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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새지평

가부장적 성문화 바꿔야 성폭력 예방될 것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2. 9. 7. 13:30

처벌만 강화하면 성폭력 범죄가 예방될까?
<일다> 공포와 불안 넘어 실효성 있는 근본 대책 마련해야 

[잇따라 끔찍한 성폭력 사건들이 보도되면서 분노한 여론을 앞세워 ‘보여주기’ 식의 처벌강화 정책이 무분별하게 도입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현장 활동가의 목소리를 통해 정부정책을 둘러싼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필자 최영지님은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이며, 이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블로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지난 몇 년간 언론을 통해 보도된 여성 또는 아동에 대한 잔인한 수법의 강간, 살해 그리고 강간 피해로 인한 자살 사건을 보면서 사람들은 안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 아마 대부분 불안과 공포가 전에 비해 가까워졌음을 느낄 것이다. 사회적으로 성폭력범죄에 대한 반향이 크게 불거지면서 정부와 정치권은 비상대책회의를 소집하고 특별위원회를 만드는 등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분주해 보인다. 그러나 이들이 내세우는 주요 가해자 처벌 강화 대책을 보며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흉악한 성폭력 가해자 사형시켜라!’ 여론의 위험함
 
한국사회의 성폭력에 대한 시각은 엄벌주의 대 온정주의로 양분화 되어 나타난다. 엄벌주의 시각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르는 사이이고, 피해자가 아동이거나 장애인과 같이 객관적인 약자라고 여겨질 때, 성폭력 범죄 가해자에 대한 공분과 함께 극단적인 처벌을 요구하는 시각이다.
 
온정주의는 이와 달리 피해자와 가해자가 아는 사이이고(80%정도의 성폭력 범죄는 이러한 관계에서 벌어진다), 피해자가 성경험이 있거나 성인인 경우, 그리고 가해자가 평소 ‘바른 생활’을 했다고 할 경우 ‘가해자가 고의도 아니었고 실수를 한 것 같은데 용서해 주는 것이 올바르지 않은가’ 하는 식으로 성폭력을 사소한 것으로 용인하는 시각을 말한다.
 
이러한 극단적인 양분화 된 시각은 성폭력 피해자를 가부장제 아래에서 지켜야할만한 대상과 그렇지 않은 대상으로 나누기 때문에 존재한다. 엄벌주의와 온정주의는 가부장적 기준에서 나온 시각이기에 둘 다 문제적인데 한 쪽 시각을 강화할 경우 다른 쪽 시각 역시 강화되는 효과를 보인다. 따라서 성폭력 가해자를 사형시켜야 한다!와 같은 가해자 처벌 강화를 요구하는 주장들은 사실, 모든 성폭력 범죄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 중에서도 지켜야할만한 대상에게 폭력을 휘두른 가해자에 대한 주장이며 온정주의를 동시에 강화시킨다는 점에서 큰 한계가 있다.
 
가해자 개개인의 관리와 처벌 강화만 외치는 정부
 
성폭력 범죄는 잘못된 성문화와 권력관계의 특성에서 비롯되는 범죄로 이는 단지 가해자 개개인에의 처벌에만 집중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정부는 성폭력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나 고민도 없이, 들끓는 여론을 등에 없고 단기적이고 무책임한 가해자 처벌 강화 정책을 내놓으며 이를 모든 성폭력에 대한 해결책이 되는 것처럼 홍보하고 있다.
 
정부가 성폭력 범죄 대책으로 마련한 주요 정책에는, 성폭력 범죄의 양형 상향 조정과 더불어 신상정보공개 확대 및 전자발찌, 성충동약물치료가 있다. 이러한 일련의 처벌 강화에 집중한 정책들은 단기적으로 성폭력 범죄 하락에 효과를 보일 수는 있겠으나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성폭력 범죄 양형의 상향 조정은 유죄를 선고하는 재판부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는 재판부가 이제 성폭력 범죄의 유죄를 선고하기 위해 더욱더 객관적인 증거를 요구하고 범죄 입증의 부담을 피해자가 더 크게 갖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대부분의 성폭력의 경우 증거가 미약한 경우가 많다. 이에 무조건적인 범죄 양형 상향 조정은 오히려 처벌률을 높이는데 어려움을 가져올 것이다.
 
