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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서 농사짓는 세 모녀 철학자의 일상
“없는 것이 많아서 자유로운” 도은, 여연, 하연 
 
산골 마을에서 현대문명을 거부하며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세 여자가 있다. 엄마와 십대의 두 딸. 농사도 돈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가족이 먹을 만큼만 생산하고 몇몇 이웃과 나눠 살만큼 짓는 소농을 지향한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 자란다. 첫째는 초등학교 5학년까지만, 둘째는 처음부터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도시에서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단편적인 정보와 극단적으로 보이는 라이프 스타일에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농사일을 시킨다니 혹시 아동학대? 허나,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앉아서 수업 듣는 대신 그 시간에 농사일과 자연에 대한 지식을 쌓는다. 또 밤이면 책을 읽고, 세 모녀는 세상일에 대해 이런저런 자기 생각을 내놓고 토론한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 철학을 가지고, 독학자로서 “넉넉한 시간을 가지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자유롭게 찾아보는 기쁨”을 누리고 있고, 꽤 자기 삶에 만족하며 산다.

▲ 현대문명과 거리를 둔 채, 산골에서 자급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는 엄마 도은과 큰딸 여연.   

인구의 대부분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 우리는 관대하지 못한 것 같다. 왜 그럴까. 대부분이 획일적인 삶의 방식을 따르고 사는데, 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버젓이 다르게 살아간다. 어쩌면 도시 문명을 거스르고 사는 그들의 과감한 선택이, 끊임없이 소비하기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데도 서슴지 않는 우리네 죄책감을 건드리게 아닐까.
 
“나는 스스로를 에코 페미니스트나 에코 아나키스트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아마도 현대문명에 의해 무력하게 상처입고 죽어가는 희생자가 아니라 힘차게 저항하고 싸우는 전사로 살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리라.”
 
이 대답을 듣고 보면, 도시 거주민들이 가지는 거부감의 정체는 더 분명해지는 것 같다. 당신들 같은 사람들이야 문명이 주는 편리함을 거부하고 고단한 노동을 찬미하며 자연이 주는 기쁨에 대해 시를 쓸지언정, 이 거대한 도시에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말하지는 마시오. “없는 것이 많아서 자유롭다”는 그런 소리는 더욱 조심하고. 왜냐면 이 현대문명이 유지되려면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파괴하고, 더 많이 소비해야 하므로.
 
그러나 세 모녀는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는 지금의 ‘과학기술 시대’를 살면서 우리 나름대로 고민한 흔적들을 담고 싶다”며, 세상에 책 한 권을 내놓았다. 세 모녀 에코페미니스트의 좌충우돌 성장기 “없는 것이 많아서 자유로운(Less is More)", 이게 그 책의 제목이다.

▲ <없는 것이 많아서 자유로운> 도은, 여연, 하연 공저 | 행성:B잎새 | 2012년 03월 
 
책을 소개하면서 이렇게까지 길게 서두를 시작한 건, 책 제목과 서문에서 느껴지는 비장함 때문일 것이다. 없는 것이 많아서 자유롭다는데, 우리 사회는 무얼 그리 반론을 제기할 게 많았을까. 그들의 삶이 지금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좇아가고 있는 삶의 양식을 정면으로 건드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더 많이 가질수록 더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믿는 세상에서, 없어서 자유롭다니까. 그러나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처음에 가졌던 비장함은 어느새 사라진다.
 
