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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과정'이 '목적'이 되는 직업을 택하다
<꿈이 있는 인터뷰> 글 짓는 사람 이유원 
 
창간 이후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인터뷰” 코너를 <꿈이 있는 인터뷰>라는 이름으로 재개합니다. 세상에는 전문가, 성공한 사람, 유명한 사람이 아니어도, 다양한 매력을 가지고 공감할 수 있는 삶의 이야기를 가진 여성들이 많이 있습니다. 평범한 듯하면서도 특별한 그녀들을 소개하는 <꿈이 있는 인터뷰>에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 드립니다. – 편집자 주  <일다> www.ildaro.com]
 
5년차 방송기자가 소설가 지망생이 된 까닭은

▲ 방송기자로 일할 때 취재원과 인터뷰 중.       
 
<꿈이 있는 인터뷰>라는 기회로 평소 흠모하던 유원님을 인터뷰하게 되었다. 유원님과는 2년 넘게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사이라 오래 본 듯하면서도 정작 마주하는 시간은 매번 짧았다. 그래서 그간 흠모하던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었는데 이제 인터뷰어가 되어서 당당히 신상을 캐물을 수 있다니, 기뻤다!
 
유원님은 방송 기자였다.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내 주변에는 몹시 희소한 직업이라 대단한일을 하시는구나 하는 낯선 시선으로 주목하고 있었다. 그녀는 사회부를 거쳐 국제부까지 대략 5년 넘게 기자로 일했다고 한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유원님은 <일다>의 기사 모니터링 모임에서 항상 정곡을 찌르는 발언으로 멋진 인상을 남겼다. 그래서 나에게 ‘기자들은 다들 저런 아우라를 뿜는 걸까?’하는 긍정적 편견을 가지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고 글을 쓴다는 소식을 전해서 깜짝 놀랐다. 내가 아는 기자는 유원님이 전부라, 너무 기자스러워 보였기 때문일까. 유원님에게 기자말고 다른 직업이 어울릴지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였을까.
 
처음 만나서 '어떻게 기자가 되셨나요?' 질문으로 들은 대답이 '기자 하다가, 나중에 소설을 쓸 거예요'였다. 그때만 하더라도 나는 '은행에서 일하는 내 동생도 소설가하고 싶다고 하던데' 정도의 맥락으로 알아들었었다. 누구나 꿈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정말로 그녀가 덜컥 생업을 관두는 일을 저지를 줄 몰랐다. 내가 월급 받는 노동자의 인생을 전제하고 나서야 다른 선택지가 가능한 사람이기에, 상상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누구나 꿈이 있지만, 꿈을 현실로 바꾸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건실한(?) 기자인 줄만 알았던 유원님을 용기 있는 예술가 지망생으로 다시 보게 된 순간이었다.
 
“기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일단 소설가가 되기에 기자 생활이 좋은 밑천이 될 거 같았거든요. 사회의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만날 수 있는 직업이잖아요. 실제로 지금 많이 도움이 되요. 음, 또 부끄럽지만,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싶은 공명심도 있었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지고 싶었어요.”
 
글을 쓰고 싶어서 고른 직업이 기자라니! 그동안 기자로써 써내려간 글들은 어땠는지 질문을 던져보았다. 생생한 사회 비판 기사를 써내려가는 멋쟁이 기자 생활을 답변으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대답은 달랐다. 글을 쓰기 위해 선택한 길이었지만, 기자라는 직업 자체는 글쓰기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했다. 특히나 방송기자였기 때문에, 글쓰기와는 다른 또 다른 세계였다고 한다. 유원님은 기자 생활이 글을 쓰는 직업이라고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음에도 회의와 의미가 교차하는 값진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글쓰기는 행복하지만… 등단은 무한경쟁의 세계

▲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 떠난 여행-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 중. 
 
유원님은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폭발할 때쯤 기자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글쓰기가 나이 들어서 여유롭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고, 치열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글 쓰고 싶은 욕구라. 나는 가끔 감정을 해소하고 싶을 때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데 유원님의 글을 쓰고 싶은 욕구는 어떤 것일까.
 
“저는 국문과를 나왔는데 그때도 문학공부가 너무 재밌었어요. 남들은 억지로 공부한다고도 하는데 전 그게 이해가 잘 안가더라구요. 학교 다닐 때는 문학회 활동을 하면서 시를 쓰기도 했어요.”
 
전공과목이 즐겁다니 이것은 굉장한 축복이 아닌가! 나는 어느새 그녀에게 날카로운 기자 이미지 대신 열정적인 문학소녀의 이미지를 덧씌우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쓰기 자체가 좋아요. 글쓰기로 이루고 싶은 목적이 딱히 있다기보다도, 그냥 상상하고 구상하고 쓰는 일 자체에서 희열이 느껴지거든요. 과정 자체가 목적이 되는 작업은 제 인생에서 글쓰기가 유일한 것 같아요. 기자가 되려고 했을 때는 어떤 목적 같은 게 있었는데 글쓰기는 그런 게 없어요.”
 
쭉 하고 싶었고, 하면 즐거운 일을 전업으로 삼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리고 바로 지금 종일 글을 쓰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참 행복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유원님은 행복할 줄만 알았는데, 100% 그렇지는 않다는 대답을 돌려주었다.
 
