감한다는 것은 나와 다른 현실을 살아가는 장애인, 여성, 동성애자, 이주노동자, 소수민족 등 사회의 소수자들이 겪는 경험과 느낌을 공유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런 공감을 인간동물의 범주를 넘어 확장하는 것이지요. 인간이 아닌 동물들, 비인간동물들이 겪는 고통스러운 경험과 느낌에 대해서도 말입니다.

 

리프킨은 이렇게 확장된, 혹은 보편화된 공감 능력이 결국 대상에 대한 새로운 보편적 인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상대방에게서 나 자신을 인식하고 내 안에서 상대방을 인식하는 능력이야말로 깊이 있는 민주적 경험이다.” 라는 멋진 말도 하고요.

 

덧붙이자면,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조금 더 솔직하면 어떨까 합니다. 고통을 느끼기에 충분한 비인간동물의 현실을 덜 외면하려고, 더 들여다보려고 노력해보면 어떨까요? 고통을 느낄 비인간동물들을 생각하며 ‘쟤네들은 인간인 우리가 느끼는 고통과는 다른 차원의 고통을 느끼는 거야’라고 자기 암시를 걸지 않는 노력을 기울이는 거죠. 그건 ‘사실’이 아니니까요.

 

에리카 퍼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약에 쥐의 고통이 인간이 겪는 고통과 원칙적으로 다르다면, 실험이 무슨 필요가 있단 말인가? 우리는 동물들을 도구이자 잉여 장기의 전달자로 간주하지만, 또한 우리 몸을 수선하기 위해 동물들을 이용할 생각을 하게 할 만큼 우리와 비슷하다는 점도 알고 있다.”고요.

 

니겔 로스펠스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비인간동물들은 인간이자 비동물이 되도록, 인간이자 비인간이 되도록 조련되었다”고요. 이는 같은 대상을 두고 하는 일관적이지 않은, 불일치한 인식을 통합하기 위해 노력하자는 얘깁니다. 무턱대고 ‘다르다’고 간주해왔던 비인간동물들이 실은 그렇게 다르기만 하지 않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사실’들에 주목하고, 솔직한 마음을 내어 비인간동물에 대한 이상주의적이고 비현실적이며 추상적인 사고와 접근에서 벗어나, 인정할 건 인정하자는 얘깁니다.

 

덮어놓고 ‘인간동물은 비인간동물을 착취하는 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야!’, ‘비인간동물의 고통을 공감하기 시작하면 대체 날더러 어떻게 살라는 거야?’라고 생각해오던 것을 잠시 중단하고, ‘무엇이 두려워서 나는 비인간동물의 현실을 보려고 하지 않았지?’, ‘나는 왜 비인간동물의 현실을 보지 못했던 것일까?’ 라는 질문을 새로이 던져보는 겁니다.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 눈감지 말고, 도망치려는 마음을 붙들어, 그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로만 여겨왔던 문제들을 있는 그대로 거짓 없이 투명하게 바라보고 생각해보는 것이지요.

 

할 헤르조그는 말합니다. 소위 ‘투계’로 길러지는 닭들의 일생과 ‘치맥’용으로 길러지는 닭들의 일생을 생각해 보자고요. 싸움닭들의 말로는 비참하지만, 싸움판 위에 오르기 전까지 투계들은 넓은 공간에서 자유롭게 뛰어 다니며 햇빛을 만끽하고, 일부 사람들보다도 낳은 음식을 먹기도 한답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치맥’용 닭들은 “상상 못할 정도로 불결한 환경에서 지내는 동안 다리가 쑤시고 폐에 통증을 느끼며, 하늘은 구경도 못하고, 풀밭을 거닐거나 교미하거나 벌레를 잡아먹지도 못한 채 매일 넌더리나는 먹이를 42일간 받다가 비좁은 상자에 담겨 트럭에 실린 후 공장으로 이동해서는 거꾸로 매달린 채 감전사 당해 목을 잘리게” 되는데요, 어떤 닭의 일생이 더 낫겠느냐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투계꾼들이 더 나쁜가, 치맥에 열광하는 우리들이 더 나쁜가’의 문제이기도 할 겁니다. 동물학대 가해자의 범주 안에 나는 없었는지, 없는지, 없을 것인지 따져 보자는 제안이지요.

