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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로드트립> 17. 남아프리카 공화국⑤ 케이프타운 

애비(Abby)와 장(Jang)은 대학에서 만난 동갑내기 부부입니다. 만 서른되던 해 여름 함께떠나, 해를 따라 서쪽으로 움직인 후 서른둘의 여름에 돌아왔습니다. 그중 100일을 보낸 아프리카에서 만난 사람과 세상의 이야기를 나누려합니다. www.ildaro.com]

▲ 롱스트릿의 이색적인 카페 <마마 아프리카>     © Abby 
 
케이프타운(Cape Town)에 도착했다. 기차역에서 미리 예약해 둔 숙소까지 20여 분을 걷는 동안, 조벅에서 느껴지던 기이한 살기나 음울함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턱을 약간 내린 채 눈만 들어 외국인을 지켜보던 시선의 올무가 이곳에선 현저하게 헐거워졌기 때문이다.
 
그 간 보지 못한 백인들이 모두 이 도시에 쏟아진 듯, 거리에 흑인보다 백인들이 더 많은 것도 눈에 띄는 특징이었다. 가장 많은 숫자는 한 눈에 보기에도 관광객이었다.
 
케이프타운은 매력적인 휴양지의 아우라를 풍겼다. 유럽의 바닷가 어느 소도시를 연상케 하는 거리엔 컬러도 모양도 같은 것이 없는 크고 작은 건물들이 조화롭고 깨끗하게 줄지어 서 있었다. 시내 한복판을 정말 길게 가로지르는 롱스트릿(Long Street)의 거리 양 편엔 감각적인 의류, 소품, 미술품을 파는 상점들이 즐비했다.
 
대체로 카페들이 차지한 2층 발코니엔 한낮의 바람과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워낙 높고 파란 남부의 하늘과, 도시 어디에서나 보이는 해발 1000미터 테이블 마운틴(Table Mountain)과, 산의 평평한 정상에 길게 누운 뭉게구름이 도심 전체에 쾌청함을 더했다.
 
희망봉 트레킹을 준비하는 안락한 숙소의 하룻밤

 
미리 예약한 숙소는 한적한 고급 주택가에 위치해 있었다. 덕분에 무거운 배낭을 멘 채 그 길고 긴 롱스트릿을 주파하고도 얼마간을 더 걸어 스무살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말았지만, 다행히 폭발 일보직전이었던 그의 짜증은 숙소에 도착하자 곧 흔적 없이 사라졌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가 묵었던 <앰버 트리 랏지>(Amber Tree Lodge)는 우리에게도 아프리카 뿐 아니라 그 간의 여행을 통틀어 손꼽을 만한 숙소였다. 유쾌한 매니저 웨인의 안내에 따라 정갈한 침실, 집보다 더 말끔한 욕실, 제이미 올리버가 울고 갈 부엌과 한적한 뒤뜰을 둘러본 후 스무살은 쾌재를 부르며 아늑한 응접실 소파에 몸을 던졌다. 그리곤 곧 인터넷 삼매경에 빠졌다.

▲ 케이프 타운 어디서나 보이는 테이블 마운틴 아래 고급 주택가     © Abby 
 
그 모습에 장도 나도 피식 웃고 말았다. 사실 이 곳은 우리의 하룻밤 예산 범위를 넘어서는 숙소였다. 기준대로 숙소를 정하려던 결정을 마지막에 바꾸었다. 스물일곱 시간의 기차 여행과 1박 2일 터프한 트래킹 사이에 낀 단 하룻밤엔 기준보다 컨디션을 우선해서 살피는 게 맞다는 장의 판단에 따라서였다. 좋아하는 스무살과 편안해하는 킴을 보니, 잘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 편으론 가벼운 한숨이 나왔다. 오늘 밤 킴과 스무살은 오래도록 뜨거운 샤워를 즐기고 밤이 맟도록 와이파이를 무한 섭취할 것이 안 봐도 뻔하다는 예상 때문이었다.
 
한 편으로 아프리카 여행은 쭉 이런 실랑이의 반복이었다. 빠듯한 예산 탓이기도 했지만, 장과 나의 이번 여행 원칙 중 하나는 ‘생활수준을 가능한 한 현지 평균에 맞춘다’였다. 아프리카에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물을 낭비하거나, 음식을 남기거나, 화장실 한 번에 두루마리 휴지를 둘둘둘둘 감아 갈 수 없었다. 그러니 이런 식의 여행이 처음인 스무살과 일상적으로 부딪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대체로는 모자람보단 넘치는 것이 문제인 내 나라의 사람들에게,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 혹은 '더 있지만 취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낯설고 이상한 생각인지 스무살과의 동행 중 깨닫곤 했다.
 
