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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페 버스정류장] (2) 허둥대지도 허전하지도 않은 시작
※ 경북 상주시 함창읍 함창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카페 버스정류장”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무는 이 까페의 문을 연 박계해 선생님은 “학교를 떠나 산골로 들어간 한 여자의 귀촌일기” <빈집에 깃들다> 저자입니다.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 '카페 버스정류장'이 되기 전 모습. 6년 동안 세가 나가지 않은 애물단지여서 집 안팎이 곰팡이와 먼지로 뒤덮이긴 했어도, 재미있고 독특한 구조를 가진 건물이었다. © 박계해
밝혔다시피 11이라는 숫자를 좋아하는 나는 2011년 11월 11일에 개업해서 11시부터 11시까지 영업을 하겠다는, 나름 멋진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시월 초, 집 계약을 마치자마자 서둘러 이사를 했다. 바람에 스치는 소리를 내던 대숲이며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빨갛게 익어가는 감들, 김장배추며 무가 오동통하게 속살이 붙고 있던 마당을 두고.
고개를 빼고 돌아보던 집이 더 이상 보이지 않자 딸 나라가 ‘이 집… 참 좋았었는데…’라고,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2002년, 귀촌을 하면서 도시에 두고 왔던 딸아이는 당시 열네 살이었는데 지금은 스물다섯 살이 되었다. 동생이랑 자취를 하면서 만화를 공부하던 중 동생이 대학에 가게 되어 혼자가 되자 내 곁으로 왔다. 자취집도 그렇게 넓은 건 아니었지만 내 집도 좁기론 만만치 않아서 오자마자부터 작업실 타령을 하던 참이었다. 그리고 콘티구상만큼은 카페나 패스트푸드점에서 하는 습관이 있는데 이 깡촌에서는 어디 갈 만한 데가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시골은 이십대가 살만한 곳은 절대로 못된다며-.
그런데 최근엔 바깥에 나갔다가 돌아올 때마다 ‘시골도 좋은 것 같다’는 말을 하곤 했다.
“풍경이 항상 변하는 게 좋은 것 같아. 볼 때마다 변해. 하늘도 산도 과수원 풍경도.......”
대문만 나서면 과수원이어서 마른 나뭇가지에 새순이 돋고, 구슬만한 사과 알이 굵직한 청사과가 되었다가 드디어는 새빨갛게 익어가는 단순한 자연의 움직임을 따라 마음도 움직인 것이다. 나라가 투덜댈 때마다 입으로는, ‘그렇지? 아무래도 불편하지?’하고 맞장구를 치면서도 속으로는 ‘조금만 더 살아봐, 너도 시골 생활에 중독이 되고 말 걸’ 하는 믿음이 있었다.
어쨌건 불편해 했던 집과 마을에 겨우 정을 붙인 터에 ‘근사한 빈 집’ 어쩌고 하며 이사를 들먹이니 나라가 황당해 한 것은 당연했다.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엄마, 제발 충동적으로 일 좀 만들지 마. 무슨 이사야’ 하더니 곧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나라의 말을 다르게 표현하자면 ‘제발 철 좀 드세요’이니, 누가 엄마고 누가 딸인지 모를 상황이었다.
계약도 다 해버렸다니 어쩔 수 없이 집을 보러 온 나라는 우선 넓은 작업실이 생긴다는 것에 금방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은근히 어깨에 힘을 주며 말했다. 새로운 집을 얻은 배경에는 너에게 작업실을 마련해 주고 싶은 마음도 한 몫 했다고.
이사를 하고나서는 정말 열심히 청소를 했다. 곰팡이가 슨 천정이며 벽, 재질이 안 보일만큼 먼지더께가 쌓인 나무 바닥을 샌드페이퍼로 문질러내기도 수차례였지만, 6년이나 돌보지 않은 데 대한 복수라도 하듯 고집스럽게 곰팡이 냄새를 뿜어내는 집이었다. 그 틈틈이 가정집이던 곳을 영업장으로 허가 내는데 필요한 서류 절차를 밟고, 사업자 등록을 하고, 녹슨 보일러를 교체하고, 실내에 수도공사를 하고, 가스며 전기 등도 영업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벽과 천정을 페인트로 칠하고 재활용센터를 드나들며 공간 인테리어를 시작하기까지 한 달이 후딱 지나가 버렸으니, 바라던 날짜에 개업을 못한 것은 절대 시간이 부족해서였다. 전문 공사가 필요한 일은 전문가의 힘을 빌고 청소는 나라가 도와주었지만 인테리어는 누구의 도움이나 조언도 없이 혼자 했기 때문에 11월 30일에 문을 연 것만도 다행이었다.
산발한 머리카락이며 뺨, 꼬질꼬질한 옷차림에 페인트 자국이 곳곳에 묻은 모녀가 페인트 가게며 슈퍼마켓, 김밥집이며 은행을 들락거리는 모습이 심심한 이웃들에겐 호기심거리여서, ‘어디서 왔냐, 뭘 할 거냐, 언제 문을 열 거냐’ 하고 질문들을 해 댔다. 집 맞은편에 있는 함창 중학교의 선생님은 전화까지 해서 ‘뭘 팔지요? 언제 문을 열지요?’하고 물었는데 아마도 학교 앞에 술집이라도 생기는 게 아닌 지 걱정을 하신 것 같다. 어쨌든 그럴 때 마다 ‘늦어도 이 달 안에는 열어요’라고 했던 말에 책임을 지느라 가까스로 문을 연 것이었다.
▲ '카페 버스정류장'의 내부 풍경. © 박계해
그야말로, 문을 연 것이었다. 개업을 알리는 어떤 표시도 하지 않은 채, 소리 소문 없이. 가족이며 지인들에게도 소식을 전하지 않았기에 축하 인사를 받을 일도 없었다. 솔직히 첫날부터 손님이 많아서 정신을 못 차리는 일은 겪고 싶지 않았다. 이 공간이 필요한 진짜 손님이 아니라면 의미가 없을 테니까.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려 공기가 싸늘하였다. 전날 급하게 구입한 난로를 여기저기 틀어놓고 공기를 데웠다. 아침 아홉시에 팥 시루떡이 도착했고 그 사이 사귄 학생사 아주머니와 함께 우산을 쓰고 떡을 돌렸다. 개업 떡이 아니라 이사 떡이라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고 하는데도 학생사 아주머니는, ‘차 마시러 와요’라는 당부를 꼬박꼬박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은, ‘아지매들이 생전 찻집에 가봤어야지, 아자씨들도 다방에나 가지, 뭐, 그런데 가겠어?’였다. 떡은 돌리지만 은근히 걱정이라는 눈치였다.
첫 손님은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예쁜 삼십대의 여성이었다.
“좋아요, 굿이에요. 이런 촌구석에 카페를 열 생각을 어떻게 하셨어요? 대단하다!”
대단하다는 말은 칭찬 같기도 하고, 무모하다는 염려 같기도 했다. 나는 그녀에게 내가 쓴 책을 선물하였고 그녀는 이후 한동안 우리 카페의 홍보대사를 자청했다.
다행히도 열 분 정도의 손님이 다녀가서 허둥대지도 허전하지도 않은 시작을 할 수 있었다.
카페 문을 닫고, 청소기를 돌리고, 음악을 끈 조용한 공간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개업을 자축하였다. 이런 촌구석에 카페를 열 생각을 하다니, 나는 과연 대단한 짓을 한 게 분명했다. (박계해) <일다> 바로가기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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