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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페 버스정류장] (4) 되새김질 할수록 단맛이 나는 말 
 
경북 상주시 함창읍 함창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카페 버스정류장”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무는 이 까페의 문을 연 박계해 선생님은 “학교를 떠나 산골로 들어간 한 여자의 귀촌일기” <빈집에 깃들다>의 저자입니다. www.ildaro.com
 

▲ 까페 버스정류장. 벽장이었던 공간을 좌탁을 놓아 작은 방으로 꾸몄다.

겨울의 초입에 문을 열어서 고생을 좀 했다. 오래된 시멘트블록 집이어서 벽이며 바닥이 바깥의 냉기를 그대로 전달하는 탓이다. 그나마 아래층은 창이 적어서 난방기를 틀면 따뜻한데 이층은 사방이 다 창문인데다 오랜 세월동안 헐거워지고 틀어지기도 해서 꼭 닫아도 바람이 술렁술렁 들어왔다. 고민 끝에 방풍용 비닐을 잔뜩 샀다. 손님이 오기 전에 작업을 하려고 이른 아침부터 창틀에 양면테이프를 붙이고 있는데 카페 앞을 지나고 있던 주인아주머니가 고개를 젖히고 올려다보셨다.

“뭐해?”
“바람막이 공사요.”
“그래갖고 되겠어?”
“선전하는 거 들어보니까 완벽하게 막아준다던데요.”
“창틀을 바꿔야지, 그래갖고는 안 돼.”
  
이틀 뒤, 초겨울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이층에서 똑똑똑........ 규칙적으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올라가보니 천정에서 물이 떨어져 나무마루를 적시고 있었다. 물이 떨어지는 자리는 나무가 썩어서 못도 헐거워진 걸로 보아 그동안 여러 번 샌 것이 확실했다. 천정에 칠한 페인트가 벗겨지는 것이 속상해서 한숨을 쉬다가 주인아주머니께 전화를 했다.

“간밤 비에 천정이 새는데요.”
“아침 먹고 내가 가 볼게.”

그리고 몇 분 후에 와서 보시고는 ‘지붕 공사를 해야지’ 하셨다.
 
며칠 뒤, 철골로 기둥을 세우고 지붕과 옥상 위를 철판으로 덮는 공사를 했다. 덕분에 비가와도 끄떡없는 야외공간까지 생겼다. 창문공사도 했는데, 기존의 창틀이며 창문이 너무 예뻐서 그대로 두고 싶다했더니 바깥으로만 빙 둘러 창문 공사를 해서 이중창이 되었다. 결국은 해야 할 공사라 해도 그렇게 큰돈이 드는 공사를 생색 한 번 안 내고 해 줄 집 주인은 잘 없으리라.

그뿐 아니라 잘 갈무리 해 둔 옛날 문짝이며 예쁜 찻잔들도 챙겨다 주고, 멋진 화분도 많이 갖다 주셨다. ‘여기 오면 쓰이니까, 그게 야들한테도 좋지 뭐’ 하시며. 지금 우리 카페를 장식하고 있는 화분들 중 친한 벗이 선물한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아주머니가 주신 것이다.   
    
고맙다는 말만으로는 뭔가 아쉬워서 집에 가실 때 팔짱을 끼고 졸졸 따라갔더니 "어디가? 나 따라오는기라?" 하며 웃었다.

"비어있던 집에 불이 들어오니 좋아, 이웃사람들도 다들 좋대, 차를 팔아서 돈이 될랑가는 모르겠지만, 여튼, 열심히 잘해봐." 
"잘 안 돼도 뭐..... 우리가 사니까요. 사는 집으로도 좋아요. 딸아이는 작업실이 생겨서 좋고, 저는 일터도 되고 살림집도 되니까 좋고요."
“그리 생각하면 나도 좋고. 자네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게 최고야, 자네 보면 나도 대리만족해서 좋아.”
“........(대리만족이라는 표현에 놀라는 중) 고맙습니다.” 