     아 참, 저녁을 나가서 먹을 건가요? 가능하면 여기서 먹어요.
 
웨인의 말에 생각에서 깨어났다. 그가 건네는 일행의 여권 네 개를 받아들었다. 어디나 그런 편이지만, 남아공에선 모든 숙박객의 정보를 꼼꼼히 적어 놓곤 했다. 치안 목적으로 경찰에게 정보를 제공한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여기도 저녁에 위험한가요?
     그럼요, 조벅에서 왔으니 실감이 안 나겠지만 여기도 남아공이라고요. 해 진 이후로는 돌아다니지 말아요. 롱스트릿에는 클럽도 많고 술집도 많아요. 롱(long)스트릿에선 오래도록(for a looong time), 스물 네 시간 파티 중이죠.
     그럼 스물 네 시간 사고가 나겠군요.
 
함께 낄낄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오히려 거리가 한산해지는 주말에는 한낮에도 시내를 혼자 돌아다니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고 덧붙였다. 그래, 이 휴양지도 남아공이다. 공식 발표로만 하루에 살인 50건, 강도 500건, 강간 200건이 일어나는 나라. 별다른 정치적 이슈나 자연재해가 없는데도 한국 외교통상부에서 언제나 ‘여행 자제’ 혹은 ‘여행 유의’ 경보를 발령하는 나라. 레스토랑에서 즐기려던 근사한 만찬은 스무살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흘 뒤 점심으로 미루고, 함께 조리한 스파게티와 와인으로 식사를 마친 후 여유로이 각자의 이틀짜리 트래킹 짐을 꾸렸다.
 
사이먼스 타운으로 향하는 기차를 타고
 
이튿날, 사이먼스 타운(Simon’s Town)으로 가기 위해 기차역을 찾았다. 해가 있는 동안이라도 안심하고 시내 기차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만 해도 치안이 괜찮다는 뜻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이른 아침 출근 시간의 플랫폼을 메운 것은 대부분 흑인들이다. 열차가 출발하자 서너 명이 한 팀을 이룬 검표원들이 객차를 오가며 꼼꼼히 열차표를 검사했다. 마침 정말 표를 잃은 건지 무임승차를 한 건지 표를 내놓지 못한 나이 든 여인이 억울함을 토로했다. 다음 역에서 가차 없이 여인을 쫓아내던 젊은 검표원의 퍼런 서슬이 어쩐지 보기 민망해 고개를 돌렸다.
 
기차 안의 상황과는 대조적으로, 시내를 벗어난 차창 밖으로 곧 기막힌 절경이 펼쳐졌다. 끝도 없는 바다가 기차의 왼발치로부터 펼쳐지고 있었다. 바람이 거센 날은 파도가 철로에 닿을 것만 같은 가까운 거리였다. 기차 오른쪽의 야트막한 산비탈엔 단단한 벽돌로 지은 고급 저택들이 서로의 시야를 가리지 않는 간격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시드니 어디쯤의 해안가 마을을 지나는 것 같은 착각이 느껴졌다.

▲ 사이먼스 타운으로 가는 기차 왼쪽에 펼쳐진 바다     © Abby 

종착역인 사이먼스 타운까지 남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부슬부슬 비가 내려서인지, 역사를 나서 마주한 하나뿐인 거리에도 지나는 사람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사이먼스 타운은 별다른 골목이 없이 오로지 하나의 도로 양 쪽에 거의 모든 것이 위치한 작은 항구 도시였다. 희망봉(Cape of Good Hope)을 일주하려는 모든 이들은 이곳을 거쳐야만 한다. 여행 작가 폴 서루의 말처럼 ‘쿡 선장과 찰스 다윈, 남극의 스콧과 러디어드 키플링, 마크 트웨인’도 이 작은 마을의 거리를 걸었으리라 생각하니, 우리도 짐짓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탐험가가 된 것 같았다.
 
