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스무살 여연의 공상밥상 (2) 허브를 넣은 김치만두 

 
제도교육에서 벗어나 홈스쿨링과 농사일로 십대를 보낸, 채식하는 청년 여연의 특별한 음식이야기가 연재됩니다. 갓 상경하여 대도시 서울의 일상 속에서 펼쳐지는 스무살 청년의 음식을 통한 세상 바라보기, 그리고 그 좌충우돌 실험 속에서 터득한 ‘여연표’ 요리법을 소개합니다. www.ildaro.com 
 
동생과 나, 추석과 설 명절을 손꼽아 기다린 까닭은
 
동생과 나는 몇 년 동안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을 둘이서만 보냈다. 오랫동안 셋이서만 살다가 재혼한 엄마는 며느리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 시댁에 갔지만 우리는 따라가지 않았다. 새아버지의 가족들이 우리를 손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와 동생 역시 그들을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으니 섭섭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었다. 이제 서야 쓰지만 사실 우리는 일 년에 두 번 있는 명절을 손꼽아 기다렸다.
 
명절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면, 나와 동생은 산길을 함께 걸으면서 엄마가 없는 날에 우리끼리 해 먹거나 사 먹을 음식들을 줄줄이 나열하고 했다. 라면, 피자, 샌드위치, 치즈, 빵, 과자, 허쉬 초콜릿. 굳이 허쉬 초콜릿이었던 건 동생도 나도 알파벳 대문자로 커다랗게 HERSHEY'S라는 이해할 수 없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적힌, 농후하고 빡빡한 맛이 나고 그래서 왠지 더 도시적인 것처럼 느껴지는 초콜릿에 환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플라스틱과 비닐 포장에 싸여서 현란한 글씨로 자신이 얼마나 맛있는 ‘식품’인지를 홍보하던 그 음식들이 어린 눈에는 마냥 환상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대형마트의 화려한 조명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돈을 주고 사야 하는 미지의 영역. 나와 동생은 근처 밤산에서 서리한 밤을 주머니칼로 까먹으면서 그런 음식들에 대한 동경을 서로에게 토로했다.
 
"읍내에 나갈 일이 있으면 우리, 빵이랑 라면이랑 잔뜩 사오자. 엄마가 가고 나면 파티를 벌이는 거야."
"하지만 들키면 어떻게 하려고?"
"설거지도 깨끗하게 해 놓고, 쓰레기는 태우면 되잖아."
"그럼 언니, 고양이들 줄 참치 통조림도 같이 사올까?"
"뭐라고, 우리도 잘 안 먹는 참치를 왜 걔네들한테 주고 그러냐?"
"하지만 지금 아니면 언제 그런 걸 먹이겠어? 그래 알았어. 하지만 바보 같은 짓이야."
 
두근거리면서 장을 볼 목록까지 짰지만, 정작 명절 당일이 다가오면 이상하게도 범죄를 저지르는 것인 듯 영 내키지가 않아서 애써 세워뒀던 계획들을 취소해버리곤 했다. 사실 돈도 별로 없었고, 귀찮기도 했고, 계획을 세운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일탈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 가끔씩 외식을 할 일이 있어도 기본 재료가 다진 고기인 만두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하지만 명절에는 고기를 뺀 특별한 만두를 만들어 질릴 정도로 실컷 먹을 수 있었다.  © 여연 
 
굳이 바깥 음식을 탐내지 않아도 명절에는 집에 먹을 게 많았다. 가래떡, 과일, 하루 동안 발효시킨 통밀 반죽을 약한 불로 프라이팬에서 구워낸 엄마 표 빵, 때로는 직접 만든 피자, 그리고 만두가 있었다. 평소 고기를 안 먹는 우리 가족은 만두를 자주 만들어 먹지 않았다. 가끔씩 외식을 할 일이 있어도 기본 재료가 다진 고기인 만두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일 뿐. 하지만 명절에는 만두피도 만두 속도 넉넉히 만들어 놓고는, 쪄먹고 구워먹고 국을 끓여먹고 여하튼 질릴 정도로 실컷 먹을 수 있었다.
 
명절 전날 엄마가 새아버지와 함께 트럭을 타고 떠나면 나와 동생은 스윽 눈길을 주고받은 다음 각자가 세워둔 나름의 계획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엌으로 달려가 설탕과 양조간장을 팍팍 넣은 국수(나)와 스크럼블 에그(동생) 등 각자 염원하던 음식들을 만들며 부엌을 엉망진창으로 어지럽히고, 책장 뒤편에 꼭꼭 숨겨두었던 만화책을 꺼내왔다.
 
이불 속에서 뭉그적거리며 영화를 보고 드러누워 자다가 배가 고프면 부스스 일어나 먹다가 다시 자고. 1박 2일 동안 한가하게 실컷 빈둥거리며 지냈다. 각자의 방에서 책을 읽고, 음식을 해먹은 그릇들을 설거지하고, 닭들에게 모이를 주고, 개와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마루를 닦고, 마당을 쓰는 것 같이 일상적인 일들은 일단 미뤄두었었던 것이다. 그러다 다음날 엄마가 집에 다 와 간다고 전화를 하면 그때서야 후다닥 해치웠다.
 
