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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페 버스정류장] (3) 카페에 손님이 오는 것은 기쁜 일이니 
 
경북 상주시 함창읍 함창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카페 버스정류장”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무는 이 까페의 문을 연 박계해 선생님은 “학교를 떠나 산골로 들어간 한 여자의 귀촌일기” <빈집에 깃들다>의 저자입니다. www.ildaro.com
 
토요일 밤기차를 타고 온 여섯 친구들 
 

▲ 카페를 열 당시의 간판. 이웃들은 출입구가 카페답지 않고 간판이 허술하다고 걱정했다.  © 김소정 
 
당시의 간판은, 동그란 버스표지판 모양의 패널에 버스정류장이라는 글씨를 써서 출입구로 쓰는 철대문 기둥 곁에 세운 것이 다였다. 카페라는 글씨와 전화번호도 곁들여 있지만, 건물 색과 잘 구별되지 않는 흰 바탕에 커피색 글씨여서 내가 보기에도 너무 얌전했다.
 
눈에 잘 안 띄는 간판 탓인지 시골이어선 지 처음 며칠 동안 온 손님들은 대개 우리 카페를 빙 둘러싸고 자리 잡은 이웃들이었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오랫동안 캄캄했던 집에 불이 들어와 동네가 환해졌다’는 인사를 했고, 외관에 비해 내부 인테리어가 훌륭하다고 감탄했으며, 출입구가 카페답지 않고 간판이 허술하다고 걱정했다. “간판보고 오는 사람은 없겠어요. 간판 좀 눈에 띄게 달아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래야지요’ 라고 대답은 했지만, 유혹적인 간판을 달아도 좋을 만큼 멋진 카페가 되고나서 생각해 볼 일이었다. 사람이든 건물이든 안보다 바깥이 더 근사해선 안 된다는 것이 내 개똥철학이니까.
 
내 취향에서 하는 말이지만 함창의 거리 구석구석이 매혹적인 것은 아직도 남아있는 오래된 간판들이 많아서다. 그 중의 하나가 함창역 간판인데 특히 석양을 배경으로 바라볼 때는 정말  멋지다. 그래서 해질녘이면 가끔 옥상에 올라가 함창역 간판을 바라보곤 한다.
 
함창역은 버스정류장이 있는 길 끝을 따라 돌자마자 있고, 우리 카페에서는 천천히 걸어가도 삼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역사는 텅 비어있고 벽에는 ‘이곳은 역무원이 없는 무인역입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하늘을 가린 그 무엇도 없는 플랫폼에는 기다리는 사람을 위한 긴 의자만 몇 개 놓여있다. 철길을 따라 심어놓은 꽃이 유일한 치장인 셈이니 본래의 순수함을 간직한 귀한 장소임이 분명하다. 하루에 세 번, 부산과 영주를 오가는 무궁화호가 있어서 나라가 친구들을 만나러 부산에 갈 때 이용하곤 한다.
 
카페를 시작한 지 사흘 만인 토요일 밤에 소식을 전해들은 여섯 명의 벗들이 밤기차를 타고 이 함창역에 나타났다. 한 달에 한 번 하는 <민들레>(교육전문잡지) ‘읽새모임’ 장소를 우리 카페로 정한 것이다.
 
밤 열시 반의 고요한 역사가 아리따운 도시여인들이 조잘대는 소리로 가득 찼다. 그녀들은 내가 귀촌하기 전, 자녀교육에 뜻을 같이 했던 엄마들이었다. 차례차례 포옹과 인사말을 주고받은 후 카페로 걸어오는데 삶에 대한 태도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비슷해서인지 십년만인데도 어제만난 듯 자연스러운 느낌이었다. 우리는 난로를 둘러싸고 앉아 내가 떠나온 사이에 있었던 일들이며 아이들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세월도 비켜간 듯 모습도 마음도 예전과 변함없이 인정 가득한 그대로였다.
 
다음 날, 집 주위를 산책하고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다음 그녀들은 떠났다. 카페를 열지 않았다면 이렇게 쉽게 놀러오지 못했을 테니 카페를 시작한 것은 자기들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올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다는 멋진 축하 인사를 남기고.
 
그건 맞는 말이었다. 집에 손님이 온다면 부담스럽겠지만 카페에 손님이 오는 것은 기쁜 일이니까. 그러나 역시, 이 나이에 밤새워 노는 것은 무리였다. 혼자 남은 나는 졸음과 싸우느라 문 닫을 시간만 고대했고. 열한 시가 되자마자 뒷정리도 미루고 일찌감치 잠에 끌려들어갔다. 그래서 그만 대문을 열어 둔 채 아침이 왔던 것이니.
 
세 어르신이 이른 아침 카페를 찾은 이유는? 
 