 

동물복지 인증…‘좋은 소비’ 선택하기

 

보다 구체적인 제안들이 있습니다. 진 카제즈는 “인류 최초의 사냥꾼이 생존을 위해 동물을 죽이기로 결심했을 때만 해도 잘못된 것이 없었다”고, 잘못은 “단지 사치스러운 이익을 더 얻기 위해 (비인간)동물을 죽이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필수적인 것을 얻기 위해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은 수의 동물을 죽였을 때”였다고 말합니다. “기술이 발전한 지금의 이 풍요로운 시대에 오직 (비인간)동물에게서만 얻을 수 있고 다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필수품은 거의 없다”는 겁니다.

 

사실이지요. 다행스럽게도 이제 인간동물은 반드시 비인간동물을 학대하고 착취하지 않아도 살아갈 만큼의 기술력과 지혜를 가지게 되었지요. 우리의 이와 같은 능력을 발휘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  동물자유연대에서 홍보하는 <행복한 동물복지 달걀 선택법> 중에서  

 

가장 유명한 제안은 채식, 비육식이지요(이에 관해서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들 이미 알고 있는 방법일 테니까요). 하지만 그만큼 유명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좋은 소비’를 하자는 겁니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표현대로 “웨이터가 주문을 기다릴 때, 혹은 쇼핑 카트나 장바구니에 마음 내키는 대로 뭔가를 골라 담을 때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골리앗 같은 식품 산업 전체가 궁극적으로는 움직이고 결정”됩니다. 마트에서 쉽게 선택해 살 수 있는 제품들은 비인간동물들에게 지옥인 공장식 축산업을 통해 생산된 고깃덩어리들이지요. 조금 더 싸고 많은 양의 고기를 얻기 위해서는 공장식 축산업이 필수인 세상이 되었고, 우리가 별 생각 없이 그 고기들을 선택해 구입하는 것만으로도 이 끔찍한 산업을 지원, 지지하는 결과를 낳는 것입니다.

 

따라서 똑같은 달걀을 구입하더라도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방사란을 선택하려고 노력한다거나, 동물복지 개념을 바탕으로 사육된 비인간동물로 만든 고기를 구입하기 위해 애쓰는 방법을 모색해 보는 것이지요.

 

육식 외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리털이나 거위 털로 만든 패딩을 구입하는 대신에 솜 패딩을 구입하고, 가죽으로 만든 제품을 구입하는 대신에 인조 가죽으로 만든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지요. 화장품의 경우에도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제품을 찾아 구입하는 것이고, 드넓은 공간에서 자유롭게 살았어야 할 비인간동물이 감금 사육되고 있는 동물원, 수족관, 동물 공연장에는 아예 발을 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육식의 경우 ‘좋은 소비’라는 것에는 일정 정도의 한계가 있기는 합니다. 할 헤르조그는 “가축의 복지를 확대하려는 동물권의 보호활동가들의 노력이 고기 소비를 줄이기보다 도덕적으로 바람직한 소비를 늘리는 효과를 낳았다”며, 오히려 육식을 하는 사람들이 느낄 죄책감을 덜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고 비판합니다. 잔 카제즈는 이를 두고 “존중을 담은 착취”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요, ‘존중을 담은 착취“는 모순 어법이며, 존중한다면 착취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착취를 한다는 것은 어찌 되었든 간에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거죠.

 

그럼에도 저는 ‘좋은 소비’를 위한 인식이 보편화되고, ‘좋은 소비’를 위한 선택의 영역이 확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모든 사람들이 완전채식을 할 수 있고, 그렇게만 된다면 무엇이 문제이겠어요? 문제는 그럴 수 없다는 데에 있고, 동물권이나 동물보호에 관한 인식의 수준과 거치게 되는 단계는 사람마다 그 속도와 정도가 다를 텐데, 저는 그 속도와 정도의 차이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생각보다 큰 변화를 일으킬수 있다'

 

▲동물권연구활동모임 프로젝트 "A" 모피반대 캠페인
 

이 외에도 우리는 이런 변화를 위한 노력들을 해 볼 수 있습니다. 동물사랑실천협회, 동물자유연대,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등 동물권 관련 단체들에 회원 가입을 하고, 후원을 하고, 활동도 해보는 것이지요. 그 과정에서 해당 단체가 진행하는 동물권 법 개정 및 제정 운동에 힘을 실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작고 큰 캠페인 현장을 찾아가 소중한 역할을 해낼 수도 있겠지요.

