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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 이야기> 관심을 갖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동물학대
동성애자 여성들의 인터뷰 기록 “Over the rainbow”의 필자 박김수진님이 “동물권 이야기” 칼럼을 연재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낯선 개념인 ‘동물권’에 대해 깊이 살펴보며,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생태적 삶을 모색해봅니다. www.ildaro.com
학대- 몹시 괴롭히거나 가혹하게 대우하는 것
‘학대’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습니다. 학대(虐待)란 “몹시 괴롭히거나 가혹하게 대우함. 또는 그런 대우”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렇다면 ‘동물학대’는 “인간 외 동물을 몹시 괴롭히거나 가혹하게 대우함. 또는 그런 대우”라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아주 명확한 정의입니다. 그런데 이 ‘학대’라는 개념 앞에 비인간동물이 붙을 경우, 인간동물들은 ‘학대’의 의미를 이중적으로 이해하거나 자의적으로 의미 자체를 축소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괴롭힘을 당하고 가혹한 대우를 받는 대상이 인간동물인지, 비인간동물인지 여부에 따라 해당 행위는 학대가 되기도 하지만, 학대가 되지 않기도 하는 것이지요.
예컨대 인간동물의 머리 피부와 머리털을 산 채로 칼로 베어 잘라내는 것은 명백한 학대이지만, 라쿤과 같은 비인간동물의 전신 피부와 털을 산 채로 칼로 베어 잘라내는 것은 학대가 아니라거나, 혹은 학대인지 아닌지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인간이 고통을 느끼는 행위라면 동물도 마찬가지
윤리적인 이유로 채식을 시도한 적이 있거나, 채식을 하고 있는 열 명의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이들이 생각하는 ‘동물학대’의 정의와 내용이 궁금했습니다. 인터뷰이들이 생각하는 ‘학대’ 범주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신체적으로 눈에 띄는, 싫은 싸인을 보내지 않는다고 해도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명백한 해를 가했을 때라면 학대인 거죠.” (J / 29세 학생, 채식 기간 2년)
“고통을 주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어떤 종류의 고통이든.” (A / 35세 심리상담가, 채식 기간 4년)
“사람인 나에게 가했을 때 내가 고통을 느끼는 것이라면, 다른 동물들에게 가해도 그것은 같은 고통일 거라고 생각해요. 다른 동물들도 사람의 말을 할 수 있다면 분명히 고통을 느낀다고 표현했을 거예요. 고통을 유발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학대죠.” (F / 32세 취업 준비 중인 여성, 채식 기간 2년)
우선, 어떤 종류의 위해이든 그것이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유발시키는 것이라면 ‘학대’라고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공통적으로는 인간동물이 고통을 느끼는 행위를 비인간동물에게 한다면, 역시 비인간동물도 똑같이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는가 여부를 ‘학대’의 기준점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인간의 필요나 또는 욕구에 의해 일방적으로 동물에게 해를 입히는 것이 학대 아닐까요?” (E / 36세 여성단체 활동가, 채식 기간 2년)
“다른 동물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학대죠.” (I / 39세 사업가, 채식 기간 9개월)
두 번째 범주는 ‘고통을 유발하느냐’ 여부를 중심으로 본 학대의 규정에서 보다 넓어진 범주인데요, ‘육식’ 자체를 포함하여 인간동물이 일방적으로 인간동물만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비인간동물을 해하고 착취하는 모든 경우를 학대로 보는 관점이지요.
“무감각, 회피 이 모든 것이 학대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 그래왔지만 직면하기 어려워하고, 고통을 피하기 위해 무감각해지려고 애쓰는 것. 동물의 고통을 인식하고, 그것과 나 사이의 연결감을 만들어 버리면 굉장히 불편하고 괴로울 것이 분명하니 그 감각을 끊어 버리는 거죠. 편하게 살고 싶어서 내는 마음들이요.” (C / 37세 심리상담가, 채식 기간 7개월)
“사람의 동물에 대한 인식 자체가 학대라고 봐요.” (G / 38세 여성단체 활동가, 채식 기간 2년)
마지막 범주는, 비인간동물에 대한 인간동물의 인식 그리고 앞서 소개했던 인간동물이 비인간동물을 착취하고 학대할 수 있도록 돕는 심리적 방어 기제들 모두가 그 자체로 ‘학대’라고 보는 인식입니다.