지평선과 수평선을 벗하는 길의 아름다움에 취하다
 
다시 차로 20여분을 이동해 도착한 국립공원 사무소에 인적 사항을 남기고, 오늘 묵을 산장의 열쇠를 받아 트래킹을 시작했다. 첫 날 20km쯤을 걸어 희망봉을 돌고 다음 날 다시 20km쯤 다른 경로로 둥글게 돌아오는 둘레길 형태의 트래킹이다. 스무살은 이렇게 긴 트래킹이 처음인지라, 눈앞에 굽이굽이 펼쳐진 산길을 까마득하게 쳐다보며 “저기까지 우리가 하루에 갈 수 있단 말이야? 미쳤어!” 하고 연신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녀석도 곧 말을 잃을 만큼 길은 아름다웠다. 높은 능선을 타고 걷는 동안 오른쪽엔 대지의 지평선이, 왼쪽엔 대양의 수평선이 크고 넓게 펼쳐졌다. 해풍의 영향인지 무릎을 넘지 않는 키 작은 떨기나무가 제법 우거진 산길엔 신기하게도 다양한 종류의 선인장이 섞여 있었다. 이곳이 한 때는 사막이었다는 뜻일까. 이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한동안 능선을 오르내린 끝에 낮은 해안 지대에 이르자 난데없이 서너 가족은 될 법한 바분 원숭이의 무리와, 멀리서부터 성큼성큼 다가와 우리를 살피는 몇 마리의 타조가 등장했다. 사파리로 끊임없이 괴롭힘 당하는 다른 공원의 동물들과 달리, 그다지 많은 관광객이 찾지 않는 이 트래킹 루트의 터줏대감들에겐 인간이 재미있는 구경거리이리라. 그래서인지 호기심어린 눈초리로 우리를 살피는 녀석들에겐 별다른 두려움의 기색이 없다. 바분 원숭이는 다른 유인원과 달리 적극적으로 토끼 등의 먹이 사냥에 나서기도 하는 야수들이니 조심해야 하는 건 우리 쪽이다. 먹을 것을 숨기고, 자극하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그들을 지나쳤다.

▲ 트래킹을 시작한 지 두 시간만에 만 하나를 둥글게 지나왔다     ©Abby  

나는 트래킹이 좋다. 끊임없이 다가오는 풍경에 넋을 놓고 걷다가, 고개를 떨군 순간 발견한 들꽃 한 무더기에 발을 멈추기도 하고, 다시 꾸역꾸역 횡격막을 비집고 올라오는 어떤 기억과 생각들을 보듬으며 걷다가, 그러다 무념무상이 된다한들 제 리듬대로 껍데기 같은 나를 옮기고 있는 내 두 다리의 성실함을 깨닫는 그 순간이 좋다. 그러다 함께 걷는 이들과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노래를 흥얼대기도 하고, 같이 사탕을 까먹거나 샌드위치를 나누는 그 시간을 좋아한다. 저 앞에 보이는 갈 길에 주눅이 들기도 하지만, 묵묵히 걷다 보면 어느새 그 아득한 길이 내 등 뒤에 놓여 있는 뿌듯함이란!
 
저 구름이 마음만 먹는다면
 
오랜만에 장시간 걸은 몸이 뻐근해질 무렵, 드디어 산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여기가 끝이 아니다. 짐을 풀고 부지런히 다시 길을 나서야 삼십 분 거리의 희망봉까지 다녀올 수 있었다. 표지는 없었지만, 새의 부리처럼 길고 뾰족하게 돋은 땅 끝에 솟은 등대가 보였다. 저기다! 망설임 없이 산장의 뒤편 고개를 넘어 길고 좁게 뻗은 땅을 딛자, 양쪽으로 끝없는 바다가 펼쳐졌다. 공식적으로 (공식적으로 바다를 나누고 합칠 권리를 누가 주었던가!) 이곳에서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난다. 차가운 대서양과 뜨거운 인도양이 섞여들어 새로운 물이 되는, 희망봉에 어울리는 만남이다.
 
- 저게 뭐야…설마 정말 이리로 오는 거야? 

