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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성 충전

인간사회를 통찰한 세 여성의 삶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3. 2. 27. 19:30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이 시대 청년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
시몬 베유, 도로시 데이, 레이첼 카슨    
 
현대문명과 거리를 둔 채, 산골에서 자급농사를 지으며 살고있는 도은 님의 연재기사입니다. 도은님은 두 딸과 함께 쓴 “세 모녀 에코페미니스트의 좌충우돌 성장기” <없는 것이 많아서 자유로운>의 저자입니다. www.ildaro.com

"영혼은 어찌나 까다롭고 유별난지
우리가 군중 속에 섞여 있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긴다.
하찮은 이익을 위해 목숨 거는 우리들의 암투와
떠들썩한 음모는 영혼을 메스껍게 한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영혼에 관한 몇 마디” 중에서-
 
시몬 베유, 시대의 고통과 불의에 상심한 그가 남긴 잠언 

참으로 까다롭고 유별난 여성이 있었다. 태도나 성격만이 아니라 ‘영혼의 문제’가 말이다. 20세기 초에 유대인으로 태어나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겪었고, 시대의 고통과 불의 때문에 깊이 상심했던 여성 시몬 베유(1909-1943). 사상가이자 신비주의자, 교사이자 노동자, 사회운동가이자 아나키스트. 사람들은 다양하게 그녀를 호칭한다. 위태롭게 순수했고, 어떤 정치조직에도 가입한 적 없지만 혁명적이고 참여적이었던 사람.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를 가장 밑바닥까지 의도적으로 경험했던 사람, 어떤 학파나 당파나 이데올로기로도 붙잡을 수 없는 복합적이고 예리한 글을 썼던 사람, 자기에게 베풀어지는 특권을 괴로워했고, 생애 내내 비참한 이들에 대한 열렬한 동정심을 품었다. 놀라운 지적 탐색과 고독하고 윤리적인 선택을 한 인간처럼 보인다.
 
<중력과 은총/철학강의/신을 기다리며>(시몬 베유, 동서문화사, 2011)에 나온 그녀의 아포리즘(잠언) 몇 개를 인용해보자.
 
“불행 때문에 하찮은 대상에게 집착할 수밖에 없을 때, 집착의 비참한 특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것만으로도 집착을 버려야할 필요성이 분명해진다.”
 
“고통에 빠진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을 괴롭히거나 동정심을 유발해서 자신의 고통을 알리려고 애쓴다. 그런데 낮은 곳에 있는 사람, 아무도 불쌍하게 여겨주지 않고, 누고도 괴롭힐 권한이 없는 사람의 경우, 고통은 자기 속에 그대로 남아 자기를 해친다.”
 
“악을 자기 밖으로 퍼뜨리려는 경향, 나에게도 아직 남아 있다. 나에게 인간과 사물은 그다지 성스러운 것이 아니다.”
 
“공정함의 빛을 받지 못하는 권위, 그런 권위를 쥔 인간에게 종속되는 것은 악몽과도 같다.”
 
시몬 베유의 아포리즘과 철학 강의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대단히 급진적이면서 어느 면에서 보수적이다. 오만할 정도로 단정적이다. 그럼에도 날카롭게 내 마음을 잡아끄는 뭔가가 있다. 벌거벗은 진솔함 같은 것이 있다. 그녀의 인생 여정과 정신적 여정이 그랬다. 끝까지 자기 영혼을 잃지 않으려고 날카롭게 노력했던 인간이 아닐까 싶어서 매혹된다. 이토록 열렬하게 인간과 삶의 본질을 탐구하려 애쓰다니…….
 
‘순수란 더러움을 가만히 응시하는 힘’
 
깊이 기독교적 사고방식이 배어 있었지만 일반적인 의미의 신자는 아니었다. 신을 향한 탐구가 열렬했지만 그렇다고 가톨릭 신비사상 연구자는 아니었다(그렇게 보려는 사람들도 많은 듯하지만). 교회가 만들어내는 만병통치약들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2차 대전 시절에는 농장 노동자와 공장 노동자로 일하고, 스페인 전쟁에 참여하고, 빈곤과 고통 속에서 서른네 살에 마감해버린 생애. 거의 자살이라고 할 만한 죽음이었다. 모순으로 가득한 듯 보이고, 극단적이었던 것처럼 보이고, 지나치게 고결했던 것처럼 보이고, 지나치게 예리하고 자학적인 것처럼 보인다.
 