▲ 카페 버스정류장의 입구.  ©김소정 
 
이른 아침, ‘계시오!’하는 목소리가 쩌렁, 울렸다. 마침 연탄을 갈러 마당에 내려서던 나는 깜짝 놀라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출입문 앞에 일흔은 훌쩍 넘었을 게 분명한 어르신 세 분이 서 있었다.
 
부스스한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빗질하며 일단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네는 동시에 누구지? 하고 머리를 굴렸다. ‘차 한 잔 먹으러 왔는데 어디로 들어가오?’하는 물음에 사태를 짐작하고 ‘저, 제가 대문을 안 닫아서… 문은 열 한 시에 열어요.’하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했는지 손바닥을 들어 수인사를 한 어르신이 성큼 현관문을 열었다.
 
나는 연탄가는 것을 포기하고 재빨리 들어가 고양이 세수를 하고 후다닥 두건을 뒤집어 쓴 다음 방문을 열고 바 앞에 섰다. 벽시계가 여덟시를 지나고 있었다. 어르신들은 여기 저기 문을 열어보는 등 실내를 구경하는 중이었다. 잠시 갈등하던 나는 ‘영업시간이 어쩌고 할 필요 없이 아침잠 없는 동네 어르신이 놀러 오신 셈 치자, 그냥 차 한 잔 드리고 인사드리면 될 것을’ 하고 마음먹었다.
 
가장 편한 소파가 있는 자리로 안내를 하고 난로를 켜는데 어르신 한분이 ‘차 넉 잔 들고 오시오’했다. 나는 의아한 얼굴로 ‘넉 잔이요?’ 하고 되물었다. 어르신은 고개를 젖혀 소파 깊숙이 머리를 기대었다. ‘아가씨도 한 잔 해야지. 젤로 비싸고 맛있는 차로 갖고 와요’ 하며.
 
아, 이 상황은 뭐지… 하고 난감해 하면서 모과차를 넉 잔 만들었다. 같이 차를 마시면서 인사도 드리고… 찻값만 안 받으면 되지… 어떻게 처신해야 어르신들도 마음 상하지 않고 나도 실수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차를 가지고 갔다. 세 분 앞에 차를 놓아드리고 마지막 차 한 잔을 들고 머뭇거리는데 혼자 앉은 어르신이 옆 자리를 가리키며, ‘여기 앉으시오’했다. 찻잔을 마저 놓고 엉거주춤 앉는데 두툼한 손바닥이 내 허벅지에 얹혔다. ‘아이구, 삼천 원짜리 차 팔아서 언제 돈 벌어’ 하는 목소리와 함께.
 
나는 화들짝 놀란 와중에도 태연을 가장하며 ‘맛있게 드세요’ 하고 느긋한 척 다리를 움직여 손을 떼게 만들었다. 마주 앉은 어르신은 어깨를 웅크려 양 팔을 탁자에 얹고는 ‘아, 이분이랑 잘 알아놓으면 한결 수월 할 거여, 이 근방에서는 제일 잘 나가거든’ 했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지만 이 동네에서 자리를 잡아야 하고 이분들은 동네 어르신들이니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시골다방이 그들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 곳인지 알고 있으며, 그것이 사회악으로 지탄받아야 할 일인 것도 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 왔고 그렇게 살아갈 그들이 딱할지언정, 삶의 지향점이 한참이나 다른 이들에게 내 명예나 여성들의 명예를 걸 생각은 없었다. 따끔하게 혼 줄을 내주거나 훈화(?)라도 하면 공감은커녕 우리 카페는 여느 찻집들과는 격이 다르다는 주장으로 받아들일 것이었다.
 
어르신들은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온 관성대로 새로운 찻집을 방문하고 마담과 첫 인사를 나누는 것뿐이라고 마음정리를 했다. 대문을 안 닫은 것이나 넉 잔의 차를 들고 간 것을 후회하며 ‘아, 네,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 꾸벅 인사까지 했더니 어르신 한 분이 이만 원을 내밀었다. ‘이 나이가 되면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찻값도 안내고 갈지 몰라, 그럴 땐 꼭 말 해줘야 돼,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정신이 없어서 그러는 거니까’ 하며.
 
만원만 받아들고 천원을 거슬러 드리니 어르신은 남은 만원을 바라보다가 도로 집어넣었다. 그 순간 나름 상황파악을 한 게 분명했다. 더 이상 농도 걸지 않고 반듯하게 나간 걸 보면.
 
그리고 다시는 우리 카페에 오신 적이 없는 이 어르신들을 길에서 가끔 뵙곤 한다. 인사를 하면 나를 알아보고 그러는지 그냥 아랫사람의 인사라 받는 것인지 모를 답례를 한다. 이정도로 쓴 웃음을 짓는 다면 이 세상 많은 찻집 종사자들에게 실례가 되리라. 그저 두고두고 웃을 수 있는 에로틱한(?) 사건 하나를 선물해준 분들로 생각하고 싶다. (박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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