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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스무살 여연의 공상밥상 (3) 감기를 이겨내는 죽과 차 
 
제도교육에서 벗어나 홈스쿨링과 농사일로 십대를 보낸, 채식하는 청년 여연의 특별한 음식이야기가 연재됩니다. 갓 상경하여 대도시 서울의 일상 속에서 펼쳐지는 스무살 청년의 음식을 통한 세상 바라보기, 그리고 그 좌충우돌 실험 속에서 터득한 ‘여연표’ 요리법을 소개합니다. www.ildaro.com 
 
온몸이 따뜻해지는 고소한 달걀죽 한 그릇
 
몸이 아프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곳저곳 빨빨거리면서 돌아다니다가 탈이 난 건지, 온 몸이 따끔따끔하고 머리가 빙빙 돌고 입이 바싹바싹 마른다. 아침이 다 지나갈 때까지 누워만 있었다. 눈을 뜨면 방 천장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어질어질하고, 편두통이 너무 심해서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흘러나온다. 혼자 아프면 서럽다는데 내가 바로 그 꼴이다.
 
열에 들뜬 몸이 움직이기를 거절하는 바람에 몇 끼니를 거르고 말았다. 하도 오래 누워있어서 그런지 머리가 띵하다. 이렇게 아픈 날에는 부드러운 죽을 뜨겁게 후후 불면서 먹고 싶다. 좀 더 누워 자라고 이불이 등을 유혹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스스로를 잘 챙기리라 생각하면서 억지로 일어났다. 냉장고를 열었더니 마침 얼마 전에 생협에서 사온 계란이 눈에 띈다. 빙빙 도는 머리와 떨리는 손으로 간단하게 달걀죽을 끓였다. 

만드는 법은 이렇다. 다시마와 버섯으로 국물을 낸 다음 찬밥 한 덩이를 풍덩 담가 푹 끓인다. 찬밥이 풀어지면 당근과 부추를 잘게 채 썰어 넣는다. 계란 2알을 우묵한 그릇에다 잘 풀어서 소금으로 짭짤하게 양념한 다음, 끓고 있는 밥에 천천히 부으면서 잘 휘젓는다. 몇 분 더 팔팔 끓인 다음 불을 끄고 들기름을 넣어 먹는다. 고소하고 따끈한 죽을 먹으니 뱃속이 꽉 차는 느낌과 함께 온 몸이 따뜻해지면서 괜히 눈물이 난다.  
 
영양 가득하고 달콤한 팥죽 만들기   
 
죽을 조금씩 먹으며 한 삼일 정도를 정신없이 앓고 나니 이제 좀 살 것 같다. 회복기에 들어선 몸이 영양가 있는 음식을 필요로 하는지, 부드럽고 달콤하고 걸쭉하면서도 향긋한 음식이 먹고 싶어졌다. 뭐가 있을까? 찬장 속에 꼭꼭 쟁여놓은, 집에서 보내준 팥이 퍼뜩 떠오른다. 아까워서 동짓날에도 해먹지 못한 단팥죽을 얼렁뚱땅 간단하게 끓여 보기로 했다. 사실 팥죽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좋아하면서도 직접 끓여보기는 처음이다. 집에서는 늘 엄마가 한 솥 가득 끓이는 늙은 호박 팥죽을 얻어먹었으니까.
 
먼저 팥을 꺼내 잘 씻은 다음 팥이 푹 잠길 만큼의 물을 붓고 불렸다. 반나절 정도 불리면 팥이 물에 퉁퉁 불어 짙은 자주색이 한 톤 연해진다. 냄비에 불린 팥을 넣고 부글부글 센 불에 끓이다가 붉은 물이 우러났다 싶으면 따라낸다. 나는 원래 다시마국물이나 쌀뜨물을 함부로 버리지 않고 가능한 다른 요리에 맛국물로 쓰는 편이다. 하지만 팥을 삶은 첫 물에는 사포닌 성분이 있어서 쓴맛이 나기 때문에, 아까워도 개수대에 그냥 흘려버렸다.
 
팥에 다시 물을 부어서 끓인다. 성격 급한 나는 5분마다 팥을 한 알씩 건져서 ‘익었을까, 안 익었을까?’ 하면서 손가락으로 으깨보지만,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건 말건 팥은 넉넉잡아 30분은 삶아야 물렁해진다. 팥이 익으면 일단 불을 끄고 숟가락으로 조금씩 으깬다. 나는 알맹이가 남아있는 걸 좋아해서 많이 으깨지는 않는 편이다.
 
팥을 다 삶았으니 이제 다른 재료들을 준비할 시간이다. 그런데 아뿔싸! 당황스럽게도 찹쌀가루와 새알심이 없다. 몸이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바깥에 나갈 만큼은 아니다. 하는 수 없이 대신할 수 있는 재료를 찾아서 냉장고와 찬장을 뒤적거렸다. 딱딱하게 굳은 현미가래떡과 찬장 한 구석에서 고이 잠자고 있던 조그맣고 단단한 산밤이 나왔다. 이것들이라면 찹쌀가루와 새알심을 대신할 수 있을 듯하다. 가래떡을 한 입 크기로 자르고 밤을 삶아 부드러운 속살을 파내서 팥에 섞었다.
 
이제 다시 냄비를 불에 올렸다. 이번에는 불을 약하게 해서 재료들이 풀어지고 어우러지도록 오래오래 끓인다. 눌어붙지 않도록 숟가락으로 휘휘 저으면서 한 입씩 퍼먹다 보니, 한 냄비 가득하던 팥죽이 어느새 절반으로 줄었다. 양을 조금이라도 늘려보려고 물을 조금 더 붓고 간을 다시 맞췄다. 약한 불에 오래오래 끓인 팥죽에 해바라기 씨, 호박씨, 아몬드, 호두 같은 견과류를 잘게 부숴서 넣고 계핏가루를 뿌려 먹으면 매일매일이라도 먹고 싶을 만큼 환상적인 맛이다.