생전에는 책들이 출판된 적이 없다. 그녀가 죽은 후에 원고를 보관하고 있던 사제들이나 그녀의 철학 강의를 들었던 학생이 노트를 정리해서 나중에 펴낸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번역된 것이 별로 없다. 오래 전에 유치한 제목(“내 영혼 다 태워서” “여기 존재의 이유가” “불꽃의 여자 시몬느 베이유의 사색” 등등)으로 부분 발췌 번역이 몇 권 나왔지만, 지금은 거의 절판이 되었다. (최근에 동서문화사에서 두툼한 책이 나왔으나 이것도 번역이 그다지 매끄럽지는 않다.)
 
“십자군이나 종교재판을 인정했던 성자도 더러 있었습니다. 저는 이들이 틀렸다고 강하게 생각합니다. 양심의 불빛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매우 강력한 ‘어떤 것’에 의해 눈이 가려졌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 ‘어떤 것’이란 제도로서의 교회입니다. 이 제도가 성자들에게 해를 끼쳤다면, 저에게도 해를 끼치지 말라는 보장이 없지요.”
 
“저는 공장에서 불행이라는 것에 지배당했고, 다른 사람들의 불행은 저의 육체 속에 또한 제 마음속에 깊이 뚫고 들어왔습니다.”
 
“저는 볼가 강에서 배를 젓는 사람들의 노래 말고는 그렇게 슬픈 노래를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때 돌연히 기독교는 노예의 종교라는 것, 노예는 기독교에 집착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 나도 그들 속에 속해 있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페렝 신부에게 보낸 편지)
 
“사회의 균형이 어디서 무너졌는지를 알면, 가벼운 쪽 접시에 추를 더 얹기 위해 모든 일을 다 해야 한다.”
 
“순수란 더러움을 가만히 응시하는 힘이다”
 
“인간은 이기주의자가 되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비참함이 지닌 가장 감동적인 특성이고 위대함의 원천이다.”
 
그녀는 지나치게 섬세했을까? 극단의 선택으로 몰아간 동기가 궁금하다. 타고난 지적 오만함에다 순결한 이상과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결합한 결과일까?
 
가톨릭 노동자 운동에 온 삶을 바친 도로시 데이 

또 한 여성이 있다. 일생동안 “괴로운 사람은 편안하게 해주고, 편안한 사람은 괴롭게 해주었다.”는 평가를 받은 여성. 청년 시절에는 사회주의 운동에 투신했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해 신을 발견하고, 온 몸으로 이상주의를 받아들이고 평생 실천했던 여성이다. 도로시 데이(1897-1980). 가톨릭 노동자 운동에 온 삶을 바친 사람이다. 그녀와 오랜 세월 교류하고 대화를 나눈 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인 로버트 콜스가 쓴 <환대하는 삶>(로버트 콜스, 낮은 산, 2011>은 성실한 탐색으로 이루어진 대화체 전기이다.
 
도로시 데이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환대의 집’을 여러 곳 열었다. 다양한 시민 불복종 저항으로 평생 일곱 차례나 투옥되었다(맨 마지막 투옥은 일흔 다섯 살 때이다). 전쟁을 반대하고, 백인우익단체인 KKK단의 총격도 받았다. 또 가톨릭교회가 핵무기를 반대하고 비폭력을 옹호하길 바라면서 시위와 단식을 벌이기도 했다.
 
솔직히 나는 제도가 되어버린 종교를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다. 나도 미적인 경험을 바라기 때문에 오래되고 아름다운 성당이나 예술적인 종교화들, 성스러운 분위기가 감도는 장소들을 혼자서 좋아하긴 한다. 하지만 너무나 세속적이고 권력 지향적인 데다가 거의 종교 사업처럼 되어버린 한국 종교계에는 눈길을 주고 싶지 않다. 낮은 사람들 곁에 있지 않은 종교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으랴. 그런 까닭에 자기 종교를 간판처럼 앞세우며 이름을 날리는 종교인들의 말에 큰 관심이 없다. 오히려 불편하다. 그들의 언행이 ‘진정한 구원’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
 
하지만 도로시 데이는 내게 좀 다르게 다가왔다. 그녀는 청년시절 이상주의자였다. 자본주의 시스템에 저항하고자 사회주의 운동에 뛰어들었지만,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야망이 자칫 윽박지름이나 생색내기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젊은 여성이었던 나는 진리를 찾고 있었어요. 그것은 내 직관에 따른 몸부림이었고 고군분투였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대부분의 나이든 사람들보다 젊은이가 좀 더 자신 너머를 바라보려는 건 당연합니다. 많은 사람이 ‘묶여’ 있습니다. 그들은 새벽부터 쉴 새 없이 바쁘고, 현상 유지를 위한 일상의 의무만으로 쫒깁니다.”
 