‘나는 왜 반려용과 식용 동물이 다르다고 믿나’
생각해 보면 대부분 인간동물의 인식 속에서 ‘학대’라는 개념은 단순할 뿐 아니라, 꽤 모순적입니다. 돼지를 잔인하게 때려죽이는 장면을 보면서 ‘동물학대’라고 생각하지만 평생 몸 하나 돌릴 여유 없는 좁은 공간에 갇혀 살다가 잔인하게 도축당해 붉은 ‘고기 덩어리’가 되어 슈퍼마켓에 진열된 돼지를 보면서는 ‘동물학대’ 개념 자체를 떠올리지 않는 것이지요.
오히려 이 지점에서 ‘인간동물인 우리는 왜 같은 대상을 두고 이렇게 다른 인식을 하는가?’에 관해 스스로 질문하기보다는, 의문점과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반문하는 이들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지요.
“반려용과 식용은 다르다”, “그럼, 고기를 아예 먹지 말라는 것인가?”, “왜 개고기만 안 된다 하는가? 나는 쌀을 반려쌀로 키우는 사람인데, 그럼 너희들도 쌀을 먹지 말아라!”, “그렇게 따지면 학대가 아닌 것이 어디 있나?” 등.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더 많이 제기해 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나는 왜 반려용과 식용 비인간동물이 다르다고 믿는가?”, “정말 반려견과 식용견은 다른 존재인가?”, “나는 왜 반려견과 반려묘는 사랑하면서, 돼지와 소는 먹고, 너구리를 모자에 달고 다니며, 반려견에게 양고기 간식을 사다 주는 것에는 문제 의식을 가지지 못했는가, 못하는가?”, “나는 육식을 줄일 수 있는가? 육식을 중단할 수 있는가?”, “나는 왜 동일한 행위를 두고 ‘대상’에 따라 학대와 학대가 아닌 것으로 나누어 사고하는가?” 등.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익숙하지 않아서, 미처 알지 못했던 문제 제기들을 공격하기에 앞서 깊이 이해해보려고 노력해보는 겁니다. 이 사회의 낯선 사람들의 이야기, 낯선 사회 문제들을 이해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만큼이라도 비인간동물들이 처한 현실에 관해, 그 현실들을 먼저 이해하고 변화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이지요.
‘동물학대’, 바다동물도 해당될까?
▲ Silent Scream: PeTA(People for the Ethical Treatment of Animals)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우리는 주로 육지동물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인터뷰 말미에, 그렇다면 인터뷰이들은 바다동물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어요. 인간동물에게 행하는 어떤 행위가 학대라면 돼지, 소, 닭, 오리, 너구리 등에게 행하는 같은 행위 역시 학대가 될 텐데요, 그렇다면 바다동물의 경우에는 어떠할지 의견을 들어 봤습니다.
“언젠가 참치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어요. 그 프로그램을 통해서 참치가 굉장히 예민한 동물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물속에서 헤엄치는 참치들의 눈을 보았는데 갑자기 구역질, 심리적인 구역질이 나더라고요. 잡을 때면 쇠고리 같은 것으로 들어 올리는데, 참치들은 피를 철철 흘리고 사람들은 큰 참치를 잡았다며 굉장히 좋아하고. 닭고기가 된 닭의 살을 볼 때와 초밥 위에 얹힌 바다동물의 살을 볼 때의 느낌은 같아요. 저의 경우에는 소나 생선이나, 닭이나 생선이나 똑 같아요. 적어도 인식 상으로는요. 그럼에도 먹는 것과 관련해서는 우선 순위, 우선 순위에 있어서는 바다동물 순위가 가장 뒤쪽인 게 현실이고요.” (B / 32세 카메라 기자, 채식 기간 2년)
인터뷰 대상자의 3분 2 정도는 육지동물에 대한 느낌과 생각을 바다동물에게까지 확장해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B의 경우처럼 소비를 줄이거나 중단하는 순서에 있어서 바다동물을 최후의 과제로 남겨두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많은 경우 소고기와 돼지고기의 소비를 줄이거나 중단하는 단계에서 시작해 달걀, 우유, 치즈 등의 소비를 줄이거나 중단하는 순서로 ‘비육식’을 시도합니다. 그리고 최종 단계에서 바다동물 소비를 축소하거나 중단하는 것을 고려하게 되지요.