“우리 아저씨가 자네랑 집 계약하고 와서는 하는 말이, 여자가 인테리더라, 그러더라고. 하하하.”
“인테리요?”
“그래, 인테리래. 인테리.”
“두 분, 데이트하러 카페에 같이 한 번 오세요.”
“아이구, 그 양반이 그런 사람이면 좋게? 재미라고는 눈꼽만치도 없어.”
“그 연배의 남자들은 대개 다 그래요.”
“그러게 말이라, 우리들은 참 재미없게 살았어.”
“그래도 젊을 때 생각하면 다시 돌아가고 싶으시죠?”
아주머니는 잠시 말이 없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너무 힘들었던 시간은 추억이 될 수 없어. 그 때 생각을 하면 자다가도 소스라치는 걸.”

그 말을 듣는 순간, 사소한 질문 하나에도 이렇게 정확한 감정을 전달하는 아주머니가 너무 멋있어 보였다.

“내일도 차 드시러 오세요. 돈 안 받을게요.”
“돈 안 받는다는 소리는 오지 말라는 소리랑 같아, 내가 자네보다 사는 게 낫잖아, 정확하게 하는 게 좋아.”
“네!”

카페로 되돌아오면서 중얼거렸다.
‘대리만족’
‘정확하게 하는 게 좋아’
‘너무 힘들었던 시간은 추억이 될 수 없어’
 
“내가 장사 잘 하라고 마수를 해줘야지.”
처음 두어 달은 동네 친구들을 부르거나 가족을 대동하고 오거나 하며 열심히 단골이 되어주셨고, 드디어는 혼자서 차를 드시러 오는 것도 자연스러워 졌다. 커피는 쓰다며 달콤한 라떼 종류만 드시던 아주머니는 이제 아메리카노만 드신다. 처음에는 보리차처럼 연하게 시작했는데 지금은 진한 커피도 잘 드신다.

“내가 자네 덕분에 커피를 알게 돼서 얼마나 좋은 지. 예전에 서울 동생들이랑 카페에 갔는데 내가 생전 그런델 안 가봐서 얼떨결에 시키느라고 용만 쓰고 어색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차 종류도 다 알고 그런데 가도 당황안하고 딱 아메리카노 시킨다니까, 하하하”
 
가끔 안 오시는 날도 있어서 ‘왜 이렇게 결석을 하고 그러세요?’ 하면,
“오고 싶지만 참는 거야. 내가 주책없이 너무 들락거리면 자네가 귀찮을 거 같아서. 자네랑 한바탕 웃고 가야 기운도 나고 그러는데........ 너무 떠들고 가면 주책맞은 할망구같이 쓸데없는 잔소리를 한 것 같아서 돌아봐져.”
그러면 나는 결코 잔소리가 아니라며 펄쩍 뛰고, 아주머니의 훈화는 계속 된다.
 
“이 자리에서 오래오래 해. 좀 잘된다고 너무 나가지도 말고 안 된다고 동동대지도 말고 지긋이 한 결 같이 해야 돼, 초기투자가 있으니까 3년은 걸려야 순이익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자네는 큰 투자 안했으니 일 년만 지나면 돈이 벌릴 거야. 장사는 수입도 봐야 되지만  나가는 돈도 잘 챙겨서 봐야 돼. 돈은 꼭 애쓴다고 벌리는 것도 아니야. 꾸준히 변함없이 하다보면 때가 와. 때가 오면 술술 다 풀리니까 조급할 것 없어....... 아이구, 내가 또 잔소리 했지? 이러지 말아야 되는데......” 하며 스스로에게 꿀밤을 주는 태도까지가 멋진 인생선배의 모습이다.
 
되새김질 할수록 단맛이 나는 말씀이 아닌가.  
‘이 자리에서 오래오래, 좀 잘된다고 너무 나가지도 말고 안 된다고 동동대지도 말고, 지긋이, 한 결 같이.......’     (박계해)       
 
* 여성 저널리스트들의 독립언론 <일다> 바로가기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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