“젊은이들에게 이상주의란 스스로 실체를 드러내는 덕인 동시에 호기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주의는 우리 이웃 속에 보이는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말로만 한다면 전혀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국가와 교회에 맞설 수 있을까? 가장 거대한 억압에 직면한 이 세상에서? 고통을 견디고 고난에 대항할 역량이 내게 있을까? 나는 또다시 기나긴 고독 앞에 마주섰다.”
 
“지역주의가 의미하는 바를 가장 짧게 요약한다면, 나는 그게 사실상 정치적이기도 하고 동시에 영적이기도 한 친절한 이웃 관계라고 말하겠습니다.”
 
그녀가 가난한 이들을 위한 ‘환대의 집’을 연 까닭은
 
원래 제목이 “기나긴 고독(The Long Loneliness)”인 <고백>(도로시 데이, 복있는사람, 2010)은 그녀가 쉰다섯 살이 되던 1952년에 쓴 자서전이다. 이 책에는 가톨릭 신앙과 사회운동을 결합시키려고 끊임없이 내적인 모색을 해온 그녀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그리고 아주 흥미로운 인물인 피터 모린이라는 동지이자 스승과의 만남이 있다. 둘은 의기투합했다. ‘사람들이 더 쉽게 선해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내자고, 그리고 ‘가톨릭’이란 말은 ‘가난한’과 거의 동의어라고.
 
“마음속에 커다란 의문이 일어났다. 왜 우리는 이미 발생한 사회악의 교정에는 그토록 많은 자원을 쏟아 부으면서 미리 방지할 생각은 하지 않을까? 노예들을 도와줄 것이 아니라 노예제도를 없애버려야 하지 않을까? 이렇듯 사회질서를 뒤바꾸려고 하는 성인들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자선행위를 너무 많이 필요하게끔 만든 사회 체제에 대해서 교회가 단호하게 맞서 저항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자선 행위는 진저리나는 단어이다. 누가 자선 행위를 원했다는 말인가?”
 
그녀는 초기 기독교가 품고 있었던 “환대하는 정신”을 강조했다. 집 없는 부랑자나 노숙자를 자선단체나 국가의 복지 기관에 맡겨서는 안 된다고, 직접 돌보자고 주장했다. 그리고 몸소 실천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자기 집에 환대의 방을 가져야 하고, 각 교구들은 환대의 집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콜스에 따르면, 도로시 데이는 젊은 시절 자신이 읽은 책들과 경험한 것들에서 삶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을 자극받았던 도덕적 탐험가였다고 한다. 그리고 모순적인 인물이라고 말한다. 대단히 실제적이고 정치적이고 실천적이지만, 또 대단히 명상적이고 영적이었으니까. 내밀하고 충실하게 그리스도에게 헌신했으나, 가톨릭 성직자들의 정치적인 위계질서나 “층층시하 관료들 속에서 일어나는 그 모든 음모”가 손을 뻗쳐올 때면 반항하는 마음이 일어난다고 고백했다. 아나키스트 같은 면도 있었으나, 가톨릭의 의례나 규격화된 권위마저 사랑했던 인물이다.
 
나는 이 책들을 읽으면서 그녀들이 때로 자기 삶과 자기를 둘러싼 사회 구조에 대해서 심각하게 회의했고, 고통스럽게 의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불안한 자기 영혼을 붙잡기 위해서 고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 시몬 베유와 도로시 데이는 내가 여러모로 탐구하고 싶은 문제적(?) 여성들이다. 부스러기 정보들에 피상적으로만 반응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믿음, 진리, 정의, 연민, 이타심, 오만, 자기 극복 같은 어려운 문제들을 성찰해보라는 도전거리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레이첼 카슨, 문학언어로 과학을 풀어낸 생태주의자

또 한 사람, 우리가 비교적 잘 아는 여성이 있다. 레이첼 카슨(1907-1964). “호수의 풀들은 시들어가고 새들은 더 이상 노래하지 않네.”라는 키츠의 시로 시작하는 <침묵의 봄>(에코리브르, 2002)을 쓴 여성 과학자이자 과학을 글로 쓴 작가이다. 치밀한 분석으로 화학 살충제 DDT의 위험성을 경고한 이 책은 이제 환경 서적의 고전이 되었다. 하지만 1962년에 미국에서 출간될 당시만 해도 커다란 반향과 더불어 언론계와 화학 산업계의 거센 반발과 맹공격으로 혹독하게 몸살을 겪었던 책이다.

