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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하지 못한 말이 너무 많아
딸을 만나러 가는 길 (49) 희망을 꿈꾸며 
 
이혼을 하면서 두고 온 딸은 그녀에게는 늘 어떤 이유였다. 떠나야 할 이유, 돌아와야 할 이유, 살아야 할 이유……. 그녀는 늘 말한다. 딸에게 하지 못한 말이 너무 많다고. "딸을 만나러 가는 길"은 딸에게 뿐만 아니라 이 땅의 여성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윤하의 고백이 될 것이다.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아이와 함께 산 건 1년 9개월, 채 2년도 안 되는 기간이었다. 나는 딸과 보낸 짧은 기간이 늘 안타까웠지만, ‘우리 인연이 여기까지구나!’ 하고 체념한 채 살았다. 체념이 아니고는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다가 열일곱 살이 된 아이를 다시 만난 첫날은 너무 우연한 만남이어서,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다음 주에 다시 오마’하고 돌아섰다. 아직 아이를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다시 보면,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자세하게 표현할 생각이었다. 그녀에게 하지 못한 말이 너무 많았다. 나는 일주일 동안 약속한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약속 하루 전 날, 교회 수련회 때문에 다음 주로 미뤄야겠다는 아이의 문자가 전달되었다. 그것은 내 들뜬 감정에 찬물을 끼얹기에 충분했다. 교회 수련회 때문에 미뤄진 약속은 다시 시험 때문에 연기되고, 또 전남편이 나를 만나는 걸 싫어하는 눈치라는 이유로 딸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그런 그녀의 태도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나는 서운함을 표현했다. 그러고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아버지와의 문제는 네가 스스로 풀어야 할 것이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또 네가 얼마나 실감하는지 모르지만, 엄마를 만나려면 큰 용기를 내야 할 거야! 네가 그렇게 용감할 수 있겠니?”
 
물론, 아이는 당시에는 ‘용기를 낼 거’라고 자신감 있게 대답했지만, 아무런 장애 없이 우리가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은 나를 원망했다.
 
그렇게 두 번째 만남은 쉬이 이뤄지지 않았다. 갖은 곡절 끝에 그녀를 다시 만난 건 그녀의 생일날이었다. 그것이 딸과의 두 번째 만남이고 지금까지는 마지막 만남이 되고 있다. 또 그날은 딸이 태어난 이후, 내가 챙겨준 두 번째 생일이었고, 어쩜 마지막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날조차 딸에게 전적으로 맞추지는 않았다. 나의 등장으로 인해 부모에게 자기 입장이 난처해졌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지도 못했던 그녀는 잔뜩 골이 난 표정으로 나타났다.
 
그럴지언정, 나는 처음부터 못을 박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난 네게 돈을 주지 않을 것이고, 값비싼 선물도 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면서 준비한 선물을 주었다. 그것들은 편지와 직접 바느질해서 만든 짠짠한 물건들과 내가 갖고 있던 현경의 책 ‘미래에서 온 편지’였다. 그러면서 딸에게 “네게 돈으로 환심을 사려 들지 않을 거”라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물론, 지금도 이 태도는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많이 서툴고 유연하지 못했다는 걸 인정한다. 아이들을 키운 경험이 없는 나는 아이를 대하는 방식에서 부족함이 많았던 것이 분명하다. 좀 더 다정하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 당시에는 그렇게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고, 어쩜 지금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아이가 나로 인해, 가족들로부터 난처한 상황에 놓였다는 걸 알면서도 격려해주거나 따뜻하게 감싸주지 못했다.
 
게다가 그녀에게도 소중한 일상이 있다는 것을, 그 일상들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부모나 형제자매보다도 중요하다는 걸, 잠시 잊었다. 아니, 어쩜 이런 깨달음은 딸보다 내게 더 적용되어야 하는지 모른다. 내게도 지속해야 할 일상이 있고, 딸과 관계없이 여전히 꿈꿔야 할 미래가 있고, 내가 살아내야 인생이 있다는 걸 잊어버리고, 잠시지만 온통 아이에게 매달려 있었다. 당시, 나는 딸에게 인생을 걸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던 것이 무색하게 딸을 만나고 돌아온 내내 문자와 블로그에 온통 매달려 그녀와 소통하려고 애썼고, 그녀의 행동에 모든 감정이 좌우되는 경험을 했다.
 
또 딸은 딸대로 자기 새엄마를 생각하면서 나를 대했던 것 같다. 항상 자신을 중심에 놓고 늘 맞춰주고, 자기를 먼저 배려해 주는 새엄마처럼 나도 자기를 그렇게 대할 거라고 믿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내 태도가 너무 차갑고 냉정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녀가 내게 밝힌, 나를 만나지 않겠다는 의사가 순전히 자신의 결정이라는 말이 진실이라면, 자기한테 서운함을 거침없이 표현하고, 자기를 더 배려하지도 않는 나를 보자, 처음 기대했던 것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해, 만나기 싫어진 것 같다. 그녀는 “내가 새엄마 같고, 새엄마가 친엄마 같이 생각된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이런 딸의 의견표명에도 뭐라고 토를 달지 않았고,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매달리지도 않았다. 딸의 말대로 나는 ‘냉정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내가 냉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딸과 헤어져 살 결심을 했을 것이며, 어찌 한 번도 딸을 만나려 하지 않고 14년이나 살았겠는가? 딸은 그녀가 느꼈던 것보다 내가 훨씬 더 냉정한 사람이라는 걸 모른다. 딸이 나를 모르듯, 나도 딸을 너무 모른다. 나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도,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도 모른다.
 
지금껏 내가 기다리고 만나려 했던 사람은 기억 속 아기인 딸이었던 것 같다. “엄마, 엄마!”하며, 아장아장 걷던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두 돌이 채 안 된, 세월 저 편의 아이를 만나려고 했던 건, 정말 아닐까? 그 사이 세월이 흐르고, 아이도 자랐다는 걸 마음속 깊이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에게서 외면당했을 때, 처음에는 딸의 영혼조차 내게서 뺏어갔다고 전남편과 아이의 새엄마를 원망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상황은 그 사이 우리가 서로 만나지 못하며 산 것이 원인이라는 걸 생각해냈다. 모두 내가 원인이었다. 내 그릇된 판단 때문에 벌어진 결과였다. 그러면서 아이를 만나지 않았던 걸 뼈아프게 후회했다. 나는 나대로 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참느라고 힘들었는데, 그것은 누구에게도 이득이 되지 않았다. 애초부터 우리가 만나면서 살았더라면, 서로의 성격이 어떤지 잘 알았을 것이고, 서로 관계 맺는 방식을 잘 익혀나갔을 것이다. 우리는 훌쩍 넘어온 세월의 간격만큼, 서로를 너무 모른 채 환상만 키워온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딸을 만날 희망을 꿈꾼다. 그런 기회가 다시 내게 온다면, 소위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가 아니라 새롭게 만난 어떤 사람을 알아가는 것처럼 그녀를 만나고 싶다. 그래서 딸이, 그녀의 가치관과 꿈이 좋아서 자꾸 만나고 싶은, 그런 마음에 쏙 드는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녀에게도 내가 그런 친구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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