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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스님의 다큐멘터리 <모래가 흐르는 강> 

▲ 지율스님의 다큐멘터리 <모래가 흐르는 강>(Following Sand River, 2013)   
 
지율스님, 4대강, 내성천.
 
낯설지 않은 단어들이었다. 잊을만하면 기사를 통해 접할 수 있었다. 나는 자연을 크게 훼손하고 주민들을 몰아내는 4대강 개발사업에 반대한다. 하지만 반대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내가 4대강 사업을 찬성하거나 무관심한 사람들과 다른 점은 없다. 자연이 망가지고 있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권력과 자본의 탐욕을 탓할 뿐이다. 그래서 무기력하고, 그래서 무뎌진 것 같다.
 
그러던 중에 지율스님이 직접 촬영하셨다는 다큐멘터리 <모래가 흐르는 강>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었다. 막연하고 당위적인 감정을 가지고 이 영화의 ‘배급위원’이 되었다. 그것으로 나의 무관심에 대한 면죄부를 주었다. 그러나 돈을 버는 일 때문에 배급위원 시사회에 참석하지 못했고, 또 다른 일정들로 개봉 날에도 극장을 찾지 못했다.
 
내가 배급위원이 되었다고 해서,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내가 원망하고 비판하던 사람들과 다를 것 없다는 사실이 다시금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 것 같단 생각에 시간을 내어 상영관을 찾았다.
 
낙동강 순례를 하며 만났던 강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카메라를 든 지율스님의 마음이 느껴졌고, 주민들의 마음이 느껴졌고, 무엇보다 죽어가는 자연의 고통이 느껴졌다.
 
60년 넘게 농사를 지어온 할머니의 소중한 밭을 이리저리 망쳐놓은 포크레인 바퀴자국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어르신들의 평화로운 일상이 타지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 죄송스러웠다. 전기 톱의 굉음과 함께 눈 깜짝할 사이 죽어나가는 나무들이, 우리 인간의 삶과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내 발가락 사이를 간지럼 폈던 내성천의 물살이 떠올랐다. 까끌까끌하면서도 보드라웠던 모래알의 감촉이 되살아났다. 그 공간에서 함께 한 사람들과, 눈을 감고 손을 잡고 귀 기울였던 바람소리, 나무소리, 풀잎소리, 새소리, 벌레소리, 물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날 내성천에서 내 마음은 뜨거워지고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책으로 배우고 사진으로 보고 자동차나 기차 창 밖으로 빠르게 지나치며 ‘구경’했던 자연과 처음으로 직접 인사를 나눈 경험은 나에게 깊은 충격을 주었다. <낙동강 순례>에 참여했던 것은 겨우 3년 전의 일이다.

▲ 다큐멘터리 <모래가 흐르는 강>(Following Sand River, 2013)  스틸컷  
 
하지만 도시의 일상으로 돌아오자, 그 아름다웠던 시간들은 점점 잊혀져 갔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들에 분노하느라, 자연이 준 평화로 충만했던 감동은 옅어졌다. 인간이 자연에 가하는 엄청난 폭력이 결국 인간에게 되돌아오고 있다는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왔지만, 지금 당장 내가 겪고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눈앞의 것들만 좇아 지내온 것이다.
 
그래서였나 보다. 온 몸과 온 마음을 다하고 있는 지율스님의 ‘정부가 주도하고 거대한 기업이 시공하는 사업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라는 고백에, 부끄러움과 함께 마음이 아파왔다.
 
국가와 자본이라는 거대한 시스템 앞에 개인은 너무 작고 나약하다. 하지만 어떤 개인은 나약하지 않은 것 같다. 개인‘들’의 ‘힘’을 믿고 ‘행동’하는 개인은 더 이상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을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할 수 있었다.
 
강은 살아있는 모든 것의 ‘관계’이다 

지율스님은 이 다큐를 통해 우리에게 추상적인 이미지로 존재했던 강을 구체적인 생명체로 보여주고 있다. 강이라는 것이 독립된 것이 아니라 물, 모래, 땅, 농사, 나무, 사람, 작은 생명들과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 그 아름다운 관계들을 파괴하는 공사가 어떤 경위로 결정되고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려주고 있다.

▲ 다큐멘터리 <모래가 흐르는 강>(Following Sand River, 2013) 스틸컷  
 
<모래가 흐르는 강>의 훌륭한 점은 작고 여린 한 사람의 진심과 놀라운 행동력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었던, 아니 포기하고 있었던, 우리를 생존하게 해주고 우리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자연’이라는 존재를 만나게 해준다는 것이다. 마음으로 찍은 영상을 통해 마음으로 고통과 희망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이보다 더 놀라운 교감이 어디에 있을까?
 
끊임없이 흐르는 모래가 강의 물을 정화시키고 강과 함께 사는 생명들을 보살피듯이 <모래가 흐르는 강> 역시 관객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자연에 가하는 인간의 폭력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내가 부끄러움을 이기고 이렇게 글을 쓰는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다른 이들도 마음을 열고 시간을 내어 강을 만나러 가보기를 권한다. <모래가 흐르는 강>은 그 소재의 정치성과 윤리성을 제외하고라도,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표현하면서 시간성을 다루는 ‘영상’이라는 매체의 효과를 잘 사용하고 있는 뛰어난 작품이다. (이충열)
 
※ 영화 상영 안내: 시네마달 cinemadal.tistory.com 02-337-2135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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