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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매력에 반하다

카페 버스정류장의 연극반 아이들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2. 11. 3. 06:30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까페 버스정류장] (7) 연극반 아이들

경북 상주시 함창읍 함창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카페 버스정류장”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무는 이 까페의 문을 연 박계해 선생님은 “학교를 떠나 산골로 들어간 한 여자의 귀촌일기” <빈집에 깃들다>의 저자입니다. www.ildaro.com  

▲ ‘카페 버스정류장’에서는 방문객들이 만들어내는 한편의 연극이 펼쳐졌다 사라지곤 한다. ©일다

다른 이야기를 떠올릴 공간이 없을 만큼 내 머릿속은 연극공연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다.
 
귀촌한 지 2년만인 2004년부터 지역의 학교에 방과 후 연극 강사 활동을 해 왔다. 수입이 일정하지 않고 대개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나가는 게 고작이라 돈벌이를 한다고 내세울만한 직업은 못된다. 다행히 올해는 수업이 더 늘어서 수요일과 일요일을 뺀 날은 매일 수업이 있다. 카페 운영에 전념할 수 없다는 게 흠이지만 콧바람을 쐬기엔 더없이 훌륭한 구실이다. 그래서 하루에 세 시간정도 자리를 비우는데 그 시간은 딸 나라가 카페를 지킨다.
 
학교에서도 가을은 결실의 때인지라 한 해를 마무리 짓는 활동으로 축제를 한다. 학교마다 일정이 비슷하다보니 수업을 나가는 두 학교의 축제 기간이 겹치고 장소도 같은 시민문화회관이다. 그래서 연달아 이틀 동안 두 개의 공연을 올리게 되었다. 하루에 한 학교씩이라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예전의 어느 해에는 오전에 초등학교 공연을 올리고 오후에 중학교 공연을 올린 적도 있었다.
 
공연 날이 정해지면 머릿속 가득 걱정을 달고 다니는 게 어쩌면 버릇이 되었다. 공연 후에는 괜한 걱정이었다며 안도하는 것, 너무 잘했다며 아이들과 서로 껴안고 호들갑을 떠는 것, 그리고 짜장면을 먹으며 뒤풀이를 하는 것 까지, 그리고 그것이 연극반의 고전적인 모습이란 생각까지가 다-, 기꺼운 버릇이다.
 
11월 초에 두 학교의 공연을 마치고 나면 방과 후 수업도 마무리 되고 카페에서 마주 보이는 함창 고등학교의 수업만 남는다. 토요일에 두 시간이 배정된 것인데 그나마도 여러 가지 일정에 자리를 내주어 한 달에 한 번 수업을 한 적도 있다. 그래도 현재의 교육현실 속에서 인문계 남자 고등학교가 연극이라는 과목에 시간을 내 주는 경우는 드문 일이니 감사할 따름이다.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수업의 대부분을 우리 카페에서 했으니, 토요일 오전의 카페는 함창고등학교 연극동아리방이라 할 수 있다.
 
첫 수업은 카페 일층 방에서 했다. 일찌감치 다과를 준비해 놓고 주전자 가득 유자차를 달이는데 출입문이 열리며 아이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아직도 나는 교복을 입은 아이들만 보면 괜한 친근감에 들썩이는데 일층 방 안이 눈부신 교복으로 채워진 걸 보니 황홀함에 이성을 잃을 지경이었다. 유자차를 들고 들어가 한 바퀴 돌며 한명 한명에게 찻잔을 건네었다. 그리고 아이들 앞에 섰다. 말을 건네기도 전에 스물 두 개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반듯한 자세, 꾹 다문 입술, 어딘지 풀죽은 느낌.
 
“안녕!”
“안녕하세요!”
우렁찬 목소리지만 활달함과는 거리가 멀다. 어젯밤에도 야자를 하느라 교실에서 꾸벅꾸벅 졸던 눈동자에 실핏줄이 섰다.
  
“카페에서 수업하는 거 어때?”
“좋아요!!”
 
교복처럼 똑같은 한 목소리, 무표정한 얼굴.
 
“내 이름은 박계해, 발음대로 하면 ‘밖에 해’거든. 그래서 별명이 ‘밖에 해 떴다’야. 줄여서 ‘해,떴,다’ 라고 불러. ‘해떴다’, 한번 불러봐!”
“해떴다!”
 
소리치고는, 그제야 제 각각의 표정으로 키득키득, 하하하, 피식…… 하고 웃었다.
 
“음, 첫 만남이니까 우리 자기소개 한 번 해 볼까, 자, 여기 백지가 한 장 있어. 이 백지를 이용해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바람을 가졌고,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표현해 보는 거야. 예를 들 겸 내 소개를 먼저 할게. 나는 연극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야. 그동안은 초등학교 저학년들과의 수업이 대부분이어서 주로 몸을 써서 가르치느라 힘들었는데, 이젠 대화가 통하는 친구들이랑 수업을 할 거란 기대에 부풀어 있어.”
 