성폭력 범죄에 대한 낙인과 가해자 재범 방지를 위해 도입한 신상정보공개의 확대 시행은 가해자와 대면하는 방식조차 알지 못하는 많은 시민들에게 공포와 불안을 확산하는 동시에 성폭력 예방의 부담을 전가시키는 효과를 내고 있다. 전자발찌는 최근의 언론에 보도된 전자발찌 부착 범죄자의 재범 사건들에서도 보이듯, 가해자의 심리적 부담으로만 작동할 뿐 실질적인 재범 예방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특히 정부는 8월 30일과 9월 4일 성충동약물치료 대상자를 확대한다고 하였다. 그 효과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성폭력이 성충동에 의해 일어난다는 왜곡과 편견을 확대시킬 정책을 너무나도 쉽게 결정하고 홍보하는 정부의 대응에 할 말을 잃었다. 우선 성충동약물치료는 초범을 막을 수단은 되지 못할뿐더러 가해자들은 성충동약물치료를 성폭력이 성충동에 의해 일어났을 뿐 고의가 없음을 주장하기 위한 근거로, 또한 이를 선택하고 형을 줄이는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제도는 결과적으로 성폭력을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범죄가 아니라 생물학적 충동에 의해 벌어지는 개개인의 문제로 보는 시각을 확산시킬 것이라 예상된다.
 
또한 정부는 성폭력 범죄의 대응책을 폭탄처럼 쏟아내면서 성폭력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한 것처럼 홍보하고 있지만 처벌 강화 정책의 대상자는 사실 소수이다. 여성가족부에서 2010년 19세 이상 성인 2,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0년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강간, 강간미수 피해에 대한 경찰 신고율은 12.3%이다. 강간이 이정도이면 다른 성폭력 범죄의 신고율은 더욱 낮을 것임을 예상 할 수 있다.
 
성폭력 범죄의 특징이 신고율과 기소율, 처벌률이 낮다는 것인데 따라서 실질적으로 처벌 강화 정책의 대상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낮은 신고율을 지나, 그 중에서도 친고죄로 인한 합의종용과 검사의 불기소 의견을 넘어, 삼심제를 지나 유죄 판결을 받은 가해자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이사이에 빠져나간 가해자들에 대한 대응책은 무엇인가?
 
선정적 언론과 보수적인 사법부에 대한 아쉬움
 
최근 정부가 이렇게 성폭력 범죄에 대해 호들갑스러운 반응을 하는 데는 성폭력 범죄를 보도하는 언론을 통해 폭발한 사회적 분노가 배경에 깔려있다. 그러나 언론의 최근과 같은 성폭력 범죄 보도 방식은 문제가 있다. 언론의 자극적이고 선별적인 성폭력 사건 및 가해자 처벌 강화 정책에 대한 무비판적 보도는 성폭력을 극적이고 통제 불가능한 범죄로만 보는 시각을 확산하고 있다. 이는 성폭력에 대한 현실을 반영하고 건설적인 대응과 완화에 기여하는 바가 아니라 혐오와 공포만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언론은 성폭력 보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세우고 보도 윤리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
 
또한 수사기관과 재판부의 느린 인식 전환이 이러한 처벌 강화 정책의 흐름에 한 몫 했음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은 신고부터 수사, 재판 과정에서 피해를 부정당하고 의심받는 모욕을 받아왔다. 가해자를 수사하는데 집중하기 보다는 피해자를 의심하고 비난하는 형사사법절차는 시민들에게 성폭력은 신고하여도 소용이 없고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는다는 생각을 확산시켰다. 사법부는 스스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변명은 그만두고 적극적으로 성폭력 범죄 2차 피해 방지 마련 및 성폭력 범죄 수사와 재판 전문화 노력을 해야 한다.
 
가부장적 성문화에 대한 고찰이 성폭력 범죄율 낮출 것
 
그동안 한국사회는 성문화와 권력관계에 대한 고찰 없이 성폭력을 바라보아왔다. 이러한 이유에서 가해자 처벌 강화 방식이 대두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모두 알게 되었듯이, 대부분의 가해자는 특별한 범죄자가 아니며 생활 주변에서 마주치는 사람이다. 이는 우리가 이들에 대한 공포와 불안으로 해결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성문화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만 낮출 수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 전반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공교육에서의 깊이 있는 인권교육 도입, 언론의 성폭력 기사 보도 가이드라인 마련, 형사사법절차상의 2차 피해 방지 마련 및 수사재판의 전문화 노력, 그리고 정치권의 인기영합적인 단기 대응책이 아닌 한국사회의 성폭력에 대한 시각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 될 때 성폭력은 실질적으로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최영지 /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독립언론 <일다> 바로가기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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