또 카슨은 1950년 대 중반에 핵폐기물의 해양 투척에 반대하며 그 위험을 경고하기도 했던 선구적인 사람이다. 오늘은 그녀의 유작을 모아 펴낸 <잃어버린 숲>(린다 리어 엮음, 그물코, 2004)를 소개하려고 한다.
 
아주 조용했고, 목소리도 작았고, 대중 운동과는 별 관계없이 연구자로 살던 그녀는 20세기 후반에 일어난 환경 운동에 가장 크고 중요한 기여를 한 사람이다. 지금 중국이나 인도에서 그렇듯이, 20세기 중반까지 대부분의 서구인들은 환경문제에 아주 무관심했다. 오로지 과학기술과 경제 성장만을 신앙처럼 믿었다. 온갖 발전들로 도취해 있었고 인간들의 이익과 안락에만 관심을 두었다.
 
카슨은 해양 생물학자였고 자연 관찰자였다. 그리고 자연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자 글쓰기를 사랑하는 작가였다. 과학적 지식을 갖춘 생태주의자랄까. 하지만 그녀의 삶은 그리 쉽지 않았던 듯싶다. 어른이 되자마자 집안의 가장이 되어서 어머니, 여동생, 여동생의 딸들, 나중에는 증조카까지 입양해서 부양해야 했다. 인생 후반기에는 존경을 받고 생활도 안정되었고, 자신이 헌신하고 싶었던 주제들을 글로 쓰겠다는 꿈도 꾸었으나 쉰네 살에 암으로 숨진다.
 
<잃어버린 숲>에는 카슨의 다양한 글들이 엮은이의 자세한 설명과 함께 실려 있다. 생전에 잡지 등에 기고했던 글도 있고 미발표 원고들도 있다. 또 어린 시절의 글, 자연 에세이, 연설문, 현장 노트에서 발췌한 글, 친한 이웃들에 보낸 편지들도 들어 있다.
 
책으로 출간되어 미국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우리를 둘러싼 바다>(양철북, 2003)나 <자연,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에코리브르, 2002)를 읽은 사람들은 그녀의 글이 얼마나 서정적이고, 치밀하고, 빼어난 통찰력이 있는지를 잘 알 것이다. 그녀는 과학적 사실과 자연의 신비를 아름다운 문학 언어로 써낼 줄 아는 보기 드문 과학 저술가였다.
 
“물과 바람과 모래는 건설자였고, 갈매기와 나만이 그들의 창조 과정을 지켜보는 증언자였다.”(1952)
 
“그 황량하고 메마른 세계에 홀로 서 있는 사람들은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그곳은 상냥한 나무의 부드러움, 풍부한 식물의 겸손한 자비, 조용한 호수의 상쾌함, 짙은 녹음의 색다른 느낌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이다. 그곳은 발가벗은 생명의 기본 원소만이 존재하는 세계이다.”(1952)
 
“우리는 인간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지구가 어떠했을 지를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았던 끝없는 세월 동안 바다와 바람과 해변이 가졌던 관계가 여전히 남아 있는 야생의 해변의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러면 이 초현대적인 세계에서도 인간의 방식이 항상 최선은 아니라는 자각이 들 것이다.”(1958)
 
“앞으로 생물학 발전은 좀 다르기를 희망해보자. 인간은 모든 생명체를 통치하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다른 모든 생명체를 움직이는 우주의 힘을 똑같이 필요로 하는 자연의 일부이다. 이러한 자각이 여러 곳에서 자라나고 있다. 인류의 생존도 투쟁보다는 이러한 힘들 속에서 조화롭게 사는 것에 달려있다.”(1956)
 
레이첼 카슨은 다른 의미에서 고통 받는 영혼이었다고 느낀다. 인간의 개입으로 인한 자연의 훼손과 고통을 깊이 느낄 줄 알았으니 말이다. 이 세 여성의 삶을 잠시나마 엿보고, 그녀들의 글을 읽는 일이 어쩌면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삶과 세계에 대한 고민, 인간에 대한 연민과 동정, 자연에 대한 감탄과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할지도 모른다.
 
어느새 마당가에 수선화 싹들이 올라오고 있다. 봄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가. 춥고 긴 겨울을 견딘 모든 존재들에게 기쁨의 인사를 건네고 싶다. (도은)   

    시몬 베유 <중력과 은총> (동서문화사, 2011)
    로버트 콜스 <환대하는 삶> (낮은산, 2011)
    레이첼 카슨 <잃어버린 숲> (그물코, 2004)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광고없는 대안미디어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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