정말 그랬다. 어린 아이들이 귀여운 건 사실이지만 수업을 마치고 나면 기진맥진해지기 일쑤였던 것이다. 나는 백지(A4용지)를 가슴께에 펼쳐들며 말을 이었다.
 
“이 흰 종이는 무대야, 이 무대 위에서 너희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기를, 그리고, 멋진 공연을 펼쳐놓기를 바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모두 스스로 잘 하게 될 거란 걸 알기 때문에 나는 다만 옆에서 지켜보고 거들어 줄 거야.”
 
그리고는 백지에 하트 모양의 구멍을 만들어 눈에 대고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아이들이 박수를 쳤다. 나는 백지를 한 장씩 나누어 주었다.
“이제 너희들 차례다. 오른쪽으로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생각할 시간도 필요할 테니 조금 후에 시작할게. 화장실도 다녀오고 남은 것 마저 먹어요.”
“예!”
 
예, 라니. 어쩜 저리도 온순할까, 싶은 아이들이었다. 사실 이 아이들은 연극반을 지원한 게 아니었다. 나와 친분이 있는 국어 선생님이 운영하는 신문반 아이들인데 그가 연극수업으로 유도한 것이다. 휴식 시간을 주었는데도 화장실을 가는 아이도 장난을 치는 아이도 없이 침묵 속에서 음료수 마시는 소리만 꿀꺽 꿀꺽 났다. 이렇게 얌전한 아이들은 처음인지라, 백지를 이용해서 자연스럽게 소통해 보려 한 것이 살짝 후회가 됐다. 어색한 시간이 되면 어쩌나, 하고.
 
“그럼, 시작해 볼까? 할 말이 생각나지 않으면 의사표시를 하고 다음 사람에게 넘겨.”
“네!”
 
변함없는 합창 소리에 쿡, 웃음이 났다. 내 오른쪽에 앉아있던 아이가 일어섰다. 이름표에 김호영이라고 씌어있었다.
 
“오! 호영이, 처음 하는 사람이 제일 부담이 되니까 우리, 박수 한 번 쳐주자.”
우렁찬 박수소리-.
 
호영은 백지를 반으로 접어 둥글게 찢었다. 접은 부분을 펼치니 두 개의 구멍이 생겼다. 고요함속에서 아이들의 눈은 호영의 손놀림만 바라보았고, 호영은 두 손을 구멍 속으로 넣어 수갑을 찬 형태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팔목을 세워 들고 입을 열었다.
“이건 죄수처럼 자유가 없는 우리의 지금 모습입니다. 나는 이런 우리들을 자유롭게 해방시키고 싶습니다. 이렇게요.”
호영은 단숨에 팔을 벌렸고 종이는 찢어졌다. 아이들은 와~, 하며 박수를 쳤다.
 
이어서 비행기를 접어 날리며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 마음껏 날아보고 싶다’ 는 평범한 얘기를 하는 아이도 있고 재치 있는 발언도 많았는데, 그 중 태형의 이야기는 모두를 숙연하게 했다.
   
“이 흰 종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나입니다. 초등학교를 다니며 이 흰 종이는 때가 묻고 더러워지기도 했지만 제 모습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중학교를 다니며 이 종이는 이렇게 접히거나 구멍이 나기도 했다가. 지금은 이렇게, 다시 되돌릴 수 없게 구겨져 제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이야기에 맞춰 두 손으로 손때를 묻혔다가, 접기도 하고, 드디어는 두 손바닥으로 백지를 구겨버렸다. 그리고 구긴 종이를 다시 펴서 햇살이 스며드는 창 쪽으로 펼쳐들었다.
 
“하지만 때가 묻었거나, 접히고 구멍이 난 모습 역시 나의 한 부분입니다. 이 구겨진 단면 중에는 이렇게 밝은 부분도 있고 그늘져 어두운 부분도 있습니다. 밝고 환한 이 단면도 내 모습이지만 그늘진 단면이 없다면 밝은 곳도 밝은 곳이라 부를 수 없겠기에 이 그늘진 면도 소중한 나의 한 단면입니다.”
 
내용도 감동스러웠지만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된 이야기라도 하는 냥 차분하고 유창한 그의 언변에 모두 감탄사와 함께 큰 박수를 쳤다. 그렇게 자기소개하기를 마치고 수업 소감도 청해 들었다. 이 모든 게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입을 열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친구들이 달리 보인다, 연극수업이 기대가 된다, 카페에서의 수업이 특별한 기분을 준다…… 는 얘기들을 했다.
 
그렇게 초봄에 만난 아이들과 함께 이 가을을 맞는다. 이제 공연도 해야 하니 큰 움직임이 필요하기에 학교로 갔다. 같은 수업을 하는데도 아이들의 얼굴엔 습관처럼 권태로움이 가득하다.
“니들 매일 지내는 공간이 지겨운 거지? 남은 수업은 카페로 가서 할까?”
“예!”
 
얼굴이 활짝 펴지며 우르르 일어나 내달리기 시작한다. 나는 멀어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따라 천천히 학교를 벗어난다. 연극동아리방인 카페로 가는 데는 이삼 분이면 족하니.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영문블로그> ildaro.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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