글 쓰는 것 자체가 즐겁고 소재가 계속 나와서 쓰고 있기는 하지만, 언제 등단할까 생각하면 답답함이 밀려오기도 한다고 한다. 한국 문학계에서는 '등단'이라는 과정이 보통 문예지, 출판사가 주최하는 공모전이나 신춘문예에 당선됨으로써 시작한다. 이렇게 공모전이나 신춘문예라는 경쟁과정을 통과하고 매년 열댓 명이 등단할 수 있다. 자유롭게 글 쓰는 삶을 꿈꾸며 소설가를 향해  큰 한걸음을 내딛었는데, 도착해보니 여기도 또 다른 무한 경쟁 세계였다. 소설가가 되기 위한 과정이 이런 무한경쟁 등단 시스템을 겪어내야 하는 줄 알았다면, 유원님은 스스로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런 빡빡한 소설가 등단 시스템에 한숨을 쉬다가도, 유원님은 다시 이제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삶을 살고 싶다는 결심을 내보였다. 그동안 30년 넘게 결과에 충실한 모범생 같은 삶을 살았지만, 이제는 내 인생을 살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글쓰기 자체도 과정을 즐기려 하는 일이니만큼, 등단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등단까지 꾸준히 치열하게 글을 쓰면서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가겠다고 했다. 그녀의 결심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의 뚝심이 느껴졌다.
 
유원님은 이제 막 몇달 동안 전업 글쓰기 모드 소설가 지망생으로 살면서, 모 문화 센터 소설 창작 모임에 나가는 중이라고 한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글벗 모임을 만들어서, 반강제적으로 한 달에 한편 단편 소설을 쓰고 서로 합평하는 자리를 가지고 있단다.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기 때문에 서로 공감하면서 격려가 되는 모임이라고 했다. 그리고 올해에는 대학원을 준비하고 있다는 야무지게 바쁜 일상을 소개했다.
 
여러 사람들과 공명할 수 있는 여성주의 소설 쓰고파 

▲ 여행 중 인도에서.   
 
일다 독자위원회 모니터링 모임에서 만난 유원님은 과거 기자였고, 지금은 소설가를 꿈꾸고 있지만, 그전부터 지금까지 내내 여성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런 유원님에게 여성주의와 소설은 어떻게 유원님의 인생에서 만나고 있는지 물었다.
 
거기서부터 우리는 한참 '여성주의 소설'을 어떻게 정의해야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성주의 소설과 여성작가가 쓴 소설은 또 다르다는 점에서 공감을 하다가, 거기에서 여성주의 과학연구 방법론까지 나갔다. 그러다가 역시 문학이나 과학이나 일률적으로 여성주의 프레임을 씌우긴 힘들다는 결론으로 입을 모았다.

 
칼로 자르듯 간단하게 여성주의 소설이 무엇이다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유원님은 그녀의 여성주의 소설을 조심스레 정의했다.
 
“제 여성주의는 사람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거예요. 그리고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여성에 대한 편견과 폭력이 부당하다고 독자들이 자연스레 공감할 수 있는 소설이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설득할 수 있어야 운동이잖아요. 내 프레임만을 고집하고 싶지 않지는 않아요. 다른 사람들과 공명할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그리고 유원님은 공지영씨를 여성주의 작가의 좋은 예로 소개했다. 공지영씨가 자기애와 뚝심이 강하고, 스스로 하고 싶은 말을 다하는 겁 없는 여자라 대리만족을 느낀다고 했다. 공지영 같은 작가가 되고 싶은 거냐는 물음에, 유원님은 겁이 많아서 쉽지는 않을 것 같아, 지금은 공지영작가를 롤모델로 삼는 데에 만족한다고 대답했다.
 
내가 알던 공지영 작가를 유원님의 시각에서 겁 없는 여자로 다시 보니 신선했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작가라고만 생각했는데, 문단에서는 문학성이 부족하다는 폄하적인 시각들이 많고 팔리는 소설가일지언정 뛰어난 소설가로 인정받지는 못한다고 한다. 그것은 공지영씨의 소설이 이야기로 승부하는 면도 없잖아 있지만, 남성 중심적인 한국문단에서 눈 밖에 나더라도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공지영씨의 평소 모습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했다.
 
‘글을 쓰면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뭘까요’라는 질문에 유원님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대답을 들려줬다. 스스로가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을 너무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했다. 이 말을 듣는 나뿐만 아니라 주변사람들도, 유원님의 집안에서 꼼짝 안하고 글을 쓰는 은둔형 소설가 기질에 놀라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소설가로 등단 못하면 은둔형 외톨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농담을 하는 유원님은 전혀 집순이의 기질이 안 보였다. 나는 그만큼 집에서 글쓰기가 잘 되어가고 있다는 뜻으로 둘러 알아들었다.
 
유원님의 여성주의 소설을 읽게 될 날을 기대하며 인터뷰를 끝냈다. 그간 일다 모임에서 선보인 그녀의 글들을 미루어볼 때, 핵심을 찌르는 쾌감을 전달하는 소설이리라 감히 내멋대로 기대해본다. 기회가 되면 <일다>에 단편소설 하나 투고해 주십사 편집진들을 대신해 만용도 부려보았다. 스스로 겁이 많다고 했지만, 하고 싶은 일을 거침없이 하는 유원님은 용감하고 행복해 보였다. 부디 이 글이 이유원이라는 멋진 소설가의 첫 인터뷰가 되는 영광이 주어지길 바란다. :)   (지은경)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인터넷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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