팥은 농약을 치지 않고는 정말 키우기 힘든 편에 속한다. 산에 바로 인접해 있는 밭에다 팥을 심어 놓으면 고라니가 밤마다 몰래 내려와 어리고 연한 순을 야금야금 따먹는다. 애써 연 팥꼬투리 속으로는 희고 통통한 애벌레가 어느 사이엔가 들어가서 가뜩이나 작은 팥 알맹이들을 몽땅 먹어치우고 대신 동글동글한 똥만 남겨놓기 일쑤다.

팥 알갱이를 배부르게 포식하던 애벌레는 팥을 따는 동생이나 내 손에 터져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잔혹한 애벌레의 운명을 생각하면 참 안됐지만 사람 입장에서도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날이 너무 가물면 팥꼬투리에 든 게 없어 얄팍하지만 그렇다고 비가 더 많이 온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다. 겉껍질이 온통 물러버리기 때문이다.
 
아픈 몸을 찾아드는 상념들
 
집에 있을 때 나는 농사일 때문에 하고 싶은 다른 일을 제대로 못하며 산다는, 근거 없는(사실 변명에 가까운)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반면에 엄마는 ‘그 정도 경험만 가지고는 자급농사에 대해 어디 가서 아는 척도 못 한다’며 비웃는 태도를 취해서 알량한 내 자존심을 무척이나 상하게 만들었다. 이제 와서야 그 비웃음이 조금 이해가 된다.

엄마는 끊임없이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고 시험하는 진짜 농사꾼이었다. 봄여름과 가을에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밭에서 보내고, 온갖 채소와 허브와 꽃들을 심고 실험하면서 행복해하는. 반면 나는 이도 저도 아닌, 대도시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찬 촌아이였을 뿐이다.
 
차라리 집에 있을 때 맘먹고 일 년 농사를 제대로 배웠더라면, 조금 더 든든하고 자신감 가득한 마음으로 서울에 올라올 수 있었을까?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시골사람이라는 내 정체성을 더 잘 살릴 수 있었을까.
 
혼자 가만히 누워 있으려니 별의별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기아와 전쟁에 시달리는 사람들, 하루의 대부분을 깨끗한 물을 얻기 위해 걷고 또 걸으면서 보내는 사람들.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를 찾기 위해 싸워야만 하는 사람들. 인터넷과 언론의 힘은 놀라워서 나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늘 보고 듣고 있다. 따라오는 건 죄책감이다. 외부 환경이 나름대로 편안하고 운이 좋은 편인데도, 나는 일상을 힘겨워하고 별 것도 아닌 일에 상처를 받는다. 참 약하고 별 거 없는 사람이구나. 내 몫의 불행이라고 해봤자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사소한 것들일 텐데.
 
추상적인 두려움 따위 모두 흘려버리고
 
집에서 감기에 걸려 앓아누웠을 때 늘 마시던 차가 있다. 도라지, 파뿌리, 생강, 모과, 귤껍질(이때는 유기농 귤을 사용해야 한다), 은행, 배, 대추, 박하 잎 등등 계절에 따라 구할 수 있는 약이 되는 재료들을 넣고 오래오래 달여 시큼하고 씁쓸하고 달짝지근한, 한 마디로 오묘한 맛이 나는 탕약이다.

나와 동생은 워낙 건강해서 아주 어릴 때를 빼곤 병원이란 곳과 친하게 지낼 일이 별로 없었다. 다만 일 년에 몇 차례씩 몸이 크게 아플 때는 단식을 하면서 그 차를 큰 컵으로 가득가득 지겨울 만큼 마시고 뜨끈한 방바닥에 몸을 지지며 땀을 푹 내곤 했다.
 
온갖 재료를 넣어서 약한 불에 오래 달인 그 탕약과 있는 듯 없는 듯한 가족의 돌봄, 그리고 마음을 탁 풀어놓을 수 있는 휴식. 이런 것들을 당연하게 여길 수 있는 때는 이제 지나가버린 걸까? 스무 살이라는 이 나이에 서울에 올라온 나는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뭘 경험하고 배우고 싶었던 걸까. 시끄럽고, 낮선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매 순간마다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여야 하는 도시에서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에 온전하게 집중하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몸이 아프면 자연스레 몸도 마음도 예민해지고, 예민해지면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들이 모두 현실에서 일어나는 꿈을 꾼다. 내게 주어진 자유를 잘 쓰지 못하고 나태함 속에 파묻혀 하루하루를 흘려버리거나. 권위에 주눅이 들고 부유함을 동경하거나. 지금 이 순간 나의 상태를 인정하지 못하고 실체조차 분명하지 않은 환상속의 나를 쫓아다니거나. 세상에서 떨쳐져 완전히 혼자가 되거나.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비굴해지거나.
 
팥에는 이뇨작용이 있기 때문에 먹으면 오줌을 자주 누게 된다. 조금 우스운 비유일 수도 있겠지만, 팥죽을 배가 빵빵해지도록 먹고 모두 다 깨끗하게 비워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상적인 두려움 따위는 흘려버리고, 사소한 일부터 시작해서 내 세계를 하나하나 쌓아갈 수 있다면. 그러기 위해선 약해질 대로 약해진 몸과 마음을 먼저 추슬러야겠지. (여연) 

     * 여성주의 저널 일다 Feminist Journal <Ilda> 바로가기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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