명절은 그랬다. 평소엔 금지된 일을 몰래 한다는 해방감을 느끼며 설탕과 기름을 듬뿍 넣어서 먹을 걸 만들고, 만화와 영화가 창조해낸 자극적인 가상세계를 무한정으로 즐길 수 있는 날이었다. 마음껏 흐트러져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날. 엄마에게 명절이란 며느리로서 자신의 현실에 부딪혀야만 하는 혹독한 날이었으리라(결국 이혼으로 이 현실은 끝이 났다). 하지만 나와 동생에게는 심심한 일상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즐거운 며칠이었다. 우습게도.
 
도시에 나와 ‘소비에 대한 욕망’에 처음 맞대면하다
 
이제 여긴 서울 한복판이다. 어린 내가 그토록 먹고 싶어 했던 음식은 뭐든지 1분 거리에 있는 동네 마트에서 사먹을 수 있다. 가끔씩 도착하는 엄마의 걱정 어린 메일을 빼고는 이젠 아무도 내가 먹는 음식을 가지고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마침내 자유를 얻은 건가?
 
도시에 갓 나왔을 때 소비에 대한 욕망과 처음으로 직접 맞대면을 한 나는 몇 번 크게 무너졌다. 가진 돈을 마구잡이로 써 버리고 싶은 욕망과, 무분별한 소비는 나쁜 짓이라는 생각이 충돌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시골에 사는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고 자랐기에 내가 바깥세상의 끊임없는 유혹과 자극에는 어쩔 수 없이 취약한 상태라는 걸 차차 알게 되었다. 일상에 제한을 가하던 온갖 ‘금지’들이 갑자기 풀렸을 때 당황해하는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만두 껍질 속에 고이 싸여서 익어가는 만두처럼 나도 차츰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을 배워나가겠지. 세상과 타협하면서도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방법을. 그렇게 될 때까진 분명 무너지고 일어났다 또 무너지고를 반복하겠지만, 최소한 나는 만두를 만들면서 자신을 위로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났다. 조금은 자랑스러워해도 되는 걸까.
 
*명절의 김치만두
 
준비물: 만두피, 두부, 김치, 양파, 당면, 버섯, 해바라기 씨, 들기름, 약간의 간장과 후추, 그리고 쉽게 구할 수 있는 허브.

▲ 여연표 채식 만두속 만들기: 두부, 김치, 양파, 당면, 버섯, 해바라기 씨, 약간의 간장과 후추에 허브를 섞어 부슬부슬하게 프라이팬에 볶는다.  © 여연 
 
양념을 턴 김치와 양파, 버섯을 최대한 잘게 다져서 준비한다. 두부는 물기를 빼서 으깨놓는다. 당면은 미리 물에 불려서 약간 덜 익었다 싶을 정도로만 삶은 다음 김치 크기와 비슷할 정도로 짧게 잘라놓는다. 프라이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뜨겁게 달궈서, 김치와 양파, 버섯, 두부를 넣고 마지막에 당면과 해바라기 씨를 넣어 볶는다. 재료가 거의 익어서 물기가 날아가 부슬부슬해지면 맛을 본다. 싱거우면 간장을 약간 넣어서 다시 볶고 괜찮으면 불을 끄고 식힌다. 만두피에 속을 싸서 만두를 빚는다.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서 만두피 가장자리에 바르면 잘 붙는다. 찜통에 면포를 깔고 쪄먹거나, 팬에 기름을 두르고 구워먹거나, 다시마 국물로 만둣국을 끓여먹거나, 끓는 물에 삶아먹는 등 마음대로 요리해서 먹는다.
 
향이 강한 음식을 좋아하기 때문에 일부러 후추와 마늘, 바질을 넣었다. 바질을 넣은 건 집에서 해먹던 방식이 아니라 처음 시도해 본 건데 독특하고 맛있었다. 만두는 은근히 허브나 향신료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나중에 딜, 타임, 커리가루, 로즈마리, 산초, 생강 같은 것들을 만두 한 알마다 조금씩 섞어서 무슨 맛이 날지 알 수 없는 ‘깜짝만두’를 만들어 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만두피까지 만들려니 귀찮고 힘들어서 마트에서 포장된 걸 사왔다. 기계로 찍어내 얇고 크기가 고른 만두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런 걸 만드는 공장이 없었던 시절에는, 밀가루를 되직하게 반죽해서 아기 주먹만 한 크기로 떼어내고, 밀대로 얇게 밀어서 속을 싸는 일까지 다 손으로 했을 것이다. 워낙 손이 많이 가니까 자연히 명절에만 먹는 귀한 음식이 될 수밖에 없었겠다. 냉동된 완제품이나 반완제품 식품들이 없었을 때는. 대형마트와 편의점이 아예 없고, 소비자라와 고객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을 때는.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늘 궁금했던 질문 하나를 던지고 싶다. 돈을 벌고 쓰는 일이 삶의 목적도 아니고 일상도 아니었던 시대는 과연 어땠을까? 나는 컴퓨터를 하고, 난방을 하고, 물을 쓰고, 교통카드를 찍고, 만두피를 사는 일들처럼 소소하고 일상적인 일들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때론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눈을 감을 때까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무의미한 소비에 불과할 뿐이란 생각이 들어서 피곤해질 때가 있다. 문학, 음식, 음악, 생존, 심지어 법으로부터의 자유까지 모두 돈을 주고 구매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란 나 같은 공상가에게는 좀 너무하단 생각이 들었다.  (여연)

     여성주의 저널 <일다> Feminist Journal <Ilda> 바로가기 www.ildaro.com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