이 책은 자급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세 모녀의 제각기 다른 경험과 철학에 대한 책이다. 농사와 요리, 학교, 책 등에 대해 엄마 도은이 이야기를 꺼내면, 첫째 여연이 자신을 생각을 드러내고, 또 다음 페이지에서는 둘째 하연이가 자기 식으로 재미있게 재잘거린다. 화음 잘 맞는 합창을 듣듯, 개성 있고 자기주장 확실한 세 모녀의 재미있는 일상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이 땅에 기르는 것들은 쌀과 밀, 보리, 수수 같은 곡식과 감자, 고구마, 옥수수, 땅콩을 비롯한 온갖 채소들. 고추, 마늘 같은 양념 채소들. 과일 나무들과 아스파라거스, 바질이나 딜 같은 서양 향신료와 허브들, “봄부터 늦가을까지 다양한 식물들을 심고 돌보고 가꾸는 일에 온 정신을 쏟아 붓는다.” 많은 시간을 다양한 작물과 나무, 식물들과 태양과 바람과 비, 그리고 땅과 함께 보내는 그들의 일상은 참으로 행복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도은 씨는 “그지없이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표현한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세 모녀가 함께 즐거워했던 몇 가지 책들’이라는 장이라고 생각한다. 한 가족 구성원들이 낮에 땀 흘려 일하고 나서, 밤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들에 대해 소개하고 “책들에게 바치는 감사” 인사까지 전하는 대목에서는 가슴 뭉클하다.
 
둘째 하연이는 “나는 책을 좋아한다.”고 시작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 “책은 조용하고, 확실하며, 간편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책을 의인화하여 “확실한 건, 책은 나를 배려해준다”며 책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현한다.
 
이 가족에게는 책이 중요한 구성원이다. 인생의 매 시기마다 함께한 길동무이자,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온 친구이면서, 함께 생각을 나누고 토론하는 동료이고, 아름다움과 재미를 나누는 예술가들이다.

▲ 세 모녀의 서재.  이 가족에게 책은 길동무이자, 친구이며, 동료이고, 예술가들이다.   
 
특히 첫째 여연이 “나는 책들에게 감사한다. 내 머릿속에 살아 움직이는 모든 이야기들을 쓴 작가들에게 감사한다”고 표현하면서 작가들 이름을 한명씩 부르며, 두 페이지 빼곡히 감사 인사를 전하는 대목에서는 감동이 밀려온다. 여연이 바친 ‘책들에게 감사인사”를 조금 인용해보면 이렇다.
  
“어슐러 르귄의 진지한 성장 판타지들로 마음이 가난한 나를 호강시키고, 루이제 린저와 박완서의 비슷하면서도 다른 소설들을 비교하기도 했다. 또 인간이 위대하는 것을 믿게 만든 존 스타인백의 장편들과 키플링의 아름다운 동화 같은 소설들을 보면서 밤을 새웠다. 칼 세이건과 쳇 레이모의 하늘과 우주에 관한 장엄한 글들은 또 얼마나 아름답게 느껴졌는지!
(중략)
어린 시절을 아름답게 장식하게 해준 미하일 엔데와 아스트리드 린드그른에게 감사한다. 소설의 진정한 맛을 깨닫게 해준 서미싯 모옴에게 감사한다. 문명과 야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준 미셸 투르니에에게 감사한다. 서로 완전히 다른 문화에 속한 이 두 작가는 열정이란 한 가지 말로 정의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내게 알려주었다. 쓸쓸한 겨울날들을 꿈꾸면서 보낼 수 있게 해준 백석 시인에게 감사한다. (중략)”
 
엄마 도은에게도 책은 특별하다. “나에게 책은 꿈이고 동경이고 이상이며 환상이다. 책은 내 슬픔에 대한 위로이고 위안이며 치료사이다.”
이 가족만큼 책을 사랑하고, 책이 대접받는 문화를 가진 가족도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  도은, 여연, 하연이 가꾸는 텃밭에는 다양한 작물들이 가득하다.   
 
돈을 버는 것을 우선으로 놓지 않으면, 우리는 ‘논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돈을 벌지 않으면 우리는 무얼 해야 할지 혼란해하며,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무기력감에 빠진다. 돈을 벌어서 소비하는 것, 그것이 전부인 것 같은 세상이다. 그러나 이들이 무의미한 시간을 보냈을까. 아무 일도 하지 않았을까.
 
오히려 이들은 땀 흘려 노동하고, 먹을 양식을 생산하고, 책을 읽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다만 학교에 가지 않았고, 굳이 직장 생활을 어렵게 하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땅에서, 일상의 행위 하나 하나에, 그들만의 의미를 부여하며 살고 있다. 철학하며.
 