▲ 수평선을 가린 소나기의 커튼     © Abby 
 
그 때였다. 누군가 오른쪽 저 멀리 거대한 구름의 군락을 가리켰다. 새삼스레 고개를 돌려보니 왼쪽의 바다는 맑고 화창한데, 오른쪽의 바다에선 끝없이 하늘을 가린 구름들이 서서히 움직이는 것이 눈으로도 보였다. 구름이 쏟는 빗줄기가 길고 검은 베일처럼 수면을 향해 드리워졌다. 흐릿하게 수평선을 가린 그 비의 커튼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두려움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움직이지 않는 게 좋겠다, 하고 장군이 말했다. 어차피 저 비가 지나가기 전에 희망봉에 닿을 수는 없다. 서둘러 움직이다 폭우 내리는 바윗길에서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정말이지 인간은 얼마나 작은가. 저 구름이 마음만 먹는다면, 비에 섞은 돌풍 한 숨으로 인간 하나쯤 흔적도 없이 바다에 던져 버릴 수도 있으리라. 가벼운 한 줄기 벼락이면 우리들을 뼛속까지 태워버릴 수도 있으리라. 후드득, 후드득 빗발이 점점 가까워졌다. 빗방울보다도 약한 남자들 셋은 서둘러 바위 아래 몸을 숨기고, 나는 놀리듯 그들을 카메라에 담은 후 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거세지는 폭우를 고스란히 맞았다. 대양의 사이에서 머리 위를 시커멓게 덮은 구름을 감히 마주 보는 경험을, 언제 다시 해 볼 수 있으랴. 비록 퍼붓는 물세례로 눈을 뜰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천신만고 끝에 닿은 ‘희망봉’은
 
쫄딱 비를 맞고 나니 종일의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마치 천신만고 끝에 희망봉에 닿은 바스코 다 가마가 된 것 처럼. 그런데 이게 웬일, 등대 아래 도착해 기쁜 마음으로 표지판을 보니 여기는 희망봉이 아니라 케이프 포인트(Cape Point)다! 스무살과 장이 나폴레옹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우스꽝스럽게 낄낄댔다. 전쟁 당시 두 개의 봉 중 하나를 골라 기세 좋게 정상에 오른 나폴레옹이 군사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는 우스개다. “여기가 아닌가벼!”
 
등대 곁까지 올랐다. 저 쪽에 보이는 것이 희망곶(Cape of Good Hope)이라고, 누군가 말해 주었다. 거짓말처럼 갠 하늘이 금빛 노을을 뿌리는 저 오른쪽의 나지막한 곳이었다. 이곳으로부터 걸어서는 한 시간 반이 걸린다니, 숙소로 돌아갈 시간을 계산하면 불가능한 시간이었다.
 
     아쉽다. 여기까지 와서 희망을 바라만 보게 됐네.
     원래 희망이 그런 거지, 불가근불가원. 

▲지형이 험하고 파도가 드센 희망곶의 첫 이름은 '폭풍의 곶'이었다.    ©Abby  
 
실없는 내 혼잣말에 장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생각해 보면 지명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영어의 지명은 분명 희망‘곶(Cape)’인데, 언제 한국에서 ‘봉(Peak)’으로 둔갑하고 만 걸까. 오역한 사람 역시 이 케이프 포인트에 올랐던 것은 아닐까. 희망은 이렇게 드높아야 한다고 여기면서.
 
깎아지른 발아래 절벽에선 끊임없이 파도가 거세게 부서졌다. 물은 야속하리만치 맑아서, 흰 포말 아래로 그 다음 파도가 두 겹, 세 겹, 전속력으로 밀려드는 모습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최초의 발견자는 늘 풍파 거친 이곳을 ‘폭풍의 곶’이라고 보고했으나, 탐험과 정복을 이어야 했던 포르투칼 국왕은 곧 ‘희망곶’으로 명칭을 정정했다. 실연당해 바다에 몸을 던진 비운의 여인 <로렐라이>가 떠올랐다. 그 영혼의 아름다움에 취해 매번 거센 조류를 피하지 못하고 좌초한 뱃사람들처럼, 이 대륙에선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망에 취해 부서졌을까.
 
등대 옆엔 여느 관광지처럼 세계 주요 도시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서 있었다. 문득, 바로 이곳이 내 집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이곳으로부터는 어디로 발길을 돌리건 집에 가는 길이 되겠지. 이렇게 먼 땅 끝을 거쳐 집으로 돌아가며, 우리들은 어떤 희망을 품게 될까. ‘이 곳을 넘어가지 마시오’라는 표지판을 쓱쓱 쓰다듬고, 산장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Abby)

    *성주의 저널 <일다> 창간 10주년을 축하하는 독자들의 응원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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