 

특별히 개나 고양이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사설 유기동물보호소를 찾아 정기적으로 자원 활동을 하거나 유기동물 입양 캠페인을 벌이는 크고 작은 동물보호단체 회원이 되어 활동하는 방법도 얼마든지 많습니다. 이런 활동을 하는 조직을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직접 만들어 운영하는 것도 좋겠지요. 유기동물보호소 자원 활동을 하는 모임이나 동물권, 동물보호 관련 독서모임 등을 만들어 보는 것이지요.

 

비인간동물의 권리에 관한 문제는 인간동물의 권리와도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육식을 줄이거나 중단하는 선택을 한다면, 이런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여러 집단을 구성해낼 수 있다면, 공장식 축산업을 지탱하는 대기업 중심의 산업 구조에 작은 균열을 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공장식 축산업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고 있는 소규모 농가 농민들, 환경오염으로 고생하는 지역민들을 살리는 일이기도 하지요. 항생제와 고통에 찬 비인간동물의 살과 피를 먹지 않음으로써 혹은 섭취를 줄임으로써 나, 가족, 친구들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의 회복을 도울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한 마리 비인간동물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겠지요.

 

인터뷰 대상자 중에서 한 사람이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못 먹는 게 아니라, 안 먹는 거야.” 라는. 안 먹을 수 있다면, 덜 먹을 수 있다면, 착취하지 않을 수 있다면, 덜 착취할 수 있다면 그 방법을 찾기를 바랍니다. 비슷한 문제 의식을 가진 이들이 모인 공간을 찾고, 그런 모임을 만들고, 쉽게 잊고 외면할 수 있는 문제들을 끊임없이 상기하는 기회를 스스로 만들 수 있다면, 앞서 소개한 방법 외에도 더 다양한 대안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외롭지 않게, 서로 힘을 북돋우며 하나씩 하나씩 새로운 일상을 구성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캐서린 그랜트의 글을 인용하면서 [동물권 이야기] 칼럼 연재를 마치려고 합니다. 오랜 시간 관심 가져주시고,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 박김수진

 

“우리가 동물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를 잊지 않고 우리의 온 마음을 두려움 없이 열어 이 ‘타자들’이 겪고 있는 일을 바라보는 것, 이것이 아마도 가장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특히 동물들이 그 모든 것을 전혀 원하지 않았음에도 오직 인간의 분별없는 선택에 의해 그런 일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동물에게 어떤 고통도 주지 않고 살아가기로 결심했을 때, 그 실천 방법이 생각보다 매우 간단하다는 것은 정말로 다행스런 일이다. 동물이 겪는 엄청난 곤경에 압도당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 오히려 양식 있고 선한 개인이 생각보다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편이 낫다.” -캐서린 그랜트-

 

[참고 문헌]
남유철. 2005. 『개를 위한 변명』. 유미디어.
니겔 로스펠스. 2003. 『동물원의 탄생』. 이한중 역, 지호.
에리카 퍼지. 2007. 『‘동물’에 반대한다』. 박상준 역, 사이언스북스.
잔 카제즈. 2011. 『동물에 대한 예의』. 윤은진 역, 책읽는수요일.
조너선 사프란 포어. 2011.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송은주 역, 민음사.
제레미 리프킨. 2002. 『육식의 종말』. 신현승 역, 시공사.
제임스 서펠. 2003. 『동물, 인간의 동반자』. 윤영애 역, 들녘.
진 바우어, 2011. 『생추어리 농장』. 허형은 역, 책세상.
캐서린 그랜트. 2012. 『동물권, 인간의 이기심은 어디까지인가』. 황성원 역, 이후.
피터 싱어 & 짐 메이슨. 2008. 『죽음의 밥상』. 함규진 역, 산책자.
할 헤르조그./ 2011. 『우리가 먹고 사랑하고 혐오하는 동물들』. 김선영 역,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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