그 옛날에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해 뒤늦게 스스로 배움을 추구하는 독학자 도은과,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지만 농사지으며 책을 읽으며 성장한 청년 철학자 여연, 또래 친구가 없지만 산과 들에 있는 온갖 풀들과 자연을 놀이 상대로 여기는 꼬마 철학자 하연. 세 모녀의 철학 에세이를, 독서의 계절이 오는 가을에 추천서로 꼽는다.
 
올 여름 이 집안의 가장이자, 여연에게 ‘독재자’라고 불리는 도은과 짧막한 인터뷰를 했다.
 
- 시골에서 농사지은 지 만 15년째인데 어떠세요?
 
만족스러워요. 제 자신이 많이 변화했어요. 그리고 스스로에 대해 더 이상 약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됐죠. 도시에서 살았던 그동안은 사람에게 의존적이었고, 체제에 의존적이었고, 직업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지금은 세월이 지나면서 굉장히 자립적으로 됐구나 싶어요. 더 이상 나 자신을 약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세월 동안 아이들을 키웠구나, 그 세월동안 나도 배운 게 많죠. 그래서 만족스러워요.
 
- 우리는 스스로 약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도시에서 물질과 사회관계에 의존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저도 관계 의존적으로 살았는데, 거기서 고독감, 소외감 같은 것도 느끼게 되고. 지금은 고독감을 안 느껴요. 예전에 저는 가장 체제의존적인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어요. 흙을 만나고, 마음속에서 그리워했던 자연을 만났고. 낭만적으로 생각했던 자연이 아니라 다르게 만났죠.
 
안타까운 점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분야를 탐구할 수 있게 됐어요. 노동하는 몸, 정서적인 마음 상태를 고치기 위해 애쓰는 과정. 세계관이 달라졌죠. 노동을 잘 하는 인간처럼 되어서 엄청 뿌듯해요. 몸을 다룰 줄을 알게 됐어요. 이제 아무것도 두렵지가 않아요. 어떤 일이라든가. 뭐든 할 수 있겠다 싶죠.
 
- 처음 시골에 발을 들여놓았던 15년 전에는 꽤 힘들었을 것 같아요.  

▲ 스스로를 믿는 법을 배웠다고 말하는 도은씨.
 
막막했죠. 5,6년 동안은, 많이 흔들리고, 관계에서 상처입고, 인생이 초라해지고 슬퍼지고. 시골생활 초기에는 남들 시선에 신경 많이 쓰고, 괴로워하고. 나도 그 사람 질투하고, 쌍방 간이죠. 경쟁심도 느끼고. 인생의 굴곡을 넘어가면서 몇 년 전부터 그게 싹 사라졌어요. 인간의 마음속에 경쟁심, 질투심, 시기심을 갖게 하는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사라졌어요. 엄청 자유롭더라구요.
 
또 나이가 들어가잖아요. 성장하지 않으면, 40대를 넘기면서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사람은 고통 속에서 성장하죠. 고난과 고통을 안 겪으면 철이 안 들어요. 고난을 겪게 되면, 삶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되는 걸 아는 것 같아요. 저는 지금 잘 갖춰진 조건의 아이들이 하나도 안 부러워요. 그런 믿음을 이젠 확실히 가져요.
 
- 여기 일상은 어떻게 되나요?
 
살림하고, 농사일하고. 그리고 탐구생활을 해요. 탐구생활이라는 건 다양한 식물 기르기, 다양한 나무 기르기. 책을 통해서 세상의 흐름을 만나기, 자기 자신을 탐구하는 일 등 제 인생을 위해 하는 거예요. 글도 쓰구요. 남에게 보여주지 않는 글도 많이 쓰고. 내 개인 문고를 만들고 있어요. 나를 위해 글을 쓰죠. 돈이 필요하면 돈 벌려 나가기도 하고.
 