“바다동물에 관해서는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채식의 경우에도 육지동물만을 배제하려는 것이지 아직 바다동물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F)
“바다동물에 관해서는 정말 모르겠어요. 만일 내가 무인도에 닭과 물고기와 같이 있다고 가정할 경우에, 닭과는 같이 살고 싶을 것 같은데, 물고기는 잡아먹을 수 있을 것도 같아요. 물 밖으로 나와서 나와 함께 살 수 없다고 생각해서 일까요? 모르겠어요. 하지만 샥스핀이나 고래 고기는 먹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막연하게나마 안 먹을 수 있으면 먹지 않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은 해요. 최근에 한 생각이지만, 그래서 관련 서적들을 챙겨보기 시작했어요.” (J)
나머지 3분의 1 정도는 바다동물에 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거나, 적극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 이유는 J의 경우와 같이 육지동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보가 적어 거리감을 느끼고 있거나, 몇몇 인터뷰 대상자들은 육지동물의 소비를 중단한 상태에서 바다동물에까지 문제 의식을 확장할 경우에 겪는 어려움 때문에 “의식적으로 의식하기를 멈추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윤리적 고민은 변화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문제는 인간동물에게 고통일 수 있는 가해는 비인간동물에게 역시 고통일 수 있는 가해라는 데에 있고, 그 ‘비인간동물’ 안에는 육지동물 뿐만 아니라, 바다동물이 포함된다는 사실입니다. 혹자는 바다동물이 고통을 느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수많은 연구에서 바다동물 역시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이 증명되어 오고 있습니다.
피터 싱어와 멜라니 조이에 따르면, 어류와 파충류는 포유류가 나타내는 대부분의 고통 행위를 보인다고 합니다. 심지어 인간동물의 제한적인 청력 때문에 결코 들을 수는 없지만, 이들이 고통을 느끼는 경우에 소리를 내기도 한다고 합니다. 많은 동물학자들이 물고기의 입술에 산성 물질을 바를 경우 큰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 갑각류 역시 인간동물과 유사한 신경 체계와 신경 세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물고기의 기억력이 최소 3개월에 이른다는 사실 등을 밝혀냈습니다.
이쯤에서 ‘육지동물로도 모자라 이제는 바다동물도 고통을 느낀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느냐’며 나무라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바다동물이 고통을 느끼는지에 관한 관심을 뛰어 넘어 ‘바다동물에게 감정이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로 확대되고 있답니다.
인터뷰 대상자들의 대부분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학대’ 개념을 확장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인간동물의 비인간동물에 대한 인식 자체가 ‘학대’라고 말한 분도 있었지요. 이 학대 개념 안에 바다동물을 포함시킬 것인지 말 것인지가 또 하나의 고민 거리가 되고 있고, 적지 않은 분들이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민하고 갈등하고 있다는 것은 곧 또 다른 변화, 선택의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마치 육식을 하고 모피를 걸치는 문제에 관해 어떠한 문제 의식도, 두려움도 없었던 이들이 이러저러한 계기와 기회를 통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인간동물에 대한 학대와 착취에 관해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비인간동물이 일상적으로 겪는 고통의 무게를 이해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우리가 어떻게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회피하고, 묵인하고, 동조하고, 침묵할 수 있었겠습니까. 어쩌면 우리는 이미 답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현실을 들여다보기를 두려워하고, 새로 알게 될 현실 앞에 갈등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가 회피하고, 갈등하고, 두려워한다는 것은 곧 우리 안에 방어 기제뿐만 아니라 공감 능력 역시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자, 그럼 이제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이 문제에 관한 구체적인 답을 찾는 과정을 마지막 칼럼에 담을 예정입니다. * PeTA 캠페인 영상 보기 http://youtu.be/6KUwib-rGis
[참고 문헌]
멜라니 조이. 노순옥 역. 2011.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모멘토.
피터 싱어. 김성한 역. 1999. 『동물해방』. 인간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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