저는 식물 기르기를 좋아해서 온갖 씨앗을 구해요. 희한한 것도 구해서 어떻게 자라나 보고. 그동안 많은 걸 심어봤어요. 하다가 알겠으면 다른 걸로 넘어가죠. 지인들이 외국에 갔다가 오면서 씨앗을 선물해요. 안 나는 것이 태반이지만, 회향, 딜, 바질. 깍지콩(5년 정도 됐다)도 그렇게 받고. 내가 씨앗을 뿌려 (한국 땅에) 토종화시킨 것이 몇 가지 돼요.
 
여기뿐 아니라 15년 동안 다섯 번 이사 다니면서 많은 나무를 심었어요. 나중에 누가 베든 말든 상관없죠. 여기 와서는 터가 생겨서 밭 주변에 엄청나게 많이 심었어요. 산에도 오미자, 밤, 다래, 머루 등을 심었고요. 도라지, 더덕, 당귀 씨 막 뿌리고. 양귀비도 뿌리고. 밭에서 얻은 씨앗도 야생으로 자라라고 가을이면 산에 뿌려요. 산에 자주 다니니까. 동물들 다니는 작은 길로 다니면서 씨앗을 쫙쫙 뿌리고. 인적이 없는 산길 다니는 것이 저의 취미인데, 늦가을부터 초봄까지 산속을 많이 다니죠. 숲의 여인이 되겠다고, 하하. 노래도 막 부르고. 지어내서.
 
- 이런 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얘기해줄 게 있다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살면서 생각지도 않은 걸 배우게 되죠. 그것이 선물이에요. 너무 자기를 꼿꼿이 세우겠다고, 원칙을 세우겠다고 하지 말고, 자기 세계관은 포기하지 말되 재미있게 살면 뭔가 오더라. 그게 세상의 흐름이더라고요.
 
‘괜찮다. 도시에서보다 훨씬 재밌다. 생산하는 삶이다. 소비하는 삶이 아니다. 가치가 있다.’ 그런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결혼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고. 다 괜찮다. 살아 보면, 살아진다. 하나 걱정할 게 없다.
 
- 이제 여연과 하연이는 점차 엄마의 품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갈 나이인데, 어떠세요?
 
자유롭게 느껴져요. 내 인생의 중요한 숙제를 잘 마쳤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젠가 쟤네들도 땅에 돌아와서 살 거란 믿음이 있어요. 아마 엄마보다 더 잘 할 거라는 생각. 반면 저는 양육의 시기가 거의 끝나가고 있죠.
 
이 책은 제 양육의 시기 기록서 같아요. 이제 아이들도 점점 독립해나가고. 그동안 양육에 에너지를 다 뺏겼다면 이제 제 인생에 에너지를 쓸 거라고 생각하니 입이 찢어져요. 아직은 어떤 정 같은 게 남아있어서, 둘째에게는 그런데... 큰 틀에서 자유로움을 느껴요. 아이들은 나보다 더 잘 살 것 같아요. 자유롭게 살면서 자기 삶의 재료를 가지고, 자기 품성대로 발전시키고, 자기들 나름대로 도덕관을 가지고 살 거니까. 그러나 큰 틀에서는 동지이겠죠.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이 빨리 커서 서로 독립적으로 살았으면 했는데, 이제 곧 졸업하겠죠.
 
한 때는 저에게 자유라는 단어가 제일 중요했고, 생태라는 개념이 한 시절 중요했고, 지금은 진리탐구에 대한 관심, 해답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 많아요. 그걸 상상력이라고 해도 좋고. 현대문명이 바라보지 못한 지점에서, 좀 더 가까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지금은 나 자신을 믿어요. 자기 인생에 대해서 믿음을 가지고 ‘너는 진솔하게 살고 있어’ 라고 하죠. 자기가 자기를 믿는 것. 그걸 배운 것 같아요. 오래 걸렸네요. 그걸 배우기까지. 
 
(윤정은) 여성주의 저널 일다 사이트 바로가기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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